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19화
VVV엔터에서의 데뷔를 준비 중인 카일룸의 리더, 도윤이라는 예명에 익숙해지는 중인 강한영은 최근 멤버들의 행동을 불안해하고 있었다.
원래도 멤버들이 대체로 느긋한 편이긴 했지만, 데뷔가 확정된 이후에는 느긋함을 넘어 불성실을 오가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데뷔가 확정된 직후에는 열의가 있었지만, 컨셉 포토 다 찍고, 대형 신인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벌써부터 케이팝 팬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보이자 순식간에 느슨해졌다.
직원들은 이미 연예인처럼 대해주고, 데뷔 일은 정해졌다. 지금은 아직 데뷔의 무서움을 모르는, 그래서 거들먹거릴 수 있는 시기였다. 이래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나, 도윤은 씁쓸하게 생각했다.
도윤은 데뷔만 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만큼 긴 연습생 기간을 보냈다.
이게 육상 경기라면, 이제야 겨우 몸풀기를 끝내고 경기장에 도착한 것이다. 진짜 달리기, 경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걸 동갑내기 멤버만 알고, 나머지 세 명의 동생들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처음부터, 보이그룹을 낸다는 소문만 들으면 이 소속사, 저 소속사를 기웃대던 도윤과는 절실함의 정도가 달랐다.
“얘들아. 연습 좀 하자.”
“에이, 형. 이제 커버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타이틀 나오면 그거 안무 따기도 바쁠 텐데.”
선배 가수들의 커버는 연습생들에게 필수적인 연습이었다. 그런데 데뷔가 확정된 이후 그걸 뭐 하려 하느냐며, 뺀질거리는 멤버가 생겼다. 올해 19살인 차우석이었다.
직원들이 짜주는 연습 스케줄도 무용지물이었다. 이미 성공이 눈앞에 와 있는 것만 같은 태도였다. 하나가 그러니까, 다른 멤버들도 거기 휩쓸렸다.
저러다 태도 논란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지만, 다행히 차우석은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방긋방긋 웃으며 아이돌처럼 잘 처신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다 여러모로 유명한 퍼스트라이트의 멤버, 정해원의 곡을 받았다.
동갑의 데뷔 선배.
그것도 하마터면 바닥에 처박힐 뻔한 퍼스트라이트의 인기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고, 이미 대선배들에게도 ‘잘 팔리는’ 곡을 써주고 있는, 최근 눈에 띄게 잘나가는 선배였다.
불편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어떻게든 티 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싱글싱글 미소를 장착하고 컨트롤룸에 들어갔다.
‘와씨, 저렇게 생겨야 카메라에 그렇게 나오는구나…….’
정해원은 백미터 밖에서 봐도 연예인. 이목구비가 다 안 보여도 사람들이 연예인이란 걸 알아차릴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인사만 빠르게 마치고 바로, 정해원이 가져온 타이틀곡을 들었다.
도윤은 솔직히 작곡돌이라는 게 컨셉이었으면 했다. 양이형 작곡가와 페어로 자주 일하니까, 양이형이 소속된 작곡가 팀이 만들어준 컨셉 아닐까.
하지만 양이형 없이 작업한 카일룸의 곡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짜 천재구나…….’
도윤이 생각하며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부스럭대는 게 들렸다. 카일룸 동생들이 음악을 듣다가 잠깐씩 딴짓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 곡을 듣고 어떻게 딴짓을 하지, 이 새끼들은?
심지어 차우석은 핸드폰을 꺼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시간을 확인하고 집어넣는다. 하마터면 여기서 욕을 뱉을 뻔했다.
VVV엔터는 연습생 연차를 깍듯하게 따지는 분위기가 아니고, 심지어 도윤이 늦게 합류해 VVV엔터에 소속된 기간도 길지 않았다. 그러니 확 기강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리더인 내가 어떻게든 분위기를 잡았어야 했는데.
어차피 강효준 팀장은 여느 때처럼 그냥 놔두겠지, 라고 생각하며 음악이 끝났을 때였다.
정해원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별로야?”
말을 놨다. 멤버들만큼이나 후배를 어려워하며 인사하던 사람이.
아무래도 동갑이고, 처음에 어려워하는 걸 봐서인지 그냥 적당히 들려주고 가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그럼 내가 선밴데, 내가 나가서 얘기해?”
