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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48화 (14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8화

공항에서 내리는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나온 강영호 매니저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요? 갈 때는 짐이 하나도 없더니.”

처음 계획은 이틀이라 진짜 간소하게 챙겨갔는데, 집에 올 때는 이민 가방 두 개를 꽉 채워서 돌아왔다.

프로 기념품 선물러인 누나가 추천하는 것들을 죄다 샀더니 그렇게 됐다.

술을 못 마시고 나는 밥보다 숙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러모로 일등석이 아까웠는데, 수하물 무게 덕에 처음으로 그 덕을 봤다.

강영호 매니저와 둘이서 차에 짐을 꽉꽉 채워 넣고, 우리는 바로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에 도착해서, PD와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장면을 촬영하며 내가 투덜거렸다.

“아, 우리 멤버들 반응 재미없을 것 같은데…… 애들이 예능감이 없어요.”

그러자 PD와 함께 나를 반겨주러 나온 MC 최정민이 말했다.

“시청자분들한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그게 예능감인 거야. 진솔한 거. 내가 보기엔 애들 진솔하게 운다.”

“우리 멤버들 잘 안 울어요.”

“내기할래?”

“뭐 거실 거예요?”

“너 걸고 싶은 거 말해봐. 나는 우리 다음 컴백곡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지금 만들어드릴게요. 또 컴백 해주세요. 제발요.”

“아, 맞다, 너 우리 팬이지…….”

내 빅 블루 팬심이 공인되며, 빅 블루 팬클럽인 스키퍼와 퍼스트라이트 팬클럽 선라이즈는 서로 컴백 주간에 지원을 하는 ‘수평선 동맹’이란 걸 만들었다고, 서치왕 안주원에게 들었다.

빅 블루의 지금 상황을 보면 다음 앨범은 진짜 미친 듯이 빨라도 내년 하반기는 되어야 나올 수 있을 스케줄이라, 최정민이 헛기침하며 말을 바꿨다.

“그럼 다른 거 걸자.”

“저는 뭐, 너무 당연히. 저희 멤버 중 한 명, ‘디데이’ 게스트로 출연시켜 주세요.”

‘디데이’.

최정민이 메인 MC롤을 맡고 있는, OTT의 시즌제 예능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아이돌들이 ‘디데이’ 출연을 꿈꿨다. 최정민이 말했다.

“아니, 너는 질 게임에 그런 걸 거냐.”

“안 울어요, 쟤네. 아, 막냉이랑 민조는 울 수도 있겠다.”

“그럼 세 명. 너 포함 세 명 이상 울면 우리 컴백곡 만들어줘.”

“세 명 미만으로 울면 ‘디데이’ 출연시켜주시구요?”

“잠깐만…… 내가 사실 그럴 힘이 없어.”

최정민이 말하더니 핸드폰을 들어 바로 ‘디데이’팀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반가워 하는 분위기라 최정민이 말했다.

“좋아하네?”

“저희가 라이징이에요.”

내가 대답하면서 히히 웃으니까 최정민이 어이없어하다가 같이 웃었다. 나이 차이가 열 살이 넘게 나는데도 참 편하게 해주는 형이다.

그렇게 내기를 하고,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후 멤버들이 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식사 준비를 하며 마당에 나와 있는 황새벽과 먼저 마주쳤다.

“어!”

얼굴을 가리거나 말거나 바로 나를 알아본 황새벽이 소리치고, 방문이 열리더니 멤버들이 나를 보았다.

민지호는 거의 날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고개도 못 들고 안 오는 줄 알았다고 뭔가 웅얼웅얼거리는데 내용 전달이 거의 되지 않았다.

내가 민지호의 등을 두들겨 달래는 사이에 다른 멤버들도 겹겹이 들러붙었다.

“아, 무겁…… 얘들아. 진정해. 울지 마. 도대체 여기서 울 일이 뭐가 있어?”

민지호는 펑펑 울었으니 남은 자리가 하나인데, 모든 멤버 눈가가 빨갰다. 나는 급하게 멤버들을 안 울릴 방법을 생각했다.

“간식 먹자. 간식.”

“안 먹어도 돼…….”

민지호가 말하니까 황새벽이 결국 눈물을 닦으려 말했다.

