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39화
국선아 극초반부터 이미, 데뷔까진 몰라도 20위 안에는 들어갈 것이 확실한 멤버들이 몇 보였다.
지금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전부 그 안에 들어갔다.
다만, 정해원은 의견이 갈리는 편이었다. 스타일링이 본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데다가 첫 주부터 노래를 못해 낮은 등급을 받기까지 했으니까.
그래도 외모로 보나, 노래를 제외한 능력치로 보나, 일찍 떨어지진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편곡은 양이형이 속한 작곡팀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거기 전부 맡기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연습생들은 시청자들의 표를 얻어야 했고, 그러므로 평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타협을 끌어내는 능력이나, 성격, 편곡 능력같이 호감을 살만한 것들은 보여줘야 했다.
그러므로 수준 높은 논의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몇몇 연습생들의 편곡 능력은 치트키였는데, 정해원과 최윤솔도 그중 하나였다.
거기다 정해원은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안무를 외우고 있어, 주어진 부족한 시간 동안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때의 정해원은 이길 방법이 없었다. 수면욕이나 식욕조차 없는 사람 같았으니까.
그냥 그 순간순간을, 연습생들과 무대를 준비하는 모든 시점을 사랑했다. 행복에 겨워 피곤한 것도 몰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쟁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진이 빠졌다.
그건 타고난 것이었다. 보컬이나 안무, 외모, 체형, 말재간, 친화력 같은 것을 타고나듯이, 정해원도 무대를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것에 몰두하도록 타고난 것이다.
‘야, 정해원! 형 힘들다고!’
‘뭐가 힘들어, 일어나! 연습 재밌잖아!’
어디서 큰 소리나 싸움이 났다, 싶으면 거기 높은 확률로 정해원이 있었다. 처음엔 ‘다급한 마음에 연습을 도와 달라고 한 건 맞지만 저렇게 지랄해도 참겠다고는 안 했다!’고 씩씩대던 연습생들이, 나중에는 정해원에게 동화됐다.
물론 진짜로 꼴 보기 싫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윤솔은 정해원과 함께 데뷔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그게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데뷔가 유력한 멤버들 대부분이 정해원에게 감기는 바람에, 데뷔를 한 후에도 모든 게 정해원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았다.
그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는 부모 손에서 자라, 무슨 일이든 본인 중심으로 돌아가야 마음이 편한 최윤솔과는 정말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 촬영장에서 핸드폰을 돌려받았을 때, 최윤솔은 핸드폰으로 자기 이름보다 먼저, 정해원을 검색했다. 결국 저 새끼랑 같이 데뷔를 하게 돼서, 그 드러운 꼴을 보며 살아야 하는 건가를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정해원의 이름은 정해원으로 불리고 있지 않았다.
[X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국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지었냐 X나 잘 지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입에 착붙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연습생이 정해원을 돌아봤다. 최윤솔도 그랬다. 이래도 무대를 준비하는 게 행복하겠냐고 묻고 싶었다.
정해원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나 곧 돌아와 연습을 하자고 재촉했다. 어이없게도 거기서 돌아온 후, 정해원은 오히려 더 집요하게 무대에 집착했다.
하지만 최윤솔은 정해원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해원의 행복이 사라진 것이었다.
* * *
안주원은 ‘프루티’를 들어본 후, 나더러 그걸 작업하는 데 집중하라며 자기 작업할 걸 들고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어휴, 착한 놈 같으니라고.
나는 작업하던 걸 잠깐 미뤄 놓고, 일단은 대충 입으로 녹음했던 프루티의 트랙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작업실로 박선재가 들어왔다.
“형.”
“응?”
최윤솔을 만나러 회사로 갔는데,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 게 의아해 돌아보니 박선재의 표정이 안 좋았다. 나는 걱정이 돼서 바로 일어나 박선재에게로 향했다.
“왜? 뭔 일 있었어?”
“있잖아…… 아닐 수도 있는데.”
“응.”
“윤솔이 형이 내 핸드폰을 본 것 같아.”
“응?”
“내가 분명히, 액정을 위로 가게 놨거든?”
