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1화
“안내도 하지 말라구요?”
“아티스트님이 예민하시대.”
호텔 직원들은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진상도 대형 진상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교류하고 있었다.
얼마나 예민하시면 직원이 자리 안내해 주는 것도 안 된다고 하시나. 그것도 미리 구체적인 실내 구조까지 확인하고, 딱 지정한 자리로 가서 앉겠다고 했다.
그럴 거면 더 프라이빗한 곳으로 가시든지…… 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있을 때, 모자와 마스크를 쓴 그 예민하신 아티스트님과 매니저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범죄라도 저지르려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게 스스슥 움직여 자리에 앉았고, 모든 손님의 시야에 걸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스크를 내렸다.
주문을 받으러 가니 예민한 아티스트, 정해원이 물었다.
“무알코올 뭐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민망한지 웃었다. 생긴 건 확실히 예민해 보였는데 웃는 순간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아무튼 바에 온 사람들이 한마디도 안 하고, 무알코올 칵테일만 마시는 건 상당히 이상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무알코올 칵테일만 주야장천 마시다가, 계산을 하러 올 때 정해원은 마스크를 벗은 상태였다. 그러고 나니 딱 봐도 어린애라, 예민하다고 그렇게 강조했던 걸 잊고 직원 중 하나가 말했다.
“직원 중에 팬이 있어서, 평소에 진짜 고객님 얘기 많이 하거든요.”
“……근데 왜 안 오세요?”
안 그래도 아까 동료 직원에게 ‘세미 씨! 여기 정해원 님! 손님으로 오셨어요!’라고 보냈더니 우는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내고 ‘고객님 편히 쉬시게 모른 척할게요 난 프로니까……ㅠㅠ’라고 답이 돌아왔다.
정해원이 뒤늦게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제가 예민하다고 해서 못 오신 거예요?”
“아뇨! 고객님 방해할 수 없으니까요.”
“……제 팬이면 방해해도 되는 거 알 줄 알았는데.”
그러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더니 꾸벅 인사하고 매니저와 함께 바를 나갔다. 직원이 바로 동료에게 문자를 보냈다.
[정해원 고객님 지금 가셨어요 진짜 실물 미친 줄……. 근데 매니저분이 아티스트님 그렇게 예민하다고 주의 주셨는데 말하는 거 그냥 순둥이던데요? 매니저분 본인이 예민한 듯ㅋㅋㅋㅋㅋ]
[세미님 : 그쵸ㅠㅠㅠㅠㅠ 으아아 실제로도 순둥이구나ㅠㅠㅠㅠㅠ 미쳐…….]
[자기 팬이면 방해해도 되는 거 알 줄 알았대요 근데 그래도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하 저 입덕할 뻔]
[세미님 : 엉엉 덕계못이 여기서 또ㅠㅠㅠㅠ]
[세미님 : 입덕! 하시죠! 이 가시밭길을! 함께!]
* * *
최기문은 조만간 새로운 엔터사가 들어서게 될 건물에 들어섰다. 한창 인테리어 중이라 바닥에 먼지가 가득했다.
회사 이름은 TRV Contents. 아무리 TRV가 죽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팔아먹을 만한 이름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퍼스트라이트가 있어서 최근 오디션이 치열해지기도 했다.
김주철 본부장이 보내준 연습생 프로필은 솔직히, 그렇게까지 성에 차지는 않았다.
하지만 TRV 오디션에 오는 아이돌 지망생들을 관심 있게 보기 시작하니, 이 정도 수준의 연습생을 뽑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정해원이 제대로 꼬꾸라지면, 두 명을 받아올 수 있다. 그렇게 멤버 둘에 오디션에서 오로지 얼굴 원툴로 서너 명 더 뽑아서 그룹을 하나 만들면 망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걸로 부족하면 다른 X소 연습생을 빼 오는 방법도 있다. 어차피 연습생 계약 해지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TRV로 오라고 하면 냉큼 올 연습생이 있을 것이다.
최기문은 자신의 감 하나를 믿고 일을 벌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게 엔터 회사였다. 본인에게 아이돌 띄우는 감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으니까.
TRV에서 따라올 직원이 꽤 될 테고. A&R팀에서 괜찮은 데모도 빼돌려놨다. 그것도 어그로 끌기 좋은 곡으로. 지금 생각으론 한 3개월이면 충분히 데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키우는 팀에는 대단한 성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다음이 진짜였다. 두 번째 걸그룹은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회사에서 제대로 준비해서…….
