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29화 (12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29화

한동안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딴청을 하던 안주원은 곧이어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어, 해원아…….”

진짜 좋은 거 맞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음악이 좋게 들릴 사람이라고는 본인 부모님 정도밖에 없었다.

안주원이 머릿속에 있는 말을 못 하고 있으니 정해원이 말했다.

-내가 말을 너무 막 한 거면 미안하고.

“네가 언제 말을 막 했어?”

-고쳐야 한다고 했잖아.

“네가 네 곡 수도 없이 뜯어고치는 걸 봤는데, 내가 왜 그걸 막말로 생각하겠어.”

-그런가……. 아무튼 그보다 너는 이걸 이렇게 작업 파일을 그대로 보내면 어떡하냐. 내가 여기서 뭐 뜯어먹으면 어떡하려고.

“너니까 보내는 거지. 뜯어먹을 것도 없지만.”

그 말에 잠깐 조용하던 정해원이 말을 돌렸다.

-아무튼 첫눈 올 때쯤 맞춰서 준비해보자. TRV가 딴 사람은 몰라도 네 솔로는 내게 해줄 테니까, 잘 되면 디싱으로 내고, 안 돼도 믹테로…….

“네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어,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네가 부지런히 나랑 이형이 형 작업실 오가면서 알아서 고쳐야지.

말은 저렇게 해도, 여기서 일을 만들면 죄다 정해원 일거리로 들어갈 것이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입장에서, 선뜻 그러자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안주원이 머뭇거리자 정해원이 말했다.

-야.

“어.”

-그거 진짜로 좋다니까. 내가 욕심 나서 그래.

“응.”

-주원아. 내가 되게 미안한 게.

정해원이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아이돌에 진심인 줄 몰랐어.

그야 너만큼은 아니니까…….

라는 대답을 삼키고 있을 때,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내가 좀 더 신경 쓸걸. 그랬으면 네가 이…… 비트도 들쑥날쑥한 걸 가져왔겠니. 도대체 무슨 비트가 찍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이거 피치 어떻게 잡아야 되니.

“응, 그리고 이제 음악의 3요소 얘기할 거지?”

-그치, 음악의 3요소가 뭐야.

“선율, 리듬, 하모니요.”

-근데 이건 세 개가 다 엉망이야. 아니, 너 노래할 땐 화음 잘 쌓잖아. 왜 작곡은 이렇게 하냐?

나름이 형식이 있는 정해원의 갈굼에 안주원이 흐흐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겨울쯤 목표면, 편곡도 네가 해주라. 나중에 작사, 작곡, 편곡 전부 딱 우리 이름만 있으면 햇살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오, 야, 그거 진짜다. 아, 나 촬영장 도착했어, 이따 연습실에서 봐.

정해원이 바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주원은 휴 한숨을 쉬고 진짜 괜찮은가, 자기가 만든 곡을 다시 들어보려다 다시 껐다.

이걸 끝까지 들은 정해원이 대단했다.

* * *

카일룸의 막내인 로건이 고소공포증으로 그네 위에서 눈조차 뜨지 못하니, 촬영팀은 융통성 있게 몇 가지를 수정하며, 군무씬을 먼저 촬영했다.

멤버들은 뼈가 부서지게 군무를 맞췄지만, 첫 촬영이다 보니 표정이 부자연스러워 몇 번이고 촬영을 반복했다.

호응해 주던 직원들과 촬영팀도 지쳐가며 분위기가 한참 무거워지고 있을 때, 자기 팀 촬영을 갔던 정해원이 돌아와 두 손 가득 들고 온 도넛을 내려놓았다.

“간식 좀 드시고 하세요.”

“아, 그래, 내가 지금 필요한 게 당이었어!”

“와이씨, 안 그래도 지금 진짜 당이 똑 떨어졌어요, 해원 씨.”

뮤직비디오 촬영장 돌아가는 걸 어느 정도는 알 연차라, 딱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것을 사 들고 온 덕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정해원은 지쳐서 여기저기 기대있는 멤버들에게로 향했다.

“멤버분들도 가서 먹어요.”

“형, 저 진짜 힘들어서 못 먹겠어요.”

이래저래 자체적으로 친밀감을 쌓은 차우석이 먼저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의상 때문에 잠깐 눕는 것도 못 하니 아주 엄살도 아니었다.

정해원은 차우석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막내인 로건을 불렀다.

“건이는 좀 와봐.”

“네? 네.”

로건이 일어나 정해원을 따라갔다.

