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49화 (14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49화

우리는 바닷가에서 좀 더 놀다가, 다시 숙소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뒷좌석에 앉은 멤버들은 죄다 잠들었고, 옆자리에 앉은 안주원만 어떻게든 안 자려고 눈을 뜨고 있었다.

“야, 그냥 자.”

“그건 너무 매너없지.”

“오늘도 일 엄청 했다며, 나 내 돈 주고 산 일등석에서 자서 안 졸려.”

내 말에 안주원이 흐흐 웃었다. 나도 따라서 웃다가 말을 이었다.

“남은 표가 그거밖에 없더라.”

“아, 어쩐지. 너 일등석 탔다고 할 때 우리 다 그 얘기 했어. 네가 원래 민망해서 일등석 못 탈 사람인데.”

멤버들이 날 너무 잘 알게 된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서, 우리는 이불을 다닥다닥 붙여 놓고 드러누웠다. 바로 잠들 줄 알았는데, 불을 끄고 또 한마디씩 던지며 낄낄거리다 새벽에서야 잠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얘네들이랑 있을 때 제일 많이 웃게 되는 것 하나는 분명한 것 같다.

* * *

다음 날은 거의 다 지어진 집에 창호를 달고, 내부에 미장 작업을 했다.

3차 촬영 때 잠깐 와서 인테리어 끝난 집에 소품 정리를 하면 찾아가는 일꾼 촬영은 끝이었다.

MC 최정민이 집을 보며 말했다.

“와, 어떻게 될까 싶었는데…… 집을 지었네, 우리가.”

한 게 없는, 아니, 오히려 한 게 없어서 나는 집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대형 프로젝트였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나저나…….

나는 불쌍한 표정으로 최정민에게 말했다.

“형. 내기 또 하실래요…….”

“뭐, 너 졌잖아. 야, 세 명은 무슨. 죄다 울더만.”

“한 명만요.”

내가 구질구질하게 손가락을 하나 펴서 말하자 최정민이 말했다.

“한 명 누구. 너도 알잖아. 너 없으면 쟤네 하나 가지고는 방송 안 돼. 애들이 말을 안 하잖아.”

“저희 막내가 진짜 척척박사예요.”

내 추천에 최정민이 흐흐 웃더니 대꾸했다.

“음, 하긴 선재가 제일 야무지더라. 근데 너네 회사도 어지간한가 보다. 네가 그렇게 영업하러 다니는 거 보니까.”

그 말에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대답을 시작하면 욕이 나올 것 같다…….

어느 정도 촬영이 끝났을 때, 내가 한국에 온 걸 어떻게 알았는지 VVV엔터 강효준 A&R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아, 한 달 쉬라면서요. 두 주밖에 안 됐는데.”

-일 시키려고 전화한 거 아니야.

“그래요?”

-카일룸 애들…… 우석이한테 전화 좀 해줘. 데뷔가 코앞인데 프로듀서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하니까 넋이 나갔어.

“그럼 회사 한번 놀러 갈게요.”

-오지 마. 여기 오면 못 쉬어. 아, 그리고 우리 애들 뮤직비디오 찍은 OIN 스튜디오 있잖아, 거기 홍 감독님이 네 솔로 자꾸 나한테 물어보는데. TRV에서 네 솔로 내줄 분위기야?

안 내줄 것 같다. 솔직히.

뮤직비디오까지 찍으면 이익은커녕 손해 볼 가능성이 큰데, 조용하긴 해도 날 끔찍하게 싫어하는 임원진이 해줄 리가 없다.

“이제 물어보려구요.”

그렇게 확신해도, 남의 회사 사람에게 일일이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얼버무려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 * *

8월 11일 밤.

TRV 304호실에 돌아와 정해원이 인스타그램을 계정을 만들고 있으니 신지운이 옆에서 물었다.

“아이디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러자 정해원이 ‘2sun1_shine’이라고 적은 아이디를 가리키며 말했다.

“2가 영어로 ‘투’잖아? 투 썬샤인. 햇살이들에게.”

“……아저씨야?”

그 말에 정해원이 오히려 반가워하며 말했다.

“나 이제 삼촌이다?”

“어이구, 좋으시겠어.”

“좋더라.”

힘들어 보이던 시기에 조카가 태어나서 여러모로 다행이라고 신지운은 생각했다.

