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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40화 (14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0화

나는 빨리 녹음을 저장했다. 최윤솔 눈깔이 슬슬 맛이 가는 걸 보니 힘으로 뺏으려 들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근 한효석과 몇 번 운동하며 자만해진 나는 싸움으로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히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는데 신지운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나는 최윤솔에게 손을 흔들었다.

“간다.”

“너 할 말만 하고 어딜 가.”

“내가 여기 대화하러 온 걸로 보이냐? 내가 할 말만 하러 온 거야.”

나는 말하고 최윤솔이 더 헛소리 못 하게 그냥 전화를 받았다.

“누가 형님한테 막 전화하래. 새벽에.”

내가 장난치는 걸 무시하고, 신지운이 말했다.

-남의 회사로 산책을 갔어? 코스 희한하네?

“…….”

이 새끼 귀신인가?

-회사 차 끌고 나갔다며.

아니구나, 회사가 입이 싸네. 나는 혀를 차고 대꾸했다.

“금방 돌아갈 거야.”

-나 터미널 엔터 앞에서 내릴 테니까 나와.

아, 그랬지.

신지운이 여기 가까운 고등학교에서 촬영을 해서, 그쪽으로 학생 배우들이 먹을 간식을 추가한 커피차를 보냈었다. 그런 거 안 보내면 분명히 촬영 끝나고 틈틈이 ‘다들 나 드라마 촬영한 거 기억하지? 관심 없는 것 같아서’라면서 삐진 티를 낼 거다. 어휴.

저놈만 그러면 모르겠는데 나 포함 일곱 명이 다 그런다. 피곤하다, 퍼스트라이트. 오늘도 새삼 햇살이들에게 고마워진다.

나는 최윤솔이 붙잡기 전에 재빨리 복도로 걸어 나왔다. 다행히 아직 회사에 사람이 있어서 복도에서 더 소란을 만들지는 않았다.

회사를 나와보니 신지운이 서 있었다. 매니저가 내려주고 회사로 간 모양이었다.

신지운이 말했다.

“운전 내가 할게.”

“미쳤냐. 너한테 내 목숨을 맡기라고?”

“형, 나 못 믿어?”

“어.”

“아, 쫌. 나 애교 부린다.”

아니, 이 새끼는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무서운 협박질을 배워 왔냐고…….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아직 안 돼.”

“아, 혀어엉.”

꾸준히 귀여운 컨셉을 밀고 있는 신지운이 말꼬리를 늘리며 표정으로 애교를 떨었다. 정말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나는 치를 떨고 운전석에 앉으며 말했다.

“진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걸 봐야 되냐?”

“왜, 귀엽잖아. 그리고 경력직만 찾으면 신입은 언제 연습하냐고.”

“혼자 탈 때, 네 목숨만 걸렸을 때.”

나는 말하며 가까운 우리 숙소로 먼저 향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신지운은 바로 징징거리는 걸 멈췄다.

“나 비 올 땐 운전 안 해봤어. 와씨, 공포다.”

“그 차를 탈 뻔한 내가 공포다, 인마.”

그렇게 가는 내내 말싸움을 하다가 잠깐 조용해졌을 때, 나는 최윤솔이 쓴 가사를 드디어 이해했다.

[불안은 문 앞에 쌓여 눈덩이처럼 커지고]

[sleep like the dead 미끄러져 일어서지 못함에]

sleep과 slip으로 발음 장난을 한 거였구나…….

나는 딴생각에 빠져 있느라, 신지운이 옆에서 말하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막내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걸 바로 찾아가냐?”

“응? 뭐라고?”

내가 묻자 신지운이 다시 말했다.

“왜 혼자 다니냐고, 새벽에. 그것도 막내가 조심하라고 한 사람을 만나러.”

“아.”

나는 흐흐 웃으며 대꾸했다.

“그냥. 나랑 최윤솔 사이에도 일이 있었어.”

“무슨 일.”

“걔가 전화해서, 자기도 2년 쉬었는데, 그 소재 내가 먼저 써먹어서 힘들다 그러더라고.”

“뭔 소리야. 똑같은 소재로 써도 다른 사람이 쓰면 다른 곡이 나오지. 형이 먼저 만들어놓은 게 있으니까 그 소재가 쉬워 보이는 거잖아.”

“그런가.”

나는 대꾸하며 빗길 속으로 차를 몰았다.

