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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26화 (12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6화

예능 촬영을 약속하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진짜 얼마 만의 여유인지 기억도 안 난다. 멤버 없는 숙소에서 모처럼 기나긴 목욕을 하고 피부에 이것저것 찹찹 바른 후에 내 침대에 달려가 누웠다.

나는 내가 일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누워보니 아니었다.

“캬, 이게 힐링이지.”

밖이 30도가 넘어서 에어컨을 켜고 누우니 나의 인간성이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몸이 덜 피곤하니까 잡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깐 누웠다가 거실로 나와서 운동기구를 둔 옷방으로 갔다. 그래도 올림픽 느낌의 곡을 만드는 시늉은 해야 하니까, 영감을 구할 겸 운동을 좀 해볼 생각이었다.

가볍게 스트레칭 수준으로만 운동하고 싶은데 보이는 아령이 8㎏짜리밖에 없었다. 좀 깔짝대다가 금방 철봉으로 이동해 복근을 조지고 있을 때 숙소로 멤버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어, 형. 운동해요?”

한효석이 감격한 표정으로 접근해서 나는 급하게 회피했다.

“아니, 안 해. 잘못 보셨어요.”

“철봉 잡은 김에 풀업 하나만 해요.”

“야, 가라로도 못 하는데 무슨…….”

내가 징징거려 봤지만 한효석은 그저 내가 운동을 시도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해 아무것도 못 듣고 있었다. 운동에 미친 놈이다. 발레 할 때도 선생님이 웨이트를 지나치게 한다고 지적했다던데, 사실 이놈의 적성은 발레가 아니라 웨이트에 있는 게 아닐까.

“어깨 돌아가면 안 돼요.”

“아, 못 올라간다고!”

“형 몸무게로 못 올라가면 진짜 문제 있는 거예요.”

아니다, 이놈아. 정자세로 하면 풀업 0개인 사람이 천지빼까리일 텐데 운동하던 저놈 주변엔 없어서 믿기질 않는 모양이다. 한효석이 약간 리프트까지 해줘서 간신히 두 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효식아, 나 등 근육 찢어진 것 같은데. 업어줘.”

“형. 등 근육이 찢어져도 걸을 순 있어요.”

“사람이 왜 그렇게 야박하냐, 너는. 식단 쪼여서 그렇게 된 거 아냐?”

그래도 잠깐 깔짝거렸더니 충분히 건강해진 기분이었는데 한효석이 나가려는 내 등을 떠밀어 푸쉬업바 쪽으로 데려갔다.

“조금만 더 해요.”

“효식아, 잘 생각해 봐. 네가 여기서 나를 운동을 시키잖아? 그럼 난 영원히 이 방에 안 들어오는 수가 있어.”

“제가 아는 형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 난 의지가 박약하기 짝이 없어.”

“그럼 더 잘 됐죠. 운동이 의지를 만들어줄 거예요.”

하, 말이 안 통한다. 이래서 멤버들이 운동할 때 한효석에게만 걸리지 말라고 경고했구나…….

나는 오늘 확실하게 그 이유를 알았다.

* * *

“저기 왜 시체가 있어.”

신지운이 날 가리키며 말하는 걸 알았지만 대답할 힘이 없어 그냥 누워 있는데 한효석이 말했다.

“저랑 운동해서요.”

“넌 왜 형을 죽이냐.”

“저 프로잖아요. 안 죽을 만큼 해요.”

한효석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원이 형 수명 연장됐을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게 들려서 나는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힘없이 가운뎃손가락만 들어 올렸다.

멤버들이 하나둘 돌아와서 거실로 들어올 때마다 저 대화의 반복이었다.

“해원이 형 누가 죽였어!”

“효식이!”

“아, 운동시켰어? 잘했어.”

“쟤 왜 저기 뻗어 있냐?”

“효석이랑 운동했대.”

“그래? 웬일이냐. 기특하네.”

똑같은 대화를 멤버 수만큼 듣도록 힘이 안 돌아와 누워 있는데 신지운이 불렀다.

“형, 힘든 거 알지만 일어나서 나 좀 도와줘. 내일 촬영하려면 싸가지없게 보여야 하는데, 요즘 내가 너무 순딩이야.”

