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8화
충격적인 컨셉에 잠시 당황했지만, 내가 먹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괜찮은 설정 같았다.
뱀파이어를 사랑하게 된 먹이 같은 내용의 곡을 한번 써볼…….
아니, 잠깐만. 동조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어휴, 정신 차려야지.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직 솔로는 생각도 안 해봤어요.”
“한 번도? 왜? 새벽 씨도 솔로 만들어주고, 투 빌런즈도 있고. 난 순서대로 다 만들 생각인 줄 알았는데?”
“멤버들은 그렇게 해줄 생각이에요. 근데 전 노래를 못하잖아요.”
“엄청 늘었던데, 뭐. 그리고 일단 춤을 워낙 잘 추잖아.”
그 말에 나는 흐흐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볼게요. 감독님이야말로 나중에 말 바꾸시면 안 돼요.”
“당연하지. 딴 사람한테 맡기면 나랑 척지는 거다?”
“네, 무조건 감독님 일정부터 여쭤볼게요.”
내 솔로 음원도 생각해 보긴 해야겠다. 일단 다른 멤버들 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이놈들아, 내가 이렇게 너네 생각을 한다.
어차피 난 보컬보다는 전체적인 사운드와 무대적인 부분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뮤직비디오도 중요한 역할을 할 거고, 감독과 작곡 단계에서부터 교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홍 감독의 미감을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사이에 분장을 마친 멤버들이 촬영장으로 나왔다.
진짜로 ‘분장’이었다. 천사 분장.
“……왜 괜찮지?”
내 혼잣말에 멤버들과 함께 촬영장으로 돌아온 강효준 A&R이 대답했다.
“괜찮아야지. 들인 돈이 얼만데.”
퍼스트라이트 멤버들도 같은 아이돌들이 감탄할 정도로 잘생겼는데, 카일룸 멤버들도 만만치 않았다.
전체적으로 만화 속 귀족 도련님 같은 흰옷에 깃털을 붙이거나, 깃털 장식 장신구를 해서 날개 같은 느낌을 줬다.
날 보자마자 리더인 도윤이 허리를 90도 이상으로 숙여서 인사했다. 동갑끼리 뭐 이렇게 불편하게 인사하나, 생각하며 같이 꾸벅 인사하고 나니 차우석이 나에게 달려왔다.
“형, 떨려요…….”
“어쩌라고. 꺼져.”
“아이돌 선배로서 좋은 말 좀 해주시라구요.”
“맡겨놨냐?”
“한마디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뺀질이 진상이던 차우석이지만, 인기가 없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얼굴이다.
나는 차우석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열심히 해라, 감독님 말 잘 듣고.”
“넵.”
차우석이 대답하고 다시 멤버들에게 달려갔다. 강효준이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진짜 안 팼어?”
“안 팼다니까.”
“근데 사람이 저렇게 바뀐다고?”
“파트가 걸려 있잖아요. 데뷔 초에는 진짜, 분량이 내 목숨줄 같이 느껴지거든요. 제가 목숨줄을 잘랐다가 붙였다가 하는 기분일걸요.”
“내가 연예인이 아니라 공감을 못하겠네.”
“그래요? 작년에 더 써틴, VMC에서 만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요. 거기서도 분량 챙기려고 출연진들이 자기 악편해 달라고 했잖아요.”
“거기서 너 또 팔아먹었잖아.”
“그니까요, 내가 무슨 소도 아니고 부위별로 잘라서 팔아먹으려고 드네.”
편하게 말하고 나서야 강효준이 VMC 사람인 걸 떠올렸다. 아,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사이 촬영이 시작되었다. 크레인에 그네를 만들어 달고, 그 위에 앉아서 찍는 장면이었다. 안전을 위해 와이어를 맸음에도 멤버들이 아래를 보며 어찔해했다.
그중에서도 막내, 17살인 한국계 미국인 로건의 반응이 심각했다.
“건아! 손 놔도 안 떨어져!”
이름이 로건 최인데, 한국인 특성상 로를 성으로 취급해 다들 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로건은 두 손으로 그넷줄을 꽉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못 놓겠어요…….”
“아니, 그래도 눈은 떠야 촬영을 하지!”
우리 막내가 18살 빠른이니까, 로건과 두 학년 차이가 난다.
