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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35화 (13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5화

내가 황당해서 말을 못하고 있으니, 최윤솔이 말을 이었다.

-듣고 있지?

“어, 듣고는 있는데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

-나 도와주라고. 솔로 활동할 거니까. 큰 소재를 못 쓰니까, 작업이 꽉 막혔어.

들어보니 최윤솔은 솔로로 방향을 아예 잡은 것 같았다. 하긴 전부터 이놈은 그렇게 여러 명과 다닐 만한 성향이 못되긴 했다.

그나저나 날 원망하는 듯한 말투가 진심같아서 괜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었어야 한다는 말 같았다.

확실히, 내가 작곡을 하지 않던, 스퀘어라는 걸그룹의 소속사를 운영하던 예지몽 속에서 최윤솔은 상당한 히트곡메이커였다. 재능은 분명히 있다.

그러니 머리가 좀 복잡해진다. 언뜻 들으면 진짜로 내가 잘못한 것 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무튼 최윤솔은 정상인 입장에서 보면 살짝 돌아있는 놈이라, 야박하게 잘라내는 것도 문제일 것 같고, 그렇다고 데모를 받았다가 나중에 내가 자기 데모에서 뭘 빼먹었네, 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솔아. 미안한데, 진짜 시간이 없다. 진짜로 미안해.”

나는 그렇게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한숨 쉬면서 차문에 머리를 기대는데 뒷자리에 황새벽이 말했다.

“정해원, 미안해하지 마. 지금 네 스케줄에 말이 되냐?”

“맞아! 형 그러다 돌연사 해!”

민지호도 맞장구친다. 그러니 좀 마음이 놓이긴 하는데. 그래도 좀 찝찝하다…….

* * *

퍼스트라이트 팬사인회.

퍼스트라이트의 팬이자, 한효석의 팬인 박해린은 팬사인회 순서를 기다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팬사인회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첫 팬사인회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하나도 못하고 나올 때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박해린은 심각하게 오늘 할 말을 고심하고 있었다.

최애인 한효석이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첫 번째 자리에는 박선재가 앉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박선재가 멤버들 중에서는 꽤 정리도 잘하고, 대화도 잘 이끌어나가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화면으로 볼 때는 귀염둥이 막내였는데, 실물로 봤을 땐 너무 남자라 놀라긴 했지만 박선재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대화를 잘 끝냈다.

문제는 최애였다. 한효석의 앞에 앉자마자 입이 딱 붙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어…… 어…….”

말이 안 나온다.

팬미팅도 가고, 사녹도 가봤지만 바로 앞에서 보는 팬사인회의 파괴력은 차원이 달랐다. 한효석을 보는 순간, 박해린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고급지게 생겼다’는 말을 떠올렸다.

한효석이 박해린을 빤히 보다가 사인을 하며 말했다.

“저를 따라서 심호흡을 해주세요. 하나, 둘…….”

심호흡을 시키는 한효석을 보니 내 최애가 분명하단 확신이 들었다. 박해린은 심호흡을 하란 말에 웃음이 터졌고 한효석도 따라서 웃었다.

박해린이 급하게 가방을 열어 자기가 그린 한효석의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웹툰 그리는 게 꿈이에요.”

“우와. 어떤 거 그릴 건데요?”

“음, 효석이가 최애니까 발레?”

“그럼.”

사인을 끝낸 한효석이 팬을 내려놓고 말했다.

“진행 상황 알려주세요. 팬사인회는 언제가 될지 기약 없으니까, X버스에.”

그 말에 박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효석 최애, 효프들 사이에서 팬미팅 때 장래희망 말하는 게 유행이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그렇지만, 한효석도 얼굴을 신기할 정도로 잘 외우는 편이라 장래희망과 얼굴을 곧잘 매치시켰다. 그리고 X버스에 오늘 얼마나 노력했는지 적으면 주기적으로 찾아와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부터 박해린은 긴장이 풀려 실컷 한효석에게 주접을 떨었다. 박해린은 새삼, 다른 아이돌도 이렇게 미친 듯이 생긴걸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정해원의 앞에 앉자마자 박해린이 말했다.

“동생이 희영차!인데요! 오빠 곡이 제일 좋대요.”

“진짜요?”

그 말에 정해원이 엄청 반가워하며 물었다.

“몇 살인데요?”

