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2화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강진기.
티케 엔터테인먼트에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며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해온 그는 마주 앉은 국민 MC 백민형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안 된다고 한 거야. 나랑 걔? 전생에 악연이었어, 틀림없이!”
“진기야, 너무 흥분하지 말고. 또 너무 가지 말고.”
“나 죽으면 묘비에 써줘. 04년생한테 두 번 지고 생긴 화병으로 빨리 갔다고.”
“너 죽으면 나무 아래 뿌려달라며 무슨 묘비…… 그치,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RUSH의 내정 프로듀서였던 강진기는 2화에서 흘러나온 정해원의 응원가를 듣자마자 백민형에게 전화를 걸어, 막 불러낸 참이었다.
-내가 쟤를 어? 밀어내고! 내 곡이 뽑히면, 나만 쌍욕 먹잖아! 내가 하겠냐고! 그냥 걔 줘!
“아이고, 미안하다. 진기야.”
-형, 어디야? 한잔하면서 얘기해.
“나 딸내미랑 놀아줘야…… 나갈게.”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공주님과 놀다가 갑자기 다혈질 작곡가와 술을 마시게 됐다.
강진기가 한참 하소연하다가 백민형에게 말했다.
“형. 나도 천재야.”
“알아, 알아. 누가 뭐라 했니?”
“나 서울대 작곡과 나왔어.”
“안다니까. 우리 애도 보내고 싶다. 욕심인가…….”
“딴소리하지 말고! 나한테 집중해 줘라, 쫌!”
“야, 대한민국에 강진기 천재라는데 토다는 사람이 있냐? 너 잘나가. 왜 애한테 그래.”
“걔는 어, 두 번이나 이기고 미안하단 말 한마디가 없네?”
“그걸 졌다고 생각하니까 스트레스받는 거 아니냐……. 내가 만나면 해원이한테 네 번호 알려줄게. 그럼 되지?”
“그냥 지금 나오라고 해!”
“야이씨, 지금 다음주에 컴백할 애한테 무슨.”
“다음주라며, 그럼 한 잔은 할 수 있잖아.”
“술 안 먹는다던데.”
“술도 안 마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새끼네……. 앞으로 인생에 가는 곳마다 X나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왜 갑자기 덕담이야?”
“그럼 작곡을 안 하거든. 행복한데 뭐하러 작곡을 해.”
“어휴, 그래,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백민형이 좋은 말인데도 찝찝해하며 말하는데 강진기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도 경쟁자는 작곡을 하고 있어.”
“워어, 너 간만에 서울대생답다.”
“술은 형이 사, 나 속상하니까!”
“그려. 네가 불렀지만 내가 살게.”
백민형이 마지못해 말하며 집으로 향하는 강진기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하여튼 근처 작곡가들이 다 저런 괴팍한 성격이라, 작곡가에 편견 생길 지경이었다.
* * *
내 생각엔 두 번째 녹화도 첫 번째 녹화와 별 차이 없는 분위기로 끝났다.
잘된 건지, 아닌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걸 보니 난 예능엔 감이 없나 보다.
컴백곡 연습을 위해 연습실에 들어갔는데 비어 있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예정된 3시에 맞춰 연습실에 멤버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애들이 변했네. 세 시 연습이면 어, 5분 전에 와서 몸 풀고. 어?”
멤버들에게 그렇게 잔소리하긴 했지만 3시 정각에 안 온 건 드라마 촬영 중인 신지운뿐이었다. 대형을 맞추기 위해 안무팀 댄서 한 명이 신지운 자리에 서서 연습이 시작되었다.
‘별빛’은 팝락 장르로, 편곡 과정에서 지난 앨범, 황새벽의 솔로곡을 준비하며, 황새벽이 추천하는 밴드를 기반으로 한 장르 음악을 많이 들은 영향을 받았다.
황새벽은 내가 락에 대해 너무 무심하다며 섭섭해했고, 반대로 나는 네가 너무 락꼰대인 거라고 반박했다.
아무튼 그렇게 서로에게 지적질해가며 만든 결과물이,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퍼스트라이트로 활동한 곡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안무도 좋았다. 프리해 보이는 동작이 많지만,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노래가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멤버들이 안무연습을 할 때 유독 신나 한다는 사실이다.
“아, 형. 이상하게 별빛 연습만 하면 다 웃고 있어요.”