그 조카를 보느라 한국에 안 올 뻔했다는 위험성은 있었지만, 정해원은 영국으로 가기 전보다 정신과 몸의 컨디션이 회복되어 있었다. 알차게 쉬고 온 모양이었다.

정해원은 멤버들과 TRV 직원들의 조언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비공개 설정을 해둔 후, 겨우 돌려받은 노트북으로 매형이 보내준 사진을 살폈다.

“이 사진 어때.”

그렇게 프로페셔널한 사진 중에 고른다는 게 영 형편없었다.

정해원이 보여준 노트북 화면에 관심을 가지고 봐주던 박선재가 말했다.

“보내준 사진 중에 제일 별론데.”

“잘 나왔잖아.”

“참나, 이 형 인스타그램 모르네.”

매형이 죄다 인스타풍으로 찍어줬는데 그중에서 제일 안 인스타그램스러운 걸 골랐다. 정면을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누가 봐도 잘못 찍은 컷이었다.

박선재는 정해원이 여전히 본인의 인상을 마음에 안 들어 해, 무조건 표정이 밝아 보이는 사진을 골랐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해원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눈에 잘 나온 사진을 골랐다.

“형, 날 믿어줘. 이게 인스타그램 느낌이란 말이야.”

“그런 거야?”

정해원은 영 자신 없는 표정으로 자기 사진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우리 막냉이가 그렇다는데.”

그러더니 더 고민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계정을 만들어 놓고, 정해원은 반응을 확인하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나 잠깐 브삼 좀 갔다올게.”

그러자 304호실 한쪽에서 스트레칭 중이던 한효석이 말했다.

“형, 이따가 저녁에 회의해요.”

“응, 그래.”

“그리고 야자타임도 주세요.”

“……어후, 괜히 무섭네.”

* * *

저녁에 숙소에 돌아가면 한효석이 무지하게 갈구려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는 VVV엔터로 향했다.

강효준이 회사에 오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차우석에게 잔소리도 할 겸 잠깐 가볼 생각이었다.

VVV엔터에 도착해서 연습실 쪽으로 가보니 카일룸 멤버들이 연습 중이었다.

문에 달린 작은 유리창 너머로 연습 장면을 보고 있는데, 내가 온 걸 알았는지 강효준이 나타났다.

“오지 말라니까.”

“형 나중에 자식들 교육 잘 시킬 것 같아요. 형이 일하지 말라고 하니까 엄청 일하고 싶어지더라구요.”

“난 진짜로 일하지 말라고 한 거야.”

강효준의 말을 건성으로 넘기고, 나는 문 안을 바라보았다.

데뷔까지 남은 일정이 3주.

기다리는 하루, 하루가 길게 느껴지려나. 사실 나도 이렇게 일반적인 루트로 데뷔한 게 아닌지라 어떤 감정인지 완벽하게는 모르겠다.

나는 문밖에서 멤버들의 안무를 살피다가 강효준에게 초콜릿 한 봉지를 건네줬다.

“기념품 사 온 건데 드실래요?”

“응.”

“마시지 말고 씹어서 드세요.”

“씹어서 먹는 거야.”

강효준은 말했지만, 한 봉지를 뜯어서 입에 넣는 모습이 여전히 하마 같았다. 대단하다, 진짜. 멀쩡한 얼굴로, 음식 먹기 묘기를 부린다.

그때 내가 온 걸 알았는지 차우석이 제일 먼저 달려나왔다.

“형!”

“누가 나오래, 연습해, 인마.”

“에이, 인사하러 나왔죠.”

“연습에 집중해야지, 딴생각을 했구만?”

내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역시 차우석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진심으로 저 속편함이 부럽다.

나는 카일룸 멤버들 몫으로 사 온 간식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컴백 진짜 얼마 안 남았지? 어때. 떨려?”

“아뇨? 잘할 거라서 별로 안 떨려요.”

하. 부럽다. 이 뻔뻔함도…….

차우석이 말을 이었다.

“어, 형 아까 인스타 만드셨죠?”

“응.”

“팔로우할게요.”

“하지 마. 멤버들만 해.”

“형, 저희 멤버들 외에 딱 한 명 제가 팔로우해도 말 나오지 않는 게 형이잖아요. 우리 피디님이니까.”

번거롭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내가 대답했다.

“야, 그럼 내가 골치 아파지잖아.”

워낙 누가 누굴 팔로우하고, 이런 문제로 말이 잘 나오다 보니 나도 딱 우리 멤버들만 팔로우를 해놨다. 더는 늘릴 생각이 없었다.

