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4화
퍼스트라이트 컴백 당일.
청포여중, 1학년 1반 박유나는 하교 후 집 앞에 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TRV의 로고가 박힌 상자였다.
박유나는 택배 상자를 안아 들고, 언니의 방문을 두드렸다.
“언니! 택배 왔어! TRV에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에서 달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박유나의 언니, 박해린은 작년, 편안한 덕질을 위해 일단 대학을 잘 가놓겠다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래도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거기서 더 미친 사람처럼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만 것이었다.
그날부터 자매의 부모님은 TV에 퍼스트라이트만 나오면 ‘누가 우리 사위라고?’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셨다.
장녀를 스카이에 꽂아줬는데, 사위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방학하고 집에 와서는 잠만 자더니, 퍼스트라이트가 컴백하자마자 냅다 서울로 가서 새벽 사전녹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고 일어난 상태였다.
박해린은 금방 눈이 초롱초롱해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종강하자마자 집에 와서는 잠만 자던 박해린이 저렇게 총명해 보인 건 명문대에 입학한 걸 확인하던 그날뿐이었다.
키가 클 것을 대비해 좀 큰 교복을 산 박유나가 박해린의 옆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언니, 뮤직비디오 봤어?”
“응. 너도 봐. 그리고 핸드폰 줘, 스트리밍하게.”
“내가 해놓을게.”
“꺅 감사합니다.”
“어휴, 누가 앤지 모르겠어.”
“네가 할머니 말투인 거야. 언닌 정상인이야.”
정상인을 추구하는 것 같은데…….
박유나는 생각하다가 언니를 위해 유튜브로 뮤직비디오를 검색하며 말했다.
“조회 수 벌써 엄청 많네?”
“응, 우리 애들 잘나가나 봐.”
박해린이 후다닥 비닐을 뜯어버리고 바로 포토카드를 찾아 꺼내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조심조심 확인한 표정을 보니 만족한 얼굴이었다.
“형부야?”
“아니, 우리 천재 작곡가.”
박해린의 말로 퍼스트라이트 팬들에게 정해원은 최애와 차애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겨 두 번째 포토카드를 꺼내서 확인하더니 박수를 쳤다.
“아니, 미쳤다. 내 손 뭐야. 처음부터 최애를 뽑아버리네.”
박해린이 두 손으로 포토카드를 쓰다듬으며 감격하자 박유나가 말했다.
“언니, 너무 그러면 형부가 악몽 꿔.”
“괜찮아, 이미 많은 햇살이들이 이러고 있어.”
하긴…….
박유나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다가 정해원의 포토카드를 살폈다.
언젠가, 행사의 여왕 박희영이 박유나가 사는 지역에서 노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박유나는 박희영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친구들이 모두 케이팝을 들을 때 혼자 박희영의 노래를 들었고, 노래방에서도 트로트만 불렀다.
그러다 박유나의 짧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케이팝과 트로트가 교차 된 순간이 있었는데. 그 중심에 정해원이 있었다.
그리고 정해원이 만든 그 곡은 박유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됐다.
박유나가 포토카드를 내려놓더니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를 했다. 그걸 본 박해린이 물었다.
“뭐 해?”
“비밀이야. 들으면 놀릴 거잖아.”
“말해주면 언니도 비밀 말해줄게.”
“언니가 먼저 말해.”
“나 남친 생김.”
“어?”
“상세히 듣고 싶다면 무슨 소원이었는지 말해봐.”
박해린이 손짓하자 박유나가 망설이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나도 곡 받고 싶다구.”
“그걸 뭐하러 비밀로 해? 그냥 장래희망이구만.”
“……애들이 정해원한테 곡 받으려는 사람 백만 명 있어서 안 된대.”
“지랄하네.”
박해린이 허 웃더니 말을 이었다.
“야, 열네 살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런가?”
“응. 부모님이 허락해 주시면 바로 언니랑 서울 가서 오디션 보자. VMC로.”
“응! 아, 근데 언니 남친은?”
그러자 박해린이 형부의 포토카드를 보여주며 말했다.
“효시깅.”
“…….”
“미안. 안 할게. 언니가 철이 없지?”
