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4화
[민지호 : 효석아 예능 해원이 형한테 언제 얘기할 거야?]
[한효석 : 해원이 형 좀 체력 회복하면]
[신지운 : 그런 날이 오겠냐]
[한효석 : 그래도 개인 활동 한꺼번에 얘기하면 해원이 형 스트레스받을 것 같은데…….]
[박선재 : 내가 말할게 해원이 형 내가 얘기하면 긍정적으로 들어주니까]
[민지호 : 그게 낫겠다 근데 새벽이 형 아직도 자?]
[안주원 : 나 안 그래도 작업실 가고 있으니까 확인해 볼게]
멤버 여섯 명이 있는 단톡방에는 세 가지 룰이 있었다. 별명 금지, 이모티콘 금지, 그리고 혹시 정해원에게 들키면 모든 내용을 보여줄 것.
황새벽은 정해원과 밥을 먹다가 아까 잠결에 정해원이 뭐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물었다.
“야, 아까 네가 나 깨웠을 때 뭐라고 했어?”
“기억 안 나지? 못 할 줄 알았다.”
“자느라 정신이 없었어.”
“핸드폰 바닥에 던져놓지 말라고.”
“기절하고 잠들어서 기억이 안 나.”
황새벽은 말하다가, 순간 불안해서 미리보기 팝업 설정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안 뜨게 설정이 되어 있었다.
‘살 때부터 이랬나?’
황새벽은 약간의 의구심을 가진 상태로 식사를 이어갔다.
* * *
녹음이 끝난 카일룸의 타이틀곡 보컬 편집 중에, 작업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내가 파트를 빼버린 멤버, 차우석이었다.
그리고 이 약은 새끼가 치트키를 썼다. 자기 부모님을 모시고 온 것이다.
“미리 연락도 없이 죄송해서 어떡해요.”
“아, 괜찮습니다. 어어, 뭘 이렇게 사 오셨어요.”
“멤버분들이랑 드시라구…….”
요식업을 하신다고, 손 많이 가는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오셨다. 멤버들이 워낙 대식가라, 멤버 부모님이 음식을 왕창 해다 주셔도 길어야 3일 컷이었다. 음식은 언제나 대환영이긴 했다.
차우석은 자기도 치트키 쓰는 게 민망한지 날 안 보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어이는 없지만 올해까지는 나름 미성년자니까 부모 동반, 있을 수 있다. 몇 달만 더 있으면 짤없다, 이 새끼.
멀쩡한 부모님 밑에서 어쩌다 차우석 같은 뺀질이가 태어났는지 궁금했는데, 들어보니 차우석이 어릴 때 몸이 많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에 애를 과보호했더니 애가 뺀질거리더라는 이야기를 내 시간 뺏는다며 아주 짧게 축약해서 하셨다.
똑같이 어릴 때 몸이 심하게 안 좋았던 황새벽은 잠은 많이 자도, 알아서 좋은 거 잘 챙겨 먹으며 잘 컸는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아무튼 차우석의 부모님은 내가 불편하겠다고 10분도 안 돼서 떠나셨다. 그리고 차우석이 남았다. 내가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말했다.
“아, 맛있겠다……. 그래도 파트는 안 줘.”
“딱 한 번만 들어주시면 안 돼요?”
“싫다고. 너 왜 그러냐, 녹음할 땐 안 그러더니.”
“……형만 한 프로듀서가 없다는 걸 이제 알았거든요.”
“빈말해도 안 돼.”
나는 그 이상한 놈이 뒤에 눌러앉거나 말거나 내 작업을 이어갔다.
뺀질이가 갑자기 성실인이 될 수는 없었는지, 차우석은 뒤에서 아주 지겨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긴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면 죽는다더라.
계속 일을 해야 하는데 차우석이 자꾸 말을 걸었다.
“형, 한 번 일어났다가 앉아요. 세 시간 넘게 앉아만 있으면 건강에 안 좋대요.”
“우리 할머니도 너만큼은 건강에 관심 없으시겠다.”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은근 신경 쓰여서 한번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건강에 신경을 썼는데도, 중간에 또 한바탕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아, 또 이러네.”
“어!”
“너네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러잖아.”
어릴 때 선생님들이 너네 때문에 흰머리 생기는 거라고 하는 게, 지금 애새끼들과 작업하다 보니 이해가 간다.
* * *
차우석은 치트키로 부모님을 모시고 온 게 민망하다 못해 수치스러울 지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왔으면 작업실에 아예 안 들여보내 줬을 테니까.