* * *

내가 혼내려고 따로 부른 줄 알았는지, 로건은 대기실에 들어와서 고개도 못 들고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었다.

내가 애들을 이 정도로 갈군 건 아니라 좀 억울하다.

아무튼 나는 울적해 보이는 로건에게 포션을 섞은 커피를 내밀었다.

“일단 이거 마시면서 얘기하자.”

“네…… 형, 근데 저도 도넛 먹으면 안 돼요?”

“아, 어. 미안, 미안.”

형들이 안 먹는다고 해서 눈치를 봤지만, 사실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밖에 나가보니 그 많던 도넛이 이미 싹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결국 차로 돌아가 멤버들에게 가져다주려고 빼놓은 것 중 한 박스를 가져왔다.

도넛을 먹기 전에 스타일리스트가 로건을 포대기 같은 걸로 둘러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흰옷과 흰 깃털에 크림이나 잼이라도 떨어지면 스타일리스트들이 뒷목 잡고 쓰러질 테니까.

로건이 바로 도넛을 꺼내 한 입 크게 물고, 빨대를 꽂은 커피를 쭉쭉 마셨다.

“조심해. 옷에 묻으면 스타일리스트님들한테 나까지 혼나.”

“네! 근데 진짜 맛있어요. 와.”

맛있을 만하지. 열일곱 살 남자애다.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배고플 나이라는 뜻이다.

그런 애를 분장 서너 시간, 촬영 일곱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먹였으니 현기증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로건이 커피를 어느 정도 마시자 상태창이 떴다.

[로건 윤혁 최]

[카일룸 (로건 윤혁 최)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이해도 60%(+20)]

엇, 뭐야.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황새벽은 이해도가 55%였는데 로건은 잘 아는 애도 아닌데 80%다.

하긴, 도넛을 더 먹고 싶어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을 보니, 이해할 게 많이 없는 애라 그런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단순해서 좋겠다. 우리 멤버들도 저랬음 좋겠다.

[힙합/딥 하우스]

[래퍼]

그렇게 키워드가 이어졌다.

[이해도 80% 이상으로 현재 상태를 확인합니다]

[*높은 장소에 공포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도넛이 맛있음]

아, 도넛.

나는 바로 도넛 상자를 내밀었다.

“더 먹어. 차에 너네 멤버들 줄 거 있어. 쟤네 너무 피곤해서 저러는데 또 입에 들어가면 먹어.”

“형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 먹을 거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지. 딱 관상이 그렇게 생각하게 생겼다, 너.”

로건이 헤헤 웃으며 도넛 하나를 더 꺼내 갔다. VVV엔터는 사람을 잘 안 먹이나 보다. 강효준을 봐도, 쟤를 봐도 먹을 것만 보면 호로록하는 게…….

도넛 두 개에 긴장도 경계도 풀린 로건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까 형 없을 때요, 저 때문에 촬영 못 해서 분위기 진짜 안 좋았어요. 너무 죄송한데 제가 한국어도 좀 못 알아듣고…….”

심각하게 얘기하니 심각하게 들어야 하는데, 포대기로 둘러싸여 도넛을 들고 울먹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원래 열일곱 살이면 저렇게 애새낀가? 나도 국선아 때쯤엔 저렇게 어렸으려나? 그때 영상을 다시 볼 수 없으니 알 수가 없다.

[*(도넛)이 상태이상을 해제하고 있습니다]

엇, 이게 뭐야. 그럼 고소공포증이 아니고 그냥 배고팠던 거잖아?

내가 물었다.

“건이 너 평소에도 고소공포증 있었어?”

“평소에도 높은 곳이 좀 무섭긴 한데요. 오늘 유난히 손을 못 놓겠는 거예요. 저 원래 하면 다 하거든요. 근데요, 막…….”

아…… 얘 말 많구나?

나는 로건이 외국인이라 말이 없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멤버들이 어려워서 말을 못 했던 것 같다. 아니, 도넛 하나 먹이면 마음을 여는 애를 얼마나 안 먹였으면…….

우리 팀이었으면 황새벽이랑 민지호가 쉼 없이 먹고 있을 때 옆에 껴서 챙겨 먹었을 텐데 팀을 잘못 만났다. 쯧쯧.

로건은 결국 한 박스에 든 도넛 여섯 개를 다 먹어치웠고, 안색이 밝아져서 말했다.

“저 이제 공중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형, 와이어 촬영해 보셨죠?”