정해원의 말에 멤버들이 일단 일어났다. 그리고 복도로 나갔는데 안에서 정해원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브삼(VVV엔터)에 연습생 많잖아요. 지금도 안 늦었어요.”
그 말이 나왔을 때였다.
도윤은 차우석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봤다.
하얗게 질린 얼굴.
그러자 옆에서 차우석과 동갑인 곽민재가 말했다.
“선배라고 저렇게 말을 함부로 해도 돼? 형, 저거 너무하지 않아요?”
“뭐가 너무해.”
도윤은 VVV엔터에 와서 처음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3분 사이에 핸드폰을 본 게 너무한 거지.”
“저 그냥 시간 확인한 거예요.”
차우석의 기가 막힌 대답에 도윤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시간 확인을 왜 하냐고.”
“아니, 진짜 습관적으로 한번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대답하는 차우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데뷔가 확정된 이후에 처음 겪는 상황이었으니까.
절대로 무산될 일 없는 곳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프로듀서가 안 늦었다고 하니까 겁이 덜컥 난 것이다. 곽민재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야, 말이 되냐? 어차피 지금 우리 회사 소속도 아니잖아. 그냥 남이 한마디 한 거야. 뭘 그렇게 신경 써.”
“너한텐 프로듀서가 남이야?”
싸우느라 안에서 대화가 끝난 걸 몰랐다. 곽민재가 얼어서 문 쪽을 보니 정해원이 서 있었다.
“너희 진짜 가지가지 한다.”
국선아에서의 이미지는 악편이라고 했다. 많은 부분이.
하지만 그 편집과 별개로, 정해원이 유난히 예민해지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대표적인 게 불성실이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몇 번 거론했듯이.
‘해원이 형은요, 대충하는 거 진짜 싫어해요.’
‘저희 욕먹어 가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해원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의견은 있냐?”
“…….”
“데뷔곡이잖아. 의견 있냐고.”
“…….”
“지들이 부를 노래에, 뭐 하나 낫게 만들 의견 하나 없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너희가 뭐 여기 누구 자식이야? 떠서 입에 넣어줘야 씹어? 그럴 거면 데뷔도 딴 사람이 대신해 달라고 하지?”
멤버들은 대답을 못 하고, 정해원은 굳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버려서, 매니지먼트팀 직원이 급하게 따라갔다.
복도는 조용해지고, 멤버들과 강효준만 남았다. 강효준도 자리를 뜨려 하자 곽민재가 급하게 말했다.
“형, 제가 아무래도 말실수한 것 같은데요……. 따라가서 사과드릴까요?”
그런 곽민재의 말에 강효준은 속으로 웃고 싶은 것을 참았다.
얼핏 봐도 리더인 도윤은 자기가 지금까지 참으며 하지 못하던 말을 전부 다 해주고 간 정해원을 거의 신처럼 보고 있는 눈빛이었고, 요즘 나사 풀린 태도로 4본부 사람들을 염려시키던 차우석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심지어 능구렁이 같던 곽민재까지도 가서 사과해야 하지 않겠냐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도착한 지 15분 만에 VVV엔터 4본부 초토화.
보통의 스물한 살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빡 분위기를 잡아 놓고 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마 정해원이 여기 온 15분이, 지금 카일룸의 명운을 바꿨을지 모른다는 것을 강효준만큼이나 산전수전 겪은 리더 도윤도 알고 있는 듯했다.
강효준이 정해원에게 힘을 얹어주기 위해 말했다.
“바뀌면 멤버가 바뀌지, 프로듀서가 바뀌는 일은 없으니까 각자 알아서 풀어요. 그것까진 내가 못 떠먹이겠다.”
그렇게 말하고 A&R팀으로 떠나버렸다. 복도에 남은 멤버들이 멍하니 있다가, 곽민재가 일단 급하게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 * *
나는 차에 타자마자 진이 빠져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막 밟아주시면 안 돼요? 작업실 가서 퍼지게.”
“안 되죠. 안전운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병원은 다시 안 가셔도 돼요?”
“어이씨, 맞다.”
나는 대꾸하고 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예상대로 멤버들의 욕이 있었다.
[리더부기 : 이 새끼 돈 거 아니냐]
[리더부기 : 병원을 탈출해?]
