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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23화 (12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3화

나는 어차피 수정 녹음을 엄청 시키는 편이라, 카일룸에서 마지막으로 녹음을 하게 된 멤버, 차우석의 녹음을 한 번 듣고 끝냈다.

“응, 됐어.”

“됐다구요?”

“어. 가.”

제대로 녹음하랄 땐 기분 탓하더니, 가라니까 또 안 간다. 청개구리야, 뭐야.

“왜 안 가?”

“제 파트 할게요.”

아, 참나.

“싫어. 기분이 드러운데 어떻게 웃으면서 노래하냐.”

“시간 조금만 더 주시면 연습을 해올게요.”

“연습 문제가 아니야. 너 지금도 못 하는 거 아니잖아. 안 하는 거지.”

내가 너의 구버전이자 강화 버전을 봤더니 그렇다더라. 허허.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는데, 그냥 안 하는 거야, 너. 못 하는 게 아니고.”

그래도 한 번 겪어봤다고 대처가 늘었다. 하긴 그때 난 열여덟 살이라 말싸움에서 밀린다, 싶으니 주먹부터 나갔던 거고 지금은 좀 더 컸다. 나름.

“더블링이 네 파트인 거야. 무대에서 네 얼굴 잡히면 됐잖아.”

“…….”

“됐음 좀 가라. 우리 팀 거 작업하게.”

내가 짜증을 내니까 차우석이 화가 난 건지, 당황한 건지 얼굴이 시뻘게져서 나간다.

VVV엔터에서 뭐라고 하든지, 나는 정말로 한 멤버의 개인 파트가 없는 데뷔곡을 밀고 나갈 생각이 충분히 있다.

난 1년 동안 이 팀의 프로듀서로 갈릴 거고, 그동안 저 새끼가 바뀌지 않으면 다음 앨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 *

네 번째로 녹음을 하고 나온 카일룸의 멤버 박재우가 리더인 도윤에게 물었다.

“우석이 이제 녹음 들어갔나?”

도윤은 잠깐 고민하다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있어 봐. 확인하고 올게.”

“야, 들어갔다가 그…… 선배님이 지랄하면 어떡해.”

도윤도 박재우도 정해원과 동갑이다 보니 호칭이 애매해졌다. 프로듀서님은 본인도 불편해하다 보니.

둘만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정해원도 많이 불편한지 꼬박꼬박 ‘씨’라고 부르고 아직 말도 놓지 않았다.

이 사회는 드럽게 나이를 따지는 반면에, 호칭은 촘촘하게 만들어놓질 않았다. 조금만 관계가 애매해지면 뭐라고 부를지 몰라서 얼버무리게 된다고 도윤과 박재우는 생각하고 있었다.

도윤이 말했다.

“사람이 화가 많아서 그렇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잖아.”

“화가 어지간히 많아야지. 너도 녹음할 때 욕 많이 먹었지?”

“욕도 먹었는데, 칭찬도 꽤 들었는데.”

“……이 자식 짜증 나네.”

보컬 능력이 좋은 도윤은 녹음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정해원이 웃는 걸 봤다.

‘도윤 씨는 음색이 진짜 보물이네.’

녹음하는 앞뒤로 저 사람 아이돌 맞나 싶게 갈궜지만, 저 칭찬 한마디에 그 갈굼이 전부 잊혔다. 원래 늘 친절하던 사람의 욕 한마디나, 늘 욕쟁이던 사람의 친절한 한마디가 더 인상적인 법이니까.

도윤이 차우석을 데리러 작업실 쪽으로 향하는데, 때마침 차우석이 나왔다. 죽상이 된 얼굴을 보니 해결은커녕 모든 게 악화된 모양이었다.

도윤이 차에 올라타는 차우석에게 물었다.

“녹음했어?”

“저 새끼가 제 파트 빼버렸어요.”

“뭐? 파트를 빼?”

차우석은 살얼음판에서 벗어나 만난 멤버들이 유난히 든든하게 느껴져, 바로 속을 드러내고 징징거렸다.

“형, 저 진짜 제 파트 없이 데뷔하는 거 아니죠? 다른 직원들이 다시 돌려주겠죠?”

“그건 우리도 모르지.”

도윤의 말에 차우석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고개를 떨구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박재우가 대신 화를 내주며 말했다.

“진짜 또라이야, 뭐야?”

그러더니 지난번처럼 혹시 정해원이 나와서 듣고 있을까 봐 주변을 급하게 두리번거려 없는 걸 확인했다.

