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52화
정해원의 말에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강효준이 입을 열었다.
“우선, 네가 거기 도움이 될 정도로 거물은 아니고.”
“……농담이었어요.”
“두 번째로 혹시 가능하다고 해도 내가 VMC 실세가 되려면 15년은 걸릴걸.”
“왜 이렇게 현실적이에요? 재미없게.”
“이거 농담이었어?”
“그건 아닌데. 너무 현실적이잖아요.”
“덜 현실적인 건 뭔데.”
그러자 정해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되물었다.
“클라루스 선배님들 재계약 언제예요?”
“…….”
“본부는 레이블이라면서요. VMC 레이블들끼리 경쟁 치열하지 않아요?”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지름길이었다.
그리고 어찌 됐든 VMC 사람이던 강효준에게는 떠오르지 않던 배신이었다.
국내외 상관없이, 명실상부 최고의 아이돌 클라루스를 4본부로 모셔오는 것.
그 과정은 철조망으로 된 길이겠지만 거길 건너고도 살아남기만 한다면…….
잠시 생각하던 강효준이 말했다.
“2년 남았어. 재계약.”
“네.”
“클라루스 멤버들이 고민이 많아. 내년 초면 막내까지 제대하잖아.”
그 말에 정해원이 흐흐 웃었다. 그리고 거기에 관한 대화는 더 할 생각이 없는지, 길 쪽을 내려다보며 말을 돌렸다.
“전 내려가서 부모님 보여드릴 사진 좀 찍고, 택시 타고 갈게요.”
“너 혼자?”
“한 장 찍고 바로 갈 건데요, 뭐.”
“아, 너 인터넷 안 하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RUSH’ 이후, 올림픽 동안 사방에서 정해원이 작곡하고 대가수들이 녹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예능 직후에도 그랬지만, 전국민의 관심사였던 올림픽과 활동 중단에 대한 기사들이 맞물리며 정해원의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8월 한 달 동안 VMC에서 확인한 셀러브리티 관련 어느 리서치를 봐도, 정해원의 선호도가 폭등했다.
퍼스트라이트의 인지도를 압도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인터넷을 거의 못하는 데다, 소속사에서도 전혀 대우를 해주지 않고, 해외에 나갔다 오기까지 했으니 본인은 전혀 체감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강효준이 말했다.
“너 혼자 다니기엔 이제 너무 유명해.”
“에이, VVV엔터가 너무 과하게 아티스트 보호를 하는 거예요. 카일룸 애들 동네 밥집 갈 때도 시큐리티랑 다니잖아요.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본인이 인지하는 것과 실제 선호도의 괴리감이 이렇게 큰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강효준도 난감한 상태가 되었다.
화제성이 갑자기 커진 아이돌이 높은 확률로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이 분명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본인의 인기를 정확히 아는 편이 좋다는 게 강효준의 생각이었다.
* * *
나는 내가 강효준에게 했던 말들 속에서, 내가 여전히 VMC에 악감정이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강효준이 VMC 일가인데, 가족의 등에 칼 꽂으란 말을 남이 하는 게 어이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강효준이 자기가 키우는 그룹을 위해서 퍼스트라이트가 VVV엔터와 조건부 계약을 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도 VMC 쪽에서 보면 배신이었다. 정말로 자기가 키우는 그룹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회사가 전심전력으로 밀어준다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란 걸 카일룸 놈들이 알까.
생각하니 갑자기 좀 울컥한다, 이 망나니들…….
아무튼 나는 국선아 편집에 관여된 사람들이 우리 팀을 갈라놓으려고도 했다는 걸 잊을 수 없었다.
영원히 내 편이 될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적대할 때, 강효준만큼 같은 편이 되면 유리할 사람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경계를 풀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강효준이 내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정신 나간 일중독자라는 사실이었다.
새벽 두 시에 전화를 해도, 아침 일곱 시에 전화를 해도 받는다. 언제 자는지 모르겠다. 사실 강효준이 두 명인가…… 얕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속에 뭐가 들어앉은 인간이든, 나는 그 성실함을 믿었다.
같은 주에, 나는 양이형과 함께 안주원의 가녹음을 했다.
