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38화 (13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8화

작업실에 있다 보니 개인 스케줄이나 연습을 마친 멤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작업실이 회사와 가까우니 멤버들이 툭하면 여기로 밥을 먹으러 왔다. 심지어는 내가 없어도 와서 밥을 시켜 먹었다.

결국 촬영 중인 신지운을 뺀 나머지가 전부 모여 시끌시끌하게 밥을 먹고 있는데 벨소리가 들렸다. 문자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보니, 카일룸의 뺀질이 차우석이었다.

“형! 뮤직비디오 완성됐어요! 새로 믹싱한 거 그걸로 처음 들어봤는데 저 노래 진짜 잘 부르지 않아요? 와, 진짜 깜짝…….”

내 얼굴을 보자마자 떠들던 차우석은 작업실 안에서 일시에 돌아보는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에 말을 멈췄다. 내가 멤버들에게 말했다.

“부담스러우니까 한꺼번에 쳐다보지 말라고. 가뜩이나 인상도 안 좋은 것들이.”

“네가 남말할 때가 아니라고.”

황새벽은 투덜거리고, 차우석은 자리에 서서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나는 차우석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그리고 너는 선배들한테 인사 안 하냐?”

“맞다. 안녕하세요, 카일룸 차우석입니다!”

차우석이 꾸벅 인사하자, 멤버들도 어색하게 같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니, 역시 이 뻔뻔한 뺀질이는 바로 나머지 선배들에 대한 관심을 끊고, 작업실을 밀고 들어와 떠들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찍어주신 OIN 스튜디오 홍 감독님한테도 최종 음원 보냈는데요, 효준이 형이 시켜서 제가 죄송하다고 찾아가서 인사드렸는데 제 목소리 들어가니까 음원이 훨씬 완성도 있다고…….”

“야, 숨은 쉬면서 자랑해라.”

“네. 후……. 그리고 있잖아요. 갔더니 홍 감독님이 지난번에 같이 얘기했던 컨셉 형 솔로는 언제 답 줄 거냐고 그래가지고, 제가 오늘 가는 김에 물어본다고 했어요.”

“아, 그거.”

황새벽 솔로와 빌런즈는 됐고, 안주원은 지금 작업 중이고, 신지운도 래퍼니까 알아서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공개할 거고, 막내도 막내와 어울리는 곡을 늘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멤버들이 다 음원을 공개하고 나면, 그다음에 나도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박선재가 물었다.

“형 솔로?”

“아, 이 새…… 친구가 뺀질거리는 바람에 재녹음했다고 했잖아. 그래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수정 전 믹싱 버전을 틀고 했거든. 내가 홍 감독님한테 죄송하다고 하니까 대신 나중에 내 솔로나 유닛 뮤직비디오 찍으면 자기랑 하자고 하셔서.”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되물었다.

“근데 형은 왜 재녹음처럼 쓸데없는 얘기는 해주면서 그런 얘긴 안 해?”

그 말에 차우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선재에게 말했다.

“제가 재녹음한 얘기가 어떻게 쓸데없어요! 근데 몇 살이신…….”

“아, 빠른이라 너랑 친구.”

내가 대신 말해주니까 차우석이 말했다.

“근데 사회 나오면 빠른은…….”

그러자 옆에서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열심히 밥을 먹던 민지호가 차우석의 말을 끊었다.

“우린 빠른 치는데?”

아무리 눈치 없는 차우석이어도 기가 눌려 박선재에게 형 대접받기를 포기하고 ‘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치, 그라데이션이 안 되려면 이렇게 딱딱 정리를 해줘야 했는데…… 이미 늦고도 늦었다.

그렇게 한 방에 정리된 후에도 차우석은 금방 다시 시끄럽게 떠들다가 내가 꺼내준 간식을 챙겨서 작업실을 나섰다.

“형 근데요, 형도 우리 숙소 한번 놀러 오세요.”

“안 가.”

“왜요!”

“더러울 거 아냐.”

“……그럼 할 수 없죠.”

드럽게 더러운가 보다. 저 징징이가 바로 받아들이는 걸 보니.

나는 어이없어서 웃었고 차우석은 내가 지 말이 웃겨서 웃는 줄 알고 뿌듯해하며 떠났다.

하, 속 편한 놈. 쟤는 진짜 최소 백 살까진 살 것 같다.