신지운을 숙소에 데려다 놓고, 아무래도 새벽에 남의 회사 찾아갔다고 혼날 분위기라 곧바로 작업실로 도망쳐 나왔다.

작업실에 앉아 모니터를 켜고, 나는 작업할 준비를 했다.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

[등록된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줄어듭니다(1/1)]

[현재 상태 43/100% (10%이하에서 슬립모드가 시작됩니다)]

활동 끝나고 많이 쉬어서인지 체력이 꽤 넉넉하다.

카일룸의 다음 앨범 준비도 미리 시작하고, 안주원이 말해준 뱀파이어 소재도 좀 더 구체화시킬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다음 앨범은 좀 성숙한 분위기를 내보고 싶었는데, 이걸로 타이틀을 뽑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할 것도 많고 체력도 있는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건드리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멀뚱멀뚱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체력 한정 회복 포션입니다]

딴청을 하다 보니 쓸데없이, 최윤솔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난 국선아 때 네가 연습생들 들볶고, 그래서 지금 너네 멤버들이 거기 휩쓸려서 널 따르는 게 피곤해 보였거든? 근데 너 없는 단톡방이 있는 걸 보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가 봐.’

뭐, 거기에 대해선 부정할 말이 없긴 하지…….

“아오, 신경 쓰여서 안 되겠다.”

나는 결국 작업을 포기하고 스케줄을 적어 놓는 탁상용 달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날짜를 체크했다.

다음 주 금요일 정도로 해야겠다. 찾아가는 일꾼 촬영 중에. 그날 정도면 피곤해서 감정 싸움할 일도 없겠지.

그날 왜 내가 없는 단톡방을 만들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내 뒷담화를 하려고 만들었다고 하면, 그냥 웃고 끝내야지. 내가 그렇게 너희를 들볶았냐고 농담하면서.

그다음에는 없애달라고 해야겠다. 그 단톡방.

드럽게 신경 쓰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다. 원래 내가 점점 정떨어지는 스타일인 거, 너희도 알지 않았냐고. 문제가 있으면 고칠 의향이 있으니 직접 말해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일정과 할 말까지 생각하며 자기 반성을 하다 보니, 갑자기 이 안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바깥 공기를 쐬어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했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X발, 왜 문이 안 열려.”

손이 자꾸 미끄러져서 몇 번을 헛손질하다가 겨우 문을 열었다. 거의 기다시피 계단을 올라가 유리로 된 문 앞에 웅크려 앉았다.

정말 아주 가끔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나를 못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대부분의 시간에는 세상에 날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모순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생각해보니 후자가 불가능할 것을 알아서 전자를 바랄 때가 생기는 것도 같다.

거기 앉아서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래도 꽤 빠르게 진정이 됐다. 비가 와서 다행이다. 요즘 스트레스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쏟아져 나오는 스트레스들을 막지 않고 놔두기로 했다. 빗소리와 함께 흘려보낼 생각이다.

우리 상담쌤이 들으시면 매우 칭찬해 주시겠다. 내가 또 칭찬 참 좋아하지…….

* * *

한효석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내는 민지호에게 물었다.

“뭐 해?”

“부모님한테 사랑한다고 문자하고 있어. 사고 날 수도 있으니까.”

빗길에서 신지운이 운전을 하고, 옆에서 안주원이 긴장한 상태로 그걸 보고 있었다. 한효석이 말했다.

“갑자기 그런 거 보내면 걱정하시겠다.”

“왜? 사랑한다고 맨날 하는데. 너 안 해?”

“…….”

“야, 지금 보내. 당장. 이이런 불효자식.”

평소보다 배로 시간을 들여 작업실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세 시.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박선재가 우산도 안 쓰고 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하게 비밀번호를 눌러 유리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정해원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박선재를 올려다보았다.

“……왜 왔어?”

“형이 전화 안 받아서 왔지!”

“나 잠깐……. 바람 쐬는데. 몇 시야?”

그렇게 묻는 정해원의 얼굴이 창백했다. 황새벽은 리더 역할을 하며 멤버들을 정리해 전부 연습실 안으로 들여보내고, 다시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가 최윤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윤솔이 전화를 받자마자 툴툴거렸다.

-나 아까 해원이한테 욕 충분히 먹었어.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욕먹었다니까.

“너 말고, 해원이한테.”

-…….

“윤솔아, 나 피곤하다. 빨리 좀 말해줘.”