한효석의 말에 안무 내내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민지호가 소리쳤다.
“그냥 신나! 노래 좋아!”
그러더니 흐향향 하고 도저히 뭔지 모를 소리를 내고 웃으며 뛰어다닌다. 나는 거울에 등을 기대고 앉은 황새벽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민조가 체력이 좋네.”
“어려서 그런가.”
“우리도 어려.”
“야,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이 들면 더 힘들어질 거란 게 믿기지가 않는다. 진짜 이게 지금 좋은 상태인 거야?”
“그렇대.”
“희망이 없다…….”
황새벽의 좌절에 내가 낄낄대고 있으니 안주원도 와서 앉으며 말했다.
“나도 힘들어.”
“빠른은 빠져.”
내 말에 안주원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진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나랑 며칠 차이 난다고.”
“너랑 나랑 띠가 다르잖아.”
안주원은 입춘 이틀 뒤에 태어났기 때문에 나랑 황새벽과 띠가 다르다. 내가 놀리며 말했다.
“사실 내가 형이지. 안 그르냐?”
“아, 그래. 늙어서 좋겠다.”
“허, 새부기, 들었어? 안주원이 시비 걸었어. 이거 기념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알아서 기념해…….”
황새벽이 말도 걸지 말라고 손을 휘휘 젓는다. 퍼스트라이트 활동의 최대 적은 소속사들이 아니라 황새벽의 체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으니 민지호와 한효석, 박선재도 옆에 와서 참견하기 시작했다. 한효석이 말했다.
“05 형들 술 마실 때 보면 둘이 제일 어른 같아요.”
“그니까! 술만 마시면 둘 다 우리 아빠보다 더 아저씨 같은 소리만 한다니까. 맨날 자기들끼리만 아는 낚시 얘기랑 등산 얘기해.”
민지호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하니까 안주원이 말했다.
“지호도 낚시 같이 갈래?”
“가도 돼? 나 데려갈 거야?”
“너만 가고 싶으면 데려가지.”
“근데 그럼 운전 어떻게 해?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해?”
“응.”
“그럼 안 갈래. 낚시는 궁금하지만 내 목숨은 아껴야지.”
“아냐, 난 이제 운전 잘해. 그리고 같이 낚시 가면 지운이가 회 떠줄 텐데.”
“……그래? 많이 먹어도 돼? 라면도 끓여줘?”
“에이, 당연하지.”
회와 라면에 넘어간 민지호가 낚시를 따라나서겠다고 결정했을 때, 박선재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어, 지운이 형이다. 쉬는 시간 귀신같이 알고 전화하네.”
그리고 바로 영상통화를 켜자 촬영 중이라 교복을 입은 신지운이 말했다.
-뭐야, 왜 모여 있냐? 나 없는데? 다 따로 흩어져서 쉬어야지.
“형 욕하려고 모였지.”
-아, 하지 마. 나 진짜 상처받아.
“쉬는 시간인 거 어떻게 알았어?”
-우리가 연습 하루 이틀 하냐, 당연히 알지.
그러더니 자기 없을 때 모여 있지 말라고 아우성친다. 멤버들이 다들 한마디씩 보태면서 놀리느라 쉬는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안무팀 장지영 팀장이 말했다.
“얘들아, 다시 맞춰보자.”
“네. 지운이 형, 지영 쌤이 연습하래. 끊는다.”
-나 없이 재미있지 마. 알겠지? 나 돌아가면 재미있으라고.
신지운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박선재가 전화를 끊었다. 장지영이 다시 대형을 맞춰 선 멤버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쉴 때도 모여서 쉬더라. 참 친해.”
그 말에 멤버들이 안 친하다고 툴툴거린 후 연습을 시작했다.
* * *
내가 두 번째로 촬영한 RUSH 3편의 방송은 뮤직비디오 첫 번째 티저 공개일과 겹쳐 있었다.
티저가 공개되기 한 시간 전인 열한 시에 시작된 예능을 멤버들과 숙소에 모여서 보기 시작했다. 내 작업실 촬영분은 방송 앞부분에 들어갔다.
-딸기 드실래요?
-웬 딸기?
-저희 멤버 부모님이 챙겨주셨거든요.
