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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41화 (14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1화

“해원이 형 차 뽑은 거 슬슬 출고되겠네.”

박선재의 말에 작업실에서 같이 쉬고 있던 신지운이 관리를 위해 야채 주스를 꾸역꾸역 마시다가 대꾸했다.

“저 형은 무슨 아이돌이 9인승 카니발을 사냐.”

“우리 다 타야되잖아.”

“맨날 다 태우고 다닐 거냐고.”

“해원이 형 원래 그런 거 좋아하잖아. 다 같이 다니는 거.”

박선재가 말하다가 문을 열어 놓은 쪽방 쪽을 보았다. 정해원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신지운이 작업실 문을 열어 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입을 열었다.

“비오는 게 싫어서 계속 자나?”

“그런가? 기청제라도 지낼까?”

“뭐, 그냥 간만에 푹 자면 좋지.”

“그것도 그렇구.”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잠깐 조용해졌다가, 박선재가 다시 말했다.

“내가 차박할 거냐고 그랬는데, 해원이 형 차박이 뭔지 모르더라.”

“저 형 진짜 지가 관심 있는 거 외엔 관심이 없어.”

“심지어 돈에도 없어.”

“그러니까.”

박선재는 돈에 있어서만큼은, 정해원이 정말 특이한 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돈에 있어서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본인이 돈이 얼마가 있든, 가지고 싶은 게 명확해서 그걸 살 돈이 있으면 사고, 아니면 말았다. 받은 계약금 중에 너무 큰 돈을 떼서 팀반지를 만들 때가 있는 반면, 너무 많은 돈을 받았는데 본인을 위한 건 아무것도 안 살 때도 있었다.

박선재가 이내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랑 차박해야징.”

“나도.”

“형은 2미터라 안 들어가.”

“내가 또 모르는 사이에 2미터가 됐네.”

“더 크면 3미터도 될 듯.”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이제 절대 안 커. 스무 살엔 원래 키 안 커.”

“형은 클 것 같지만 이쯤 할게.”

“고맙다, 아주. 심장이 철렁하네.”

신지운이 진심으로 한숨 쉬다가 다시 힐끔 쪽방을 확인했다. 간만에 푹 자면 좋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이틀이 넘어가니 슬슬 식사 때문에라도 억지로 깨워야 되나 싶었다.

그때 황새벽이 작업실에 들어섰다.

“어, 이제 내가 있을게.”

박선재가 황새벽이 들고온 종이 뭉치를 가리켰다.

“설마 단톡방 내용 뽑아 온 거야?”

“응. 저장해서 남겨 놨다가 유출되면 큰일나잖아.”

“형은 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것 같아.”

“나도 그래. 내가 느린 게 아니야, 세상이 빠른 거야.”

황새벽이 말하며 종이를 내려놓았다.

세 사람은 처음 단톡방을 만들던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국선아 시절, 정해원이 인터넷에서 욕을 먹고 있다는 걸 안 다음 날 저녁. 핸드폰을 돌려받은 기념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 촬영 직후였다.

정해원이 전화하는 걸 보며, 멤버들은 연기를 해도 잘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씩씩한 척 하면 부모님이 더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말썽쟁이처럼 핸드폰을 붙잡고 칭얼거렸다.

-나 너무 힘들어. 과제가 너무 많아. 집에 가고 싶어. 아, 엄마가 해준 거 먹고 싶다. 할머니 김치랑.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적어갈 테니까 집에 가면 다 만들어줘? 알겠지? 꼭.

그렇게 힘들다고 투정과 애교를 부리다가 끊었다. 그렇게 철없이 구는 게, 제일 부모님을 안심하게 하는 거란 걸 알았다. 아들이 악플 때문에 겁에 질려 있는 것보다, 밥투정이나 하고 있는 게 훨씬 덜 가슴 아픈 일일 테니까.

신나게 한참을 떠들고 나서 전화를 끊더니 또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로 늘 가게 된 창문 앞에서 바람을 쐬며 심호흡을 했다.