* * *

나에게 최대의 공포는 여전히, 누군가가 날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카일룸 멤버들이 뒤에서 내 욕할 걸 뻔히 알면서, 싫은 소리 해대는 것이 나도 즐겁지는 않았다.

녹음이 끝나니 그런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작업실에 딸린 방에서 자는 황새벽을 깨우기로 했다.

“새부기 죽었냐?”

아니, 어떻게 여태 자냐. 두 번만 밤새웠다가는 영원히 자겠다.

나는 황새벽을 깨우려고 다가가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새 핸드폰을 막 던져놓네. 부잔가 봐.”

일단 놀리려고 황새벽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미리보기 톡이 보였다.

[신지운 : 나 됐어]

“아니, 아이돌이…….”

핸드폰을 막 바꿔서 미리보기가 뜨게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황새벽의 등을 치며 말했다.

“미쳤냐? 미리보기 안 뜨게 해.”

“어…… 어…….”

그러더니 잠결에 핸드폰을 받아 패턴을 풀고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더라.”

“줘.”

“어…….”

그러더니 핸드폰을 주고 다시 잔다. 저 자식 아마 나랑 얘기한 걸 기억도 못 할 거다.

나는 핸드폰을 받아서 톡으로 들어가 미리보기 설정을 바꿨다. 그 사이에도 톡이 계속 울렸다.

[민지호 : 어떡해 그럼?]

[신지운 : 해야지 뭐. 우리 활동에 지장 없게 할게]

[안주원 : 효석이도 그거 발레 예능 거의 확정됐지?]

[한효석 : 네 아마 하게 될 것 같아요]

[박선재 : 올해 다들 진짜 바쁘겠네…….]

미리보기 설정을 없애고 핸드폰을 다시 덮은 후 황새벽 깨우기를 포기하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대화 내용을 다시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켰는데 와 있는 단톡이 없었다.

“뭐야. 왜 톡이 안 와.”

나는 기계치처럼 핸드폰을 막 흔들어보고, 두들겨 보고 와이파이 펑펑 터지는 작업실 여기저기에 핸드폰을 옮기고 다녔지만 아무런 톡도 오지 않았다.

멤버 일곱 명이 있는 단톡방에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매니저 두 명까지 포함한 단톡방에서는 스케줄 얘기가 오간다.

때마침 아홉 명 단톡방에 강영호 매니저가 톡을 올렸다.

[영호형 : 지운 씨 드라마 스케줄 확정됐습니다! 축하하고 최대한 빨리 스케줄 조정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

나는 그걸 보자마자 일곱 명 단톡방에 글을 썼다.

[오 축하해]

[민조 : 우왕 대배우다!!!!!!!]

[안쭈 : 오디션 통과했어? 대단하네]

내가 아까 헛걸 봤어? 왜들 처음 듣는 소리처럼 이러냐?

……아님 혹시 나 빼고 단톡방 있어?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뭐.

있을 수도 있지.

카일룸 놈들이 날 보는 눈빛을 생각하면 우리 멤버들도 내 뒷담화를 하고 싶어서 단톡방을 판데도 이상할 건 없다.

아니, 근데. 그럼 내 뒷담화만 하지, 왜 좋은 소식을 거기 먼저 알려? 심지어 한효석 발레 예능 해? 그걸 자기들끼리만 알아? 나한테도 알려줘야지.

아, 그냥 대놓고 물어볼까. 오히려 서로 불편해지려나.

“……뭐 별것도 아닌 걸로 찝찝해지네.”

이게 다 국선아 때 날 배신한 배신자 1, 우하정 때문이다. 친구라고 단단히 믿던 놈이 어느 날 갑자기 배신하고 친구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놓는 바람에.

나는 다시 작업을 하려고 앉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남의 그룹, 그것도 말도 드럽게 안 듣는 놈들 작곡을 해주고 있는 건 우리 팀 때문인데. 멤버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건 맞나?

그냥 돈 될 것 같아서, 우리 팀 일은 미뤄놓고 들어오는 일 닥치는 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닌가?

스물한 살이 되는 동안, 나한테 남은 건 쟤네 여섯 명이 다이다 보니 그런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뭐, 이럴 때 보여줄 수 있는 건 팀에 대한 애정뿐이다.

덕분에 급해진 마음으로 우리 팀 곡 작업을 하는 사이 강효준이 녹음 고맙다고 식사를 사다 주고 갔다.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던 황새벽은 음식 냄새에 알아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밥?”