박선재가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윤솔이 형이 커피 쏟아졌다고 행주 좀 가져다 달라고 해서 갔다 왔더니. 핸드폰이 뒤집혀 있었어. 액정이 아래로 가게.”
“…….”
“내가 헷갈렸을 수도 있는데…… 헷갈렸을 리가 없어, 사실.”
박선재가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박선재에게 물었다.
“혹시 핸드폰에 뭐 남이 보면 안 되는 거 있어?”
“없어. 음, 은행 관련된 거랑 멤버들 사진이나 우리 데모, 그런 것들은 다 다른 핸드폰에 있어.”
박선재가 가방에서 다른 핸드폰을 보여줬다. 박선재를 포함해 멤버 대부분이 핸드폰을 두 개 이상 가지고 있었다.
뭐, 최윤솔은 원래 돈이 많으니 은행 쪽에 관심이 있진 않을 것 같고, 아마 본다고 하면…….
“……막냉이, 연애 안 하지?”
내가 묻자 박선재가 정색하며 대꾸했다.
“절대 안 해. 그리고 해도 그런 건 다른 핸드폰으로 했겠지.”
“그치?”
그럼 딱히 핸드폰을 본다고 얻어갈 것도 없었을 것이다. 뭐, 스케줄 같은 건 봐도 써먹을 곳도 없을 테고.
그때 박선재가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형,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윤솔이 형 믿으면 안 되겠어.”
“…….”
내가 할 말을 다른 사람이 하고 있으니 묘하다. 나만큼 최윤솔을 경계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내 생각을 모르는 박선재가 나에게 재촉했다.
“알겠지? 형은 남을 너무 믿는단 말이야.”
“뭔 소리니. 나처럼 남 경계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형, 아직도 중운이 형이랑 연락하잖아. 다 알아. 둘이 전화하는 거 다 봤어.”
아니, 그게 있잖아? 설명하자면 긴데. 그게 있지, 막내야?
나는 차마 박중운 전 매니저가 내 스파이라고 말은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박선재는 나뿐만 아니라 낮잠 자던 둘과 다른 멤버들에게까지 최윤솔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날렸다. 손 안 대고 코 푼 기분이다. 히히.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 나도 최윤솔이 뭘 가져갔는지 알아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최윤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내 작업실은 안 되고, 네 작업실로 갈게. 거기서 봐.”
-……그래. 주소 보낼게.
* * *
나는 작업실에 좀 더 있다가, 조용한 새벽녘에 회사 차를 운전해 최윤솔의 작업실로 향했다.
최윤솔은 VMC 자회사 중 하나인 터미널 엔터와 최근 계약했다는 모양이었다.
아마 원래는 TRV를 VMC가 인수하고, ‘소년들’의 다큐멘터리 예능에 참여하면서 제대로 활동을 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TRV 인수가 흐지부지되니, 최윤솔도 붕 뜬 상태가 되었다가, VMC의 제안으로 터미널 엔터와 계약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솔로 가수가 대부분인 터미널 엔터에 들어서니 기분이 묘했다.
언젠가 나도 여기서 계약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6개월간의 계약을 끝내고, 재계약을 해야 하던 때. 만약 그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최윤솔과 같은 회사에 소속되었겠지.
……하, 큰 화를 하나 피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최윤솔의 작업실로 향했다.
재능은 있는 놈이고, 데뷔 조에 들었을 만큼 매력도 있는 놈이다. 회사에서 꽤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았다. 밖에서 봐도 작업실이 꽤 좋았다.
녹음을 틀어놓고 들어가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황새벽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톡이 와 있었다.
[리더부기 : 너 어디야? 작업실에 없어?]
아니, 황새벽이 웬일로 이 시간에 안 자고 있지?
[산책]
나는 그렇게 답을 보내고, 녹음기를 켠 후 작업실로 들어섰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최윤솔이 말했다.
“잘 왔다. 안 그래도 네가 도와줄 거 있는데.”
“너 선재 핸드폰으로 뭐 봤어?”
“…….”
앞뒤 다 자른 내 말에 최윤솔이 확 표정이 바뀌어 날 노려봤다. 하지만 워낙 맑고 선량한 인상이라 전혀 쎄한 느낌이 없었다. 하, 부럽다…….
