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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44화 (14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4화

나는 일단 회사에 전화해서, 어차피 쉬는 김에 영국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임원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직원들은 나와 많이 친해졌기 때문에, 영국을 다녀오겠다는 말에 걱정부터 했다.

-해원아, 혼자 비행기 탈 수 있겠어?

……그래도 그렇지. 너무 기본적인 부분부터 걱정하는 거 아닌가?

“제가 그래도 매니저 생활을 몇 달을 했는데요.”

-아, 그랬지……. 그럼 영호한테 비행기 표 알아보라고 할게.

“사적으로 가는 건데 알아서 해야죠. 저 비행기 표 예약할 줄 알아요, 누나.”

마지막은 농담이었는데, 매니지먼트 팀 직원이 진짜로 나를 기특해했다.

날 미취학 아동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 아무래도 지나치게 자고 일어났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은 것 같다. 머리로는 미안하지만, 마음으로는 솔직히 좋다. 히히.

오구오구 해주는 걸 아직도 좋아하는 걸 보니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그렇게 예약할 줄 안다고 호언장담하고 비행기 표를 알아보는데, 당황스럽게도 표가 없었다.

파리 올림픽이니까 파리로 가는 비행기만 다 나갔을 줄 알았는데, 덩달아 영국으로 들어가는 것도 없었다.

“……어, 나 혼자 비행기 표 못 구하네?”

물론 이 상황에서 매니지먼트 팀이라고 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비행기 표를 뒤지고 뒤졌고, 남은 표 하나를 찾아냈다.

일등석으로.

지금 당장 구할 수 있고, 출발할 수 있는 건 이 표 하나였다.

“끔찍하게 비싸네…….”

가격도 부담스러운 데다, 사적으로 이동하면서 일등석을 타면 연예인병 걸린 것처럼 보일 것 같다는 우려도 들었다.

거기다 도착해서도 누나한테 왜 왔냐고 욕을 먹겠지……. 돈 쓰고 더블로 욕을 먹을까, 여기 가만히 앉아서 걱정만 할까를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 일등석을 끊었다.

회사에 비행기 일정을 알려준 후에 강영호 매니저가 날 공항까지 데려다줬다. 강영호 매니저가 말했다.

“오히려 지금 출국해서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스케줄 들어오는 거 계속 거절하니까…….”

“누나 보러 가느라 휴가받았다고 하면 되겠네요.”

“안 그래도 홍보팀에서 그렇게 준비하나 봐요.”

그렇게 이야기는 했지만,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별수 없이 컨디션 상의 문제로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갈 것이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굳이 얘기하지는 않았다. 기사가 나면 그때부터 햇살이들 최대한 덜 걱정하게 자주 글을 올려야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공항에 도착해서, 강영호 매니저는 습관적으로 짐을 챙겨 체크인하는 곳까지 날 데려다줬다.

가는 내내 직업병이라고 매니저 형을 놀렸는데, 솔직히 요즘 늘 팀으로 다녀버릇하니 혼자 공공장소에 나와 있는 게 낯설긴 했다. 독립심이 너무 떨어지기 전에 막냉이 말대로 혼자 차박도 다녀보고 해야겠다.

강영호 매니저가 돌아간 후, 나는 체크인을 하고 라운지에 잠시 있다가 비행기에 탔다.

매번 비행기 표가 이것밖에 없더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게 더 구차해 보일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승무원이 권하는 샴페인 대신 물을 한 잔 얻어 마시고, 나는 슬라이딩 도어를 닫아 놓은 후 뒤늦게 멤버들에게 연락을 하려고 톡을 열었다.

“어, 뭐야.”

멤버들에게서 엄청나게 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대강 확인해 보니 멤버들이 오늘 숙소에 돌아와 술을 퍼마시면서 속 얘기를 하려던 모양이었다.

단톡방에 대해 더 할 얘기가 있나?

이유를 몰랐을 때야 날 약간은 따돌리는 줄 알고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왜 만들었는지 머리로 이해했으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작업만 하면 된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인데 무슨 대화가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때마침 며칠 나갔다 오면 멤버들도 거기에 대한 건 잊거나, 그냥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남기고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 * *

“멤버분들 더 하실 말씀 없으세요?”

“…….”

“없으시죠?”

“…….”

“그럼 여기까지 하고 슬슬 정리하겠습니다?”

“…….”

TRV 회의실에서 ‘찾아가는 일꾼’의 촬영 전 최종 미팅을 마친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직원들과 가장 가깝게 지내며 언제나 시끄럽게 떠드는 정해원이 없으니 회의 내내 조용해 멤버고 직원들이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눈치였다.

제일 먼저 복도로 튀어 나간 민지호가 말했다.

“빨리 숙소 가자, 해원이 형 심심하겠다.”