“민지호가 먹는 걸 마다하네.”

그 말에 박선재가 같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요즘 민조 1.5인분밖에 못 먹어. 입맛이 없대.”

그러자 안주원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호가 2인분도 못 먹으면 진짜 심각한 거지. 내가 신경 써줬어야 하는데…….”

너네 이게 안 웃겨? 이게 슬퍼? 왜 점점 더 슬퍼하는 건데?

틀렸다. 절대 안 울 것 같던 한효석과 신지운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디데이’가 멀어진다……. 흑흑.

나는 그냥 체념하고, 나를 반겨주는 멤버들을 마주 안았다.

그래도 이렇게 울면서 반겨주니까 솔직히, 기분이 좋긴 하다.

* * *

황새벽이 말했다.

“얘네 진짜 오늘 역대급으로 먹었어. 이번엔 나도 놀랍더라.”

“……이게 사람이냐?”

나는 황새벽과 함께 음식을 준비한 김수경이 흡족하게 찍은 사진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멤버들이 먹어 치운 음식들을 먹기 전, 먹은 후로 나눠서 찍었는데 거의 마트 하나를 먹어치운 것 같다.

황새벽이 왠지 뿌듯해하며 말했다.

“수경이 형 이제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 퍼스트라이트래.”

“잘 먹어서?”

“어.”

잘 먹어서 팬…… 뭐, 어떻게든 좋아해 주시면 좋지…….

안 그래도 식사에 집중하느라 간식이 모자랐는데, 내가 일등석 수하물 기준에 꽉꽉 채워서 사온 게 대부분 초콜릿을 포함한 간식이라 멤버들은 물론이고 촬영팀도 나눠줄 수 있었다.

회사 사람들 것 빼고도 숙소에 놓고 먹으려고 박스로 사왔는데, 어차피 숙소에 놔둬봤자 하루 컷이니까 여기서 나눠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보였다.

저녁 촬영까지 다 끝나고, 나는 멤버들과 차에 짐을 실었다. 마지막까지 뒷정리를 하던 김수경이 우리를 힐끔 보더니 황새벽의 등을 툭툭 쳤다.

“고생이 많다. 체력이 바닥이 안 나네, 쟤네는.”

황새벽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서 속초까지 40분이면 갈 수 있는데 바다를 안 보고 가는 게 말이 되냐는 멤버들의 아우성에 별수 없이 따라나서는 길이었다. 박선재가 달래며 말했다.

“혀엉, 그래도 리더 없이 어떻게 가, 우리가.”

“해원이 있잖아…….”

“해원이 형은 리더가 아니잖아.”

박선재의 말에 나도 덧붙였다.

“맞아, 넌 리더고, 난 내비야.”

“뭔 말이야.”

호시탐탐 내 손에 차키를 노리던 신지운이 표정을 꾸기며 말했다. 나는 슬쩍 튀어나오는 신지운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형들끼리 그런 게 있어.”

“해원아.”

안주원이 불러서 돌아보니까,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 성격 알지? 안전운전할 거야.”

“하긴.”

안주원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신지운이 정색했다.

“형, 이미지에 속지 마. 쟤보단 내가 안전운전해.”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으니까 황새벽이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간다. 운전이 하고 싶냐, 너네는? 안 쉬고 싶어?”

“쉬고 싶은데, 운전 재밌어.”

“맞아, 재밌어.”

신지운의 말에 안주원이 맞장구쳤다.

“둘이 가위바위보 해. 이긴 사람이 갈 때 운전하고, 올 땐 너네 졸 수도 있으니까 내가 할 거야.”

“삼세판.”

“아, 단판이지.”

둘이 또 한참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묵찌빠로 결정해 안주원이 운전을 하기로 했다. 다행이다. 멤버들을 보니 나만 안심하는 것 같지 않다.

지난주는 덥다고 난리였는데, 일주일 만에 밤공기가 선선했다. 속초로 향하는 차안, 안주원은 생각보다 운전을 잘했고 조수석에 앉은 나는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바다로 향하며 민지호가 말했다.

“근데 형 X이앱 켤 때까지 쉬기로 했잖아. 아직 X이앱 못했으니까 내일 방송 못 하겠네.”

