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2화
카일룸의 녹음 장면이 빠르게 지나가고, RUSH의 마지막 화는 내정 프로듀서였던 강진기와 MC 백민형의 대화로 전환되었다.
정해원이 음원 수익을 전부 기부한다는 말에 강진기가 정색하며 되물었다.
“다? 다 기부한대?”
“어, 그렇대.”
“왜? 걔 돈 많아? 2년 동안 악플 때문에 쉬던 애가 돈이 어딨어?”
[강진기 노빠꾸 저격하네.]
[원래 티케 엔터랑 VMC 한동안 사이 나빴잖아ㅋㅋㅋㅋㅋ]
[↳이거 유명하지.]
[↳신지운 국선아 내보낸 이후로 화해한 거지?]
[↳↳ㅇㅇ근데 여전히 사이가 막 좋진 않은 듯ㅋㅋㅋ]
[↳↳그래도 티케 소속 가수들 브엠뮤(VMC 뮤직어워드) 나온 거 보면 화해한 거지.]
[해원이도 나름 돈 잘 버는데ㅠㅠㅠㅠ]
[↳그래도 강진기가 보기엔 돈 없는 게 맞죠. 티케 엔터 소속 2세대 아이돌 히트곡은 죄다 강진기가 작곡했는데.]
백민형이 말했다.
“근데 세션 최고로 컨택해 달래.”
“KQS에서 해줘야지.”
“그니까. 해줘야지 뭐.”
“그 친구가 돈 욕심은 없어도 사운드 욕심은 있잖아?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진기야, 모르고 싶어.”
“내 음악 듣고 자란 애라서 그래. 내 생각에는 태교할 때도 강진기 1집을 들어야 돼. 햐, 명반, 명반.”
그렇게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은 정해원의 작업실에서 녹음을 하는 VCR을 보며 코멘트를 이어갔다.
정해원은 녹음을 시작하기 전부터 매우 행복한 표정이었다.
“와, 가문의 영광…….”
그 말에 RUSH 출연 가수 중 막내라 오전에 첫 번째로 녹음하게 된 주수린이 말했다.
“야, 그 정도 아니야.”
“그 정도예요!”
“쟤는 쫄아 있으면서 할 말 다 하더라.”
주수린이 말하며 마이크 앞에 섰다. 녹음이 시작되고, 정해원은 카일룸의 녹음 때와 달리 싱글벙글이었다.
[아니 표정이ㅋㅋㅋㅋㅋㅋㅋ아까랑 너무 다르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곡가가 힐링 중이신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 녹음이 끝나고 주수린이 물었다.
“해원아, 어때?”
“너무 좋아요…….”
“아니, 감상 말고!”
“최고예요…… 환상적이에요…….”
“야!”
주수린이 어이없어서 소리쳤다. 정해원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선배님, ‘여행자들이야’ 여기 코러스 한 번만 따로 녹음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응.”
주수린이 코러스를 따로 녹음한 후, 정해원이 다시 한번 요청했다.
“선배님, 정말 죄송한데, 브릿지부터요, 조금만 더 터지듯이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일부러 눌러서 부른 건데. 다른 사람들이랑 맞추려고. 너무 세면 톤을 못 맞추잖아.”
“네, 저도 선배님처럼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모든 파트에서 베스트를 따놓고 싶어서요. 믹스로 어떻게든 만져볼게요. 욕심부려서 죄송해요.”
“그래, 베스트라는데 어떡하냐.”
주수린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네가 말하면 설득력이 있네.”
“진짜요?”
“얼굴에 설득되나 봐.”
주수린의 말에 정해원은 놀리는 줄 알고 얼굴이 금방 벌게져서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화기애애하게 녹음이 끝나고, 주수린이 다음으로 녹음하는 절친한 선배 가수 박유미에게 말했다.
“언니, 쟤 믿어도 돼.”
그러자 내성적이기로 유명한 박유미가 작업실 앞에서부터 경계하며 말했다.
“그래 봤자, 신인이잖아.”
“신인 같지 않아. 믿을 만해.”
박유미는 그렇게 듣고도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박유미가 들어오기 전, 정해원은 급하게 마이크를 벽 쪽을 보게 이동시켰다. 남과 눈 마주치기를 불편해하는 박유미를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선배님! 혹시 불편하시면 다시 옮겨 드릴게요.”
“……이대로 할게.”
