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50화
밥을 마시며, 강효준 A&R이 이상한 제안을 했다. 솔로 앨범에 관한 것이었다.
“TRV가 제대로 안 해주면, 우리가 준비해 줄게. 법적인 것도 우리가 알아서 하고. 어차피 너 TRV랑 재계약할 때 팀 활동만 계약했잖아. 개인 활동 관련된 건, 어떻게 틈이 있을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제 솔로, 이익 안 날걸요?”
“날걸.”
“저 혼자하는데, 거기 뮤직비디오까지 찍으면 무슨 수익이 나요. 적자가 안 나면 다행이지.”
내가 어이없어서 말하니까 강효준이 대꾸했다.
“너 혼자여도 난다니까.”
“제가 뭘 만들 줄 알구요.”
“네가 뭘 만들든지 대충은 안 할 거 아냐……. 근데 어차피, 수익이 나더라도 VMC에 수익 가는 거 싫다고 할 거지?”
“혹시라도 나면, 당연히 싫죠.”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너 은근히 피곤한 스타일이다.”
“은근히요? 저 그냥 피곤한 스타일인데.”
내 말에 강효준이 혀를 차더니 냉면 그릇을 비웠다. 오늘은 평양냉면에 어복쟁반을 시켰다. 평양냉면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어복쟁반은 비싸고 맛있었다. 히히.
강효준이 냉면 그릇을 싹 비우고, 한 그릇을 더 주문하며 말했다.
“VVV엔터에서 본부라고 부르는 게, 사실 레이블이잖아. 어차피 4본부 지분 다 내가 가지고 있어서, 수익 나도 내가 가져가. 그것도 싫으면 네 솔로는 기부해줄게.”
“……그렇게까지 해요?”
“4본부에 그만큼 네가 필요하다는 거지.”
“음…….”
내가 대답을 안 하니까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엔터를 하나 사거나, 네 회사 차리거나, 4본부 오거나. 셋 다 아니고 딴 회사 가면 나랑 척지는 거야. 그건 알지?”
“알겠어요.”
“그래.”
다행히 강효준은 나를 더 추궁하지 않고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사실 인간은 원래 3인분을 먹는게 정상인 건가? 아니, 그럼 3인분이 1인분이어야지? 그럼 내 주위의 놈들이 비인간적으로 많이 먹는 건가?
나도 진짜 배고플 땐 2인분까지도 먹을 때가 있는데, 주변이 워낙 대식가들이라 소식가 취급을 받고 있다.
나는 냉면을 마저 먹으며 힐끔 강효준을 봤다.
지금은 애들 분위기 하나 못 잡고 쩔쩔매는 하마에 불과하지만, 척져서 좋을 게 없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다. 오히려 VMC에 있는 날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더. 그 사람들은 속이 빤하기라도 하지, 강효준은 그렇지도 않다.
적당히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나는 다시 TRV로 향했다.
그리고 TRV의 A&R팀으로 가, 영국에서 어느 정도 틀을 잡은 ‘프루티’를 들려주었다. 직원들이 음악을 듣고 나서, A&R팀 팀장, 박선혜가 나에게 말했다.
“솔로로 음원을 준비하시는 거죠?”
“네.”
그리고 박선혜 팀장을 포함한 나머지 A&R들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말했다.
“……회사에서 저 안 좋아해서 좀 그렇죠?”
그러자 옆에서 박건훈 A&R이 말했다.
“곡은 좋은데. 될 것 같은데, 이거. 아, 회사에서 허락을 해주실지를 모르겠어요…….”
“주원이는요? 주원이는 내주실 거죠?”
혹시 나 때문에 안주원까지 피해를 볼까 봐 걱정돼서 묻자 박건훈 A&R이 말했다.
“주원 씨 건, 다들 호의적이세요. 조만간 픽스 될 것 같아요.”
“다행이다…….”
내 거야 뭐. TRV와 계약 끝나고 내도 되니까.
내가 말했다.
“그냥, 뮤직비디오 감독님한테 신세 진 게 있어서 여쭤본 거예요. 부담가지실 필요 없어요. 뭐, 수록곡으로 넣어도 되고.”