내가 못 들은 척하니까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대본 리딩 때도 감독님이 좀 더 재수 없게 할 수 없겠냐고 하시더라고. 내가 너무 귀여운 탓인가? 어떡하지.”

……너무 듣기 거북해서 무시가 안 된다.

나는 지친 상태로 욕을 중얼중얼 뱉다가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신지운은 대본만 건네주기가 좀 미안했는지, 무알코올 맥주도 한 캔 줬다. 0.00이라고 쓰여 있는 확실한 무알코올 맥주였다.

“야, 이렇게까지 완전 무알코올은 아니어도 돼.”

“되긴 뭐가 돼.”

하긴, 내 소중한 전두엽을 지켜야지…….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며 대본을 살폈다.

신지운이 맡은 배역의 이름은 이선겸.

여자주인공 강유안보다 네 살 연하로, 아주 어릴 때부터 옆집에서 살았던 사이다.

여자주인공은 옆집 꼬마를 마냥 귀여워했는데, 이선겸이 사춘기를 지나며 여자주인공을 짝사랑하게 되는 바람에 서먹서먹해진 상황이 극의 시작이었다.

이선겸의 첫 등장씬은 아예 대사가 없었다. 그래서 신지운이 더 까다로워하는 듯했다.

오디션 준비를 위해 대본에 집중하던 강유안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이선겸을 들이받는다. 사과하는 강유안의 말을 무시하고, 이선겸은 엘리베이터에 타서 닫힘 버튼을 누른다. 닫히는 와중에 강유안이 자기를 부르자 보란 듯이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쉬워 보이지만 남주 찾기 드라마의 첫 등장씬인 만큼, 캐릭터가 확 드러나야 했다.

나는 연기의 ‘ㅇ’도 모르는 주제에 같이 고민을 하다가 긴장이라도 풀어주려고 농담조로 말했다.

“야, 그런 상상을 해봐.”

“뭔데.”

“네가 어느 날 X나 잘나가는 아이돌이 된 거야. 클라루스 형들 정도?”

“그게 어떻게 이 캐릭터 몰입에 도움이 돼?”

“근데, 너희 부모님이.”

“…….”

“‘성공한 아이돌, 이렇게 키웠습니다’라는 책을 내신 거지.”

“……하, X발.”

“오, 그 표정이다. 지금 진짜 재수 없어.”

신지운이 진짜로 짜증이 난 것 같긴 한데, 효과는 확실했다. 국선아 초기의 그 인성 쓰레기가 짓던 그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어이가 없는지 흐흐 웃는다. 나도 좀 웃었다.

‘아이돌이 되면 부모님이 빡칠 거 같아서요.’

국선아 때 신지운은 그렇게 말했고, 나는 황당함이 사라지자 왜 부모님을 빡치게 하고 싶은지가 궁금했다.

그냥 어릴 때 부모님이 너무 일만 하셔서 안 친하다, 정도로만 듣고 넘어갔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이상 뭔가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다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어림잡으며 위로를 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신지운이 더 얘기할 마음이 있는지, 힐끔 멤버들이 거실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에게 말했다.

“보통 그러잖아, 부모들이 자식 때문에 이혼 못 한다고.”

“응.”

“우리 부모님은 반대 케이스로 이혼을 못하더라고.”

“반대?”

“서로 나 데려가라고.”

“…….”

“둘 다 야망이 워낙 큰 사람들이잖아. 애를 낳으면 안 됐어. 아니면 둘을 낳아서 공평하게 하나씩 떠맡든가. 하여튼 나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맨날 그걸로 싸우더니, 결국 서로 못 떠넘겨서, 재산이나 연금 분할이 복잡해서 그냥 사는 것처럼, 그냥 그러고 남처럼 살더라고.”

“…….”

“내가 아이돌 돼서, 약 빨고 막 온갖 사고 치면 부모님이 X 같아 할 것 같았어. 그때는.”

“……응.”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술 한 잔 못 마셔주는 게 미안했다.

잠시 후 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운아.”

“어.”

“아무리 그래도 약 빨면 손가락 잘라야 돼.”

내가 벽에 붙여 놓은 종이를 가리키자 신지운이 흐흐 웃더니 말했다.

“나 랩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랬으면 너 이미 손가락 잘렸지.”

“자르라고 말할 사람이 없는 게 문제였을걸.”

“아, 하긴.”