한국 학제로 치면 중학교 졸업한 지 몇 달 안 된 데다 타국살이 중인 녀석한테 윽박지를 수가 없으니 다들 난감해하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게 미리 파악이 안 됐던 모양이다. 하긴, 데뷔가 걸렸는데 당연히 괜찮다고 거짓말했겠지.
결국 와이어에서 내려온 로건은 글루건으로 섬세하게 장식을 붙여 놓은 의상 때문에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구석에 서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촬영은 시작도 못 하고 중단됐다.
나는 이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우리 매니저에게 눈짓했고, 매니저가 바로 눈치채고 달려왔다.
“해원 씨, 이제 촬영 가셔야죠.”
“아, 그래요?”
내가 바로 도망치려니까 강효준이 급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좀만 더 있어.”
“7시 전에 돌아올게요.”
나는 뿌리치고 잽싸게 그 아수라장을 빠져나왔다.
* * *
퍼스트라이트 싱글 컨셉 포토 촬영장은 카일룸 쪽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이번 컨셉은 작정하고 ‘아기자기’, 귀여움’이었기 때문에, 촬영장에는 파스텔톤의 구름이 붙어 있고, 온갖 소품이 놓여 있었다.
나는 헬륨가스를 넣은 선라이즈 색깔의 풍선을 받아들고 스태프에게 물었다.
“이거 촬영에서 쓰고 남으면 저 하나 주시면 안 돼요?”
“박스로 있으니까 촬영 끝나고 챙겨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걸로 포카용 사진을 찍고, 바로 촬영을 들어갔다.
안 그래도 안주원과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우리 순서가 겹쳐있었다. 내가 촬영을 다 끝냈을 때, 안주원도 야외 촬영이 막 끝난 참이었다.
“주원아.”
“응?”
나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안주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퍼스트라이트 계약 끝나도 넌 TRV랑 계약 남아 있잖아. 요즘 어때? 괜찮아? 괴롭히는 사람 있는 거 아니냐?”
그러자 안주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없던데? 그리고 애초에 내가 개인 활동 생각이 없어서 좀 척져도 괜찮아.”
어휴,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내가 말했다.
“아무튼, 미안해.”
“뭐가 미안해?”
“최기문 날리기 전에 너한테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자 안주원이 처음 보는,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최기문 놔둬서, 너 활동 못하게 되면 그게 진짜 큰 문제지.”
“그건 그러네.”
일부러 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데, 안주원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난 뭐 그렇게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니까. 네 덕에 먹고 사는 거지.”
“야, 네 얼굴이 재능이 아니면 뭐가 재능이야?”
“에이, 두드러질 정도는 아니잖아.”
“……미쳤냐? 너 시력 검사 해봐야 되는 거 아니야? 잘 안 보이면 안경 쓰고 다녀.”
내 말이 농담인 줄 알고 안주원이 웃는다. 이 새끼 진짜 안경 맞춰야 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별 소득 없는 대화를 끝내고, 나는 다시 카일룸의 뮤직비디오 현장으로 이동했다. 두 집 살림이 피곤해 의자에 기대 누워, 카일룸 멤버 로건의 고소공포증을 떠올렸다. 금방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결국 조율해서 다른 씬을 먼저 찍고 있을 것이다.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매니저 생활을 할 때 실버룰렛에서 불안증세 완화 포션을 얻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상태창이 보였다.
[현재 동시 사용 가능한 룰렛은 2개입니다]
[확정]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룰렛]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줄어드는 효과 때문에 레드룰렛은 절대 안 된다. 내가 어떻게든 카일룸의 미니 앨범 작업을 마친 건 다 저 효과 덕분이다.
그런데 또 퍼플룰렛은 우리 멤버들의 개인기를 확인하게 해줘서 빼기 싫은데…….
그때 상태창이 이어졌다.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의 적용 대상 범위가 재설정되었습니다]
[적용 대상 (퍼스트라이트)]
[적용 대상 (카일룸-임시)]
[두 번째 미션 적용 대상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퍼스트라이트(안주원)]
[카일룸(로건 윤혁 최)]
엇…….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안주원이 괜찮다고 했다고, 진짜 괜찮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미안했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에게도 불안장애가 있다 보니 고소공포증 때문에 떨던 열일곱 살짜리 로건이 신경 쓰인다.
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했다.
