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7화
regular_1228 이재희는 정해원이 출연하는 RUSH의 본방을 기다리며, 모처럼 본가의 TV 앞에 앉아 있었다.
이재희의 어머니도 TV 앞으로 다가왔다.
“해원이란 애는 여기도 나와?”
“응. 나와.”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본방이 시작되었다.
방송은 가수들이 음향 체크를 하는 부분부터 시작되었다. 정해원이 대선배이자, 대가수들이 마이크를 테스트할 때마다 점점 쪼그라드는 편집에 이재희보다도 먼저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쟤 어떡하니. 겁먹은 거 봐.”
잠시 후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방송계에서 20년씩은 버텨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친하거나, 적어도 인사 정도는 튼 사이였다. 그 사이에서, 정해원은 멘트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대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막내 역할을 했다.
나름 올림픽 응원가 방송이라는 컨셉을 잊지 않고, 출연한 가수들이 스포츠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곡들을 불러 나갔다.
-이거 마이크 어떻게 내려?
가수 중 한 사람인 박유미가 스탠딩 마이크를 살피며 작게 혼잣말하자 정해원이 달려가서 마이크를 내렸다.
그걸 보던 이재희의 어머니가 말했다.
“해원이가 생각보다 키가 크네?”
“응, 근데 팀멤버들이 커서 티가 안 나.”
“그것도 그렇고. 난 네가 하도 귀엽다고 그래서 잔망한 줄 알았지.”
“실제로 귀여우니까…….”
이재희가 민망해하는 사이 정해원은 박유미가 원하는 위치를 맞출 때까지 마이크를 잡고 있다가 고정을 해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박유미의 노래를 듣더니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재희가 실시간 반응을 보니 스튜디오의 선배들처럼, 시청자들도 정해원의 반응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자괴감ㅋㅋㅋㅋㅋㅋㅋ]
[나 뭐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호강 중에 해원이란 친구 표정이랑 번갈아 보니까 더 실감나네요ㅋㅋㅋㅋ]
[↳진짜 감동하랴 쫄아 있으랴 바쁘네요ㅋㅋㅋㅋㅋㅋㅋ]
[건방지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저러고 있는 거 보니까 그렇지도 않은가봐요]
[근데 녹슬지 않는 강철은 안 내주나 동네 관장형이 그거 음원 기다리던데]
[↳이건 공익을 위해서 안 내야 된다]
“은근 귀염성이 있긴 하네.”
금방 평가가 달라진 어머니의 말에 이재희가 신나서 대답했다.
“거봐, 귀엽다니까.”
그렇게 이재희가 주접을 떠는 사이에도 정해원은 부지런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부정태가 힐끔 보며 물었다.
“뭐 해? 파트 분배해?”
“아, 일단 의견 정도만…….”
“캬, 아이돌 짬바 나오네.”
정해원은 뽑아 온 악보에 파트를 적고 심각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수들을 데려다 놓고 이 중에 곡과 어울리는 한 사람을 고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짓이라 생각해, 바로 파트 분배에 들어간 참이었다. 정해원이 중얼거렸다.
“아, 근데 키가…….”
“하긴 다들 키가 다르지. 근데 뭐, 여기 있는 사람들 자기랑 키 좀 안 맞아도 잘 부르지.”
“그래도…….”
정해원이 중얼거렸다.
“녹음을 하고 나면, 자기 음악이 되는 건데. 최고로 뽑아내야죠.”
[후배일 땐 쫄아 있더니 프로듀서일 안 그러네]
[↳솔직히 기 세 보임]
[↳↳우리 해원이 말랑콩떡인데…….]
[↳↳↳어딜 봐서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은 귀로 듣고 피치를 바로 잡아내네요]
[아니 천재는 저 친구인데 왜 내가 천재뽕이 차는지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스튜디오 촬영이 끝나고, 올림픽 직전에 방영할 RUSH의 마지막 화 예고 장면이 나왔다.
녹음할 키에 대한 길고 긴 회의와 수정 끝에, 정해원의 작업실에서 녹음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밴드 누벵의 보컬 주수린이 중저음으로 녹음한 첫 번째 벌스가 맛보기로 흘러나왔다.
[멈추지 않으면 늪을 벗어날 수 있어]
[모래 위에 미끄러진 발은 다시 구르면 돼]
[상처 입은 마음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지만]
[그곳에 있는 건 마른 태양뿐이라는 걸 알잖아]
맛보기 공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다음주…… 다음주 언제오냐]
[와 X발 졸고 있었는데 주수린 목소리 들으니까 잠이 확 깨네]
[녹음 현장 X나 궁금하다ㅠㅠㅠㅠㅠ]
이재희는 방송이 끝나고도 실시간 반응을 살피다가, 어머니가 노트북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박선재가 녹음한 데모 버전을 듣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운영 중인 짤계를 확인하니 팔로워가 급등하고 있었다.