나도 같이 낄낄거리고, 우리 웃는 소리에 뭐 재미있는 일 있나 멤버들이 기웃거리고 거실로 나왔다.

* * *

[신지운 : 형 효과 미쳤어]

[신지운 : ‘성공한 아이돌, 이렇게 키웠습니다’]

[신지운 : 이 문장만 생각하면 감독님이 원하는 표정이 자판기처럼 나와]

신지운이 보낸 톡을 보니 촬영이 잘된 모양이다.

그리고 월요일, 멤버들은 민지호가 요청한 회의를 위해 다시 숙소에 모였다. 첫 촬영을 하고 온 신지운이 두 손에 가득 먹을 걸 챙겨왔다.

먹을 거 좋아하는 황새벽과 민지호가 신나서 달려가 거실에 상을 펴고 음식을 늘어놓았다.

민지호가 물었다.

“지우니 형, 이거 그거야? 드라마 모여서 볼 때 너무 놀릴까 봐 입막음?”

“어. 제발 쫌만 놀려.”

“알아쩡.”

요즘 너무 바빠서 다들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서,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늘어놓고 먹는 건 은근 오랜만이었다.

음식을 다 꺼낸 후 황새벽이 말했다.

“먹으면서 회의하자.”

그리고 회의를 요청한 민지호가 후루룩 막국수 한 그릇을 비워서 치워버린 후 나에게 말했다.

“해원이 형, 요즘 왜 이렇게 맛이 갔어? 아직도 악플 때문에 후유증 있어? 그래서 그래?”

단도직입적인 질문과 함께 멤버들의 눈동자 열두 개가 내 쪽으로 쏠렸다. 나는 안주원이 한 개를 절반으로 나눠준 막국수를 받아 들며 말했다.

“아니, 그건 전혀 없는데.”

내 대답에 박선재가 말했다.

“근데 형 그때 이후로 X이앱 안 켜잖아.”

“바쁘니까 그렇지.”

“X버스에도 글 안 올린 지 꽤 됐지?”

“진짜로 바빠서 그랬어.”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 내가 마지막 X이앱을 켠 게 언제였는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박선재의 말대로였다. 최기문이 바이럴 업체를 통해 악플을 달기 시작할 때, X이앱을 켜자마자 외모 비난 때문에 말문이 막혀 X이앱을 끄던 날 이후로는 한 번도 혼자 X이앱을 켜지 않았다. 아니, 켜겠다는 생각조차 안 해봤다.

안주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그전에는 밥 혼자 먹기 싫을 때도 X이앱 켰었잖아.”

그리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민지호가 알았다는 듯이 박수를 치고 나에게 말했다.

“형, 햇살이들 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그래.”

“……응?”

“그래서 비실비실한 거야! 햇살이들을 만나야 돼!”

정말 아이돌 그 자체의 해결법이다. 민지호가 나를 재촉했다.

“형, X이앱 켤 수 있어?”

“당연히 켤 수야 있지.”

“그럼 켜. 햇살이들이 형 밥 잘 먹나 걱정하니까 맛있는 거 먹는다고 보여주고 꺼.”

“1분도 안 되겠는데.”

“뭐 어때! 햇살이들 무조건 좋아해!”

하긴, 햇살이들이 싫어하진 않을 거다. 1분짜리 X이앱을. 오히려 팬들도 일상이 있으니까, 너무 오래 켜는 것보다 짧게 자주 켜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해원해원>>>]

그렇게 제목을 쓰고 X이앱을 켜려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보다가, 뒤늦게 깨닫고 멤버들에게 말했다.

“……못 켜겠는데.”

악플의 영향이 없는 줄 알았다. 그건 가짜였으니까. 내가 요즘 우울했던 건 전부 멤버들이 나 없는 단톡방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인터넷을 켤 때마다 시야에 가득 들어오던 모욕들에 침식되고 있었다. 구석구석 깎여서 밋밋해질 때까지.

내가 가족이랑 멤버들만큼 좋아하는 게 팬들인데.

그러면 안 된다고, 내 팬들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 다시 돌변해 나를 욕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 어딘가에는 남아 있었다. 그걸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최기문의 악플들이 다시 끄집어낸 모양이었다. 나는 여전히 좀, 팬들이 무서울 때가 있었다.

나는 조용해진 멤버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진짜 못 켜겠어. 켜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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