[카일룸(로건 윤혁 최)]
그리고 포션 하나가 툭 떨어졌다.
“주원아, 미안하다.”
이래서 착한 사람들이 손해 보고 그러는 거다. 결국 더 찡찡거리는 애들한테 떡 하나 더 주게 되는 법이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증은 노력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고르고 나니, 나는 반대급부로 오히려 안주원에 대해서 더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게 됐다.
어떨 때 보면 그냥 미술 전공하며 대학 다니고, 야구 볼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은데, 어떨 때 보면 우리 멤버 중 누구보다 팬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피는 놈이다.
워낙 정석 미남이라 화보는 끊임없이 찍고 있지만, 연기는 생각이 없는지 최대한 피하고 있고, 예능 개인 출연도 다 거절했다.
안주원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곳은 아마…….
……연습하거나 뭐 공동작업할 거 없나 작업실 기웃거리는데?
……어?
혹시 걔는…… 아이돌 하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냐?
보컬 연습도, 안무 연습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작사에도 꾸준히 참여하려고 내 작업실에 제일 많이 들락거리는 게 안주원이다.
나는 어쩌면 은연중에, 안주원이 아이돌을 좀 하다 보면 금방 배우 쪽으로 관심을 돌릴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얼굴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가.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안주원에게 다짜고짜 톡을 보냈다.
[쭈워나 쭈워나]
[다 봤어]
[작업한 거 내놔]
생각해 보면 처음에도 안주원은 가사를 쓰고 있다는 걸 숨겼었다. 그러니 뭔가 작업하는 걸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안쭈 : 다 보여줬는데…….]
[아, 있잖아. 나한테 숨기는 거!]
[안쭈 : 굿즈 디자인한 거 말하는 거야?]
……숨긴 게 있긴 있네?
그렇다는 건, 더 파면 뭐가 더 나올 것 같은데?
[아니, 그거 말고 딴 거. 이럴래? 나 진짜 우울하다, 주원아]
내가 공갈 협박을 하니까 안주원이 뜸 들이다 다시 톡을 보냈다.
[안쭈 : 작업 중인 곡 말하는 거면]
[안쭈 : 솔직히 곡이라고 할 수도 없어 너무 쓰레기라…….]
[주원아 어떻게 그걸 나한테 비밀로 해. 눈물이 난다…….]
내 엄살에 안주원이 별수 없이 파일을 보내줬다.
스템 파일을 통째로.
모든 악기와 보컬 트랙이 다 나와 있는 스템 파일을 보낸다는 건 영업 비밀을 다 노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자식, 아무리 멤버여도 날 너무 믿는 거 아닌가. 유출 방지 교육 좀 시켜야겠다.
아무튼 맥북을 켜서 들어보니 정말 내 작업실 들락거리며 뭘 배웠나, 싶을 정도로 서툴기 짝이 없다.
트랙은 트랙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없다 쳐도 멜로디도 뭐 박자와 피치가 들쑥날쑥, 딱 음감이 없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음악적 재능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엉망진창인 부분들이 모인 음악은 다정하고, 시적이었다.
[올해 처음 본 눈송이를 두 손으로 모아쥐고]
[교실 창가 네 자리로 달려가서]
[펼쳐진 책 위에 몰래 올려놓고 집으로 달려왔어]
[첫눈이 녹으면 너는 내 마음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사랑은 음]
[네 책장 모서리 어딘가에 내 마음이]
[네 손끝 언저리 어딘가에 내 사랑이]
아마 설레는, 풋풋한 첫사랑에 관해서 만큼은, 나는 절대 안주원보다 나은 곡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 * *
곡을 달라는 정해원의 강요에 안주원은 얼떨결에 가지고 있던 스템 파일을 넘겨주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어쩌다가 본인이 몰래 작업 중인 걸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작업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작업물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본인이 더 잘 알았다. 특히나 절대음감에 인간 메트로놈인 정해원의 귀에는 사실상 귀를 고문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걸 보내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때 정해원에게서 답이 왔다.
[정해원 : 싹 다 뜯어고쳐야 하긴 하는데]
고쳐? 이 쓰레기를 어떻게 고쳐? 아니, 왜 고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이어졌다.
[정해원 : 그래도 너무 좋다]
[정해원 : 주원아]
[정해원 : 이거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