“열네 살이요.”

“와…….”

그러더니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됐다.

박해린은 마주 앉은 정해원이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심장이 철렁한 기분을 느꼈다.

화면과 실물이 제일 다른 멤버를 뽑을 때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민지호와 정해원을 많이 뽑았다. 씹덕상으로 보이는 민지호는 실물로 보면 오히려 섬세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얼굴이었고, 정해원은 화면에서는 느끼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다.

[그니까…… 아 해원이 특유의 그 어려운 분위기가 있는데…… 이건 진짜 실물로 봐야만 알아서 설명아 안 돼ㅠㅠ]

[↳이건 진짜 실물 봐야 알아222]

[↳팬사인회에서 최애 다음으로 입 얼어붙는 거 1위 정해원]

[↳↳실물 못본 학식이는 울어요ㅠㅠㅠㅠㅠ]

팬만 보이면 싱글벙글인데도 그 분위기란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박해린은 넋놓고 얼굴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동생이 언젠가 VMC 오디션 보러 온대요. 오빠 곡 받는 게 꿈이라.”

“아, 정말? 음…….”

그러더니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해주세요. VMC든, 어디를 가든.”

미쳤다, 동생아. 네 최애가…… 아, 최애랑은 다른가?

시간이 끝나자 박해린이 일어나며 말했다.

“제 동생 이름 유나예요.”

“응. 유나.”

정해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해린은 도저히 집에 돌아갈 때까지 견딜 수 없어 바로 동생에게 문자를 했다.

[정해원한테 너 VMC 오디션 보러 갈 거라고 전달함. 해원이가 VMC든 어딜 가든,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래!]

[동생 : 진짜? 진짜로 그랬어?]

[진짜로 그랬어! 이름도 말해줬어!]

그렇게 문자를 하다가 앨범에 질문을 적어 붙여놨던 포스트잇을 뒤늦게 발견했다. 정해원의 얼굴을 보느라 넋이 나가 있어 몰랐는데 뭔가를 적어놨다.

[질문 : 해원 오빠가 작곡한 곡 중에 제일 좋아하는 곡 뭐예요?]

[답 : 지금은 별빛!]

그리고 그 아래 그림을 그려놨는데 티켓이었다.

[1곡 증정권

사용 제한

*해린 햇살이의 동생이어야 함!

*오디션 합격해야 함!]

“우와……. 우와!”

박해린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어디도 유출하지 않고 동생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포스트잇을 지갑에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 * *

컴백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내내 피에서 에너지드링크가 흐르는 것처럼 꽤 쌩쌩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활동이 끝난 뒤 하루나 이틀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면 딱 정상화가 된다.

‘별빛’은 꾸준히 순위가 올라갔고, 음악방송 세 곳에서 1위를 한 둘째주에는 일간 42위에 안착했다.

최종 일간 42위. 우리가 음원차트를 뚫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2주간의 활동이 끝나가며 멤버들 모두 머리만 대면 잠드는 상태가 되었다.

드디어 활동 종료.

멤버들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방에 들어갈 힘도 없어 거실에 대자로 뻗었다. 민지호가 옆에 드러누운 신지운에게 말했다.

“형 진짜 어떻게 음방을 한 번도 안 빠졌어? 안 혼나?”

“혼났지…… 근데 또 배려도 많이 해주셨어.”

하긴, 그렇게 배려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 촬영과 활동기를 같이 한 신지운이 대단했다. 나는 또 새삼,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멤버들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진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야, 빨리 메이크업 지우고 자.”

“먼저 씻을 사람…….”

박선재가 묻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놔두면 그냥 잠들어버릴 황새벽부터 일으켜 질질 끌어다 욕실에 밀어 넣었다.

“리더가 솔선수범해서 씻어, 빨리.”

“아허…… 허……. 어어거…….”

“아, 어쩌라고. 사람 말을 해.”

아마 뒤질 것 같으니까 그냥 자면 안 되겠냐는 말 같았다. 나는 무시했고 황새벽은 결국 메이크업을 지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른 멤버는 하나씩 일어나고, 나는 버티는 민지호를 일으켰다. 민지호가 내 등에 업히듯이 매달려 웅얼웅얼거렸다.

“형아, 하루만 안 지우고 자면 안 될까…….”

“응, 안 돼.”

“히이이잉.”