차우석이 떠나고, 멤버들의 긴장이 풀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 후배가 불편해야지, 너네가 왜 불편해해.”

황새벽이 기가 빨렸는지 바로 침대로 가서 누우려 하자 민지호가 따라가며 말했다.

“형 나도 낮잠 잘래.”

“침대 작아.”

“해원이 형, 작업실에 침대 하나 더 놔줘.”

“회사 가서 자면…… 그래, 너희가 모르는 사람 있는 데서 어떻게 자냐.”

나는 포기하고 간이침대를 더 사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박선재가 자기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응? 윤솔이 형이네.”

며칠 전 그놈과 황당한 대화를 했던 터라, 나는 바로 박선재 쪽을 봤다. 박선재가 전화를 받았다.

“응, 형. 응? 응……. 아니? 아, 응. 그래.”

박선재가 이야기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윤솔이 형 우리 회사 근처래.”

“나 바빠서 걔 못 봐주는데.”

“알지. 내가 지금 가서 얘기 좀 들어주고 거절할게.”

박선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우리 멤버 중에 제일 공감 능력이 좋은 데다, 막내인 박선재를 불러내는 건 좀 마음에 걸렸다.

* * *

매니저와 함께 회사로 돌아갔던 박선재는 최윤솔에게 위치를 받아서, TRV 근처 카페 2층으로 향했다.

최윤솔이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선재야, 여기.”

“형!”

박선재가 신나게 최윤솔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다른 조작 멤버들은 몰라도, 본인들과 같이 이유 없는 희생자가 된 최윤솔에게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사실은 최윤솔도 함께 데뷔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부채감이었다.

국선아 때부터 정해원을 중심으로 한 일곱 명이 유난히 친했던 건 사실이지만, 같이 데뷔할 거라 믿었던 최윤솔과도 꽤 가깝게 지냈었다.

최윤솔이 언제나처럼 웃으며 인사했다.

“연말시상식 이후에 처음 보네.”

“그러니까. 형 요즘 어떻게 지내? 여긴 무슨 일이야?”

“그냥. 근황도 물어보고. 너도 보고, 해원이가 바쁘다니까, 언제 시간 나는지도 궁금하고.”

“형, 진짜 미안한데. 해원이 형이 너무 많이 바빠. 알잖아, 우리 팀이랑 VVV엔터 데뷔 팀 프로듀싱하는 거. 숙소에서 자는 건 한 달에 일주일도 안 될걸. 작업실에서 살아서.”

“그치? 아, 미안. 나도 너무 다급했어.”

최윤솔이 그렇게 나오니 박선재가 같이 우울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해원의 작업실에 찾아가면 안 되겠냐는 말은 칼 같을 정도로 잘라냈다.

작업실에 가면, 결국 마음 약한 정해원이 최윤솔의 작업을 도와주게 될 거라는 게 이유였다.

최윤솔은 겉으로 보이는 느긋한 태도와 달리, 다급한 상태였다. 본인이 있었어야 할, 하지만 들어가지 못한 퍼스트라이트는 눈에 띄게 승승장구 중이라는 사실이 더더욱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이미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팀 중, 특히 음원차트에서 퍼스트라이트는 독보적인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최윤솔은 곧 화제를 돌려, 국선아 시절 이야기를 하며 몇 번이고 박선재에게 국선아 시절 찍은 사진을 전송했고, 박선재는 별 의심 없이 사진을 확인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암호를 확인한 최윤솔이 커피를 자기 옷 쪽으로 쏟은 후 말했다.

“어! 선재야, 진짜 미안한데 1층 가서 행주 같은 것 좀 빌려볼래? 휴지로 안 될 것 같아서.”

“어? 어! 잠깐만!”

박선재가 당황해서 1층으로 향하며 두고 간 핸드폰을 최윤솔이 바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암호를 해제했다.

뭘 대단히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멤버들 사이에 사고 친 사람은 없나, 궁금한 정도지.

그 사이에도 카톡이 쌓이고 있는 방들이 두 개 있고, 새 글이 없는 방이 있었다.

최윤솔이 새 글이 없는 단톡을 눌러보니, 정해원 없이 나머지 멤버 여섯 명만 있는 방이었다. 대화를 쭉 올려보니 최근 가장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정해원이 X이앱의 악플들이 최기문의 짓임을 알기 직전이었다.