이재희는 언젠가 검색을 해도 정해원에게 우호적인 계정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던 때를 떠올렸다. 정해원의 팬 계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악성 디엠이 쏟아지던 때가 있었다.
‘정해원이 왜 욕을 먹을 만한지’에 대해 구구절절 적혀 있는, 또는 그냥 쌍욕인 디엠 이상의 것들을 정해원은 받았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호의적인 여론으로 바뀌고, 그 시절을 버틴 팬 계정이라는 이유로 퍼스트라이트 팬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팬 계정이 되었다.
정해원 본인이 인터넷을 안 하니 이렇게 여론이 바뀌고 있다는 걸 모르리란 게 안타까웠다.
그래도 여전히 인터넷은 보는 것보다 안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 * *
[나 혹시 정해원 고소해도 돼? 24시간 내내 이 남자만 생각하는데 고소감 아냐?]
[↳햇살이 진짜 화났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정해원이 먼저ㅠㅠㅠㅠ]
RUSH의 후유증으로 팬들이 기진맥진할 때, 퍼스트라이트 자체 컨텐츠 하나가 업로드가 예정되었다.
[박곰돌 관찰일기 : 동갑즈편 20:00 업로드]
[이거 뭐야????]
[미친 동갑즈 관찰일긴가봐]
[선재 요즘 햇살이들한테 보고서 작성하는 컨셉 미네ㅋㅋㅋㅋㅋㅋㅋ]
[↳하 우리 막내 왜 이렇게 귀엽냐…….]
[↳진짜 선재 보면 막내는 막내야ㅋㅋㅋㅋ]
[↳햇살이들하테 효도하는 거야?]
[↳↳아 이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선재 햇살이들 공경하네ㅠㅠㅠㅠ]
[↳↳↳우리 벌써 공경받냐궄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막냉이 햇살이들 어르신 체험도 시켜주고ㅠㅠㅠㅠ]
그리고 여덟 시 정각.
자체 컨텐츠가 업로드되었다.
“두구두구두구. 안녕하세요. 박곰돌입니다. 햇살이들이 알고 계시듯이 저는 우리 팀의 유일한 07년생인데요. 다행히 민조와 효식이가 빠른을 인정해 줘서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운이 형도 동갑이 없으니까 주원이 형이랑 친구로 지내서 족보는 엉망이 되었지만…… 오늘도 행복한 퍼스트라이트입니다.”
[아 지운이가 주원이 빠른 안 쳐준 거 동갑이 없어서였어?]
[↳그러네 주원이 아니면 지운이가 동갑이 없었네]
[↳아니 그래서 형들은 빠른 인정 안하고 동생들은 빠른 인정하게 된 거야? 친구 만들어주느라고?]
[↳↳우리 애들이 내성적이지만 이렇게 외로움을 타ㅠㅠㅠㅠㅠ]
박선재가 대기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때마침 모여 있는 06, 빌런즈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둘은 핸드폰 하나를 보며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끼고 발레를 보고 있었다.
민지호가 한효석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
“너 저거 할 수 있어?”
그러자 한효석도 팔을 치며 대꾸했다.
“응.”
“저거는?”
“하지.”
“…….”
“…….”
“어, 저건.”
“해.”
“오.”
“…….”
“…….”
“야, 우리도 나중에 저런 안무 넣을까. 네가 나 들어줘.”
“무거워.”
“나 가벼워.”
“너 많이 먹잖아.”
“그래도 가벼워.”
“시도는 해보자.”
“그랭.”
[ㅋㅋㅋㅋㅋㅋㅋ]
[뭐라고 말해야될지 모르겠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고딩 남자애 둘인데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고딩 남자애 둘이긴 해ㅋㅋㅋㅋ]
박선재가 다시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빌런즈는 항상 저렇게 진지하게 안무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05즈를 보러 가시죠.”
그리고 손으로 카메라를 가렸다. 잠시 후 다시 카메라에서 손을 떼자 숙소였다.
05즈가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다가 박선재가 카메라를 들고 오자 슬금슬금 맥주를 숨겼다.
“형들 왜 숨겨, 성인인데.”
그러자 신지운이 대꾸했다.
“애들 앞에서 물도 조심해서 마시라잖아.”
“애 아닌데?”
“맞아, 선재 많이 컸어.”
