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3화
누워 있는 게 불안해 죽는 줄 알았다. 할 일은 많지, 몸은 안 움직이지.
누워서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가, 드디어 몸을 일으켜 편곡을 들려줬는데 욕부터 날아왔다.
“미친 새끼라니.”
나는 투덜거리고 다시 물었다.
“곡이 어떠냐고.”
“좋아. 인트로로 쓰면 좋겠네.”
안주원이 대답하는 반응을 보니 괜찮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나는 방금 한 걸 잊어버릴까 봐, 다시 연주해 녹음을 해놨다.
작업실에는 빗소리와 황새벽이 틀어놓은 RUSH 마지막 화의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겹치고 있었다.
내가 녹음을 마쳤을 때, 때마침 응원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목마름과 아픔을 견디고 달려왔다는 건]
[내가 알아 당신도 알잖아]
[출발한 이상 실패가 어딨어]
[방향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여행자들이야)]
방송이 이미 지나간 걸 보니, 무지하게 오래 잔 모양이다. 내가 물었다.
“나 얼마나 잤어?”
그 말에 안주원이 시간을 가늠해 보고 대답했다.
“사흘 정도?”
“미쳤나…….”
일이 많은 걸 머릿속으로는 알았는데, 전부 회피하고 자고 있었다. 미쳤었나보다.
“나 할 거 많았는데.”
“다 취소하거나 미뤘어. 걱정하지 마.”
“사람이 그렇게 오래 잘 수가 있냐? 겨울잠도 아니고.”
그러자 황새벽이 말했다.
“난 잠은 그렇게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밥을 안 먹는 게 신기하더라. 아, 주원이 어머님이 죽 끓여주셨어. 그거 먹어.”
“우리 부모님한테는?”
“아직 안 했지. 수연 누나 때문에 안 그래도 긴장하고 계실 텐데. 그래도 오늘도 자면 하려고 했어.”
“진짜 고마워.”
나는 안심하고 의자에 기댔다.
안 그래도 누나의 출산일이 머지않아 부모님이 영국으로 가셨는데, 내가 내리 잠만 자는 걸 알면 둘 중 한 분은 한국으로 돌아오실 거고, 그럼 영국 갔다가 딸 무사히 출산하는 것도 못 보고 집에 오게 되는 건데, 으…… 생각만 해도 마음 불편하다.
* * *
오래 잤더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인트로에 쓸 편곡을 해보겠다고 설친 걸 보니, 사흘 동안 쉬면서 멘탈은 꽤 회복이 된 모양이다.
그래도 뭐 웃고 떠들 힘은 없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안주원이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죽 끓여주셨어. 너 먹이라고.”
“아, 죄송하게.”
“그치, 이건 진짜 죄송할 일이다. 우리 엄마 쓰러질 뻔했어, 놀라서. 너희 부모님이 들으셨으면 당장 집에 돌아오라고 하실걸.”
“……알았어. 안 그럴게.”
나는 쭈그러들어서 그렇게 대답했고, 안주원은 벽 쪽에 인덕션으로 가서 얼려 놓았던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안주원이 데워 준 죽을 먹기 시작했다. 정성이 듬뿍 들어간 죽이었다.
“맛있다.”
나는 말하고, 바로 안주원의 어머니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답장이 왔다.
[쭈 어머님 : 해원아, 몸의 건강이 중요한 만큼 마음의 건강도 중요해. 항상 둘 다 챙기고, 우리 집 너희 숙소랑 가까우니까 힘들면 아무 때나 와서 밥 먹고 가. 먹고 싶은 거 다 해줄게. 해원이는 새벽에 갑자기 와도 대환영이야.]
누가 안주원네 어머니 아니랄까 봐 다정다감이란 말이 인간화를 한 것 같은 분이시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사람들한테 안부 문자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카일룸 차우석 : 형 로건이가 어제 형 아프다고 해서 울었어요ㅠㅠ]
[카일룸 차우석 : 근데 카일룸 다음 앨범 작업하려면 쫌만 아프셔야 될 것 같긴 해요]
[뉴데이즈 강진영 : 형 저희 프로듀서님한테 아프시다고 들어서 안부 여쭙습니다 형 아프시면 햇살이분들 뿐만 아니라 저희 퓨처스(뉴데이즈 팬클럽)까지도 걱정하니 의무감을 가지고 쾌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양이형 : 야 미친놈아 할 거 X나 많아 이거 보면 전화해라]
[주니 형 : 해원아 준희 형인데, 우리 리더한테 너 아프다고 들어서 문자 남겨. 형 촬영 끝났으니까 조만간 보자. 맛있는 거 사줄게]
그리고 멤버들의 단톡이 말도 못 하게 쌓여 있었다.
