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30화 (13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0화

카일룸의 차우석은 체력이 남아도는지 내가 차 타는 곳까지 따라 나왔다.

“아, 형 진짜 가요? 제가 이렇게 잡는데?”

“우석아. 진심으로, 네가 잡아서 더 가고 싶어졌어.”

“아, 저한테 왜 그래요.”

우리 팀 06, 빌런즈 둘은 이 새끼에 비하면 상어른이다. 나는 칭얼거리는 차우석을 떼놓고, A&R들이 나타나기 전에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연습실로 가는 사이에 강효준에게 톡이 왔다.

[강효준 A&R : 왜 벌써 가. 그리고 이번엔 건이도 때렸어?]

[안 때렸다구요]

[강효준 A&R : 그렇게 애먹이던 애가 바로 그넷줄 놓잖아]

[강효준 A&R : 역시 매가 답인가]

아무리 봐도 지가 주먹 쓰고 싶어서 날 끌어들이는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허허…….

* * *

컴백 일주일 전, 안무 연습으로 한참 찌들어 있을 때 올림픽 응원가 제작 예능 ‘RUSH’의 2편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는 2편과 3편에 조금씩 출연할 예정이었다.

나는 일회성이라고 해도 준비를 안 하는 건 찝찝해서, 트랙(반주) 두 개를 미리 만들어뒀다.

누구나 따라 부르기 좋은 찐 응원가, 또 하나는 올림픽뽕이 차게 하기 위한 밴드 음악.

딱 떠오르는 소재가 없으니까, 일단 응원가 느낌의 트랙만 만들어놓고 촬영하면서 적당히 MC들 이야기를 들어가며 좀 더 살을 붙일 생각이라고 작가에게 전달을 했더니, 좋다고 했다.

몸이 긴장하면 머리도 굳겠지만, 다행히 메인MC가 국민 MC로 꼽히는 백민형이고 출연진에 내가 매니저 생활을 할 때 첫 번째 연예인, 부정태다. 편안하게 해줄 거라 믿었다.

촬영을 위해 거의 무채색이던 내 작업실을 VVV엔터 직원과 촬영 스태프들이 이것저것 바꿔가며 꾸며놓았다.

“와.”

내가 영화를 많이 본다는 걸 들었는지, 벽에 붙이기 적당한 포스터들을 가져왔다. 왕가위 영화들이나 러브레터,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90년대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그 인테리어들 사이에 퍼스트라이트의 콘서트 포스터, 그리고 크게 뽑아온 카일룸의 데뷔 앨범 커버 시안이 붙었다.

그렇게 약간 더 아늑해진 작업실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RUSH’의 메인 MC 백민형이 또 다른 MC 부정태와 함께 서촌 골목을 걸으며 말했다.

“아, 동네 좋다. 이번 프로듀서는 정태 아는 동생이지?”

“어, 잠깐 내 매니저 하던 친군데, 되게 이쁘게 잘생겼어. 우리랑 종족이 달라.”

“야, 너는 왜 나를 너랑 묶냐.”

“아이, 형은 나랑 같은 과지. 아무튼 오늘 아침에도 걔랑 연락했어. 아직도 주기적으로 제로콜라 마시라고 톡하거든. 오래 살아야 된다고.”

“아, 그건 고맙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서촌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난 두 사람이 정해원의 작업실 문 앞에 도착했다. 어떤 프로듀서가 나오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시간 반응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매니저 출신 누구?]

[잘생겼다니 그냥 기대되네요^^]

[이거 정해원인 듯]

[↳엥 박희영 매니저 아니었어요?]

[↳↳둘 다 했을 거예요 두 사람 다 박종렬 엔터잖아요]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가들 나오는데 아이돌을…….]

[소속사에서 꽂아준 거 너무 티나지 않나요]

[진짜 해도 너무하네]

[천재라고 오지게 언플하던데 소속사가 쎈가봐요ㅎㅎ]

[↳TRV인데, 재계약 VVV랑 했어요]

[↳↳아 어쩐지…….]

[↳↳소속사빨 무시못하네요]

시청자 반응이 냉랭해지고 있을 때, 작업실 문이 열리고 정해원이 등장했다. 그 직후 카일룸의 커버 안무 영상,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뮤직비디오가 짧게 지나갔다.

백민형이 친근하고 경쾌한 투로 인사했다.

“아, 해원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정태 형!”

“해원아!”

“우리 형!”

“제로콜라 마시라고 그만 좀 잔소리해라!”

“아뇨, 그건 안 되죠.”