“넵, 감사합니다아.”
정해원이 대답하고 다시 녹음을 시작했다.
박유미의 허스키한 저음은 보물 그 자체였다.
[정해원 울 것 같은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친구 국선아 때 화난 표정만 봐서 저렇게 표정이 많은지 몰랐네요ㅠㅠ]
[↳저 맹세코 퍼라 팬 아닌데 진짜 제가 음악의 신이어도 해원이 이뻐할 듯요…… 저렇게 못 숨기고 행복해 하는데ㅠㅠㅠㅠ]
[↳↳하마터면 저런 사람이 영원히 음악을 못 하게 할 뻔했네요.]
녹음이 끝나고 박유미가 의기소침해서 말했다.
“해원 씨, 한 번 더 해도 돼?”
“하고 싶은 만큼 하셔도 돼요. 근데 전 지금 거 좋아요.”
“그래도.”
“네. 그럼 한 번 더 해주세요.”
완벽주의자인 박유미는 지칠 때까지 재녹음을 요구했고, 정해원은 별말 없이 재녹음을 이어갔다. 그러다 정해원이 말했다.
“선배님, 잠시만요.”
“응.”
“3번 녹음인데요.”
정해원이 세 번째 녹음 전체를 들려주고 말을 이었다.
“이건 4번 녹음이거든요?”
그리고 다시 4번 녹음. 1번 녹음을 파트별로 들려주었다. 박유미가 가만히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3번으로 가자. 이것보다 더 잘 부를 수 없겠다.”
“그쵸? 진짜로, 진짜로 완벽해요, 선배님.”
“응. 내 생각도 그래.”
박유미가 대답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박유미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마음에 안 드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있거든요. 거기다 사람이 계속 수정을 하다 보면 점점 뭐가 맞는지 모르게 되잖아요. 근데 해원이는 제가 뭘 마음에 안 들어 하는지 알더라구요. 그래서 마음에 안 든 파트랑, 마음에 드는 파트 번갈아 들려주니까 바로 알겠더라구요. 그리고 어떻게 믹싱할지도 정확히 설명해 주고요. 진짜 간만에, 나 노래 잘 부르는구나, 싶었어요.”
[와…….]
[X나 짜릿하다 천재뽕이 이런 거냐.]
[근데 이제 진짜 최종보스 나오네요.]
[박상우ㄷㄷㄷ]
[정해원 기 쎈가요? 감당할 수 있나ㄷㄷㄷ]
평소 예능에서 보여주는 허당기 있는 모습과 달리, 음악에 있어서는 예민함의 끝판왕이라 조금만 수틀려도 녹음 중에 그냥 집에 가버리기로 유명한 것이 박상우였다.
실시간 반응을 배신하지 않고, 박상우가 굳은 표정으로 작업실에 들어섰다.
“공기가 왜 이렇게 안 좋아.”
“공청기 파란불이에요, 선배님.”
“…….”
[파란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감당은 충분히 하겠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건조한데.”
“가습기도 있고 제습기도 있어요. 제가 목이 진짜 약하거든요. 원하는 습도 말씀해주시면 바로 만들어드릴 수 있어요.”
“마이크는…… 좋은 거 쓰네.”
“그쵸?”
“나이도 어린데 벌써부터 너무 좋은 거 쓰는 거 아냐?”
“VVV엔터한테 빌린 거예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상우 트집 잡는 것마다 실패하고 있자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 도장 깨기 하냐 녹음할 때마다 맞춤으로 해주네.]
[↳그만큼 준비를 한 거지]
[↳X나 성실하네 X발 나 지금 뭐하지…….]
[↳↳이거 공부 자극 영상임?]
박상우는 영 마음에 안 드는 듯했지만 일단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다 첫 녹음이 끝나고 쏟아지는 정해원의 감동한 눈빛과 극찬에 박상우는 은근슬쩍 만족하기 시작했다.
* * *
작업실에서 방송을 보던 황새벽이 정해원의 장비로 작업 중이던 안주원에게 말했다.
“야, 정해원 표정 보니까 우리랑 녹음할 때 한 번도 만족을 못 했나 본데.”
“그러게.”
“난 또 칭찬해 주길래 진짜 내가 잘했나 했더니.”
그 말에 안주원이 돌아보며 물었다.
“넌…… 칭찬받아 봤어?”
“…….”
“좋겠다. 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녹음실에서 칭찬받아 보겠지…….”