그러자 안주원이 말했다.

“빈손으로 가면 좀 그렇지 않아? 우린 좋은 뜻이었어도, 해원이가 마음고생 한 것 같아서 미안한데.”

그러자 멤버들이 아까 직원이 있을 때와 달리 시끌시끌하게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먹을 거 사 갈까?”

“일어난 기념으로 케이크?”

“정해원 단 거 그렇게 안 좋아하는데.”

황새벽이 대꾸하자 박선재가 말했다.

“그렇긴 한데, 해원이 형 은근 누가 챙겨주는 거 좋아하잖아.”

“단순하지, 걔가.”

“형 정도는 아니구.”

“……부정은 못 하겠다.”

그러자 안주원이 말했다.

“해원이 케이크보다 도넛 좋아하니까, 도넛을 사서 쌓고 초 꽂아줄까?”

“꺄, 미대생이다!”

민지호의 반응에 안주원이 웃었다.

“이게 미대랑 관련이 있어?”

“고럼, 고럼.”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정해원에게 톡을 보내던 한효석이 말했다.

“근데 해원이 형 전화도 안 받고 톡도 안 봐요.”

“또 자나 봐.”

“왜 저렇게 많이 자.”

멤버들은 정해원이 또 잠들었다고 확신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려고 소주 대꼬리와 무알코올 맥주를 바리바리 챙겨서 숙소에 돌아가 보니 불이 꺼져 있었다. 이렇게 멀티탭 불 하나 안 보이게 전기 단속을 하고 나가는 사람은 퍼스트라이트 팀을 통틀어 정해원뿐이었다.

“이 새끼 또…….”

황새벽이 중얼거리니까 박선재가 팔을 툭 쳤다. 황새벽이 말했다.

“이 사람이 또 작업실 갔어?”

“거기 비밀번호 바꿔서 못 들어가잖아.”

“이형이 형 작업실.”

“아, 맞다.”

박선재가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우회해 양이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양이형도 정해원이 쉬는 걸로 알고 있어서, 다음에는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정해원은 숙소, 작업실, 회사 외의 이동일 때는 집에 갈 때도 보고를 하고 갔다.

회사에 전화를 건 박선재가 인상을 썼다.

“영국을 간다구요?”

“뭔 소리야?”

그 말에 대꾸한 신지운을 포함한 멤버들이 모두 박선재 쪽을 돌아보았다. 박선재가 황당해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아니, 누가 이렇게 갑자기 영국을…… 네. 해원이 형한테 다시 전화해 볼게요.”

박선재가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사이에 신지운이 다시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다가, 드디어 받자 욕을 참는 표정으로 스피커폰으로 바꾼 후 물었다.

“어디야? 미쳤어?”

-아, 야. 진짜 미안. 아까 누나랑 전화하다가 놀라서…… 급하게 표 구하고 체크인하고 하다가 이제 핸드폰 봤네.

“회사에 전화할 시간은 있고, 우리한테 말할 시간은 없어?”

-야, 그건 진짜 어쩔 수 없잖아, 회사는 알아야지…….

“뭘 어쩔 수 없어. 회사가 중요해, 우리가 중요해?”

-당연히 우리 팀이 중요한데…… 야, 너네도 나 없이 단톡방 만들었잖아.

정해원이 농담조로 한 말에 너무하다고 한마디씩 보태던 멤버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정해원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아무튼 미안해. 갔다가 누나랑 조카 건강한지 확인만 하고 바로 돌아올게. 이틀 뒤에 다시 돌아가는 일정이야. 너희 덕분에 낌에 조카 얼굴 보겠다. 쉬라고 해줘서 고마워.

“형, 진짜 가?”

-어, 민조야? 형 두 밤만 자고 올게.

스마트폰을 비행모드로 전환해 달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들린 정해원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황당한 상태로 숙소가 고요해졌다가, 한효석이 현관에 쌓인 술을 보며 말했다.

“주인공 없는 파티 됐네.”

그 말에 민지호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소파에 가서 털썩 앉으며 말했다.

“심심해할 줄 알았는데, 혼자 잘 다니네.”

예상과 다른 상황에 분위기가 묘해지자, 박선재가 의무감으로 무알코올 맥주 포장을 뜯으며 경쾌하게 말했다.

“형들, 무알코올 맥주는 마셔도 되겠지?”

그러자 안주원이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해보고 말했다.

“안 된대.”

“으잉……. 그럼 나 무알코올 맥주도 내후년에 마실 수 있어?”

“그렇게 됐어. 빠른이 이렇게 서럽다.”

“형아아.”

“으응.”