[신지운 : 왜 저러고 사냐]
나는 다급하게 톡을 날렸다.
[이미 잡은 약속을 어떻게 깨냐?]
[근데 벌써 나오긴 했어]
[이제부터 푹 쉬려고 일도 빨리 끝냄]
[안쭈 : 해원아 작업실 가지 말고 숙소로 가 어머님이 죽 해주시고 가셨어]
[막내♥ : 근데 해원이 형 내 이름에서 하트 떼줘]
[막내♥ : 아무래도 형 단명할 것 같으니까 우리 사이의 정도 떼자]
내가 방금 카일룸한테 한 악담은 악담도 아니다. 이게 진짜 공포지…….
[하트를 떼라니ㅜㅜ]
[내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얌전히 가서 누워 있을게]
[막내♥ : 이미 늦었어]
[민조 : 형 근데 나는 왜 하트 안 붙여줘? 나는 동생 아니야?]
[효식 : 저도요]
[민조 : 나는 남이야?]
[효식 : 그 정도는 아니지만 선재만큼 좋아하진 않는 거지]
아, 여섯 명한테 동시에 갈굼당하니까 식은땀 난다. 내가 급하게 민지호와 한효석 이름 뒤에도 하트를 붙이고 있는데 VVV엔터 매니지먼트팀 직원이 물었다.
“해원 씨, 뒤에 민재 씨 오고 있는데 세울까요?”
“아뇨.”
나는 대답한 후에 뒤를 봤다. 곽민재가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 다급해 보이는 걸 보니, 영 열정이 없는 놈은 아닌 것 같다. 방심한 상태라 그렇지. 내가 정신머리를 고쳐서 데뷔시켜 주마, 흐흐…….
매니지먼트팀 직원은 내 말대로 차를 세우지 않고, 바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퍼스트라이트 숙소로 향했다.
* * *
설마 아픈 사람을 패진 않겠지, 싶어서 문 앞에서부터 있는 대로 골골거리며 들어갔는데 의외로 숙소에 신지운과 박선재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다 연습실에 있거나, 개인 스케줄 중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박선재가 장난기 섞인 투로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속을 썩여?”
“아, 미안해, 미안해.”
아니, 내가 뭐 술 먹고 외박한 것도 아니고, 원래 잡혀 있던 일을 하고 와서 이렇게 구박을 들어야 하나.
라고 따지면 본격적인 갈굼이 시작될 것 같아서 입 다물고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
신지운이 거실에서 대본을 보다가 말했다.
“형, 죽 있어.”
“맞다, 그렇다고 했지.”
안 그래도 밥 얻어먹고 오려다가 화를 내고 나오느라 못 먹었는데 잘 됐다. 내가 죽을 바로 꺼내 먹으려 하니까 신지운이 어머니가 두고 가신 메모를 꺼내며 말했다.
“아니, 여기 데워 먹으라고 편지까지 쓰고 가셨는데 무시하냐, 형은?”
“무시하다니. 읽었지만 죄송한 마음으로 그냥 먹는 거지.”
“그게 무시한 거 아냐?”
그러더니 죽을 다시 냄비에 넣고 데운다. 이야, 다 키웠다.
“야, 오늘 카일룸 보니까 너 국선아 때 생각나더라. 건방진 게 아주.”
“카일룸 건방져?”
“어, 타이틀 듣는 3분 사이에 핸드폰 보더라.”
“쓰레기네……. 형, 내가 그 정도는 아니었지?”
“아니. 그 정돈데.”
“그치,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서 죽 끓여주잖아.”
“우리 엄마가 끓인 거잖아.”
“데워주잖아.”
“어이구, 고맙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뜨뜻해진 죽이 접시에 담겼다. 어머니가 좋은 재료들을 넣어 신경 써서 만들어준 죽은 병원 밥 따위와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죽을 먹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강효준이 물었다.
-카일룸 프로듀싱, 계속 그런 식으로 할 거지?
“네. 안 돼요?”
-아니, 고맙다고.
다행이다. 네가 뭔데 우리 애들 기죽이냐고 할까 봐 약간 걱정했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대신 최기문 부대표랑 일한다는 바이럴 업체는 지금 내가 가고 있어. 확인하고 다시 전화할게.
오?
이야, 상부상조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