나는 황새벽 부모님이 예능 보면서 백민형이 오면 주라고 따로 챙겨주신 딸기를 꺼내왔다. TV를 보던 황새벽이 말했다.
“저렇게 좋은 딸기는 나도 잘 못 먹는데. 국민 MC라고 특상품으로 보내셨네.”
“진짜 맛있더라…….”
방송에서 내가 작업실 창고를 열었을 때, 별로 크지 않은 공간에 이 멤버, 저 멤버 부모님이 보내주신 간식이 꽉 차게 쌓여 있었다. 나는 놀라는 백민형과 부정태에게 어느 걸 누가 보내줬는지 빠지지 않게 소개해 줬다. 이렇게 보니 새삼, 멤버들 부모님이 나도 아들처럼 생각해 주신다는 생각이 든다. 크, 마음이 따듯해지네.
백민형과 부정태가 딸기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인지, 실시간 반응을 확인하던 안주원이 말했다.
“실시간 반응이 전부 먹을 거 얘기밖에 없네.”
깨 있으면 배고플 시간이긴 하지…….
둘의 딸기 먹방이 너무 강렬했는지, 우리 멤버들까지 슬금슬금 라면박스를 뒤적거리고 있다.
민지호가 물었다.
“형들, 지금 그냥 끓일까?”
그러자 황새벽이 대답했다.
“좀만 더 기다리자. 지운이 안 그래도 외로워하는데 우리끼리 라면 먹으면 삐져.”
“힝.”
민지호가 울상을 짓는데 다행히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신지운이 들어오자마자 민지호가 말했다.
“형, 빨리! 라면 끓여줘!”
“나 기다렸어? 진짜?”
반응 보니 미리 라면 끓였으면 진짜 삐질 뻔했다.
신지운이 끓여온 라면을 다 먹고나니, 티저가 공개되기 10분 전. 한효석이 말했다.
“……체할 것 같다.”
“나도…….”
옆에서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새벽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도 안 체했어? 건강하네.”
티저 공개 때문에 다들 긴장해서 소화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긴장해 있을 때, 방송에서 부정태가 말했다.
-해원아, 너희 신곡 나오잖아. 안무 해봐.
-안무? 노래 말고?
-해원이가 춤을 잘 춰요.
내가 노래에 자신 없는 걸 아니까 부정태가 춤을 적극 추천했다. 진짜 MC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나는 잽싸게 음원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틀었다. 그리고 안무 들어갈 타이밍을 찾는데 백민형이 말했다.
-안 빼네.
-에이, 이런 기회가 어디 있어요.
나는 대답과 함께 포인트 안무로 들어갔다. 많은 스태프들과 MC 두 사람 앞에서 안무를 하는 게 그다지 쑥스럽지 않았다. 당연하다. 내가 작곡을 하든, 예능을 나가든. 언제나 최종 목표는 퍼스트라이트다. 기회를 주는데 뺄 리가.
저건 안 쑥스러웠는데, 공중파의 정성스러운 자막은 부끄럽다.
[반짝반짝 아이돌]
실제로 저렇게 쓰여 있었다. 심지어 나한테 반짝이 효과도 넣어줬다. 멤버들이 숨죽여 웃다가 컥컥대는 소리가 들렸다.
미래의 정해원아, 과거의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
그사이 열두시 정각.
예능이 이어지는 중간에 유튜브에서는 뮤직비디오 티저 1이 공개되었다.
우주복을 입은 민지호의 숨소리와 함께 트로피칼 풍의 플루트 소리로 인트로가 흘러나오는 장면이었다.
멤버들은 각자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켜서 뮤직비디오 티저를 확인했다. 나도 핸드폰을 들고 물었다.
“티저에 우리 팬 아닌 사람들도 댓글 달아?”
“아니, 지금은 햇살이들 밖에 없어.”
안주원이 대답해 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반응을 살폈다. 영어 댓글이 워낙 많아서 번역을 켜놓고 찬찬히 읽는데, 박선재가 말했다.
“형들, 우리 별빛 한 번만 들으면 안 돼? 듣고 싶어.”
“듣자!”
“제가 틀까요?”
나만큼 멤버들도 신곡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한효석이 우리 신곡을 틀어서 듣고 있는 사이에도 핸드폰을 확인하던 안주원이 많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예능 효과 장난 아니네.”
그 말에 멤버들이 모두 안주원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