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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22화 (122/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2화

내 문제인 줄 알았는데, 연예계 전반의 문제가 됐다. 엔터계 세계 1짱이 껴드는 순간.

다행히 VMC는 클라루스의 영향력이 소속사인 본인들의 것이 아니라, 아이돌인 클라루스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클라루스한테 뭐라고 해봤자 본인들만 손해였다.

나는 제로콜라와 함께 황새벽이 만들어준 안주를 먹다가 뉴스를 보고 뱉을 뻔했다. 최기문 전 부대표가 바이럴 업체를 고용해 나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다는 내용의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민지호가 컵을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퍼라 최초 9시 뉴스 진출 기념으로 건배하자.”

“아니…….”

황당해하는 나를 무시하고 저들끼리 건배를 하더니 신지운이 나에게 말했다.

“아, 형, 뭐 해. 빨리 기념사진 남겨야지.”

“하, 진짜.”

짜증은 나는데 나도 남기고 싶다. 9시 뉴스 진출 기념사진. 허허.

결국 나는 9시 뉴스에 나오는 내 이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신지운에게 사진을 받은 후, 직원들에게 물었다. 한동안 회의 끝에 된다고 해서, 나는 X버스에 사진을 올렸다.

그때 안주원이 말했다.

“어, VMC 사과문 올렸다.”

“……그래?”

클라루스가 무섭긴 무섭구나. 그 VMC가 사과문을 다 올리고.

나는 안주원에게 핸드폰을 받아서 사과문을 확인했다.

[피해를 입으신 해당 아티스트님께 VMC 임직원들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클라루스가 나서지 않았어도 이런 저자세의 사과문과 조치가 있었을까, 싶지만, 안주원의 말을 들어보니 안 그래도 내가 악플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걸 악용하려는 최기문에게 케이팝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화가 나 있다는 모양이었다.

* * *

[해원 : 사진은 지우니가 9시 뉴스 진출 기념으로 찍어줬어요ㅋㅋ 햇살이들 오늘 걱정 많이 했죠? 맨날 걱정만 시키구ㅜㅜ 그래도 우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는 거니까, 대신 좋은 말만 하고 갈래요. 햇살이들 빨리 보고 싶어요. 얼른 갈게요!]

[해워나ㅠㅠㅠㅠ]

[네가 걱정시킨 거 아니잖아 바부야ㅠㅠㅠㅠ]

[최기문 X새 때문에 종일 우울했는데 해원이 X버스 보니까 웃음 나ㅋㅋㅋ]

[그나저나 해원이 평소 별명 짓는 스타일이면 지운이->주니였을 텐데 빅 블루에 주니 선배님이 계셔서 그만…….]

[↳지우니 : ??? 이거 진짜야? 이래서 나만 별명 없는 거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해원아 여기 봐봐]

[↳↳지운이 삐졌다ㅋㅋㅋㅋㅋㅋ]

[↳↳해원 : 이건 내 탓 아니지 내가 2안으로 웅이를 마련해 줬더니 네가 거절했잖아]

[↳↳↳지우니 : 2안? 어떻게 멤버한테 2안을 주냐?]

[↳↳↳↳해원 : 준희 형이 먼저 태어나셨는데 그럼 어떡하냐…….]

[아니 밤낮즈 뭐 해ㅋㅋㅋㅋㅋㅋㅋㅋ]

[걱정했는데 애들 장난치는 거 보니까 좀 잊힌다ㅠㅠ]

[근데 최기문은 죽임 내가 죽일 거야]

[↳햇살이 같이 가자]

[↳3333]

[근데 해원이 진짜 한 번에 글로벌 셀럽 됐네]

[↳선배님들 인스타에 올라가는 바람에…….]

[↳이게 무슨 일이야 인생 진짜 모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너무 설레발인 거 아는데 나중에 해원이 클라루스 선배님들이랑 작업할 날 오지 않을까…….]

[↳아 내가 차마 못 꺼내던 말을ㅋㅋㅋ]

[↳솔직히 오늘 해원이 멘탈 걱정되는 와중에 이 생각 안 한 햇살이 없다ㅋㅋㅋㅋ]

* * *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나와 엮인 일이 9시 뉴스에 나오고 클라루스의 전 세계 팬들이 최기문과 김주철에게 자기네 나라로 도망 오면 변사체로 발견될 거란 협박들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 했다.