가녹음을 하고 나와 녹초가 된 안주원을 보며 양이형이 말했다.
“주원아, 넌 얘랑 계속 팀이 하고 싶냐? 저러고 갈구는 새끼랑?”
“살면서 한 번은 칭찬받겠죠.”
그 말에 내가 말했다.
“야, 너 프로인데, 네 스스로 만족해야지, 내 칭찬 들어서 뭐해.”
그 말에 양이형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세상에 너만큼 칭찬 좋아하는 새끼가 어디 있다고.”
……할 말 없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양이형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찾아가는 일꾼 모니터링 할 건데. 형도 보실래?”
“내가 미쳤냐. 그걸 왜 봐.”
양이형이 말하며 침대가 있는 쪽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 식량 창고에서 간식을 꺼내 모니터 앞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나올 땐 쫄렸는데, 안 나오니까 안 쫄리고 좋다, 야.”
즐겁게 얘기했으면 즐겁게 받아주는 게 평범하지 않나. 언제 무슨 재수없는 소릴 뱉을지 모르는 신지운도 아니고, 안주원이 부정적인 대꾸를 했다.
“……글쎄다.”
“아, 더웠어서? 야, 자연이 더우라는데, 그걸 너희가 어떻게 하냐.”
“네가 화낼 것 같은데…….”
안주원이 말하며 의자를 끌고 슬쩍 나에게서 멀어졌다. 왜, 이놈들아. 뭔 짓을 한 건데…….
내가 걱정스러워하는 사이, ‘찾아가는 일꾼’ 대형 프로젝트 2화가 시작되었다.
지난주 방송분은 꽤 괜찮았다 찾아가는 일꾼의 멤버들이 시끌시끌 떠들며 기대감을 고취시켰다. 나도 신이 났다.
초반부는 이번에도 역시 인사 타이밍을 놓친 황새벽과 거기 적응해 인사 타이밍을 따로 만들어주는 MC 최정민으로 유쾌하게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강원도의 폭염에 멤버들이 당황하고, 지쳐하는 장면 역시 자연의 웅장함이 느껴지는 음악과 어우러져 긴장감이 감돌게 했다.
거기에 빅 블루 이준희가 내 대신 출연해서, 대스타라고 놀려 먹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정민아! 준희 씨는 에어컨 앞에서 일하게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대스타잖냐!
-우리 막내 얼굴 탄다, 대스타 피부 보호해 줘야지!
최정민이 대스타 동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꽃무늬 농사 모자를 씌워줬고, 지금은 배우로 더 유명하지만 아이돌 짬이 있는 이준희는 그런데서 빼는 사람이 아니었다.
최정민과 꽃무늬 농사 모자를 맞춰 쓰고 ‘올해는 만나자’를 부르는 장면은 명장면이었다.
문제는 2화. 이준희가 떠난 이후 촬영분이었다. 퍼스트라이트가 일단 성실함 하나는 확실한 팀이기 때문에, 시키는 일은 뚝딱뚝딱 잘했다.
지나치게 잘했다. 한마디도 안 하고.
내성적인 모습을 잡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니까 같은 그룹의 나도 이 새끼들 뭐지, 싶었다.
그렇게 내가 나오는 방송 볼 때보다 더 초조해질 때쯤, 민지호가 ‘어!’하고 소리내더니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돌아보며 말했다.
-형, 나 다쳤쪄어어……. 아, 해원이 형 없지.
민지호가 중얼거리더니, 자기 손을 힐끔 보고 근처에 있던 황새벽에게 말했다.
-형.
-어.
-다쳤어.
-아…….
-주원이 형!
민지호는 포기하고 안주원을 찾았다. 안주원이 달려와 물었다.
-왜?
-나 다쳤어.
-그래? 봐봐. 아, 진짜네. 반창고 가져다줄게.
안주원이 걱정하자 민지호가 뭔지 못마땅하게 한숨 쉬고 그 장면은 끝이었다. 안주원이 말했다.
“……다쳤다니까, 순간 당황해서 지호가 뭘 원하는지 몰랐지, 나는. 원래 너였으면 피도 안 나는데 왜 엄살이냐고 한바탕 했을 거 아냐. 지호가 그걸 원했던 것 같은데.”