[민지호 : 해원이 형 문 앞에서 자는데 어떡해?]

[신지운 : 깨워]

[박선재 : 형 왜 또 거기서 자? 무슨 일 있었어?]

[안주원 : 햇살이들이 아까 해원이 혼자 X이앱 켰을 때 심한 악플이 많았다는데]

최윤솔은 바로 핸드폰 화면을 끈 후 뒤집어 놓았고, 곧 박선재가 행주를 빌려 올라왔다.

* * *

황새벽과 민지호는 잠들고, 한효석은 개인 스케줄을 떠난 후, 작업실에는 다시 안주원만 남아서 나와 함께 솔로곡 작업을 이어갔다.

안주원은 음감, 박자 감각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가지고 있는 감수성이 선명하게 음악에 묻어나왔다.

나는 안주원이 가진 게 많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아서, 작업하는 내내 풀이 죽어 있다가 중얼거렸다.

“이게 편곡이냐, 네가 작곡 다 하는 거지…….”

“뭔 소리야. 기술적인 것만 내가 하는 건데. 어떻게 봐도 네가 작곡한 곡이야, 이건.”

“하…….”

안주원은 이걸 자기 곡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떨군 안주원의 어깨를 밀어 바로 세웠다.

“야. 너 잘났어.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냐?”

“음악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안주원도 조작 멤버네, 뭐네 이래저래 많이 욕을 먹어서 자신감이 깎여 나간 것 같다. 인터넷 반응을 자주 살피는 것도, 내가 국선아 때 한참 악플로 나를 교정하려 들던 때와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나는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씩 웃었다.

“뭐, 괜찮아. 이거 나오면 햇살이들이 무지하게 좋아할 거고, 네가 음악에 진심인 거 알아줄 거야. 그럼 너도 알게 돼, 너 재능 없지 않은 거.”

“그런가?”

“응.”

나는 모니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계속 공부하고, 음악 만들다 보면 어느 정도 퀄리티 곡은 다들 만드는데, 자기 분위기 만드는 게 어렵다더라고. 나도 아직 초짜라 잘 모르는데, 다른 작곡가들 말이 그렇다더라.”

괜히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착한 안주원은 내 말을 별 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근데 홍 감독님이 얘기한 솔로 컨셉은 뭐였어?”

“아, 뱀파이어 먹이. 왜 멀쩡하게 뱀파이어 있는데 먹이여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컨셉 듣고 만들려던 거 있는데, 바빠서 입으로 녹음만 해놓고 못 찍었어.”

“어떤 건데?”

어차피 멤버들은 내 해언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나는 혼자 입으로 각종 악기 소리를 내며 녹음한 해언어를 들려줬다.

나름 제목도 있었다.

‘프루티(fruity)’.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제목을 못 떠올리던 때도 많았는데, 이번엔 작업한 것 하나 없이 제목부터 떠올랐다.

뱀파이어하면 흡혈이고, 우리 입에는 철 맛이지만 뱀파이어 입에는 그게 맛있을 테니까. 진한 과일 향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와인처럼.

그래서 나온 제목이었다.

그나저나 녹음이 너무 날 것의 해언어라 듣다 보니 좀 민망하다. 안주원은 그걸 진지하게 들어주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네 건데?”

“그래?”

“응. 완전 네 거야.”

“근데 또 문제가, 일단 뱀파이어가 좋은 소재잖아. 우리가 한 번은 무조건 할 것 같은데, 겹치는 게…….”

“여기서 연결하면 되지. 원래 뱀파이어한테 물리면 뱀파이어 되는 거잖아.”

“……오.”

안주원이 걱정 한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해 준 후, 말을 이었다.

“해원아. 해, 이거. 진짜로 네 거야.”

“넌 이걸 듣고 뭔 느낌인지 알겠어?”

“응. 약간 어둡고 성숙한 그런 분위기 아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우리 멤버들은 다 해언어 통달했지.”

히히, 그거 든든하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프루티’라고 저장된 녹음 파일을 데스크탑으로 옮겼다.

잘 묻어놨다가, 멤버들 곡을 다 내고 나서 생각해 봐야겠다. 과연 햇살이들이 뱀파이어의 먹이 컨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걱정이지만…….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