6월 말에 공개될 퍼스트라이트 싱글 ‘별빛’은 후반 작업까지 깨끗하게 끝났다. 인수 문제가 해결돼서 이젠 굳이 급할 게 없긴 하지만, 올림픽 시즌이 있으니 계획대로 일찌감치 컴백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연말 시상식에서 부를 만한 크리스마스 느낌의 곡을 하나 더 작업했다. 6월이 지나면 다음 컴백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까, 그사이에 선공개 개념으로 디지털 싱글을 작업할 계획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작업하던 카일룸의 데뷔 앨범 작업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녹음 스케줄이 잡혔다.

첫날 만나서 화를 내고 나서, 녹음 당일까지 나는 카일룸 멤버들의 연락을 전부 씹었다. 어차피 정신이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화를 잘 못 내는 편이라. 허허.

나는 받아온 일본 드라마 OST를 분석하다가 작업실 소파에서 골골거리는 황새벽에게 물었다.

“야, 내가 너무 순둥이라 카일룸 멤버들이 우습게 보면 어떡하지.”

“……미친 새끼 아니야, 저거.”

“근데 안 가냐?”

“못 가는 거라고…….”

일본 작곡가가 ‘케이팝 스타일’로 불러 달라고 해서, 어떻게 불러야 퍼스트라이트의 색깔과 황새벽 본연의 색깔을 동시에 녹일 수 있을지 연구하느라 밤을 새웠다.

하룻밤을 새우면 이틀 골골거리는 황새벽은 카일룸이 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불 채로 작업실에 딸린 방에 들어가 간이침대에 누우며 물었다.

“아님드냐…….”

“안 힘드냐고? 뒤지겠다, 뒤지겠어.”

작업실에서 작업하니 20% 천천히 줄어들고 있는데도 체력이 달렸다. 일을 많이 잡긴 했나 보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먼저 녹음하기로 한 멤버 두 명이 먼저 도착했다.

핸드폰을 보느라 나와 카일룸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든 차우석, 그리고 그놈을 프로듀서인 내가 남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달래던 곽민재였다.

지난번에 볼 때는 얘네 정도면 천사 컨셉도 하겠다, 싶을 정도로 반짝반짝하더니 두 번째 만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안녕하세요.”

“어.”

데뷔곡이 이상향을 찾아가자는 희망 넘치는 반짝반짝한 노래인데, 저 죽상인 놈들이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예상대로, 먼저 녹음을 시작한 차우석의 보컬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뭐 하냐. 다시 해.”

“……네.”

두 번, 세 번. 차우석은 처음과 똑같이 안 좋은 기분이 드러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내가 물었다.

“너 컨셉 포토 찍었잖아. 곡 설명도 들었고.”

“네.”

“보컬쌤이 어떻게 부르래?”

“밝고 희망차게요.”

“근데 왜 그렇게 불러?”

“…….”

“다시.”

네 번째 재녹음에서는 오히려 아까보다도 상태가 안 좋아졌다. 내가 물었다.

“우석아. 너 개기는 거야?”

“아뇨.”

“근데 왜 점점 더 못하냐?”

내가 질문에 차우석이 푹 한숨 쉬더니 말했다.

“기분이 안 좋아서, 밝게 못 부르겠어요.”

“…….”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오려 한다.

나는 일단 일어나서, 잠시 작업실 건물을 나왔다. 강효준 A&R이 날 힐끔 보고 담배를 끄며 물었다.

“녹음 벌써 끝났어?”

“차우석이 기분이 안 좋아서 밝게 못 부르겠대요.”

나는 잠깐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흐흐 웃었다.

“쟤 진짜 신지운 2탄이에요.”

이렇게 국선아 때 생각이 날 수가 없다.

‘지운아, 표정 관리해야 한다니까.’

‘왜요?’

‘밝은 곡이잖아. 웃어야지.’

‘기분이 드러운데 어떻게 웃으면서 노래를 해요.’

딱 그렇게 말했었지. 허허허.

그것 때문에 처음부터 무지하게 싸웠다.

‘아이돌이 아니라 모든 사회인이 감정 감추고 살아. 아이돌이 왜 못 해?’

‘못 하는 게 아니라, 굳이 안 하는 건데.’

‘그럼 아이돌 할 생각하지 말고 집에 가.’

‘우리 둘 중에서 한 명이 그만둘 거면, 순위 낮은 쪽이 그만두는 게 맞지 않아요?’

‘열정이…….’

‘열정이고 뭐고, 절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거잖아요.’

……하, 생각하니까 새삼 내가 애썼다.

강효준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잠깐 나가서 싸웠죠. 주먹질하고. 저 진짜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이 악물고 싸웠어요.”

