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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45화 (14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5화

나는 서울에서부터 런던에 있는 병원까지, 철저하게 이동계획을 세웠고, 다행히 계획대로 잘 도착했다.

내가 런던행 비행기에 타고 있을 때, 조카인 에블린 노을 맥긴리가 태어났다. 한글 이름은 원래 매형이 햇살이라고 짓고 싶어 했는데, 그럼 외삼촌에게는 조카 이름과 팬클럽 애칭이 겹치게 되어 혼동이 올 것 아닌가, 라고 말해서 누나가 추천한 ‘노을’로 결정되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은 집 정리를 하러 누나 부부네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내가 온다는 걸 부모님과 매형이 서프라이즈로 하는 바람에 누나는 기겁을 했다.

“미쳤나 봐! 여길 왜 와!”

“아니, 나도 놀라서 왔지…….”

“너 스케줄은?”

“기가 막히게 지금 딱 휴가야.”

“그래? 확실해? 자체 휴가 아니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누나는 아직도 내가 어린애인 줄 아는 것 같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매형은 날 보자마자 반가워서 말 그대로 발을 동동 굴렀다. 누나가 말했다.

“토니 아주 신이 났네, 하루 사이에 최애가 둘이 나타나서.”

그 말을 알아듣고 매형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 최애는 허니야.”

“매형 최애라는 말도 알아?”

내 말에 누나가 기가 막혀 하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케이팝 팬인데. 외국어 빨리 배우려면 연애를 하거나 덕질을 하라는데, 쟤는 둘 다잖아. 한국어 너무 잘해, 요즘.”

매형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나는 누나의 상태부터 확인한 후에 매형과 함께 에블린 맥긴리이자, 나에게는 주로 정노을로 불리게 될 조카 쪽으로 이동했다. 모자 동실이라 요람에서 노을이가 자고 있었다.

노을이에 대한 첫인상은 신기함이었다.

누나가 인간 꼬마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놨다는 게, 그 친구가 실존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숨 쉬는 것도 신기하고,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것 하나, 하나가 신기하다. 태어나서 10시간. 나에게는 이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10시간이, 노을이에게는 일생이었다.

“매형, 저 여기서 울면 바보 같죠?”

“절대 아니.”

“진짜 눈물 난다…….”

긴장 상태로 먼 길을 오느라 약간 피곤한 상태였는데, 그 피로가 싹 날아갔다. 나는 누나를 보며 물었다.

“진짜 누나가 만들었어?”

“응, 내가 열심히 만들었어.”

“누나 능력 좋네.”

“여태 몰랐냐?”

농담할 기운이 있는 걸 보니 건강한 것 같지만, 나는 잠깐 병실을 나와 매형에게 물었다.

“누나도 건강한 거 맞죠? 컨디션 물어보는 거 하도 싫어해서 물어보지도 못하겠네.”

“응, 물어보면 안 돼. 화내.”

매형이 큰 문제는 없고, 잘 회복하도록 자기가 딱 달라붙어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진짜로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오후에 누나는 퇴원했고, 노을이와 함께 런던 외곽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여섯 식구가 되어 모여 앉아 미역국을 먹는데, 그 순간이 힐링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노을이를 안아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가진 거 다 주고 싶다. 별거 없긴 한데.”

내 말에 부모님은 웃으시고, 누나가 말했다.

“야, 우리 엄하게 키울 거야. 너도 벌써 그런 생각 하면 안 돼. 단호하게. 어?”

“못할 것 같은데……. 엄마, 아빠 노을이가 뭐 해달라는데 안 해준다고 할 수 있어?”

“안 하지…….”

아버지가 아련하게 대답하자 어머니가 등을 툭 때리며 말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지. 아휴, 정 씨 남자들.”

“맥긴리 남자!”

매형이 자기를 가리키며 말해서 가족들이 웃었다. 노을이의 존재가 꼭 캄캄한 밤에 켠 촛불같이 느껴졌다. 공간이 따듯한 빛으로 가득 찬다.

노을이와 노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그다음 날에는 동네 구경 좀 하라고, 누나 부부가 추천해 주는 근처의 단골 카페를 가서, 모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커피를 마시며,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모자도 안 쓰고, 마스크도 안 쓰고 카페에 나와 앉아 있는 건 국선아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나는 여기에 있으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고, 노을이가 있는 하루하루가 모두 영감이 되었다. 여기 며칠만 더 있으면 일 년 치 작업할 영감을 얻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뱀파이어에 관한 곡을 쓸 거니까, 고성도 한번 가봐야지…….

