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7화
[<<<해원해원>>>]
멤버들은 정해원이 쓴 제목을 보았다.
정해원이 자기 X이앱 제목에 저렇게 이름을 강조해서 쓰는 이유를 몰라서 멤버들은 제목에 이름을 그렇게 강조할 필요 없다고 몇 번 농담조로 말하고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모든 멤버들이 왜 정해원이 제목에 자기 이름을 써두는지를 알아차렸다. 여전히 정해원이 혼자 X이앱을 켜면 실망하는 팬들이 있었던 것이다.
멤버들마다 저렇게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억지로 곡을 쥐어 짜가며 활동하는 게 맞나, 자괴감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본인이 강력하게 원한다는 걸 알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언제나 이럴 때 막내로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박선재와 멤버들이 하기 싫어하는 건 본인이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황새벽이 동시에 말했다.
“내가 할까?”
“내가…….”
“그럼 리더가 해.”
박선재의 말에 황새벽이 밥 이모티콘 하나 눌러서 제목을 쓰고 X이앱을 켰다. 멤버들이 카메라에 옹기종기 모여 인사했다. 민지호가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햇살이들 우리 다 보여? 일곱 명 다 있어?”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있어ㅋㅋㅋㅋㅋㅋ]
그러고 나서 멤버들이 시끌시끌 떠들기 시작했다.
“밥 먹는 거 자랑하려고 켰어요!”
“햇살이들도 저녁 많이 먹어어.”
한마디씩 인사하고 X이앱을 껐다. 그리고 박선재가 시끄러운 분위기를 이어가려 바로 정해원에게 물었다.
“형 나랑 X이앱 하자. 코너 만들까?”
“그럴까? 뭐 하지?”
“그러고 보니까 우리는 뭐 그런 거 없나? 조합?”
그 말에 한효석이 말했다.
“편애즈.”
“그럴까? 편애즈의…… 편안한 밤. 형, 이거 제목 어때!”
“어, 좋네. 그거 하자.”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편애즈의 편안한 밤’이라는 메모를 저장해놨다.
* * *
이번 회의에서 얻은 게 있었다. 나 혼자서는 X이앱을 못하게 됐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심심할 때마다 켜고, 햇살이들이 보고 싶을 때 켜고 그랬었는데 당분간은 어렵게 됐으니 좀 아쉬운 마음이 있다.
그리고 민지호는 어제, 고민도 안 하고 그걸 X버스에 올려버렸다.
[민조 : 해원이 형이 조금 슬퍼서 당분간 X이앱 혼자 못 켤 것 같아요. 옆에서 저랑 박곰돌이 많이 도와줄게요. 햇살이들 해원이 형 응원 많이 해주세요!!!!!!!!!!!!!!!!!!!해원이 형이 제목에 자기 이름 안 쓰고도 X이앱 켤 수 있을 때까지!!!!!!!!!!!!!!!!!!!!!!!!!!가보자고!!!!!!!!!!!!!!!!!!!!!!!!!!!!!]
보나 마나 햇살이들이 엄청 걱정하고 있겠지……. 어휴, 다른 의미로 무서워서 확인을 못 하겠다.
나는 원래 저렇게 알리는 게 악플러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인 동시에 팬들도 울적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팬들에 대한 믿음이 단단한 민지호의 의견은 달랐다.
‘형이 스트레스받는 거 햇살이들도 뻔히 아는데, 아닌 척하면 뭐 걱정 안 하겠어? 오히려 팍팍 드러내야 야 이 악플러 놈들아! 하면서 고래고래 화내고 기분을 풀지. 그러다가 형이 어느 날 용감하게 혼자 X이앱을 켜. 그럼 햇살이들이 얼마나 안심하고, 감동하겠어.’
진짜 아이돌이 아니면 뭘 했을까, 궁금해지는 놈이다.
정작 내가 궁금해하던 것은 안주원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TRV와의 계약 기간이 꽤 많이 남아 있는데, 내가 들쑤시고 다녀서 껄끄러워진 것 아니냐는 질문을. 뭐, 안주원 성격을 생각하면 다 좋아, 괜찮아, 라고 할 것이 뻔하니 둘이 있을 때 술 좀 먹이고 조용히 물어봐야겠다.
다음 날 나는 올림픽 응원가 예능, ‘RUSH’의 준비를 위해 작업실로 들어갔다.
내정인 프로듀서가 있다고 해도, 나도 보여줄 트랙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모니터를 켜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작곡 노예잖아?”