작다 못해 미세한 회사에서 온 나는 첫날 화면에 아예 잡히지 않았다가, 다음 화에 신지운과의 말다툼 장면으로 확 분량이 늘어났다. 물론 티케 같은 대형 엔터, 그것도 그 회사가 유난히 아끼는 연습생인 신지운이 일방적으로 개같이 구는 장면을 넣을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편집이 들어갔다.

생각해 보니까 그게 악편의 시작이었다. 나는 표정이 안 좋다고 신지운을 갈구고, 신지운은 몇 안 되는 밝은 얼굴이 방송에 나갔으니까. 방송으로 보면 열심히 하는 애를 괜히 웃으라고 갈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새삼 신지운에게 빡치지만, 악편이 그 자식 탓은 아니고, 내가 불효자식을 넘어 불효놈이던 2년 동안 우리 부모님께 잘했으니 넘어가 준다, 내가.

어쨌든 분명한 건 내가 이 상황을 처음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빌어먹을 국선아가, 그래도 나에게 경험이 되기는 했다.

내가 중얼거렸다.

“그땐 동등한 입장이라 팰 수 있었는데.”

“네가 팼다고?”

“아, 그럼요.”

“지운 씨한테 물어봐도 똑같이 대답하겠어?”

“네.”

물론 신지운도 대한민국 사람이다 보니, 형이라는 정신적인 힘이 작용하긴 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12월 끄트머리나마 걔보다 먼저 태어나서 다행이다.

강효준이 말했다.

“패. 내가 뒤 봐줄게.”

“내가 미쳤어요? 가수 패는 프로듀서한테 미래가 어디 있어요.”

“말했잖아. 내가 뒤 봐준다고.”

“정말로, 정말로 됐습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무래도 강효준도 카일룸 놈들 패서라도 정신 차리게 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잘 참았다.

바이럴 업체 밀고 들어가는 강효준과 친구들 보니 어릴 땐 안 참으셨을 것 같던데…….

나는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려 몸을 일으키고 물었다.

“아, 근데. 김주철 본부장, 형이 고소하자고 했죠?”

“응. 우리 연습생 건드리려고 했으니까, VVV엔터가 나서야지.”

강효준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VMC에서 자리를 잡는 것에 별 관심 없는 것 같더니, 경쟁자이자 사촌 형인 이춘형 이사의 오른팔을 날릴 기회가 오니까 묻고 따지지도 않고 베어버렸다. 너무 믿지는 말아야겠다.

내가 말했다.

“그럼 저 녹음하러 갈게요.”

“고생하네. 점심 뭐 사다 줄까?”

“비싼 거요.”

“거의 의무감으로 비싼 걸 먹네.”

“저도 안 먹고 싶은데, 형이 돈이 많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나는 농담을 하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곽민재를 불렀다.

“민재, 너부터 하자.”

“그래도 돼요?”

“응.”

나는 곽민재부터 녹음을 시작했다. 날 보는 눈빛은 차우석만큼 안 좋지만, 녹음이 들어갔을 때는 완전히 달랐다. 웃으면서 부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자기 파트 녹음이 끝나고, 내가 곽민재에게 물었다.

“민재, 완곡 연습했지?”

“아, 네.”

“우석이 파트 불러봐.”

나는 차우석 쪽을 돌아보지 않았고, 곽민재는 머뭇거리다가 일단 차우석의 파트를 전부 녹음했다.

곽민재의 녹음이 끝나고, 이어서 도착한 나머지 멤버들의 녹음을 먼저 끝냈다.

VVV엔터의 A&R팀에서는 초 단위를 넘어 소수점 단위까지 얼추 맞아떨어질 정도로 멤버들에게 똑같은 만큼의 파트 배분을 했다. 요즘 아이돌들에게 공평한 분량은 중요한 요소니까.

마지막으로 차우석의 녹음을 하기 전, 나는 차우석의 파트 대부분을 지웠다.

“넌 여기만 부르면 되겠다.”

“네? 단체 파트랑 코러스밖에 없는데요?”

“응.”

내가 바로 녹음을 시작하려는데 차우석이 욱한 얼굴로 말했다.

“파트를 막 바꾸시면 어떡해요.”

“A&R팀은 파트 배분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제안하는 거야. 결정은 내가 하는 거고.”

“…….”

“곡을 ‘잘’ 완성하는 게 내 일이잖아. 근데 네가 노래를 망치는데 어떡하냐, 그럼?”

아이돌에게 아무리 다양한 능력이 중시된다 해도 결국, 시작과 끝이자 기본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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