계획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미뤘다.

* * *

[해원이 형♥ : 미안ㅜㅜ 나 며칠만 더 있을게 노을이가 너무 귀여워서 못 가겠어…….]

[해원이 형♥ : 오늘도 카페 갔는데 너무 좋더라구]

[해원이 형♥ : 사진]

[해원이 형♥ : 날씨가 좀 좋아지면 공원 다녀오려구]

박선재는 정해원이 보낸 사진을 눌러보았다.

평소 사진 찍는 걸 그리 내켜 하지 않아서 포토카드용이나, 팬들에게 보여줄 사진들만 의무감으로 찍던 사람이 조카 사진이며 누나 부부의 아틀리에 사진, 카페, 거리 사진을 다양하게 찍어서 보냈다.

정해원은 오늘로 두 번째, 귀국 일정을 미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쉬다 오라던 멤버들이, 두 번째 귀국 연기에 공황 상태라 답을 못 하고 있으니 박선재가 우선 답을 했다.

[형 사진은 안 찍었어?? 인스타한다며 형 사진 많이 찍어야지!]

[해원이 형♥ : 매형이 찍어준 거 있는데 잠깐만 달라고 할게]

[해원이 형♥ : 사진]

[해원이 형♥ : 인스타그램 만들면 올리려고 하는데 아이디같이 생각해 주라ㅋㅋㅋ]

[지우니 형 : 형 사진 말고 노을이 사진]

[대장님 : 넌 안 궁금해]

[쭈워니 형 : 사진 잘 나왔네 인스타 올리면 햇살이들이 좋아하겠다]

[민조조 : sun1]

[효식이 : 성의없네]

[민조조 : 흥]

정해원이 늦어진다는 말에 삐진 티를 내던 민지호가 잠시 후 다시 톡을 올렸다.

[민조조 : england_ish]

[민조조 : 1_dudrnr]

[민조조 : londoner111]

[해원이 형♥ : ㅜㅜㅜㅜㅜㅜ]

[쭈워니 형 : 아이디에서 분노가 느껴지네]

[지우니 형 : 아무래도 저 형이 영국을 좋아하니까]

[대장님 : 쟤는 영타도 빠르네]

[효식이 : 해원이 형 부탁드릴 게 하나 있는데요]

[해원이 형♥ : 응 뭔데?]

[효식이 : 귀국하시면 야자타임 10분만 주세요]

[민조조 : !!!!!!!!!!!!!!!]

[민조조 : 봐써? 한효식이 야자타임 달래!!!!!!!!!!!!]

[지우니 형 : 효식이 부모님도 놀라실 듯]

[대장님 : 근데 우리도 손해 아닌가]

[신난다ㅋㅋㅋㅋ]

[해원이 형♥ : 꼭 해야 돼…….?]

[쭈워니 형 : 효석이가 야자타임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지우니 형 : 넌 그렇겠지 동생들이 너한테 쌓인 게 없으니까]

[맞아 쭈워니 형은 내가 제일 사랑함]

[해원이 형♥ : ????]

[해원이 형♥ : 나는…….?]

[형은 지금 여기 없잖아]

[민조조 : 맞아!!!!!!!!!!!!!!!!!!!!!]

그렇게 톡을 하다가, 박선재는 숙소를 돌아보았다. 조용한데 어수선했다. 정해원이 합류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 * *

나는 노을이를 한참 관찰하다가 말했다.

“컸어, 일주일 만에.”

혼잣말하는데 노을이가 표정을 이리저리 바꾸더니 눈을 떴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 뜨는 게 힘들어 보였는데, 오늘은 눈을 한 번에 딱 떴다. 천재인 것 같다

아버지는 매형이랑 필요한 걸 사러 좀 멀리 있는 큰 한인마트에 갔고, 집에는 넷이 남아 있었다. 영국인과 살다 보니 습관적으로 차를 마시는 누나가 어머니와 카페인 없는 차를 마시며 말했다.

“나 솔직히 엄마, 아빠 온다고 해서 좀 부담스러웠는데. 안 왔으면 어떻게 했나, 싶어. 몸은 붓지, 한식은 먹고 싶지…….”