박해린이 사과하고 다시 앨범깡을 이어갔다. 박유나는 박해린이 정해원의 포토카드 중복을 뽑아, 자신에게 한 장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해린은 음악방송을 정시에 보고 나서, 직캠 뜨기를 기다리며 뮤직비디오를 초단위로 멈춰가며 보기 시작했다.
키치한 분위기의 뮤직비디오였다. 미국 코믹스 같은 느낌의 타이포그래피가 현란하게 화면을 장식했다.
[애들 얼굴도 재미있고 곡도 명곡인데 뮤비까지 재미있어…….]
[러쉬에서 듣고 풀로 들으러 왔는데 개명곡이네ㄷㄷㄷ]
[감사합니다 부모님. 낳아주신 덕에 제가 이런 것도 보고…….]
[↳부모님도 이쁜 딸 or 아들 낳아서 기쁘실 거예요^^]
[↳↳아니ㅋㅋㅋㅋ편견이란 게 없으신 희영차!님들ㅋㅋㅋㅋ]
박해린이 쏟아지는 영어 댓글 사이사이에 한국어 댓글을 골라 읽고 있을 때, 동생이 핸드폰을 들고 급하게 박해린을 불렀다.
“언니!”
“왜!”
“퍼스트라이트 탑백 들었어. 49위.”
“오, 진짜?”
박해린이 다시 핸드폰을 확인했다. 진짜로 49위에 퍼스트라이트 ‘별빛’이 있었다.
지난 미니 앨범, 다음 이야기의 최고 순위가 일간 84위, 탑백에서는 78위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 49위로 진입을 했다는 말이었다.
박해린이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다시 봐도 분명히, 49위였다. 좋은 시작이었다.
* * *
“진입 49위!”
“우와아!”
“원래 음반이란 게 내면 차트 등반만 하는 거예요? 이게 맞아?”
이번 신곡, ‘별빛’이 49위로 탑백에 진입하자 TRV 건물 전체가 떠들썩했다.
내가 우리 이렇게 떠들썩해도 TRV 회장이자, 최기문의 아버지가 뭐라고 안 하겠냐고 물어보니까 직원이 흥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라고 하긴, 지금 어떻게든 해원이 눈에 안 띄려고 숨도 안 쉬고 계신다. 네 신경 거슬려서 일 안 하고 드러누울까 봐.”
아들을 날려버렸으니, 그 아버지가 우리 팀에 보복하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반대였다. 최기문과 달리 TRV 회장은 사업가였다. 하긴, 언젠가 아들한테 잘나가는 사람은 때리지 말라고 했었지…… 못 나가면 때려도 된다는 건가…….
차트인 이후에도 우리 신곡은 차트에 곧잘 붙어 있었다. 기특해서 눈물이난다.
컴백 다음 날이 VMC 음악방송이었다. 어쨌든 퍼스트라이트가 VMC와 재계약을 해서인지, 대기실에는 케이크와 선라이즈 색깔의 풍선이 준비되어 있었다.
신지운은 오전에 드라마 촬영이 있어 드라이리허설에 빠졌지만, 사전녹화 시간에는 가까스로 맞춰 도착했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은 신지운이 무대로 향하는 길에 나에게 물었다.
“형은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나 진짜 피곤해 뒤질 것 같은데.”
“너랑 비교하면 안 되지, 나는 그냥 출연자 중에 하나잖아. 촬영도 드라마가 훨씬 길고.”
“그냥 출연자가 아니라 작곡가 출연자잖아. 말이 되냐고. 우리랑 딴 팀 프로듀싱 다 하고, 예능 출연하면서 살아 있는 게. 새벽이 형은 활동만 해도 쓰러져 있는데.”
“그건 황새벽이 약한 거고.”
내 말에 황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지. 넌 살아 있는 게 신기하고, 난 연약하고.”
“연약……은 틀렸지만, 그냥 그런 걸로 하자.”
우리는 그렇게 잡담하며 긴장을 풀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첫날보다 좀 더 여유 있게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대기실로 향하는데, 복도에 배신자1, 우하정의 팀인 MII가 있었다. 묘하게 우리와 컴백시기가 자주 겹치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방송을 쉬다가 모처럼 방송에 나온 우하정이 내쪽으로 걸어와 물었다.
“정해원, 회사 오면 연락 좀 해. 밥이나 한번 먹자.”
“어, 봐서.”
보는 눈이 많아 적당히 대답하는데 우하정이 말을 이었다.