“우리 뭐 시켜먹을까?”
황새벽이 부랴부랴 말을 돌렸다. 그때 멤버 단톡방에 연달아 글이 올라왔다.
[민지호 : 심심해!!!!!!!!!! 해원이 형 자니까 너무 심심해!!!!!!!!]
[민지호 : 안 되겠다 나 그냥 형 깨울래.]
[민지호 : 일어나!!!!!!!!!!!! 민조랑 놀아!!!!!!!!!!!!!!]
[한효석 : 말리고 있는데 안 들어요]
[민지호 : 정해원!!!!!!!!!! 그만 자!!!!!!!!!!!!!!!!!!!!!!!]
[신지운 : 맞아 그만 자 정해원.]
[민지호 : 형은 은근슬쩍 반말하지 마!!!!!!!]
[신지운 : 너도 했잖아]
[민지호 : 난 해원이 형 열받아서 일어나라고 한 거고!!!!!!!!!!!!! 형은 그냥 맞먹으려고 하는 거잖아!!!!!!!!!!]
[신지운 : 야 내가 맞먹어야 진짜 짜증 내지, 네가 하면 그냥 귀여워하잖아.]
[민지호 : 아 그건 그래.]
[민지호 : 형 빨리 가서 맞먹어봐.]
황새벽이 빠르게 올라가는 글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치는 거냐, 도대체. 엄지가 유연해?”
“네가 느린 거 아닐까.”
“거듭 말하지만 세상이 빠른 거야.”
그 말에 안주원이 흐흐 웃었다.
그때 안주원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강효준 A&R이었다.
강효준은 정해원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중에서는 안주원이 그나마 가장 대화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주원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근데 해원이가 아직 안 일어났어요.”
-아, 그래요.
“해원이한테 전해줄 거 있어요?”
-네, 일단 카일룸 관련된 스케줄, 한 달 정도 여유 두고 전부 미뤘다고 좀 전해주세요.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줄 테니까.
“……네?”
-뭘 놀라요. 당연하지.
“…….”
안주원이 대답이 없으니 강효준이 황당해하며 말을 이었다.
-스케줄도 못하고 잔다면서요. 해원이 같은 일 중독자가 저러는 거면 심각한 거 아닙니까? 당연히 쉬게 해야지.
“근데 해원이가…… 일 못 하면 죽는 애라서요.”
-그렇다고 일을 계속 시켜요? 어디 가둬서라도 못 하게 해야지…… 근데 주원 씨 몇 년생이랬죠?
“……05년생이요.”
-아.
어려서 뭘 모르는구나, 라는 말이 ‘아’ 한 글자에 함축되어 있었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퍼스트라이트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VVV엔터 쪽은 전부 한 달 미뤄서 다시 스케줄 잡을 테니까 전해주세요.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안주원은 전화를 끊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황새벽이 물었다.
“왜? 뭐래?”
“……VVV엔터 쪽 스케줄, 한 달 미뤄준다는데.”
“…….”
같이 국선아 시절을 보낸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머릿속에는, 정해원이 ‘무대를 못 서게 하면 죽을 사람’이라는 인식이 받혀 있었다.
그러니 억지로 쉬게 한다는 건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정해원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열어 둔 작업실 문밖을 보았다.
한동안 밖을 보던 정해원이 잠깐 생각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고 소파에 앉았다.
“워어, 맞다. 나 이제 국혐 아니지.”
“뭔 소리야.”
“자는 중간중간에 악몽 꿨어.”
정해원이 투덜거리더니 체력이 없는지 소파에 드러누워, 허허 웃었다.
“와씨, 다행이다. 꿈이라서. 일어나니까 세상이 아름답네.”
정해원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한동안 누워 있다가, 쓰지 않고 옆으로 밀어놨던 건반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건반에 손을 올렸다. 작업실에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맑은 날’을 산뜻한 분위기로 편곡한 곡이었다.
정해원이 손을 떼고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근데 이거 어때?”
눈 뜨자마자 작업할 생각부터 하는 모습에 안주원은 한숨을 쉬고, 반응이 한 박자 느린 황새벽이 뒤늦게 중얼거렸다.
“뭘 어때. 답도 없는 미친 새끼지…….”
정해원을 제외한 두 사람은 정해원이 잠깐이라도 일에서 손을 완전히 떼게 하는, 강효준의 극약 처방이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