“그래, 모니터링을 하며 배우면 됐다…… 가 아니지. 되긴 뭐가 돼! 너네 방송 저따구로 하고 왔어?”
“네가 없어서 어색하더라고.”
“야이씨! 노력을 하라고, 노력을! 어휴, 답답해.”
편집을 낯가리는 컨셉으로 잘 잡아서 만들어줬으니 다행이지…….
그렇게 내가 혼자 열 내고 있을 때, 때마침 내가 전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준희 형 어제 오셨을 땐 분위기 좋았는데…… 준희 형 가고부터 약간 망했어…….
촬영을 걱정하는 박선재의 대사가 방송에 그대로 나왔다.
-형님들, 일할 때도 근육 어디를 발달시킬 수 있을지 도움 좀 드리고.
그리고 찾아가는 일꾼팀에서 촬영 허가를 받아간 내 목소리도 나왔다.
-야, 나는…… 내가 리더 역할 꾸역꾸역이라도 해내고 있는 줄 알았거든? 알고 보니까 네가 길 다 정리하고 도로 깔아 놓은 데서 운전대만 내가 잡고 있는 거였더라.
이어지는 따듯한 음악과 함께 황새벽과 내가 상의하는 장면이 나왔다.
-지운이는 아직 안 왔고?
-촬영 끝나서 오고 있대. 걔 오는데 세 시간 거리를 매일 왕복해. 너 없는데 자기까지 빠지면 안 된다고. 사람 됐어.
-그러게.
황새벽을 되게 멋있어 보이는 각도로 찍어서 기깔나게 편집해 줬다. 거기에 배경음악은 우리의 앨범 수록곡이자, 첫 공식 팬미팅의 첫 번째 곡이었던 ‘Welcome on board’가 흘러나왔다
[Welcome on board]
[시작이 완벽해 네가 있어서]
[끝은 더 완벽해 우린 좋은 팀이 될 테니까]
그 음악과 함께 멤버들이 광기 있게 일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음악 덕에 광기조차 청춘으로 느껴졌다.
그 분위기 변화와 기승전결이 시청자로서는 재미있었지만, 솔직히 편집 사기 같았다. 저 내향인간들을 이렇게 재미있게 편집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간식이라도 풀어드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방송이 끝나고, 다음 편 예고가 시작되었다.
예고에서는 멤버들이 우는 장면이 연달아 편집되어 나왔다. 내가 서프라이즈로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때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얘네 드럽게 많이 울었구나……. 허허…….
시청자들이 우리를 내성적인 울보 그룹으로 알 것 같다. 다음 주 방송이 걱정된다…….
그리고 동시에, 저 내성적인 놈들을 이렇게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우리는 비슷한 시기 데뷔한 그룹 중에 자컨이 적은 편에 속했다. 물론 계약 끝나면 끝이나 소속사가 무성의해서긴 하지만……. 어쨌든 햇살이들을 위해, 예능 훈련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뉴데이즈의 강진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뉴데이즈 강진영 : 형! 죄송한데 이번 카일룸 후배님들 하이라이트 메들리 1분 5초 사운드 어떻게 만드는 건지 유호가 너무 많이 궁금해해서요]
늘 야망이 느껴지는 안부 문자를 보내더니, 최근에는 종종 이렇게 질문 문자를 한다.
워낙 문자를 많이 받으니 남 같지가 않아서, 나는 질문을 받으면 최대한 자세히 답을 보내주곤 했다.
[그거 멤버 보컬 이펙팅한 건데]
[파일 확인하고 다시 정확히 알려줄게]
그렇게 문자를 보낸 후 파일을 찾는데, 안주원이 말했다.
“요즘 효석이가 뉴데이즈 걱정하더라. 같이 연습생 준비한 친구들이잖아.”
“왜?”
“더 라이징에서 흔적 불렀을 때 있잖아, 유닛 미션. 그때 반응도 좋고, 음판도 확 늘었었는데 그때 이후로 정체기인가 봐.”
좋게좋게 말하는 편인 안주원이 ‘정체기’라고 말한다는 건, 상황이 꽤 안 좋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