[태세전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 나이 생각하면 매니저 오래 하지도 않았을 텐데 사이 좋네]

[↳우리 아부지 희영차!신데 박종렬 엔터가 원래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더라]

[↳↳엔터 회사 맞냐ㅋㅋㅋㅋㅋㅋ]

[↳↳↳팬도 똑같음ㅋㅋㅋㅋ 희영차!가 퍼스트라이트 스트리밍 같이 돌리더라 트로트 중간에 갑자기 아이돌 노래 껴 있음]

[↳↳↳↳아 이거 그래서 그런 거야? 할머니가 아이돌 노래 듣고 계셔서 잘못 누르신 줄 알고 다시 박희영 노래 틀어드렸는데 불효했네]

[박 엔터 회식이 무섭기로 유명함]

[↳그냥 시작하면 무조건 아침 해를 봐야 한다던데]

[↳↳박 엔터 권주가도 있더라]

[↳↳↳노래로 세상을! 술로 우리를! 위로하자 짠짠짠!]

[↳↳↳↳아니, 이건 그냥 ‘권주’고, 노래도 따로 있음]

[↳↳↳↳↳X나 끔찍하다]

간단하게 작업실 구경을 끝내고 정해원은 작업하는 자리에 앉고, MC 둘도 의자에 앉았다. 백민형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막 진기랑 해준이 형 보고 왔거든. 근데 둘 다 해원 씨 만날 때 기대하라고 하더라고.”

“저요? 왜요?”

그리고 앞서 만난 프로듀서 중 두 사람의 미공개 장면이 나왔다. 퍼스트라이트 타이틀곡을 놓고 경쟁했던 강진기가 말했다.

-아니, 내가. 해원 씨가 만든 첫 번째 곡이랑 타이틀곡 경쟁을 해서 떨어졌잖아요.

-야, 넌 뭐 그런 걸 마음에 담아놔.

-내가 그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04년생이 태어나서 처음 작곡한 곡에 밀렸다니까, 내가 걔 나이보다 작곡을 오래 했어!

-아오, 또 흥분하네.

이어서 최근 뉴데이즈를 키우느라 바쁜 허해준이 등장했다.

-아, 다음에 해원이 보러 가? 이야, 걔는 진짜 내가 키웠는데.

-뭘 형이 키워!

-진짜야, 내가 아는 노하우들 다 전수해 줬다니까?

“해준이 형이 2000년대 이후 출생자 중에 네가 작곡 제일 잘한대.”

부정태가 덧붙이자 정해원이 손사래 쳤다.

“아, 저 절대 그 정도 아니에요.”

“천재 아니라고?”

“절대 아니에요.”

단호한 대답에 백민형이 물었다.

“막 밖에서 새소리나 클랙슨 소리 들리면 그 음 피아노 건반으로 누를 수 있어요, 없어요.”

“그건 있는데요……. 이게 기계가 좋다고 작곡을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해원 씨 장비 욕심 없어요?”

“……네?”

“기계가 좋다고 작곡 잘하는 건 아니라며.”

“아니, 근데 그렇다고 굳이 안 좋은 기계로 작곡할 필요가…….”

“아, 그러니까 작곡하는 사람이 굳이 절대음감이 아닐 필요가 없다?”

“네? 제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요!”

양쪽에서 MC 두 사람이 물어뜯자 정해원이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꽉꽉 누르고 두 손으로 벌게지는 얼굴을 감쌌다. 옆에서 부정태가 자기도 손으로 얼굴을 가려보며 말했다.

“아니, 손이 얼굴을 가리고 남네, 얘는.”

“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얼굴이 저 얼굴의 매니저를 했다는 게.”

백민형이 말하고 끅끅거리며 웃었다. 부정태도 사람 좋게 따라 웃고 나서 정해원에게 재촉했다.

“아, 해원아. 뭐 아무거나 해봐.”

“제가 두 갈래 정도 생각했는데요. 이건 제가 저희 팀 멤버 효식…… 아니, 효석이랑 운동하다가 못 따라가서 만든 건데요. ‘녹슬지 않는 강철’이라고……. 근데 같이 작업하는 이형이 형이 안 된대요.”

그리고 정해원이 첫 번째 작업물을 틀었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반주가 흘러나왔다.

[왜 이렇게 고통스럽냐ㅋㅋㅋㅋㅋㅋ]

[응원가가 이렇게 처절해도 되냐 눈물이랑 땀이 같이 나는데]

[한효석 예중예고에서 발레한 멤버임 거기 맞춰서 운동하면 눈물나지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진짜 선수들을 위한 응원가긴 해 올림픽 국대 중에 운동하다 안 울어본 선수 없을 듯]

“그리고 또 하나는 약간 벅찬 느낌으로 만들어봤는데요.”

두 번째 작업물을 튼 후,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여름에 빈 강당에서 고등학교 밴드부가 연습하는 느낌으로 만들어 본…….”

“아, 해원 씨! 조용히 해봐, 듣게!”