박선재가 유일하게 마음을 알아주는 안주원에게 들러붙어 징징거리는 사이 황새벽은 먹을 걸 시키고 신지운은 콘서트 굿즈 박스를 뒤져 정해원의 프리미엄 포토를 가져왔다.

그리고 의자를 가져와 거기에 사진을 올려놓으니 한효석이 말했다.

“형, 약간 제사 지내는 것 같지 않아요?”

“뭐 불만이면 지가 여기 있든가.”

그렇게 주인공 없는 파티 준비를 하는 사이에, 민지호가 소파에 웅크려 누워서 핸드폰으로 인천에서 런던까지 비행 시간을 확인하더니 중얼거렸다.

“영국 왜 이렇게 멀어. 가서 두 밤 자도 이동 시간만 하루씩 더 걸리잖아.”

그때, 황새벽이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를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아…… 정해원 없어서 직원분들이 나한테 전화하는 거구나.”

내성적인 멤버 중 하나뿐인 외향형 인간이었기 때문에, 멤버들이 못하겠다고 드러누워 버리는 많은 일을 정해원이 대신하고 있었다. 있을 때도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인식은 했지만, 없으니 그 빈자리가 더더욱 컸다.

황새벽은 그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홍보팀 직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기자 하나가 계속 직원들 찔러보더니 결국 어떻게 알고…… 지금 바로 정정 공지 올리려고 하는데, 해원 씨가 안 계셔서 새벽 씨가 확인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 예. 보내주세요.”

황새벽이 전화를 끊었다.

그사이 핸드폰을 확인한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해원이가 지금 비행기 안이라 다행이네.”

그 말에 멤버들이 일시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퍼스트라이트 해원, 불안 증세로 활동 잠정 중단]

“아, X발.”

이번에는 황새벽이 욕을 해도 아무도 제재하지 않았다.

RUSH로 한창 인지도가 오른 정해원의 활동 중단 기사가 올라오자, 팬들은 물론 RUSH의 시청자들까지 더해져 인터넷이 시끌시끌했다.

[????]

[아, 결국…….]

[한 번쯤 터질 것 같긴 했어…….]

[방송에서는 밝아 보였는데ㅠㅠㅠㅠ]

[TRV가 공지했네 잠깐 가족들 보러 영국 갔대]

[↳수연 작가님 인스타 보니까 곧 출산하신다던데 조카 보러 갔나 봐ㅠㅠㅠㅠ]

[↳다행이다 가서 컨디션 잘 회복하고 왔으면…….]

[↳↳근데 영국 가서 오래 있는 거 아니겠지……?]

[↳↳↳무섭게 왜 그런 얘기해ㅠㅠㅠㅠㅠ]

[↳↳↳조카 보러 갔는데 당연히 금방 오지!!!!!!!]

[↳↳↳↳쉬는 건 다행인데 해외 나갔다니까 괜히 불안하긴 해…….]

[근데 제가 정해원이면 솔직히 지긋지긋해서라도 한국 오기 싫을 듯요ㅎㅎ 악플 도배 되다가 잠잠해질 만할 때 데뷔해서 또 욕먹고 매크로로 욕먹고…….]

[↳매크로 아니어도 아직도 해원이 악플 많아요…….]

[해원이 금방 오겠죠ㅠㅠ? 푹 쉬고 다시 무대 서주겠죠? 갑자기 불안해서ㅠㅠ]

[↳해원이가 햇살이들 없는데 오래 있을리가요ㅎㅎ]

소파에 누워 X버스로 팬들이 걱정하는 댓글을 읽던 민지호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물었다.

“햇살이들 걱정하는데 두 밤 자고 올 거라고 쓸까?”

그 말에 TV를 틀며 소파에 앉은 신지운이 말했다.

“이틀 뒤에 안 올 수도 있으니까 일단 올리지 마.”

“왜? 온댔잖아.”

“가족들이랑 친하잖아. 좀 더 있을 수도 있지.”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던 민지호가 다시 물었다.

“우리 단톡방 때문에 엄청 화나서 아예 오기 싫어하면 어떡해?”

“넌 왜 이렇게 사람이 극단적이냐?”

“생각해 보니까, 멤버들이 나 없이 자기들끼리만 단톡방 만들어서 얘기하면, 아무리 좋은 거여도 실망할 것 같단 말이야. 해원이 형 아직도 무대랑 카메라 무서워하는데, 진짜 멤버들이랑 팬들만 믿고 가는 거였잖아. 엄청 상처 받았으면 어떡해?”

“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 멤버들 걱정하게.”

신지운이 대꾸하고 멤버들 쪽을 보니 다들 민지호의 말에 넘어간 후였다. 박선재가 얼어서 물었다.

“해원이 형 안 오면 어떡해?”

“아, 넘어갈 말이 없어서 민지호 말에 넘어가냐.”

신지운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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