국선아 내내, 정해원은 부모님에게 TV와 실제는 다르다는 걸 열심히 설명했다. 사실 현장 분위기는 정말로 좋고, TV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것뿐이라고.

정해원은 자신이 탈락하는 회차까지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곧 떨어지면 잊힐 테니까, 거기서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멤버들에게도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작사 입장에서, 시청률 제조기를 쉽게 집에 보낼 수 없으니 온갖 베네핏을 줘가며 정해원을 끝까지 살려놓았다. 거기에 그냥 ‘더 욕 먹으라고’ 표를 주는 사람이 생각보다도 많았다.

정해원은 그 표 때문에 데뷔조에 들어갈까봐 오히려 기도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무대 위에서 마지막으로 탈락자 호명을 기다리던 때, 아마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건 정해원뿐만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한 생각이었다.

* * *

나는 온 사방에 펑크를 내며 작업실 침대에서 내리 잤고, 내가 깰 때마다 적어도 멤버 한 명은 작업실에 있었다. 다들 어디서 잤는지 모르겠다. 민지호의 말대로, 침대를 하나 정도는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 몸은 편한데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펑크내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진짜 제대로 사과해야지…….

일어나야지, 생각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일어나서 멤버들이 말 걸면 대답을 해줘야하는데 대답도 안 나온다.

이상하다. 몸과 정신이 분리된 것 같았다. 내 몸인데 말을 전혀 안 들었다.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

[등록된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줄어듭니다(1/1)]

[현재 상태 38/100% (10%이하에서 슬립모드가 시작됩니다)]

체력은 넉넉해졌다가, 계속 누워있으니까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이 안 움직이고 마냥 누워 있는 게, 쉬는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하긴, 2년을 방 안에서 쉬었을 때 내 체력은 정말 최악이었다. 처음 방에서 나왔을 때 나는 스무 걸음도 못 걷고 자리에 주저앉았었다. 다행히 누나가 이리저리 끌고 다녀 금방 회복했던 걸 보면, 확실히 좋은 나이긴 했던 것 같다.

처음에 잠들었을 때는 머리가 망가진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가, 중간부터는 일을 해야하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에서 누가 계속 실타래를 풀고 있는 것 같은 상태가 됐다.

계속 비가 오는 걸 보니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은 것도 같고, 많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일어나자. 일어나자. 이건 내 몸이니까 내가 조종할 수 있어…… 아니지. 조종한다고 하면 삐져서 더 안 움직일 것 같으니까 달래보자.

혼자 그러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눈을 뜨고 나도 모르게 좀 웃었고, 쪽방 밖에 있던 민지호가 그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왔다.

“형! 올림픽 개막식 하고 있어. 형이 스포츠는 관심 없어도 개막식은 관심이 있잖아. 막 연출 같은 거 보는 거 좋아하니까 이건 봐야 되는 거 아냐?”

그치. 보면 좋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알았는지, 민지호가 의자를 끌고 와 내 침대 옆에 붙여 놓고, 자기 노트북을 펼쳐 개막식을 스트리밍했다.

센 강에서 열리는 개막식은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다.

그걸 보다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생각한 이후 처음으로,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지금쯤 입대를 했으려나. 그 전에 해외여행을 한 번은 가보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고등학교도 제때 졸업했을 테고, 대학은…… 뭐,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마 음악을 전공했겠지. 실용 음악 같은 걸 아마…… 잠깐만. 멀리 못 가고 점점 되돌아오고 있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다시 개막식에 집중했다. 민지호가 말을 이었다.

“형 찾아가는 일꾼 못하겠으면, 준희 형이 대신 나가준대. 형 촬영 끝나 가지고, 슬슬 홍보 돌 생각인 것 같더라고.”

빅 블루의 이준희가 OTT 플랫폼의 드라마를 찍고 있었는데, 이제 다 찍은 모양이다.

근데 내가 펑크 내면 빅 블루 이준희가 나와? 펑크 내는 게 좋은 거 아냐……?

아니다, 우리 멤버들은 낯가려서 내가 있는 게 낫겠구나. 이준희도 은근 무뚝뚝한 타입이라 서로 낯가릴 것 같다. 그나저나 이준희가 미니시리즈에서 워낙 엘리트 사무직 역할만 맡아, 현장직을 하는 건 영 상상이 안 간다.