그 말에 정해원이 한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고 MC 둘을 번갈아 살폈다. 백민형이 ‘이거, 이거, 이거’를 입 모양으로 반복했다.

[X발 개미쳤네ㄷㄷㄷ]

[반주만 들어도 X나 좋다]

[이게 올림픽뽕이지]

[올림픽 볼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심장 뛴다ㅜㅜㅜㅜ]

두 번째 트랙이 끝나자 부정태가 재촉했다.

“해원아, 뭐 멜로디 없어?”

“멜로디요? 아직은 송폼도 없는데……. 다른 분들 다 준비하셨어요?”

정해원이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묻자 백민형이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뭐 아무거나 멜로디 얹어봐요, 해원 씨. 다른 프로듀서들 다 즉석에서 하던데?”

“그래요?”

앞서서 등장한 프로듀서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들이었기 때문에, 트랙을 미리 준비해 온 작곡가도 드물었을뿐더러, 두 개를 준비해 온 사람은 정해원뿐이었다.

다른 작곡가는 다 하더라는 백민형의 거짓말에 넘어간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같이 생각해 주시면 안 돼요? 곡 들었을 때 느낌이나 신경 쓰이는 부분 아무거나요.”

그러자 부정태가 말했다.

“이상하게 이거 들으니까 땀 나.”

“형은 원래 웬만하면 땀 흘리잖아요.”

“아, 날 너무 잘 아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백민형이 덧붙였다.

“난 좀 여행이 가고 싶다, 이걸 들으니까.”

“아, 땀 나고 여행 가고 싶고요? 다 통하네요.”

정해원이 중얼거리더니 같은 음을 가상 악기 두 가지로 쳐보더니 하나를 선택한 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건반을 누르며 멜로디와 가사 작업을 동시에 이어갔다. 방송이라는 걸 잊어버린 건 아니라서, 중간중간 MC 두 사람과 가사를 상의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죄송해요, 재미없죠?”

그러자 백민형이 진심으로 대답했다.

“아니, 너어무 재미있어.”

그 대답에 정해원이 흐흐 웃더니, 1절까지 작업을 마친 후 PD와 상의해 퍼스트라이트 막내 박선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막냉아.”

-형! 녹화 잘하고 있어?

“어떻게 나갈지 전혀 모르겠어. 형이 지금 가사 썼거든? 금방 악보랑 같이 보낼게, 좀만 불러줘.”

-응, 알았어. 보내줘.

그렇게 대화한 후, 정해원은 전화를 끊고 바로 시벨리우스 프로그램을 켜서 방금 작업한 부분의 멜로디 파트만 빠르게 악보에 찍어 나갔다. 박선재는 거의 악보를 받자마자 다시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해원이 물었다.

“목 풀었지?”

-에이, 당연하지.

따로 준비 시간 없이 악보를 보고 바로 부르는 것을 정해원도 박선재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정해원이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진짜 끝났어요.”

그 말에 부정태가 정해원의 등짝을 퍽 때리며 말했다.

“아니, 뭐가 죄송해, 이 사람아! 음악 예능에서 휙휙 갈겨서 만드는 이게 진짜 재미있는 장면이지!”

정해원이 아픈 시늉을 하다가 말했다.

“형. 제 등뼈 맞춰주신 거예요?”

“아이, 그러엄. 오래 써야지.”

“돈 굳었네요.”

정해원이 엄살 부리며 아무 말이나 하더니 바로 미리 준비했던 반주를 틀고, 건반으로 멜로디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위에 박선재의 청량한 보컬이 덮였다.

[멈추지 않으면 늪을 벗어날 수 있어]

[모래 위에 미끄러진 발은 다시 구르면 돼]

[상처 입은 마음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지만]

[그곳에 있는 건 마른 태양뿐이라는 걸 알잖아]

[우리의 방향은 틀린 적이 없어]

[꺾여도 주저앉아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목마름과 아픔을 견디고 달려왔다는 건]

[내가 알아 당신도 알잖아]

[출발한 이상 실패가 어딨어]

[방향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여행자들이야)]

“제목은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예요.”

정해원의 말에 잠시 코멘트하는 걸 잊고 있던 백민형이 급하게 예능톤으로 말했다.

“아우, 길어!”

“엇, 줄일게요……. 그리고 지금은 미완성이라 치트키 보컬을 썼는데요, 완성하면 훨씬 괜찮을 거예요.”

[미쳤냐 노래 X나 좋네]

[하 X발 바로 작곡하는 거 멋있네…….]

[역시 허해준이 대작곡가라 맞말만 함]

[↳그러게ㅋㅋㅋㅋㅋㅋㅋ]

[↳ㅇㅇ2000년 이후 출생자 중에 작곡 제일 잘하는 거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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