“…….”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내가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방송은 하자. 대신 곡작업은 안 할게.”

그러자 황새벽이 핀잔했다.

“너 런던에서도 작업했잖아.”

“안 했어어.”

내 말에 신지운이 말했다.

“백퍼 일했네.”

“네가 어떻게 알아. 봤어?”

그러자 한효석이 지적했다.

“형 불리하면 말꼬리 늘어나잖아요.”

“…….”

이 습관 좀 어떻게 고쳐봐야겠다.

우리는 곧 바다에 도착했다.

속초의 여름은 이미 한풀 꺾여 있었고,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가 되어 있었다. 파도 소리가 듣기 좋았다.

촬영으로 몇 번 바다에 올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멤버들이랑 차 끌고 와본 건 처음이었다. 오기 귀찮아하던 황새벽조차 바다를 보더니 말했다.

“……좋긴 하다.”

“그치?”

나는 흐흐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손짓했다.

“모여봐, 사진 찍자.”

“쪼아.”

민지호가 히히 웃으며 달려왔다. 짐을 쌓고 그 위에 핸드폰을 기울여 놓은 후에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우리는 우선 어딜 가든 사진부터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워낙 낯가리는 놈들이라 처음에는 장소에도 낯을 가리더니, 금방 신이 나서 히히거리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멤버들 뛰어다니는 걸 보며 낄낄거리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렇게 먹고도 출출한지 간식을 찾으려고 내 가방 안을 보던 신지운이 뭔가를 꺼내 주머니에 넣는 게 보였다.

나는 등을 툭 치고 물었다.

“뭘 그렇게 몰래 챙겨?”

“환불 영수증.”

“…….”

공항에 도착해서, 나는 바로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잠시 맴돌다가 방콕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바로 정신 차리고 환불을 받았는데 영수증을 가방에 던져둔 모양이었다.

“왔으니까 됐어.”

신지운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다시 멤버들과 놀러 달려갔다.

반가워하는 멤버들을 보니 이제 내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신지운이 먼저 발견한 데다, 웬일로 어른스럽게 모른 척해줘서 다행이었다.

그때 황새벽이 말하는 게 들렸다.

“한 번 나가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아예 정해원 여권을 뺏자.”

“근데 그랬다가 더 엇나가면 어떡해?”

“형이 애냐. 엇나갈 걱정을 하게.”

“일단 돌아오긴 했으니까,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자.”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떠들어서 소외감을 느낀 내가 말했다.

“야, 나도 껴줘.”

“형은 좀 빠져.”

“야이씨.”

나는 날 떠민 신지운의 등을 퍽 쳤다. 신지운은 무시하고 멤버들에게 말했다.

“뭘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

“해원이 형, 런던이랑 우리가 물에 동시에 빠졌어. 누구 구할 거야?”

민지호가 날 보며 묻자 한효석이 말했다.

“런던이 어떻게 물에 빠져.”

“야, 그렇게 치면 우린 물에 왜 빠져.”

어이없는 걸로 또 싸운다. 이래야 우리 팀이긴 하지…….

아까는 멤버들이 생각보다 너무 서러워해서 좀 마음이 무거웠는데, 멤버들이 시끌시끌 떠드는 걸 보니까 점점 더 마음은 편해졌다.

그사이 발로 모래사장 위에 퍼스트라이트 로고를 그린 안주원이 멤버들에게 말했다.

“우리 바다 온 김에 소원 빌고 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민지호가 말했다.

“빌보드 1위!”

“……진짜 극단적이다.”

“민지호가 그렇지.”

멤버들이 부담스러운 마음에 회피하려 하니까 민지호가 정색하고 말했다.

“해원이 형 왔으니까 할 수 있어. 빌보드 1위!”

욕망에 솔직해서 좋긴 하다. 현실에 충실한 멤버도 있어야 하겠지만, 저렇게 꿈만 보고 달리는 멤버도 있어야 균형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못 할 게 뭐야.”

내가 편 들어주니까 민지호가 히히 웃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세우든, 그걸 달성하려면 음악을 하고, 무대에 서야 한다. 이렇게 좋은 직업도 또 없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게 된 게, 저 놈들과 한 팀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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