심심해 죽겠다고 나에게 일어나라고 매일매일 난리인 민지호의 톡이 80%이긴 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좀 웃겨서 낄낄거리고 있었더니 황새벽이 한심해하며 말했다.
“웃음이 나오냐?”
“이야, 역시 내가 없어 봐야 소중함을 아네.”
“안 없어도 알아, 인마.”
그 말에 나와 안주원이 동시에 황새벽을 쳐다봤다. 황새벽은 욕을 하고, 안주원이 나에게 말했다.
“녹음은 못 했지만 우리가 증인이니까 괜찮아.”
“그치? 내가 들은 거 너도 들었지? 황새벽이 술 안 먹고도 저런 소리를 하다니.”
“좀 닥쳐봐…….”
황새벽이 괴로워하며 말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황새벽을 놀렸다. 우리가 다른 얘기를 하게 하고 싶었는지, 황새벽이 두툼한 종이 뭉치를 가져왔다.
“이거.”
“그게 뭔데?”
“지금까지 너 없는 단톡방 내용 전부 다 뽑았어.”
“그걸 다 프린트했어?”
지나친 아날로그에 기겁한 내 말에 안주원은 웃고, 황새벽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니, 저장했다가 유출되면 안 되잖아.”
“하이고, 대단하다. 이거 누가 뽑자고 그랬어. 딱 봐도 너긴 한데.”
“……어떻게 알았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하는 게 딱 황새벽이지 뭐.”
나는 말하며 첫 장을 읽으려고 들었다가 멈칫했다. 그 후에도 몇 장을 더 뒤적이다 한숨을 쉬고 다시 덮었다.
[한효석 : 해원이 형 진짜로 퍼스트라이트 합류해요? 괜찮아요? 못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선재 : 내가 보기에 형 오래 살려면 아이돌 해야 돼]
[황새벽 : 맞아]
“내가 뭐, 죽기라도 할까 봐 단톡방을 만들었어?”
둘 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중얼거렸다.
“니네도 진짜 특이하다, 특이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 단톡은 국선아 초반에 만들었다는 모양이었다. 내가 어디서 뛰어내려 죽을까 봐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최근 내용 중에는 개인 활동에 대한 내용이 꽤 많았다. 나는 좀 읽다가 덮었다.
“멘탈 좀 회복되면 읽어야겠다. 이것도 쉽지 않네.”
내 말에 안주원이 대답했다.
“미안해. 네가 보면 스트레스받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왜 따로 만들었는지는 이제 알겠어. 설명 안 해줘도 돼.”
이건 화도 못 내겠다. 개인 활동 얘기 자기들끼리 먼저 안 건 좀 섭섭한데, 그것도 어쨌든 나한테 바로 말하면 내 연약한 멘탈에 금이 갈까 봐 따로 회의를 했던 모양이니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자, 그럼 해결됐다. 그치?”
“되긴 뭐가 돼?”
황새벽이 황당해하며 말을 이었다.
“너 사흘 잤잖아. 그게 정상은 아니지.”
“병원 갔다 올게. 운동도 좀 하고. 그럼 금방 해결돼.”
“그걸로 될 거였으면 예전에 됐지. 아무래도 이렇게는 안 될 것 같다.”
황새벽이 심각한 얼굴로 날 보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멤버들이랑, 회사랑 연락했는데. 너 스케줄 중단하고, 좀 쉬어야겠다.”
그 말이 농담인 줄 알고 나는 웃었다. 하지만 황새벽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농담 아니야.”
“……미쳤냐?”
“올림픽 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힐링도 하고 그래. 효준이 형한테 연락 왔는데, 카일룸 앨범 일정 미뤄줄 테니까 쉬어도 된대.”
황새벽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 혼자서 X이앱 켜고, 팬들한테 인사할 수 있으면 그때부터 다시 일해.”
“…….”
잠이 덜 깼나. 악몽의 연장인가?
내가 살면서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우리 멤버들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내가 X이앱을 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다음 주 정도면 켤 수 있어.”
“어, 성공하고 말해.”
“야, 이게 말이 되냐고. 나 진짜 할 일 많아.”
“생각해 보니까 너 방에서 나온 이후에 계속 일만 했잖아. 정신적으로 회복할 시간도 없었다고.”
“…….”
