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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31화 (13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1화

“그럼 다음번 촬영 때는 짧은 제목을 준비해 놓을게요.”

내가 말하는데 MC, 백민형의 표정이 영 탐탁지 않아 보였다.

왜지. 우리 막냉이 목소리를 듣고 저런 표정이 나올 수가 없는데…….

내가 궁금해할 때, 백민형이 말했다.

“아직 부족해.”

“진짜요? 치트키 썼는데…….”

“아,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요? 어…… 뭐 하지?”

내가 뭘 더 할 수 있나 급하게 찾으니까 양쪽에서 MC 둘이 으하하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부정태가 말했다.

“해원아, 너 누가 투자나 이런 거 들이밀면 형한테 먼저 확인받아라. 알겠냐?”

“투자를 하라고 해요?”

“하지! 특히 너처럼 요란하게 잘나가는 애들한테 사기꾼들이 붙는다니까.”

“그럼 어떡해요?”

“일단 형 믿고, 형이 관리해 줄 테니까 통장이랑 주민등록증 맡겨.”

“네, 이따가 드릴게요.”

“아이고, 큰일 났네. 해원아, 사기 치는 게 생판 남이겠냐? 나처럼 아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되는 거야.”

“에이, 그래도 형은 믿어야죠.”

“아, 얘 큰일 났네.”

내 캐릭터, 이렇게 멍청이로 잡혀도 되는 건가.

하지만 양쪽에서 형들이 신나 보여서, 연장자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냥 실컷 놀리게 놔뒀다.

아무튼 녹화 내내 작업만 하다 촬영이 끝났다. 분량이 나오나, 걱정하는 나와 달리 RUSH팀은 분위기가 좋았다. 생각보다 괜찮게 나온 모양이다.

* * *

“이야…….”

백민형은 부정태와 다른 촬영장에서 이동하는 내내 그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 백민형이 흥분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히고 부정태에게 말했다.

“정태야, 너무 재밌지 않니. 와, 막…… 어? 휘리릭. 캬…… 하. 재밌어. 그치?”

“저게 뭔 소리여.”

“아, 음악 하는 남자 멋있어.”

“나도 기타 연습 좀 더 할까 봐.”

“우리도 그 직장인 밴드 같은 거 할까?”

그 말에 PD가 다급하게 껴들었다.

“민형이 형. 그거 좋다. 그거 한번 하자. 직장인 밴드.”

“너어무 좋지. 아, 그것도 해원 씨한테 프로듀싱 해달라고 하면 안 되나.”

그 말에 부정태가 말했다.

“형 걔 바빠. 두 팀 프로듀싱 하잖어.”

“이게 또 장기 프로젝트로 가면 한 곡 정도는…….”

음악에 완전히 취한 백민형의 집착과 함께 ‘RUSH’ 2편이 끝났다.

국민 MC가 진행하며, 전연령을 상대로 한 이 예능은 이미 올림픽이 다가옴과 더불어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온 상태였다. 거기에 2편의 파급력은 1편에 비해 더욱 거셌다. 대부분 정해원 등장 파트에 대한 내용이었다.

[보컬 누굽니까ㅠㅠ 목소리만 들어도 벅차서 눈물 찔끔ㅠㅠ]

[↳퍼스트라이트 막내이자 메보 박선재입니다 울 막내 많이 사랑해 주세요]

[↳박곰돌이요!]

[↳누가 편애즈 아니랄까봐 해원이 온갖 천재짓하고 막내 목소리 자랑부터 하는게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 바로 백민형 라인 타겠네ㄷㄷㄷ]

[↳그럴만하죠 저도 남돌이라서 채널 돌리려다가 홀린 듯이 끝까지 본…….]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던데요ㅋㅋㅋㅋㅋㅋ]

[직장인 밴드 보고 싶긴 하네요 저 단어가 주는 설렘이 있죠]

[↳다음에 백민형 새프로그램 하면 정해원 무조건 데려가겠죠?]

[↳↳백퍼죠 애초에 그 친구 때문에 떠올린 건데ㅋㅋㅋ]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클립 도대체 언제 올라와요ㅠㅠㅠㅠ]

[↳어우 길긴 기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는 ‘녹슬지 않는 강철’도 따로 올려주셨으면…… 운동할 때 듣게요]

* * *

나는 작업실에서 RUSH 3편 녹화 준비를 마쳤다. 짧은 제목도 준비했다.