“이제 같은 회사니까 어차피 많이 볼 거 아냐. 잘 지내보자.”
“내년에 잘 지내자. 같은 회사 되면.”
“이미 같은 회사지. 카드 받았지?”
우하정이 회사에서 발급해준 아티스트 카드를 꺼내서 보여줬는데 내 거랑 달랐다. 나는 지갑에서 내 카드를 꺼내서 확인했다.
우하정의 카드에는 VMC의 레이블이자, 나의 전 소속사 로고가 그려져 있고 내 카드에는 VMC의 로고만 덜렁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보는 우하정의 표정이 영 안 좋았다.
“왜?”
내가 묻자 우하정이 말했다.
“왜 네 카드는 VVV엔터 카드가 아니야?”
“……모르지? 이게 왜.”
“VMC 카드는 아마 레이블 어디나 다 들어가 볼 수 있을걸.”
“아, 그래? 좋은 거네.”
전혀 몰랐다. 알았으면 다른 레이블은 어떻게 굴러가나 기웃거리고 다녔지…….
내가 중얼거렸다.
“근데 이걸 왜 날 줬지. 카드가 남았나?”
“남는다고 회사 다 들어갈 수 있는 카드를 주겠냐. 네가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니까 줬겠지.”
내가 아는 강효준 A&R의 성격을 생각하면 별생각 없이 발급해준 것 같지만, 우하정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정정할 생각은 없다.
내가 말했다.
“야, 그럼 넌 VVV엔터 못 들어오니까, 내가 놀러 갈게.”
“말하면 들어갈 순 있지.”
“말해야 되잖아. 입 아프게. 난 안 해도 되는데.”
나는 배신자 1에게 신나게 깐족거리고,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생방송까지 마쳤다.
그후 우리는 바로 팬사인회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햇살이들과 이야기할 생각에 덩실덩실 차로 향하는데, 황새벽이 나를 불렀다.
“해원아, 아까 윤솔이가 전화했는데.”
“최윤솔? 왜.”
국선아에서 데뷔한 ‘소년들’의 멤버 중 하나인 최윤솔. 왠지 영, 친해지기 힘들 것 같은 녀석의 이름이 나오자 저절로 표정이 찌푸려졌다.
황새벽이 말을 이었다.
“요즘 곡작업 중인데, 잘 안 풀려서 네 작업실 좀 찾아가도 되겠냐고. 일단은 너 바빠서 안 되겠다고 했어.”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뒤따라오던 박선재가 말했다.
“윤솔이 형 데뷔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는지. 걔도 진짜 이래저래 안 풀리네.”
전에는 최윤솔의 이름이 나오면 내 자리를 뺏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젠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햇살이들이 날 빼고 그 자리에 최윤솔을 넣겠다는데 그러라고 할 리가 없다는 걸 아니까.
나는 그다지 최윤솔을 내 작업실에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나도 그놈 번호가 있고, 그놈도 내 번호가 있는데 굳이 다른 멤버에게 연락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거절하기 힘들게 만들려는 것 같아서.
차에 타서 나는 최윤솔에게 뭐라고 문자를 보낼지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윤솔아. 새벽이한테 작업실 오고 싶어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사실 내가 얼마 전에 데모가 유출된 적이 있어서 좀 과민해. 진정되면 그때 놀러와 주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나는 스파이가 데모 유출을 한 덕에 이럴 때 둘러댈 말이 있구나,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스파이가 데모 유출로 본 피해에는 댈 것도 아닌 이득을 주고 계셔서…….
그때 최윤솔에게 전화가 왔다.
-유출하고 반년 지났잖아. 언제 진정되는데?
유출하고 반년 지난 건 어떻게 알았지.
그보다 이 자식, 무지하게 집요하게 느껴지는데 착각인가.
내가 대답했다.
“그냥…… 곧 되겠지. 그리고 변명이 아니라, 내가 요새 진짜 너무 바빠.”
-그래도 너한테 물어보고 싶어.
“나 설명도 잘 못해.”
-나도 국선아 이후에 2년 동안 쉬었잖아. 근데 내가 쓰려던 서사를 네가 먼저 다 써버렸어. 그럼 내가 아류작이 되잖냐. 그렇게 생각하니까 답답해서 곡을 못 쓰겠어.
아니.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