내가 말을 이었다.
“넌 상도덕도 없냐. 아이돌이, 아이돌 핸드폰을 몰래 봐?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알면서?”
“안 봤어.”
“봤잖아. 거기 CCTV도 있더라. 여기 경찰까지 얽히게 하고 싶어?”
“…….”
“미친놈아, 정신 좀 차려라. 멀쩡한 새끼가 열심히 살아서 성공할 생각은 안 하고 자꾸 꼼수 부리려 드네?”
“정해원, 너 그거 하지 마.”
“그거 뭐.”
“사람 좋은 척하는 거. X나 재수 없고 안 어울려.”
……아니, 내가 지금 한 말의 어디가 사람이 좋아 보이냐? 진짜, 진짜 잘 봐줘봤자 꼰대지. 이 새끼, 의외로 날 긍정적으로 보나?
아니면 반대로, 내 모든 태도와 말을 위선으로 여기든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내가 말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보긴 봤지?”
“어.”
“왜?”
“그냥, 궁금해서. 근데 너 없는 단톡방 있더라? 그거밖에 못 봤어.”
내가 우리 팀에 좀 많이 집착하긴 하나 보다. 저 얘기를 남의 입으로 들으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게 뭐라고.
진짜, 그게 뭐. 내가 싫어하는 얘기들 모여서 하는 거지. 그게 왜.
최윤솔이 말을 이었다.
“그게 신기하긴 했어. 해원아, 난 국선아 때 네가 연습생들 들볶고, 그래서 지금 너네 멤버들이 거기 휩쓸려서 널 따르는 게 피곤해 보였거든? 근데 너 없는 단톡방이 있는 걸 보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가 봐.”
“…….”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대답을 했다.
“따로 단톡방 있는 거 나도 알아. 얘기해 줬어.”
“아.”
최윤솔이 특유의 보조개가 들어가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좋은 마음으로 말하는 건데, 너희 멤버들 간수 잘해. 단톡 보니까 개인 활동 욕심 많던데.”
“그건 틀렸고.”
뭐래.
내가 아는 한, 우리 멤버들은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정말로 좋아한다. 처음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다.
오히려 저 말을 들으니까, 깜깜하던 머릿속이 다시 밝아진다.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리 멤버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퍼스트라이트 좋아해. 그러니까 이간질하지 마, 사기꾼 새끼야.”
내 말에 최윤솔의 입꼬리가 굳었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안 믿으면 말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최윤솔이 랩을 쓰던 노트가 보였다.
[sleepwalk(가제)]
[불안은 문 앞에 쌓여 눈덩이처럼 커지고]
[sleep like the dead 미끄러져 일어서지 못함에]
최윤솔은 가사부터 쓰는 모양이다. 난 보통 코드부터……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왜 자꾸 딴 길로 새지.
아무튼 가사는 그 짧은 사이에 꽤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나는 혹시 저게 내 이야기일까, 를 생각해 보았다. 자의식 과잉 같기도 하고, 가끔 멤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약간, 진짜 아주 약간 밤에 돌아다닐 때가 있긴 한 것 같다.
병원에 가서 이야기하니까 바로 약을 처방해 줬다. 약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 요즘 별로 없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줄이지?
어쨌든 저게 내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지금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최윤솔이 판단하게 될 테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녹음 중인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최윤솔. 미리 말할 게 있어. 네가 들었다는 확인을 위해서 녹음도 할 거고.”
“뭘.”
“내 얘기 쓰지 마. 앞으로 네가 만드는 어떤 창작물에도.”
“…….”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들면, 나는 지체 없이 널 고소할 거야. 어떻게든 저작권을 나와 나누게 될 거야.”
“…….”
“아류작 같을까 봐 걱정 돼? 나랑 겹치는 것밖에 못 쓰겠어? 윤솔아. 그건 서사가 겹치는 문제가 아니야. 그냥 네가 날 따라 하고 싶은 거지.”
그 말이 최윤솔이 가장 분노할 지점이라는 걸, 창작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일부러 한 말이었다.
예상대로 최윤솔의 꽉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