자유인 줄 알았더니, 결국 종류가 다를 뿐 VVV엔터가 시켜서 작곡 중인 건 똑같다. 강효준에게 속은 기분이다.
억울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며, 응원가 느낌으로 드럼부터 설렁설렁 찍고 있는데 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톡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카일룸 차우석 : 저예요 문 열어주세요]
신지운의 신버전, 카일룸의 차우석이 벨을 누르고 바로 톡을 보냈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차우석이 빠르게 말했다.
“형, 저 느낌이 왔어요.”
“무슨 느낌이 와. 아, 그리고 내 작업실 그만 와.”
내가 말하거나 말거나 차우석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작곡 배우는 초기에 양이형 작업실에 기생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니 그 형이 성인군자다. 이따가 맛있는 거 사줘야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차우석이 카일룸의 타이틀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마이크 안 켜져 있는데.”
내가 중얼거리는 걸 듣긴 했는지 움찔거렸지만 끈질기게 노래를 완창했다.
노래가 끝나고,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보는 차우석에게 말했다.
“너 목 완전히 갔다.”
“그래도 나름 이 목소리도 괜찮지 않아요?”
“안 괜찮아. 당연히 멀쩡한 목소리로 녹음해야지. 그리고 너 목 쉬어서 음 되게 많이 나갔어.”
내 말에 차우석의 얼굴에 충격이 번진다.
그래도 지금 노래하는 걸 들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그래도 연습은 좀 했나 보네.”
분명히 했다. 연습. 그것도 아주 많이.
이 한 곡을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도, 그 짧은 사이에 보컬이 얼마나 늘었는지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빡치네. 그 짧은 사이에 이렇게 휙 늘었다는 건, 그동안 드럽게 게으름을 피웠다는 뜻이잖아? 도대체 얼마나 뺀질거린 거냐, 이 새끼는…….
아무튼 쉰 목소리는 안 된다고 하니 차우석이 크게 당황해서 평소의 목소리를 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
뮤직비디오 촬영이 일주일 뒤. 차우석도 오늘 정도가 자기 파트를 찾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해서 왔을 것이다. 그런데 목이 쉬어버렸으니.
나는 좌절 중인 차우석에게 물었다.
“뮤직비디오 누가 찍어?”
“OIN이요.”
“우리랑 두 번 작업한 감독님이니까, 내가 말해볼게. 넌 가서 목 관리나 해.”
“……진짜요?”
“응. 그 정도는 해주실 거야.”
최종 음원이 바뀔 수도 있다고 하면, 촬영 감독 입장에서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뮤직비디오가 뮤직비디오 감독에게는 예술적 창작물이고 명함이다. 여차하면 최종 음원과 뮤직비디오 합이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건데 그게 괜찮을 리 없었다.
나는 싫은 놈 때문에 싫은 소리 해야 하는 게 억울해서 차우석이 앉은 의자를 퍽 찼다.
“한 번에 하든지 포기할 것이지, 왜 일을 두 번 하게 만들어.”
“아니…… 저희 멤버가 막 열 명씩 있으면 몰라도, 다섯 명 중에 한 명 파트가 없으면 너무 눈에 띄잖아요.”
“그럼 진작에 잘했어야지……. 그래도 뺀질이가 웬일로 연습을 그렇게 해 왔냐.”
“……부모님 보시잖아요.”
차우석이 투덜거렸다.
“제가 어릴 때 아팠던 기억 때문에, 연습생 생활 중에도 부모님이 건강에 문제 생길까 봐 엄청 걱정하셨거든요. 그래서…… 이제 걱정 좀 덜 하심 좋은데 제 파트 없으면 또 뭐 쓸데없이 걱정하실 거 아니에요.”
“야이씨, 치트키를 또 쓰려고 하네. 부모님 그만 이용해. 귀 간지러우시겠다, 인마.”
저놈의 치트키를 이겨낼 수가 없다.
나는 곧 차우석을 쫓아내며 말했다.
“목 무조건 나아서 와. 다음에도 쉬어 있으면 너 진짜 뒤진다?”
“네! 목 괜찮아지면 재녹음 시켜주실 거죠?”
“…….”
“혀엉.”
“……그래야지, 뭐.”
“감사합니다!”
“아, 목 아끼라고.”
“네! 아니다, 네.”
차우석이 목소리를 줄여서 대답하고 신이 나서 매니저에게로 달려갔다.