원래는 자라면서 늘 그랬듯이 생떼를 부릴 생각이었는데, 그러기엔 정해원이 너무 바빴다.
요 며칠 정해원에게 복수하겠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지나치게 심연을 들여다봤다.
작업실에 와서 작업하는 걸 보고 있으니, 정말로 하루 종일 꼼짝도 안 하고 일을 했다. 그러다 코피가 나기 시작했는데 자주 있는 일인지 놀라지도 않았다. 정해원이 말했다
“내가 원래 코피가 잘 나는 체질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넌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하냐.”
“형이 이상한 건데요. 아, 왜 고개를 젖혀요!”
그러다 코피가 멈추고 다시 작업을 하려 들어서, 차우석이 급하게 말했다.
“형, 가서 누워요.”
“시간 없어. 너희 타이틀 빨리 믹싱 넘겨야 네가 다시 파트 달란 말을 안 하지.”
“아, 파트 달라고 안 할게요.”
다행히 정해원도 일하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차우석이 못 건드리게 모든 기기를 끄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차우석이 말했다.
“형 그러다 일찍 죽어요.”
“그 말한 사람 십만 명 있어.”
“그 정도면 수용 좀 하세요.”
“그럴 시간이 없다. 나 한 시간쯤 잘 거니까, 그 안에 가라.”
정해원이 말하고 알람을 맞추더니 바로 잠이 들었다.
차우석은 방문을 닫고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음악에 미친 사람. 그런 사람의 작업실이었다. 음악과 관련되지 않은 건, 흔한 소품 하나도 없었다. 그냥 자기 삶이 없는 사람이었다. 취미도 삶도 전부 음악에 있는 사람.
자기 힘든 게 늘 최우선이던 차우석에게 이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정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동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솔직히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도 지금 카일룸 멤버들만큼이나 갈굼을 당했을 텐데, 아니, 갈굼이 현재진행형일 텐데도 정해원을 믿고 따르는 건 그래서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파트를 되찾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무리 자기가 정해원의 눈 밖에 났다고 해도, 차우석의 보컬이 이 곡을 낫게 만들 수 있다면 정해원은 파트를 돌려줄 것이다. 믹싱이 끝난 후라도 다시 음악을 뜯어고칠 것이다.
곧바로 연습하러 뛰쳐나가려던 차우석이 돌아와 앉았다. 돌연사할 수도 있으니 정해원이 깨는 건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 * *
퍼스트라이트 싱글 ‘별빛’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퍼스트라이트와 두 번째 작업을 하게 된 촬영팀의 스태프가 정해원에게 말했다.
“해원 씨, 오늘 왜 이렇게 신났어요?”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마음이 편해서요.”
“그런가. 아, 근데 이번 노래 진짜 좋아요. 차트인 제대로 한다, 이거.”
“저 생각에도 이번에 커하 찍을 것 같아요.”
작곡가가 그렇게 자부할 만했다. 촬영팀도, 멤버들도 이번 곡의 흥행을 어느 정도 예감한 것 같았다.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는 정말로 좋았다.
배역상 우주복을 입은 민지호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이거 중요한 역 맞지? 그래서 힘든 거지?”
그러자 멤버들이 너도나도 민지호를 부추겼다.
“야, 우주에 관한 곡에서 우주인이 주인공이지. 당연한 거 아니냐?”
“와, 민조 멋있다! 우주복 잘 어울린다!”
“그래? 나 멋있어?”
5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야외는 최고 기온이 30도 가까이 치솟고 있었고, 스튜디오 역시 에어컨을 들킨 했지만 꽤 더웠다.
퍼스트라이트 스타일리스트팀이 아이디어를 모아가며 만든 우주복은 꽤 그럴싸했다. 그리고 CG값을 아꼈다.
정해원이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에게 말했다.
“우리 팀 진짜 자급자족 그 자체예요.”
“그니까.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와, 우주복을 만들다니…….”
“앨범 커버도 멋있더라.”
“그쵸?”
이번에도 앨범의 커버 아트는 안주원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지난번 다음 이야기와 연결되는 곡이었기 때문에, 아트 워크에도 연관성이 있었다. 안주원이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해원이랑 회의 진짜 오래 했어요.”
아무래도 처음 안주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은하수가 흐르는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해원이 좀 더 산뜻한 분위기를 원했다.