“안 돼요.”
박선혜 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거, 수록곡으로 넣자고 하면 위에서 해원 씨 솔로곡도 못하게 해요. 이거 완전 해원 씨 거잖아요.”
회사는 그지같지만, 다행히 내 편이 많다.
우리는 안주원의 솔로곡과 내가 가져온 데모에 대한 회의를 좀 더 이어갔다.
* * *
숙소에 돌아가 보니 멤버들이 벌써 거하게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려놓은 상 앞에 앉아 내가 물었다.
“나 쫄리는데, 소주 한 잔만 마실까?”
“자, 형 거.”
박선재가 나에게 무알콜 맥주를 내줬다. 내가 우는 시늉을 하니 박선재가 말을 이었다.
“형의 전두엽을 지켜야지.”
“맞아, 내 전두엽…….”
지켜야지…….
나는 생각하며 별수 없이 무알콜 맥주를 뜯었다.
우리는 둘러앉았고, 비장하게 야자타임을 시작했다. 한효석이 말했다.
“해원이 형……. 해원이는 마지막에 하고. 지운아.”
“네, 형? 저부터요?”
신지운이 과하게 공손하게 말하자 한효석이 할 말이 너무 많아 하기 힘든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박선재가 옆에서 대신 말했다.
“드라마 촬영장에 놓고 온 버르장머리 좀 가지고 집에 와!”
“제가 과몰입형 배우여가지구요, 형.”
“그리고 밤에 나한테 불 꺼달라고 부르지 좀 마!”
“안 꺼주시잖아요.”
“부르지도 마!”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에 멤버들이 낄낄거렸다. 민지호가 안주원에게 말했다.
“쭈원이는 내가 사랑해!”
“저도요.”
“꺄.”
평소 동생이고 친구고 다 잘 챙기고 잘해주는 안주원은 이 순간에 걱정이 없어 보였다. 하, 부럽다.
그리고 한효석이 황새벽에게 말했다.
“새벽아, 오늘도 피곤하지?”
“아, 쪼금요…….”
“형이 새로 태어나게 해줄게. 운동하자.”
“운동도 운동인데, 같이 있기 어색해요…….”
“어색할게 뭐가 있어. 어차피 운동할 때 필요한 소리는 숫자 세는 소리 뿐인데.”
“……진짜 형이랑은 절대 안 맞을 것 같네요.”
쟤네 둘은 여전히 친해지기 힘들겠다.
멤버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야자타임이 지나가고, 한효석이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해원아.”
“넵.”
“너는…… 고생이 많아.”
“…….”
예상 못 한 말이다. 내가 멈칫하는데 민지호가 나한테 들러붙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구오구, 우리 기특한 프로듀서.”
“……뭐 하세요?”
“칭찬! 왜, 형이 칭찬하는데 불만 있어?”
“불만 절대 없죠.”
박선재가 날 보더니 말했다.
“영국에 안 눌러 앉아줘서 고마워.”
“…….”
“진짜로, 고마워. 알지? 정해원이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이잖아.”
“맞아!”
쫄아 있었는데, 형처럼 칭찬해 주려고 야자타임을 요청했나 보다. 괜히 찡했다. 박선재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해원아, 제일 형한테 우유 따라 줘봐 봐.”
“어휴, 예. 그럼요, 그럼요.”
“한 번씩만 말해.”
“네에.”
나는 제법 꼰대질하는, 술 마시려면 아직도 내후년이 되어야 하는 막내가 귀여워서 낄낄거리며 우유를 잔에 따라줬다.
그러자 신지운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들, 이러시면 저만 손해잖아요?”
“저랑요.”
황새벽이 억울하고 피곤해하며 덧붙였다. 내가 낄낄거리니까 신지운이 나에게 말했다.
“너 때문에 나만 욕먹고 있어.”
“죄송해요. 그러게, 평소에 잘 하시지.”
“아니, 나 잘 하지 않아? 이거보다 더 잘하라고 하면 엇나갑니다?”
그 말에 막내즈가 다급하게 말했다.
“안 돼! 지운이 잘하고 있어!”
“더 바라지도 않아. 이대로만. 제발. 쭉.”