“어, 효준이 형이 사다 줬어. 먹자.”

“오, 이거 다 맛집들이야.”

“그래?”

“사람이 성의가 있네.”

음식으로 성의를 판단하는 황새벽은 이미 강효준에게 내적 친밀감을 쌓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이렇게 VVV엔터를 마음에 들어 하면 안 되는데. 나도 음식에 좀 관심을 가져야 하나…….

에이씨, 왜 괜히 남의 핸드폰은 봐서 쓸데없이 스트레스받고 있냐, 나는.

* * *

VVV엔터로 돌아가는 내내, 카일룸의 차우석은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봤다.

강효준 A&R은 멤버를 바꿀지언정 프로듀서를 바꾸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인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카일룸은 VVV엔터 소속이고 정해원은 1년 뒤까진 남이었다. 벌써 계약서 다 썼는데 회사 입장에서 번거로워질 선택을 할 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듀서 교체가 생각만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운 좋게 정해원이 알고 보면 약을 빤다든가, 하면 제일 좋겠지만 술 담배도 안 한다는데 그럴 가능성은 너어무 희박해 보였다.

그런 운에 맡기는 방법 말고, 능동적으로, 노오력으로 할 수 있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차우석은 정해원의 곡보다 나은 곡을 찾기로 결심했다.

최근 들어 연습과 일상 모두에서 뺀질거리던 차우석이, 녹음이 끝나자마자 A&R팀에 와서 수록곡으로 쓸 수 있는 곡을 찾겠다는 이유를 들어 데모를 전부 듣고 있으니, 카일룸을 자식처럼 기른 A&R들이 지나가며 한마디씩 했다.

“이야, 아무리 차우석이어도 데뷔가 가까우니까 성장을 하네.”

“기특해서 눈물이 난다, 우석아.”

“해원 작가님이 애를 쥐잡듯이 잡았다더니, 애를 사람 만들어 놓으셨네.”

악, X발 빡쳐.

정해원이 내 인성을 구제한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참고, 대강 웃어넘기며 그동안 카일룸의 데뷔 앨범을 만들기 위해 산처럼 쌓인 데모곡들을 들었다. 본인들의 데뷔를 위하여 A&R들이 얼마나 많은 작곡가들과 컨택했는지를, 차우석은 오늘에서야 알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줄 솔직히 몰랐었다.

수많은 곡을 듣고, A&R들이 정리해놓은 곡의 장단점을 확인했다. 어느 A&R이 어떤 취향인지, 어떤 노래에 어떤 반응을 했을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들었다.

그렇게 VVV엔터에 들어온 곡이란 곡을 샅샅이 뒤지고 나서야, 차우석은 숙소로 돌아왔다.

침울해 보이는 차우석의 표정에 동갑내기 멤버인 곽민재가 물었다.

“여태 뭐했어?”

“A&R팀 데모곡 들었어. 정해원이 만든 곡보다 가능성 있는 곡으로 활동하면 프로듀서 바꿀 수 있잖아.”

“어, 그래서. 찾았어?”

“응, 한 곡 있더라.”

“있어?”

의외의 성과에 곽민재가 놀라는데, 차우석이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거 올해 클라루스 선배님들이 쓸 타이틀이래.”

“…….”

아무래도 그렇겠지…….

VVV엔터에 들어오는 데모의 상당수가 회사의 뿌리이자 기둥이자 열매인 클라루스에게 주고 싶어서 안달 난 작곡가들의 곡이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VVV엔터에 들어온 곡을 가져가는 1순위는 당연히 클라루스였다. 클라루스를 생각하며 곡을 보낸 작곡가가 아니어도, 혹시 클라루스가 써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거절할 사람은 지구에 없었다.

차우석이 웅얼거렸다.

“그거 빼면, 정해원이 만든 노래가 제일 좋더라구……. 알고 보니까 진짜로 천재였어…….”

“…….”

“아이씨, 짜증 나…….”

그렇게 말하는 차우석이 좀 웃겼지만, 본인은 심각했기 때문에 곽민재가 애써 진지하게 말했다.

“어휴, 야, 그래도 고생했다. 졌지만 잘 싸웠어.”

“민재야, 드럽고 치사하니까 우리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하자…….”

“그으래, 그래. 성공하자.”

“근데…… 너 이거 평생 놀릴 거지?”

“응. 아마 모든 방송에서 말할 듯.”

“그렇겠지…….”

차우석이 순응하며 지친 발걸음으로 자기 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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