그렇게 청사진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최기문은 TRV 운영하던 짬이 있는 박희택 전 사장에게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꼬드겼다. 그렇게 거절하던 박희택이 차에서 내렸다. 최기문이 반색하며 말했다.
“인마, 너는 올 거면서.”
“아니, 그만 좀 연락하라고 왔지.”
박희택이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며 말했다.
“기문아. 내가 사장 자리 받고 고마워한 건, 거기가 TRV여서지, 네 밑에서 일해서가 아니야. 내가 네 뭘 믿고 일을 하냐? 차라리 다시 로드를 뛰는 게 낫지.”
“야이 X팔, 네 나이에 무슨 로드를 해.”
“비교하자면 그렇다고. 이 새끼야. 내가 너한테 굽신거린 건 줄 아냐? 너희 아버지한테 한 거지.”
예상과 다른 반응에 최기문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햐이, 참나. 배은망덕한 새끼.”
“배은망덕? X발, 지금까지 내가 TRV에서 잡일이란 잡일은 다 했는데, 너 날아가면서 나까지 날아간 거 아니냐. 넌 씨, 엔터 회사 하겠다는 놈이 자기 몸 갈아서 회사에 돈 벌어다 주는 애를 건드리냐?”
“돈 벌어다 주긴, X발, 그 새끼가 훼방만 놨잖아.”
“너는…… 그렇게 인과관계 파악이 안 되냐? 대가리는 왜 달고 있냐?”
박희택의 말에 최기문이 욱해서 멱살이라도 잡으려 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
사람이 가끔, 이유 없이 정확한 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최기문에게는 그게 지금이었다.
[김주철 본부장]
최기문이 왠지 모를 불길함에 전화를 받지 않고 이름만 보고 있는데, 그 사이 핸드폰을 본 박희택이 말했다.
“야, 기문아. 너 X 됐다.”
“뭠마?”
“X 됐다고, 너.”
그리고 박희택이 인터넷 기사를 보여줬다.
최기문과 김주철이 연습생을 대가로 주고받았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호텔 내부 CCTV를 확보, 영상 분석 중이라는 기사였다.
최기문이 사색이 되어 주춤거리며 말했다.
“누, 누구야. 어떤 새끼가 신고를 해!”
“지금 그제 중요하냐?”
박희택이 혀를 차더니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세만 나가고 영 못 쓰게 됐다, 야. 어느 여자애가 네가 만드는 걸그룹에 들어가려고 하겠냐고.”
박희택이 빈정거리는 말에 최기문이 소리쳤다.
“저게…… 와씨, 호텔 고소해야겠네, 이거!”
“어휴, 저런 새끼를 친구라고 내가…….”
박희택이 질색을 하며 그대로 차에 탔다.
* * *
나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내 영상을 찍다가 저쪽에서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우연히’ 음성이 들어간 영상을 제출했다.
내가 신고를 하면, 온갖 기사에 내 이름이 실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고민하면 더 못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멤버들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연습생을 자기 장기 말처럼 보는 놈들을 한 방에 둘이나 엔터계에서 내쫓을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내가 퍼스트라이트를 이만큼 띄우는 데 어느 정도 힘을 보탰으니까, 이 정도 사고 치는 건 용서해 주리라 믿고 저질렀다. 회사는…… 뭐, 어차피 지금 TRV에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서로 연습생 사진을 주고받은 게 걸려, 금방 모든 게 밝혀졌음에도, 예상대로 기사에는 일반인인 최기문과 김주철보다, 내 이름이 먼저 적혔다. 나는 퍼스트라이트 단톡방에 사죄의 글을 남겼다.
[멤버들. 내가 물어보지도 않고 사고를 쳤어……. 죄송함니다아…….]
아이돌의 이미지라는 게, 참 까다롭다.
너무 인간적이어도 안 되고, 너무 비인간적이어도 안 되고. 제발 사회면은 안 되고.
근데 제가 사회면에 진출하게 생겼습니다, 허허허……. 뭐 피해자 입장이니 다른 얘기긴 하지만.
그때 바로 답이 돌아왔다.
[신지운 : ㅇㅇ]
[민조♥ : 나쁜놈!!!!!!!!!!!!!!!!!!!!! 연습생은 살아 있는데!!!!!!!!!! 뭘 주고받아 이섀키들아!!!!!!!!!]