안주원이 박선재의 편을 들어줬다. 박선재가 소파 팔걸이에 앉아 두 사람을 찍으며 말했다.
“나 없다, 생각하고 대화해.”
그러자 05 둘이 순순히 보고 있던 야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너무 대화를 안 한다고 생각했는지 신지운이 말했다.
“휴일에 인수봉 가자.”
“그래. 야, 근데 네 장비 언제까지 우리 집에 둘 거냐?”
“아, 남는 창고 좀 내줘라. 친구한테.”
“집 좀 가라.”
“니네 집 있는데 우리 집을 왜 가.”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다시 등산 얘기로 빠진 와중에도 눈은 야구를 보고 있었는지 욕 나올 장면에서 둘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둘의 대화를 재미없어하던 박선재가 물었다.
“왜! 무슨 상황이야!”
“2009년 인터리그였지…….”
“아, 히드랍더볼.”
안주원의 아련한 말에 신지운이 대꾸하자 박선재가 말했다.
“2009년이 기억 나?”
“나중에 봤지.”
신지운이 말하고 안주로 먹던 믹스너트 캔을 들어 박선재의 손 위에 털어주며 말했다.
“이거 줄게, 인수봉 가는 거 비밀로 해주라. 해원이 형 알면 위험한 짓 한다고 화내잖아.”
“안 그래도 지금 가서 해원이 형한테 이르려고.”
“시도는 해봤어.”
박선재가 다시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땅콩 먹고 계속됩니다.”
[05는 그냥 우리 아빠 친구들 같은데…….]
[원래 남자들은 1년 사이에 저렇게 바뀌는 거야?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사이에 다시 카메라가 켜지고 음방 대기실 한쪽에서 심각하게 대화 중인 황새벽과 정해원이 등장했다. 황새벽이 말했다.
“아, 그냥 놔두면 유통기한 안에 다 먹는데 뭐하러 정리해.”
“멤버들 부모님이 해주신 건데 스케줄 하다가 못 먹으면 어떡할 건데. 그리고 널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알아서 하는 건데 왜?”
“내가 요리를 제일 많이 하니까 네가 정리해 놓으면 헷갈린다고.”
“뭐래. 지 물건도 어디다 놨냐고 나한테 물어보면서.”
“…….”
둘이 얘기하는 걸 보던 박선재가 황새벽에게 물었다.
“형, 해원이 형이랑 말싸움해서 이겨본 적 있어? 한 번이라도?”
“한 번은 있겠지.”
황새벽이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박선재가 황새벽의 등을 토닥토닥거리고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박곰돌 관찰일기는 계속됩니다. 빠이!”
* * *
“반응 어때?”
내가 물어보니까, 작업실에 와서 핸드폰을 보던 안주원이 대꾸했다.
“너랑 새벽이 대화, 자기 부모님 대화 같다는 햇살이들이 있네.”
“좋은 거야?”
“엄청 좋지.”
안주원은 대답하며 웃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동갑즈 자컨 반응이 꽤 좋은 모양이다. 우리 막내 기획력 최고다. 히히.
RUSH의 촬영이 마지막화까지 끝난 직후부터 안주원은 내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하며, 본인의 솔로곡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안주원이 물었다.
“다음 주 방송 어떻게 돼? 녹음 잘 끝냈어?”
“음.”
나는 별빛의 A급 히트가 확실시되어, 스튜디오 촬영에서 받은 티켓으로 뽑은 것을 확인했다.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
[선수의 디렉팅 기술 S급]
[디렉터에 대한 녹음자의 신뢰감을 (최대 100%)까지 상승시킵니다]
최고였다. 아마 그 순간 내가 가장 필요로 하던 것이 나왔다. 올해 뽑기 운이 좋은 것 같다.
녹음실에서 프로듀서에 대한 불신만큼 녹음을 망치는 것도 없다.
그날 녹음을 해야 하는 가수들은 나의 디렉팅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대선배들에게 내가 해야 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방금 녹음한 것이 최선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의심할 때 ‘완벽했다’라는 확신을 주는 것.
내가 대답했다.
“녹음 분위기는 좋았어. 근데 그건 알겠는데, 촬영은 몇 번을 하는데도 아직 잘 나온 건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어. 매번 드럽게 쫄려하면서 기다린다니까.”
내가 투덜거리자 안주원이 잠시 생각하다 대꾸했다.
“아직 편집 과정에 불신이 좀 남아서 그런 것 같은데.”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편집 장난치는 그런 방송 아니니까. 녹음실 분위기 그대로 나올 거야.”
안주원의 말에 나는 흐흐 웃었다. 그 말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