“망나니로 돌아가지 마…….”
그렇게 이야기하며 야자타임이 끝났다. 시계를 힐끔 보더니 민지호가 나에게 말했다.
“형, 나 좀만 더 형네 형 하면 안 돼? 칭찬 많이 해줄게.”
“동생으로 칭찬해 주면 안 돼?”
“응. 뭔가 부족해.”
“알았어. 좀 더 해.”
“5분!”
이상하게, 이 이상한 놈들이 좀 감동적이었다. 야자타임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원래도 형들과 동생 사이에 별로 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있던 것도 상당히 무너졌다. 그리고 중간부터는 한효석의 잔소리 타임이 됐다.
“새벽이는 체력 관리 좀 하고, 주원이는 자신감 좀 가지고, 지운이랑 더불어 매일 맥주 한 캔씩 마시는 습관 아주 안 좋아. 그리고 해원아. 해원아, 쫌.”
아무래도 효식이는 잔소리가 하고 싶어서 야자타임을 요청한 것 같다.
“커피랑 에너지드링크 좀 그만 마셔. 간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네에…….”
“그리고 이제 뒤에서 우리끼리 단톡방 만들거나, 걱정 안 할 테니까, 너도 힘든 거 우리한테 다 말해줘.”
들어보니 내가 단톡방 때문에 소외감을 느껴서 영국으로 떠난 줄 아는 것 같다. 아니, 지들이 억지로 휴가 줘서 낌에 가족들 보고 온 건데…….
나는 억울했지만, 멤버들이 확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차마 더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실컷 웃고 떠들고 나서, 나는 목욕을 하고 나와서 핸드폰을 테이블에 놓고 앉았다.
이제 푹 쉬고 왔으니, X이앱을 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이름 없이 켜볼 생각이었다.
나는 제목을 적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X이앱을 켜기까지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 * *
정해원이 불안 증세를 보인다는 기사가 나간 이후, regular_1228, 이재희는 하루하루가 묘하게 처지는 기분이었다.
평소 정해원의 불안한 상태를 아는 팬들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실제로 일어나니 그런 게 다 소용이 없었다.
왜 국선아 때 좀 더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까. 이재희는 생각하며 울적하게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국에서 돌아오겠다는 일정이 자꾸만 미뤄진 후에는 더이상 정해원의 행방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 왔는지, 아직도 영국인지…….
오늘 낮에 인스타그램을 열고 사진도 한 장 올려주기는 했지만, 팬들은 정해원이 본인 사진에 달린 댓글을 읽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긴 팬만 있는 게 아니니까. 정해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었다.
그걸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는 건, 정말 팬들에게 자신을 더 많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다른 햇살이가 아이디를 해석한 걸 봤는데, 정말 햇살이들에게 보내는 선물 그 자체였다.
“우리 애가 이렇게 아이돌인데…….”
이재희가 맥주 캔을 따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햇살이들 안녕!]
안 그래도 울적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느낌표가 있는 걸 보니 지호 같기도 하고, 느낌표가 하나인 걸 보니 선재일 수도 있겠고…….
이재희가 기대감을 느끼며 X이앱을 켰을 때,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 보였다.
정해원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정해원은 뭔가 말하려다, 물러났다. 아마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읽고 있는 듯했다. 채팅창은 말 그대로 울음바다였다.
[해원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힘들면 아무 말도 안 해도 돼! 그냥 와줘서 고마워ㅠㅠㅠㅠ]
[보고 싶었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 채팅창을 눈에 담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다.
-햇살이들 안녕.
[안녕!!!!!!!!]
[해원이도 안녕!!!!!!!!!!]
[오빠 한국 날씨는 어떻습니까?]
[영어로도 인사해주세요]
[사랑해요]
-보고 싶었어요. 엄청, 엄청.
그렇게 말하더니 간만의 방송이 민망한지 웃었다. 그리고 또 한동안 말없이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잡해 보이던 표정이 이내 안도로 바뀌었다.
이재희는 바로 자신의 계정으로 들어갔고, 해시태그 하나를 걸었다. 그리고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빠르게, 태그가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갔다.
[#내가너를만날때_세상은맑은날_해원아_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