황새벽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최윤솔이 말했다.

-그냥. 선재 핸드폰으로 뭐 봤는지 물어보던데.

“뭘 봤는데.”

-말해주면 뭐 해줄래.

“해주긴 뭘 해줘.”

-나 앨범 나오면, 네 인스타그램에 홍보해 줘. 아주 친해 보이게.

“……알았으니까 빨리 얘기하기나 해.”

-해원이 없는 단톡방 얘기. 근데 그거 너네가 해원이한테 말해줬다며.

“…….”

-거짓말이지?

최윤솔이 기분 좋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것 같더라. 걔 표정이. 야, 너네는 따돌릴 거면 본인 모르게 하든지. 너희 곡 재깍재깍 뽑아주는 앤데, 그래도 앞에선 좀 잘 해줘라. 싫어도.

“내용 봤으면 알 거 아냐, 왜 만든 건지.”

-내용이 뭔 상관이야. 결국 해원이가 듣기 싫어하는 말, 너희끼리 몰래 한 건 맞잖아. 그러니까 해원이가 단톡방 있는 거 알아도 너희한테 못 물어보지.

“…….”

-너희 사실 해원이랑 별로 안 친한 거 아냐?

최윤솔이 비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은 후, 황새벽은 급하게 작업실로 돌아가 멤버들에게 말했다.

“해원이, 우리 단톡방 있는 거 알고 있대.”

“어? 언제부터?”

박선재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자 황새벽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렸다.

“……해원이가 전에 내 핸드폰 미리보기 뜬다고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황새벽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뒤늦게 욕을 뱉으며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잠결이라 제대로 못 들었어.”

그 말에 잠시 조용해졌다가, 신지운이 입을 열었다.

“해원이 형 깨면 내용 다 보여주고 없애자.”

그러자 박선재가 중얼거렸다.

“근데 해원이 형 단톡방 내용 보면 엄청 스트레스받을 것 같은데. 자기가 엄청 밝아진 줄 아는데 거긴 다 우울한 얘기밖에 없잖아.”

그 말에 민지호가 대꾸했다.

“안 보여주면 더 난리나. 그 형 지금도 자기가 성격이 이상해서 하정이 형이나 VMC로 간 매니저 형한테 배신당한 줄 알잖아. 단톡방에서 막 쌍욕하고 있는 줄 알걸?”

한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도 무조건 보여줘야 돼.”

멤버들은 모여서 충분히 회의를 한 끝에, 단톡방에 모든 내용을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 * *

정해원은 그때부터 만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내리 잠을 잤다.

일 년 치 부족한 잠을 다 몰아 잔 것 같았다. 중간에 잠깐씩 깼다가도, 좀 서성이다가 다시 잠드는 것의 반복이었다.

덕분에 다음 날 저녁에 있는 RUSH 마지막화도 보지 못했고 VVV엔터와 하기로 했던 미팅도 취소. TRV 직원들과의 ‘찾아가는 일꾼’의 회의는 다른 멤버들만 했다.

박선재가 VVV엔터에 전화를 하고 나서 소파에 앉아 중얼거렸다.

“이 형 왜 이렇게 하는 일이 많은 거야.”

“그러니까.”

황새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TRV 직원들은 회의에 정해원이 못 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머지 여섯 명과 회의를 이끌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원들도, 멤버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신지운이 특유의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해원이 형 없었으면 퍼스트라이트 망해서 지금쯤 다 자기 회사 돌아갔겠다.”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진 민지호가 말했다.

“난 심지어 소속사도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그 짓을 또 해야 된다고…….”

자기 소속사로 돌아가는 멤버들의 미래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였다. 데뷔는 운명적인 일이고, 그게 본인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모두 알았다. 정해원이 죽을 각오로 다시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그 불투명한 물속에 또다시 가라앉았으리라는 것도.

그 순간에도 핸드폰으로 RUSH의 반응을 확인하던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해원인 지금 대한민국이 자기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도 모르고 자네.”

정해원은 방송을 끼면 세션도 원하는 대로 못 부르고, 세션비니 홍보비니 해서 지분을 챙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전에 그냥 처음부터 수익을 전부 올림픽 비인기 종목에 기부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방송사에서는 방송 전체를 공익적으로 만들 이 제안을 당연히 반겼다.

RUSH 마지막화 말미에는 기부가 필요한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사연이 송출되었다.

방송 종료 후, 회사로 정해원을 찾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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