“거봐라, 어른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없다니까.”

“그니까. 근데 쟤는 왜 안 가?”

뜨끔하다. 허허.

내가 돌아보며 말했다.

“아, 호텔 비싸다고 잡지 말라며.”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지.”

“알았어, 호텔 가면 되잖아.”

“야, 돈 아깝다고.”

“아니, 진짜 어쩌라는 거야.”

나는 노을이와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노을이가 가지 말래, 자꾸.”

“아니, 노을이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갈게, 가. 이번엔 진짜 갈 거야.”

나는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전화를 좀 하려고 나가려니까 노을이가 어떻게 알고 칭얼거렸다. 나는 누나 눈치를 보며 노을이를 안아 들고 토닥거리며 재웠다. 슬슬 노을이 재우기 프로가 되어가고 있다. 히히.

노을이가 잠든 후, 나는 카페를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일주일 머무는데, 일주일 내내 하루도 안 빼고 비가 왔다.

누나 부부가 단골인 집 근처 카페에는 두 사람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내가 두 번째 왔을 때부터 나보고 혹시 매형이 말하던 케이팝 가수냐고 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나만 들어오면 퍼스트라이트 노래를 틀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님들마다 내가 이 노래 가수라고 설명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얼떨결에 사인을 받아 간 사람도 있었다. 서로 황당한 일이었다.

아무튼 나중에 X이앱하면 햇살이들에게 소소한 에피소드로 말해주려고 적어둔 후, 나는 모처럼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했다. 회사에서 공지를 올렸다는 연락을 받긴 했는데, 예상대로 별의별 기사가 다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해원, 영국행…… 귀국 일정은 미지수]

[셀러브리티들의 불안 증세, 극복 방법은…….]

허허, 언제 또 셀럽이 됐어, 나는.

그나저나 일주일 내내 이런 기사가 올라왔으면 우리 팬들이 걱정 많이 했겠다. 나는 잠깐 X버스에 들어갔다가 흠칫 놀랐다.

[민조 : 해원이 형 금요일에 온대!!!!!!!!!!!!!!!!!!]

[민조 : 해원이 형 금요일에 안 온대…….]

[민조 : 해원이 형 월요일에 온대…….]

처음 미룬 직후부터, 이 솔직한 녀석이 필터 없이 올려버리는 바람에, 팬들도 난리였다.

[해원이 언제와…….?]

[해원아 한국 올 거지?]

[돌아와 해원아ㅠㅠㅠㅠㅠ]

아니 나 조만간 돌아갈 건데……?

나는 뭐라도 생존 신고를 하기 위해서 매형에게 문자를 했다.

[매형! 햇살이들 보여주게 사진 좀 보내주세요]

매형은 요즘 거의 전문 사진사 수준으로 내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노을이 찍는 김에 덤인 것 같다.

사진을 고르는지 좀 시간이 걸리더니, 곧 사진을 한 장씩 보내기 시작했다. 누가 예술가 아니랄까 봐 사진 한 장, 한 장을 정말 신경 써서 근사하게 찍어줬다.

“와…… 우와.”

매형이 찍어준 사진들로만 해도 1년 치 인스타그램은 되겠다. 나는 사진 중에 거리에서 우산을 쓰고 있는 사진을 골랐다. 캬, 인생샷이다, 인생샷.

나는 X버스에 사진을 올리며 생존 신고를 했다.

[해원 : 매형이 찍어줬어요 그리고 저도 햇살이들 보여줄 사진 많이 찍었어요! 잘했죠? 햇살이들 많이 보고 싶어요]

그리고 글을 올리자마자 지금까지 처음 본 속도로 댓글이 달렸다. 내가 잠깐 X버스에 못 들어가는 사이에 햇살이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게 그 숫자로 보였다.

원래는 햇살이들이 사진 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답을 달아줄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진 보니까 더 보고 싶다…….]

[힘들 때 내가 지켜줬어야 됐는데ㅠㅠㅠㅠㅠ 나 그때 뭐한 거야ㅠㅠㅠㅠㅠ]

[힘든 거 알지만 한 번만 더 견디고 돌아와줘…….]

아니, 나 다음 주에 갈 거라니까요, 이 사람들아…….

귀국할 때 민망하겠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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