앨범을 딱 꺼냈을 때, 반짝반짝한 희망이 느껴지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평소 유순한 안주원이었지만, 본인의 전공에 있어서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에 걸쳐 회의가 오갔다.
안주원의 이야기를 듣던 이예영이 말했다.
“해원이는 안무 짤 때도 옆에 있었다고 하고, 커버 아트 작업할 때도 있었고, 지운이 오디션 조언도 해주고, 새벽이 OST 녹음 연습도 같이했어? 안 자?”
그 말에 안주원이 멈칫하는 사이, 정해원이 대꾸했다.
“그렇게 들으면 제가 뭐 많이 한 것 같은데, 별로 한 건 없어요.”
“이게 어떻게 한 게 없어?”
“음…… 대신 멤버들 뭐 하고 다니는지 하나도 몰라요. 이러다 멤버들이랑 멀어지겠어요.”
정해원이 농담조로 말하더니 안주원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야 돼. 알겠지?”
“해원아, 멤버들, 무슨 일 있으면 다 너 제일 먼저 찾아.”
“그런가.”
그 말에 정해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고.”
그러더니 손으로 자기 손을 주물렀다.
한 번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이후, 정해원은 근육이 경직되는 것 같으면 바로 저렇게 굳은 부분을 푸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니까 저건 지금 심리가 불안하다는 뜻이었다.
안주원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그걸 눈치채고 정해원을 힐끔 한 번씩 확인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요즘 우리 너무 얘기를 못 한 것 같긴 해. 간만에 한잔할까, 촬영 끝나고?”
“술 마시면 안 되잖아.”
“에이, 한 잔은 돼. 하여튼 05놈들 술을 하도 좋아하니까, 술 없으면 같이 놀 수가 없어.”
정해원 상태 많이 이상한데?
가수 활동 오래 하고 싶어서 술도 담배도 끊고, 정신과 약도 하루 빼먹으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챙기던 사람이 술을 마신다고 할 때는 틀림없이 문제가 있었다.
* * *
나는 최대한 빨리 엔터 회사를 차릴 거고, 우리 멤버들을 다 데려올 생각이다.
1년 뒤, TRV에서 벗어났을 때는 아직 준비가 안 됐을지 모르지만, 그때 괜찮은 회사와 가능하면 2년, 길면 3년 정도 지내고 난 후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근데 그때 멤버들과 탄탄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나는 한 명씩 우정 강화를 위한 방법을 생각해 봤다. 어차피 나중에 엔터 회사 차리고 계약할 때, 각자가 원하는 부분을 챙겨주는 건 계약에 도움이 될 것이니 미리 생각해 둬서 나쁠 것 없다.
황새벽은 밥 잘 주면 되고, 05놈들은 술 한잔하다가 만취했을 때 스윽 계약서 사인하게 하면 될 것 같고, 06은 연습실 시설을 원하는 대로 맞춰주면 되고, 막내는 지금과 똑같이 편애를 주면 되겠다. 본인이 안 원할 수도 있지만.
단톡방의 존재를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최기문이 조직적으로 단 악플을 볼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내가 멤버들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점점 더,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속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그러니까 친구에게도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도 배신을 당하는 거겠지. 생각해 보면 국선아 때도 그랬다. 사람들이 날 좀 더 좋아했다면, 그렇게까지 됐을까.
내가 세상을 따돌리겠다는 마인드의 마이웨이라면 모를까, 나는 사람들에게 치대는 걸 좋아하고, 남들도 내가 사람 좋아하는 걸 알 거다. 그런데도 버려지는 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거다.
그래도 우리 가족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심지어 좀 있으면 조카도 생기고……. 누나가 출산하는 건 좀 무섭지만, 나보다 훨씬 운동을 많이 하는 건강인이니까 괜찮을 거다.
활동 끝나고 휴가받으면 꼭 영국 다녀와야지. 조카 선물도 사는 건 너무 이른가?
나는 계속 딴생각을 하다가 무대에서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저 멀리 있던 황새벽이 급하게 달려와 내 팔을 붙잡아 멈췄다.
“정해원!”
“어, 뭐야.”
워어씨, 조카 얼굴 못 보게 될 뻔했네.
나는 안도하며 황새벽에게 말했다.
“나 네가 실생활에서 뛰는 거 처음 봤다. 감동적이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멤버들만 있는 단톡방이었다.
[민조♥ : 회의 요청!]
[민조♥ : 해원이 형이 이상해!]
“……나 왜?”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멤버들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