민지호가 말했다.

“단톡방 있잖아. 형 욕하고 그런 거 아니야. 진짜로.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 형 위해서 만든 거였어.”

“…….”

“진짜 형 걱정만 했는데…… 그래도 미안해. 우리가 형을 아는데, 그러면 안 됐어.”

아.

그랬어?

듣고 보니, 그런 걸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웃겨야 되는데, 별로 안 웃기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안 웃겼다.

“이제 만들지 마.”

“응? 응. 그러려고.”

“소외되니까 외롭더라구…….”

아이고, 뭐라는 거야.

나는 내 입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다. 나는 다시 개막식을 좀 더 보려고 했지만 다시 잠이 와서 결국 중간에 또 잠이 들었다.

* * *

RUSH 마지막회.

녹음 전, RUSH로 이득을 보고 있는 건 여지없이 정해원이었지만, 어쨌든 정해원을 그 방송에 꽂아 넣은 것은 카일룸 때문이었기 때문에 방송 초반부에 카일룸의 등장 장면이 있었다.

카일룸 멤버들의 수정 녹음 작업이었다.

정해원이 녹음에 들어가기 전, 멤버들에게 말했다.

“재녹음 별로면 앞에 쓸게.”

“네, 형.”

녹음 전부터 멤버들은 긴장해 있었고, 정해원도 딱히 분위기를 풀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해원이 화났나ㅠㅠㅠㅠ]

[↳저 카일룸 팬인데 선배님 화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 저 햇살인데 해원이 저 정도면 엄청 화난 거 같은데요?]

[↳↳↳카일룸 팬들 보기엔 화난 표정 아니에요……. 녹음 중에 이 정도면 오히려 기분 좋으신데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해원이 햇살이들보면 맨날 웃고 있는데 카일룸 멤버들 보면 화내고 있어서 그런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거예요!??]

이미 카일룸의 얼굴이 공개되며, 데뷔 전부터 팬들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로 서포트가 들어왔다. 녹음이 끝나고 정해원은 카일룸의 얼굴 스티커가 붙은 캔커피를 집어 들어보고 말했다.

“아, 멤버 얼굴 다 다른 거 붙어 있네?”

“형, 제 거 찾아드릴까요?”

차우석이 묻자 정해원이 꺼지라고 손을 휘젓고 캔커피를 살폈다.

“너만 아니면 돼.”

“아, 형!”

“왜 네 것만 있어, 근데?”

“형이 저 특히 아끼시니까, 제 거 일부러 골라왔죠.”

“아니, 왜…….”

정해원은 욕이라도 한번 하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녹화 중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그냥 차우석의 스티커 캔커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커피를 거의 주유하듯이 마시고, 또 한 캔을 집으려다 멈췄다.

그리고 캔을 집어서 촬영할 때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놓고, 다른 커피를 꺼내 마셨다. 차우석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형 제 얼굴 오래 보게요?”

“미쳤냐. 너희 녹음할 때 정신 차리라고. 데뷔도 전부터 이렇게 챙겨주시는 팬분들이 어디 있어. 잘해. 받은 거 잊어버리지 말고.”

“형, 또 잔소리…… 알았다니까요.”

“녹음 끝났으니까 좀 꺼져.”

“싫어여!”

[해원이 진짜 화 안 났네……?]

[↳햇살이들은 평생 해원이 화난 표정 모를 듯…….]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해원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쳐…… 해원이가 햇살이 보면 항상 밝아서 저게 디폴트 상태인 줄 알았어…….]

[↳↳↳아니더라구…… 진짜 햇살이 보면 밝아지는 거였어…….]

[근데 우석이 진짜 피디님 껌딱지야 뭐야ㅋㅋㅋㅋㅋㅋㅋ공계에 맨날 작업실이라더니 그냥 피디님이랑 놀려고 남아있는 듯]

[↳피디님이 누구예요?]

[↳카일룸팬한테 피디님은 무조건 해원 선배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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