이 곡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이걸 우리 팀이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했다. 곡 분위기가 너무 튀어서 타이틀로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내정 프로듀서가 결정되면, 이 곡은 우리가 쓰게 될 테니까 멤버들과 편곡에 대해서 회의를 해봐야겠다. 편곡을 잘하면 어떻게든 쓸 수 있을 테니까…….

녹화할 때는 작곡하느라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방송으로 보니까 내내 MC 둘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하긴, 우리 막내 노래를 매일 듣는 나야 익숙해졌지만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놀랍지. 국선아 때, 쬐깐한 애가 미세먼지 한 톨 안 먹은 목소리로 노래할 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방송을 보고 나니 배가 고파서 작업실 식량 창고문을 열었다. 황새벽의 부모님이 보낸 먹거리가 쌓여 있었다.

두 분은 1인분을 황새벽 기준으로 잡으셨기 때문에 한 번 음식을 보내면 온 동네 다 먹여 살릴 만큼 보내셨다. 아, 원인과 결과가 반대일 수도 있겠다. 부모님이 손이 크셔서 황새벽이 저렇게 많이 먹는 걸지도…….

나는 고구마말랭이를 꺼내 우물거리며 황새벽의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해원아, 안 그래도 지금 네가 나온 예능 보고 있었어.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뭐든지 술술 잘하니, 너는?

“열심히 하는 거죠, 뭐. 그보다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많이 보내긴, 작업실에 사람도 많이 올 텐데 일주일도 못 먹지……. 새벽이 솔로곡까지 만들어주고, 너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먹을 거라도 보내는 거지.

“아니, 그래도…… 근데 고구마말랭이 진짜 맛있어요.”

-고구마가 맛있어서 그래. 입에 맞는 거 적어 놓구. 아, 새벽이 아빠가 바꿔 달라네. 전화할래?

“네, 바꿔주세요.”

황새벽이 워낙 말이 없어서 두 분 다 황새벽 근황을 나에게 듣고 있다. 허허.

나는 황새벽의 아버지에게 한동안 근황을 듣고, 황새벽의 근황을 전달하느라 황새벽의 어머니가 바쁜 애 그만 방해하라고 한소리 하실 때까지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은 후 고구마말랭이를 계속 집어 먹고 있는데 비밀번호를 누르고 강효준 A&R이 들어왔다.

나는 처음으로 강효준을 반가워하며 말했다.

“형, 배고프죠?”

“딱히.”

“토마토 드실래요? 장사할 만큼 있는데.”

“그래? 남아?”

딱히 배고프지 않다던 강효준은 내가 박스를 꺼내주니까 거기서 토마토를 집어 마시듯이 먹었다. 이제 작업실에 처치 곤란 식량이 있으면 강효준 주면 되겠다.

토마토를 열 개 정도 먹고 나서, 강효준은 가져온 지관통을 꺼냈다. 그리고 벽에 붙여놨던 카일룸의 앨범 커버를 떼고 그걸 대신 붙였다.

“포스터가 흰색이라 눈에 잘 안 띄길래 새로 뽑아왔어.”

“아.”

나는 대답하며 카일룸의 앨범 커버를 살폈다. 흰색에 보석 장식 같은 오브제가 쓰인 커버였다. 돈맛이 느껴진다.

그사이에 도착한 매니지먼트팀 직원이 방송으로 보니 어두워 보이더라며 화장실 등을 갈기 시작했다. 귀찮았는데 잘됐다. 히히.

전구를 교체하는 사이, 강효준이 말했다.

“2편 반응 진짜 좋더라. 인터넷에서 퍼스트라이트랑 카일룸 언급 빈도가 방송 직후에 확 올라갔대.”

“홍보팀이 그런 것도 해줘요?”

“연관 키워드도 다 뽑아주는데. 그 회사는 안 해?”

“저흰 안 해줘요. 맨날 진짜 흙탕물에서 헤엄치는 것 같아요.”

“돈 날로 버네.”

강효준이 그렇게 말할 만하다. VVV엔터의 아티스트 케어는 지나칠 정도였다. 지금 조명을 교체하는 것처럼, 작업실은 내가 알아서 관리하면 될 텐데도 VVV엔터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 없게 관리해 주고 있었다. 나는 내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거기 너무 적응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인간이란 게 참 나약한 존재라 쉽지 않다.

동시에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미친 듯이 고취시킨다. 저게 재계약 기간을 대비한 VVV엔터의 전략인 것 같다.

아무튼 저게 마냥 좋은 전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카일룸 놈들이 데뷔도 하기 전부터 나태해져서 엇나가던 걸 생각하면.