뒤에서 강효준이 말했다.

“온 김에 데뷔 선배로서 한마디 해줘.”

“저 이미 잔소리 엄청 했는데.”

“좀 꼰대 같은 말 있잖아. 쟤넨 너무 꼰대 같은 소릴 안 들었어. 좀 들어야 돼.”

“그러게 누가 그렇게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우래요. 제가 잘못 생각했네. 형은 자식 교육 남한테 맡기세요. 어차피 돈도 많은데.”

내가 시비거는 걸 강효준은 그냥 흐흐 웃어넘겼다. 인정하는 것 같다.

나는 카일룸 멤버들에게 가져온 간식을 건네주고, 무슨 말을 해줄까를 고민했다. 사실 해줄 말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까지 잔소리가 많았는데……. 이제 데뷔하면, 동료니까 잔소리 줄일게.”

내 말에 리더인 도윤이 정색하며 말했다.

“선배님, 계속 잔소리해 주시면 안 돼요? 해주셔야 해요.”

도윤이 저렇게 다급해 보인 건 처음이다.

“형이 저 대신에 쓴소리해 주셔서 좋았거든요. 애들 제 말 안 들어요.”

“이제 도윤 씨가 해야죠.”

“……얘들아. 이제 내 말 좀 들어주겠니.”

도윤이 지친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니 우리 리더가 생각나서 좀 웃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뭐……. 녹음할 땐 계속 잔소리할 거고, 일단…… 재미있을 거야. 무대.”

내 말에 멤버들이 힐끔 날 봤다. 나는 말을 이었다.

“무대를 하면서 팬들과 교감하고…… 아, 이 안무 좋아하는구나, 이런 보컬 좋아하는구나, 이 노래가 의미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 팬들이 좋아해 줄 때. 진짜 짜릿할 거야.”

“…….”

“재미있을 거야, 데뷔 무대. 너희 이제 좀 잘한다.”

내 말에 멤버들이 별 대답이 없더니 하나씩 일어났다. 도윤이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보실래요?”

“그래도 돼요?”

“네.”

동갑인 프로듀서를 앞에 두고, 자기가 먼저 처음부터 연습한 걸 보여주겠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마 나는 저 동갑인 멤버들과 한동안 불편하게 지내겠지만, 그 거리감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또 다른 불편함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카일룸이 타이틀 곡, ‘waterway’를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보다 훨씬 더 동작이 유려해져 있었다. 뺀질이를 포함해, 멤버들 모두 많이 연습했다는 게 느껴졌다.

잘될 것 같다. 그건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 * *

강효준은 열린 문 앞에 서서, 연습실 안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해원만 보면 표정이 구겨지던 카일룸의 멤버들이, 이제는 정해원에게 가장 많이 의지했다.

아마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도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가끔 보면 정해원은 본인이 언젠가는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깽판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무대를 하면서 팬들과 교감하고…… 아, 이 안무 좋아하는구나, 이런 보컬 좋아하는구나, 이 노래가 의미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 팬들이 좋아해 줄 때. 진짜 짜릿할 거야.”

누구라도, 그 말을 하는 정해원이 무대를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재미있을 거야, 데뷔 무대. 너희 이제 좀 잘한다.”

그 들뜬 목소리와 표정을 보고 있으니, A&R인 강효준조차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원은 음악에 관한 것만큼, 무대에 있어서도 깐깐했기 때문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디테일한 부분을 멤버들과 상의해 주었다.

엔터계에서 어느 정도는 자리를 잡고 싶다고 생각하는 강효준에게, 정해원처럼 모든 작업을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도 없었다.

잠시 후 정해원이 연습실을 나와 강효준에게 말했다.

“밥 먹었어도 또 드실 거죠? 밥 사주세요.”

“비싼 거?”

“에이, 당연하죠. 형 부자잖아요.”

정해원이 말하며 히히 웃고 밥집으로 향했다. 강효준은 벌써부터 카일룸 프로듀서로서의 정해원의 계약이 종료되는 시기를 골치 아파하고 있었다.

카일룸 프로듀서로서의 정해원은 카일룸의 팬들에게도 카일룸이라는 팀의 중요한 컨셉 중 하나였다.

어떻게든, VVV엔터에 정해원이 있는 퍼스트라이트를 붙잡고 싶었지만, VMC에 대한 정해원의 심한 적대감이 너무 컸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