“메이크업 안 지우고 자서, 얼굴에 트러블 생기면 햇살이들이 좋아해, 안 좋아해.”

“안 좋아하는데, 다음주는 활동 안 하고. 어. 그니까.”

“그렇게 징징거릴 시간에 두 번도 지웠겠다.”

나는 말하며 민지호까지 메이크업을 지우게 했다. 말끔하게 씻고 나온 한효석이 나에게 말했다.

“저도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형은 괴물이에요.”

그 말에 신지운이 핀잔했다.

“저러다가 갑자기 픽 쓰러지잖아. 영유아 수준이야. 지가 피곤한 것도 몰라.”

“야이씨.”

내가 등짝을 때리자 신지운이 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 내 척추.”

“맞춰줬다. 돈 내. 5천만 원.”

“드럽게 비싸네, 사기꾼 아니야, 이거.”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다 보니 멤버들이 다 씻고, 나도 목욕을 하고 나왔다. 예상대로, 힘들어 메이크업도 못 지우겠다던 놈들이 배달음식을 시키고 있었다. 활동기 동안 대부분 식단을 쪼이고 있었으니, 활동 끝나자마자 MSG를 먹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아, 형! 큰일 났다! 사이다 추가 안 했어!”

“괜찮아. 내가 두 배로 했어.”

“크, 믿음직스럽다, 우리 리더.”

민지호가 감탄하더니 마지막에 나온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형 커피도 시켰어.”

“아, 그래?”

안 그래도 커피머신 쪽으로 가려던 나는 다시 거실 쪽으로 가서 앉았다. 잠시 후 음식들이 도착하고, 멤버들이 야식을 먹는 동안 나는 커피를 마셨고, 카페인의 보람 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잠결에 멤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저 형은 관리하는 것도 아닌데 야식을 안 먹어. 신기해.”

“그니까!”

“사실 저게 맞는 거야.”

“아니야!”

“근데 이번에 별빛 진짜 좋았지?”

“햇살이들 눈 반짝반짝 거리더라!”

“형들, 그거 있잖아. 활동기에는 활동기라서 듣는 기분? 활동기 끝나야 진짜 노래가 좋은 게 느껴지는 거. 그거 뭔지 알지?”

“알지.”

“아까 집에 오면서, 창밖보면서 별빛을 듣는데, 너무 좋은 거야.”

아이씨. 잠깨네.

나는 약간 일어날 타이밍을 놓쳤는데, 그걸 귀신 같이 알고 황새벽이 내 다리를 툭툭 쳤다.

“야, 깼지?”

“아, 그냥 계속 칭찬해줘어.”

내가 민망해서 우기고 있는데 상태창이 떴다.

[‘별빛’의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4000만을 달성했습니다]

[‘별빛’이 일간 42위(최고)에 등록되었습니다]

[‘별빛’이 음악방송에서 1위(3회)를 달성했습니다]

[‘별빛’이 음반 판매 27만 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A급 히트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A급 히트를 기록하세요!]

[보상이 주어집니다]

어?

나는 눈을 번쩍 떴다.

A급 히트의 가능성이 있다는 건, 활동이 끝난 게 끝이 아니란 소린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가 켜둔 TV에서 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지난 활동에서 출연했던 예능, 빅 블루 멤버 최정민이 메인 MC로 있는 ‘찾아가는 일꾼’이었다.

-아, 정민아. 넌 그거 뭔 노랜데 몇 번을 부르냐. 네가 하도 불러서 집 가면 나도 모르게 부르고 있어.

-이거 몰라? 신곡 업데이트들 좀 해. 아무도 몰라? 어?

그러더니 ‘별빛’을 부르며 안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아이돌 아니랄까 봐, 그냥 몇 번 본 걸 텐데 안무를 완벽하게 따서 추고 있었다.

-이거 왜 모르냐고. 퍼스트라이트 애들 출연도 했는데.

-아, 애들 노래야? 걔네 언제 나와. 우리 큰 공사 한 번 있잖아.

-어, 그날 부려먹을라고 아끼고 있지.

그 말에 수제 햄버거를 크게 물어서 우물거리던 박선재가 황새벽을 보며 물었다.

“형, 우리 찾아가는 일꾼 나가?”

“……전혀 모르겠는데?”

그러더니 멤버들이 이번엔 날 본다. 아니, 나도 모르지,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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