차우석이 떠난 후, 나는 강효준에게 전화를 했다.
-응.
“형, 우석이 목 쉬었잖아요. 관리 좀 해요.”
-미안. 몰랐어.
“모르면 어떡해요. 데뷔 코앞인데 맨날맨날 실력 테스트하고 굴리고 그래야죠.”
-이제 그럴게.
“그리고…… 차우석 파트 다시 줘야 할 것 같아요. 실력이 많이 늘어서. 괜찮아요?”
-프로듀서 판단대로 해야지.
“믹싱 다시 해야 되는데.”
-뭐, 파이널 파일이 파이널2 되는 거지. 네가 워낙 믹싱 디렉을 정확히 줘서 몇 번 더 수정 요청해도 돼. 근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있으니까 일을 두 번 하고 있죠.”
일을 두 번 하게 만든 차우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묘하게 기특하려 해서 억울하다.
강효준이 차우석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대로 재녹음 스케줄을 잡아주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실력이 확 늘어서 온 차우석을 보니 괜히 나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고 그렇다.
열심히 살면서, 올림픽 응원가 작곡에 영감도 받고, 수명도 연장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선택하고 싶지가 않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한효석에게 톡을 보냈다.
[효식아…….]
[형 올림픽 응원가 트랙 뽑게 운동 좀 도와줄래…….]
[살살…….]
그리고 평소 답장이 빠른 편이 아니던 한효석에게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효식♥ : 형…….]
[효식♥ : 형……!]
[효식♥ : 역시 강한 의지는 중량에서……!]
……이거 미친놈 같은데. 내가 수명연장에 눈이 멀어 헛소리한 것 같은데.
어디서 불어오는 거지, 이 쎄한 바람…….
* * *
결과적으로 한효석과의 운동에서는 희망찬 영감을 얻을 수 없었다.
운동 후에 나는 ‘녹슬지 않는 강철’이라는 노래를 힘없이 흥얼거렸는데 양이형이 그건 응원가가 아니니까 끔찍한 노래 집어치우라고 했다. 흑흑.
일주일 뒤 카일룸 뮤직비디오 촬영 당일, 나는 카일룸 멤버들보다 먼저 촬영장에 도착했다.
하필 오늘 퍼스트라이트도 컨셉 포토 촬영이 예정되어 있어, 거의 얼굴만 비추고 가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멤버들이 오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홍 감독에게 달려갔다.
“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님!”
“애교 안 부려도 돼. 작가라고 좋아서 두 번 일하는 거 아니잖아.”
“아, 진짜 죄송해요…….”
홍 감독은 ‘불을 켜’ 때부터 유난히 날 잘 찍어줘서 내 팬들이 특히 좋아하는 감독이었다. 홍 감독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최종본 다 나오고 멤버 사고 쳐서, 부분 재촬영한 적도 있었는데 뭐. 파트 바뀌는 정도야.”
표정 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얼굴이다. 허허, 거기 고통 하나 얹어 드리네…….
내가 너무 미안해하는 것 같았는지 홍 감독이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다 찍은 줄 알고 멤버분 보냈다가 다시 부른 적 있고 그래. 어휴, 그때 정말 얼마나 미안했는지.”
홍 감독이 한숨을 푹 쉬더니 슬쩍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뭐, 생색내자는 건 아니고…….”
그렇게 밑밥을 깐 홍 감독이 말을 이었다.
“나중에 해원 씨 솔로 음원 뮤직비디오 찍으면, 무조건 우리랑 하자.”
전에 한 번 홍 감독이, 자기 미감에 내가 딱 맞는다고 한 적이 있다. 뭐, 사람마다 미감이 다르니까…… 페르소나 그런 느낌인가 보다.
근데 솔로? 내가?
솔로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그리고 만약 한다고 해도, 우리 멤버들 모두에게 솔로나 유닛곡을 준 다음 차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 감독이 적극적으로 말했다.
“내가 생각해 본 컨셉도 있어.”
“진짜요? 뭔데요?”
일단 물어나 보자, 생각하고 말했더니 홍 감독이 대답했다.
“뱀파이어…….”
“오.”
“의 먹이. 크!”
“……제가 먹이에요? 뱀파이어가 아니라?”
뱀파이어라는 훌륭한 아이돌 컨셉을 두고 왜 때문에 먹이……?
이 사람 미감만 문제가 아니라 취향도 이상한데? 같이 일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