[안쭈 : 잘했어 잘했어]
[리더부기 : 고생했으니까 이따가 맛있는 안주에 한잔 하자]
[막내♥ : 가랏 리더부기 제로콜라랑 어울리는 안주 만들어조랏]
[효식♥ : 전 감귤주스 안주]
[민조♥ : 나도 감귤주스!!!]
[리더부기 : ㅇ]
나는 톡을 보며 흐흐 웃었다. 확실한 내 편이다. 이렇게 일곱 명이 다니면 세상에 무서운 거라곤 우리보다 쪽수 많은 그룹밖에 없겠다. 히히.
멤버들은 이해해 줬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사고 안 치고 조용히 지내야겠다.
솔직히 계약 해지한 연예인에게 보복성 행위를 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라, 그렇게 크게 화제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너무 빨리 조용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 * *
[‘눈빛은 사이언스, 그 새끼 무조건 사고 친다’, 퍼스트라이트 정해원, 여론 조작 정황]
[???뭐임? 정해원 여론조작함?]
[↳아니, 기사 읽어봐 정해원이 피해자야…….]
[↳↳헐 그래? 기레기가 또]
[↳↳와 X발 해원이가 여론 조작했다는 줄 기레기 미쳤냐]
[↳↳ㅎㅎX 같네 안 그래도 피해자인 애를]
[↳↳↳지금 제목만 보고 해원이 욕하는 사람 X많……ㅎㅎㅎ]
[최기문 TRV 전 부대표, 여론 조작 정황 드러나…….]
[↳기사 링크 이걸로 바꿔주라]
[↳이 기사는 댓글 거의 없네ㅠㅠ 이러니까 제목 어그로를 끄는구나]
[↳기레기나 최기문이나 다를 게 뭐냐]
[정해원 죽이기, 대가는 ‘VMC 연습생’]
[↳이것도 제목은 좀 그런데 기사는 잘 썼어]
[↳TRV도 그런데 VMC는 진짜 싸패 새끼들 아니냐? 지들 꼴받는다고 TRV에 하청 줘서 묻어버리려고 한 거야?]
[기사 내용 보셨어요? 우리 딸도 아이돌 연습생인데 심장이 철렁해서……. 해원이라는 친구가 신고해주지 않았으면 우리 딸 같은 연습생 인생 망칠 뻔했네요]
[↳진짜 세상이 너무 무섭네요 사람 하나 묻어버리려고 작정했네…….]
[↳TRV는 대표란 사람도 물러나야죠 아들이 저러고 다니는데]
[↳↳아들을 이 정도로 잘못 키웠으면 그게 맞죠]
[근데 퍼라 VMC 레이블이랑 계약한 거 아님? 좀 있으면 자기 회사 소속될 애 이미지를 왜 일부러 망쳐?]
[↳작곡을 잘하잖아 TV는 못 나가게 하고 프로듀서로 쓰겠지]
[↳↳진짜 이거면 악마가 이놈 하겠다ㅎㅎ]
[최기문 부대표랑 김주철 본부장 조사 받는다는디]
[↳그래봤자 뭐 벌금 좀 물고 말겠지 몇 년 지나서 잊히면 엔터계 돌아올걸]
[↳몇 년은 무슨 내년이면 돌아올 듯 이미지 타격은 아이돌이 훨씬 더 받지…….]
[↳↳X 같네 진짜]
[어…… 타격 받겠는데요……? 아니 이거 큰데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되면 엔터계 못 돌아오지ㅋㅋㅋㅋㅋㅋㅋㅋ]
[클라루스쯤 되니까 진짜 막 나가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제가 된 그 날 밤, VMC 산하 VVV엔터 1본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역사상 아이돌 고트를 뽑을 때 반드시 손꼽히는 팀 중 하나, ‘클라루스’의 멤버가 인스타그램에 셀카와 함께 경고를 업로드했다.
[(ordinary_hyuk)클라루스 서민혁 : 우리 미국에 있는 사이에 회사 뭔일 남? 왜 우리 회사 연습생을 다른 회사 후배님 혼자 지키고 있는지? 암튼 브삼 연습생은 다 내 후배니까 건들지 않기^^ 해원 후배님도 건들지 않기^^ 내 후배 건드린 분들 나 한국 가면 보이지 않기^^]
[↳(chae_series)클라루스 채연재 : AYE!]
그와 동시에, 클라루스의 전 세계 팬들이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