“숙소에서 쉬고, 음악 말고 다른 취미도 가지고. 안 그럼 너희 부모님한테 이른다?”
“……알았다고.”
멤버들마다 협박질이네. 이것들이……
나는 한숨을 쉬고 내 짐을 대강 챙기는 황새벽과 안주원을 보다가, 밀어내고 내가 처음부터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차곡차곡 짐 챙기는 걸 보던 안주원이 황새벽에게 말했다.
“당분간 숙소는 진짜 깨끗하겠다.”
“……커피 한 방울만 흘러도 지랄할 것 같은데.”
“안 흘리면 되잖아.”
나는 괜히 시비를 건 후, 짐을 챙겨 들었다.
* * *
납득은 안 되지만, 멤버들이 워낙 강경해 나는 결국 일주일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작업실 비밀번호는 내가 모르게 바꿨고, 맥북도 안주원이 가져갔다.
RUSH의 반응이 좋아서 회사에 스케줄 문의가 엄청 들어온다는데, 그걸 하나도 못하고 쉬는 게 억울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
멤버들은 내가 숙소로 돌아오니까 엄청 환영해 주고 귀찮게 하다가 숙소를 나갔다. 민지호가 우는 시늉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형, 나 없다고 너무 심심해하지 마.”
“맨날 작업실에 혼자 있는데 뭐가 심심해?”
“작업실에선 일하느라 안 심심하지. 숙소는 혼자 있으면 심심해!”
그렇게 시끌시끌하던 멤버들이 나가고 나니 숙소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멤버들 말을 들어보니까, 이 모든 일의 화근은 강효준 A&R이었다.
그쪽 스케줄을 다 미뤄주는 걸 보고, 우리 멤버들도 내가 일을 못 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같았다.
하, 거긴 왜 이렇게 쓸데없이 대기업이어서. 진짜 나랑 안 맞는다.
[형 때문에 놀잖아요, 지금]
[강효준 A&R : 노는 게 아니라 요양이지]
[스물한 살에 무슨 요양을 해요]
[강효준 A&R : 심심해서 문자 하나 본데 이럴 시간에 잠이나 자라]
……심심해서 연락하는 건 줄 어떻게 알았지.
멤버들의 말을 증명하기는 싫지만 그나마 할 거라고는 청소 정도라, 온 집안을 뒤집어엎고 한 번 싹 청소를 했다. 구석의 먼지까지 청소를 해도 하루가 다 지나가지 않았다.
햇살이들 보고 싶다…… 이렇게 보고 싶은데 왜 X이앱을 못 켜는 거냐, 이해가 안 가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도중에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만들어 볼까?”
RUSH의 반응이 그렇게 좋았다니, 인스타그램을 만들어도 악플이 덜 달릴지 모른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수 있으면 못할 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요즘 햇살이들과 아무 소통을 못 하니 미안해서 뭐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공개할 수 있는 작업물이나, 일상 사진 같은 것들도 찍어서 올리면 좋겠다. 솔직히, 관심받고 싶었다.
인터넷을 잘 못 하는 관종이라니. 날 좋아하는 햇살이들이 있는 게 기적이다, 허허.
아무튼 인스타그램에 관한 것도 물어볼 겸, 출산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누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누나가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야, 엄마, 아빠 좀 데려가. 귀찮아 죽겠어. 하루 종일 잔소리한다니까. 의사가 건강하다는데 왜 안 믿어?
전화를 하자마자 한탄하는 걸 들으니 건강은 한 모양이다. 나는 흐흐 웃으며 말했다.
“컨디션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난 그냥 안 물어볼게.”
-잘 생각했어. 딴 거 물어봐.
“아, 나 인스타그램 시작해 보려고. 근데 이거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그냥 가입하고 태그하고 사진 올리고. 아이디 아이돌스럽게 만들어.
“아이디부터 생각해 봐야겠네.”
-인스타 만들면 나 태그…….
누나가 진통이 오는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태그 해줘. 아이돌 동생 둔 덕 좀……. 아오, 뭐야.
“누나, 괜찮아?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이 정도 간격이면 괜찮…… 지 않은가 본데?
“어?”
그러더니 매형을 막 불러낸 후 말했다.
-야, 나 애 낳고 다시 전화할게. 끊어.
“뭐…… 어?”
이 누나가 뭐라는 거야? 이게 맞아?
나는 얼떨결에 전화가 끊기고 나서 멍하니 있다가, 급하게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심장이 철렁한 그 순간만큼은, 휴가를 받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