“응. 와이어 촬영 금방 적응되더라. 그리고 너 그네 올라가면, 내가 매니저님한테 계속 보고 있어 달라고 할게. 혹시라도 이상하면 바로 내려달라고 하고.”

“진짜요?”

“응. 그리고 촬영 늦어지는 거, 죄송해하면 긴장돼서 더 안 돼. 그냥 뻔뻔하게 생각해. 아, 무서운데 어떡하라고.”

[*상태이상이 해제되었습니다]

여전히 드문드문, 무대 올라가기 전에 발이 안 떨어져 멤버들을 기다리게 하고, 혼자서는 X이앱을 켤 수 없을 때가 있지만 방금 로건에게 한 말 그대로, 자책해 봤자 평정을 찾는데 방해만 됐었다.

경험해 본 덕에 조언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로건에게 말하면서, 내 스스로가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 * *

두 사람이 떠난 후, 리더인 도윤이 말했다.

“선배님 헤메 하신 거 처음 봤네. 맨날 작업실에서 초췌해진 것만 보다가.”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본인들이 온몸에 글루건으로 붙인 깃털을 달고 있다 보니 귀여운 남친 컨셉으로 무난하게 세팅한 정해원을 보고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거기에 아무래도 카메라 마사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어서, 카일룸 멤버들이 커버를 하려고 무수히 봐왔던 퍼스트라이트의 기존 영상보다도 월등히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몸이 아프다고 온갖 엄살을 부리는 동갑 친구 차우석을 발로 쭉 밀어내던 카일룸 멤버 곽민재가 중얼거렸다.

“근데 건이는 왜 데려가신 거야.”

그러자 저리 쭉 밀려 나간 차우석이 대답했다.

“갈구러 갔겠지. 프로가 고소공포증이 말이 되냐고.”

“그게 뭐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해원이 형이 어떻게 해결해 줄 거야.”

“야, 그걸 어떻게 해결해.”

“해원이 형은 다 할 수 있어. 믿어봐.”

“넌 그 형 그렇게 싫어하더니.”

곽민재의 말에 차우석이 잠깐의 휴식을 틈타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켜며 대답했다.

“지금도 싫은데, 믿는 거지.”

“뭔 소리냐?”

“그니까, 기회 있으면 뒤통수 한 대 씨게 후리고 싶은 동시에, 해원이 형이 절벽에서 뛰라고 하면 믿고 뛸 것 같은 느낌.”

“……그거 그냥 잘 따르는 거 아니냐?”

곽민재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차우석은 바로 게임에 몰입했다. 멤버들은 아리까리한 얼굴로 차우석을 보다가, 곧 지쳐서 더 말을 하는 대신 입을 다물고 휴식을 취했다.

그때 대기실에 갔던 정해원과 로건이 돌아왔다. 정해원이 도넛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토 달지 말고 그냥 하나씩 집어. 일단 먹기 시작하면 들어가.”

그러자 차우석이 바로 도넛을 하나 집어 들며 말했다.

“형은 뭐 먹는 것도 억지로 먹으라고 그래요……. 와우씨, 진짜 맛있네.”

“그거 맛있죠, 우유 생크림…….”

로건이 아련하게 말하자 멤버들도 슬그머니 도넛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정해원이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난 그럼 가볼게.”

그 말에 차우석이 붙잡았다.

“어딜 또 가요?”

“와 보니까 별로 할 일이 없고, 우리 컴백 코앞이라 바빠.”

“형 우리 프로듀서잖아요.”

“내 본업 아이돌이다.”

“아, 맞다.”

“뭐가 맞다야, 이 새끼야.”

“그냥 가지 마여어.”

“얜 왜 이렇게 징징거려. 애초에 너네 나 싫어하잖아.”

말속에 가시가 있어 카일룸 멤버들이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프로 엄살러인 차우석이 말했다.

“안 싫어요, 형 오늘 도넛으로 이미지 상승했거든요.”

“그럼 더더욱 이미지 좋을 때 가야겠다. 내가 원래 금방 정떨어지는 스타일이야.”

“뭔 소리예요, 촬영팀분들이랑 심지어 우리 스태프들도 형 언제 오냐고 찾던데.”

“그래?”

정해원이 되묻고는 다행이라는 듯이 웃었다. 안도하는 그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라, 본인이 금방 정떨어지는 스타일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것 같았다.

누구와 있어도 주변을 누그러지게 만드는 선배의 여유로움을 부러워하던 카일룸 멤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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