내가 대답했다.

“워낙 얽힌 게 많아서 회사가 먹는 지분은 얼마 안 돼요. 그리고 TRV가 짬은 있잖아요. 그거 무시 못하더라구요. 특히 사고 터졌을 때. 제가 부사장이랑 척져도 어떻게든 앨범 제작하고, 뽑고, 컴백 일정 잡아요. 괜찮은 면도 있어요. 직원들이랑 정도 너무 들었고.”

“직원이 맘에 들면 사라니까, TRV를.”

“뭘 사요, 자꾸.”

나는 어이없어서 웃다가 되물었다.

“얼마쯤 해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VMC가 인수하려던 TRV 지분이 80퍼센트 이상이고, 500억대라고 들었어.”

“……아니, 자꾸 사라고 해서 난 또 살 만한 줄 알았네.”

“퍼라는 금방 떠날 사람들이어도 박종렬 엔터가 붙어 있는데, 영업이익 대비하면 알짜지. 퍼라 계약 끝나면 또 조정이 될 거고. 그리고 누가 회사를 현금 주고 사. 은행도 있고, 나도 있는데.”

……어? 이 새끼가 은근히 자기를 끼워 넣네?

내가 과장되게 말했다.

“와, 나타났다. 정태 형이 믿지 말라고 한 사람.”

“사기꾼을 믿지 말라는 거지. 너를 믿고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그게 사기꾼이지!”

“너의 가치에 투자…… 하, X발. 너 좀 더 크면 얘기하자.”

강효준은 귀찮은지 바로 체념했다. 나도 거기서 대화를 끝내긴 했지만, 자꾸 TRV를 사라고 하는 이유는 알 것 같다.

퍼스트라이트의 소속사가 된다는 건, 처음부터 신인 그룹을 키우며 회사와 아이돌이 함께 커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함께 움직일 경력 있는 직원들과 회사가 있어야만 했다.

매니저이자 프로듀서로서 그룹을 키우는 건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간과했다.

녹화 시간이 다가오며, 샵에서 직원이 도착했다.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받고 있으니 일찌감치 도착한 RUSH의 MC, 부정태가 들어서며 말했다.

“아, 쟤를 메이크업을 왜 해줘요. 안 그래도 혼자 뽀얗던데. 아, 조명 문젠가. 조명 감독님한테 얘기 해야 되나.”

부정태가 구시렁거리는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부정태와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은 후, RUSH의 작가와 대본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대본이 약간…….

“어, 저기…… 작가님. 대본이 약간…….”

“아, 그게 좀 그렇죠.”

“너무 미래지향적인데요…….”

아무리 봐도, 이다음 회차에도 내가 출연하는 게 예고된 대본이었다. 작가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해원 씨 반응이 너무 세게 오기도 했구요, MC분들도 너무 좋아하셔서 2회 분량으로 끝내기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저 내정 프로듀서님은 어떻게…… 아니, 그보다 저 다음주 목요일에 컴백하는데요?”

“저희 음방, 사녹 일정이라도 조절해 드린대요. 아, 진짜 죄송해요.”

“작가님이 죄송할 일은 아니죠! 근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이번 녹화가 끝인 줄 알고 넋 놓고 있던 나는 다른 의미로 넋을 잃었다. 내가 계속 출연을 이어간다는 건, 이 곡을 빨리 완성해야 하는 건 물론, 퍼스트라이트가 못 쓰고 방송에 넘겨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멤버들은 물론, 카일룸 놈들까지 이거 우리가 부르는 거냐고 눈이 초롱초롱해서 물어보던데…… 으어허허허허…… 말이 안 나오네.

나는 잠시 충격에 빠져 있다가, 부정태가 우리 얘기를 듣고 참견한 말에 정신을 차렸다.

“해원아, 대중이 널 좋아하는데 어떡하냐. 국민이 선택하면 나와야지. 형이 어떻게든 방송 빨리 끝내게 멘트 꽉 채워서 나대볼게.”

부정태는 내가 부정태의 매니저이던 시절, 매일 술을 마시고, 속에 없는 말 있는 말 다 꺼낸 후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운 흑역사까지 함께 만든 사람이다. 그래서 내 마음을 돌리는 말을 너무 잘 알았다.

언젠가, 나는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이 되지 못했다. 대신 국민이 혐오한 아이돌이라는 멸칭을 얻었다.

그러니 부정태의 저 말을 듣고, 어떻게 안 하겠다고 할 수 있을까.

또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이번에는 진짜로.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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