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55화 (15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55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자리에 앉아서 처음부터 다시 프루티를 들어봤다.

“……회사를 만들 정도의 음악은 아닌데.”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A&R인데.”

하긴 대학 나온 사람이니까…… 아니, 그래도?

강효준이 말했다.

“넌 이걸 박종렬 엔터에 가져갈 생각이었어?”

“거기 직원분들 짬이 있는데. 안 하던 장르여도 못하는 거 없어요.”

어우, 회사에서 반년 동안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자고 하도 세뇌당했더니 팔이 안으로 막 굽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제일 중요한 걸 물었다.

“형 근데 돈은 있어요? 아직 카일룸으로 수익도 없잖아요.”

“은행 돈.”

“형. 은행 돈은 은행 거예요.”

“빌리면 내 돈이야.”

“그거 사업병 아니에요?”

“사업병은 사업할 상황이 아닌데 자꾸 일 벌이는 게 사업병이고. 나는 돈이 있고.”

“생각해 보니까 돈이 왜 있어요? VMC가 형 것도 아닌데.”

“해원아. 형은 3살 때도 강남 3구에 건물이 있었어.”

아니, 이런 X발…….

내 생각에 여기에는 욕해도 멤버들이 안 말릴 것 같다.

“아니, 근데 왜 여기서 개고생하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소시민의 울분이 섞여 묻자 강효준이 멋쩍게 대답했다.

“음악을 좋아 하니까…….”

그건…… 뭐 그럴 수 있지. 고럼고럼. 음악은 좋은 거니까.

내가 대답했다.

“그럼, 자세한 구상 좀 하고 알려주세요. 지금은 그냥 좀 사기꾼 같거든요.”

“내가 너한테 사기를 왜……. 자세한 건 다음에 알려줄게. 무조건 퍼스트라이트한테 보다 돈 많이 쓸 거야. 너 하도 후진 것만 봐서 조금만 프로모션 계획 짜다 줘도 놀랄 것 같은데.”

“…….”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내가 민망해서 다시 일하는 시늉을 하려 드니 강효준이 문을 가리켰다.

“그보다 너 저거 왜 안 잠가놔.”

강효준이 비밀번호 말고, 밖에서 열쇠로 열어야 하는, 안에서 돌려 잠그는 장치와 걸고리를 가리켰다. 내가 대답했다.

“멤버들이랑 이형이 형 계속 들락거리니까, 잠가놓으면 귀찮아요. 그래도 장비 보안은 진짜 빡세게 해놨어요. 저도 술 먹으면 비밀번호 못 풀 걸요?”

“너 진짜 그러다 어느 날 한번 큰일 난다?”

나도 아이돌이니까 사생이나, 몇몇 스토커 수준으로 취재하는 기자, 혹은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보안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답답해져서 나가려다 문이 안 열려 고생한 걸 생각하면, 그렇게 겹겹이 잠가놓을 수가 없다.

멤버들은 그걸 알아서인지 평소 서로 그렇게 지적질을 하면서도, 문을 잠그는 것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강효준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다시 작업을 하려다가 문을 돌아봤다. 딸칵 소리가 나게 잠갔다가, 숨이 확 막히는 기분이 들어 다시 풀었다.

* * *

TRV A&R팀 박선혜 팀장은 정해원이 며칠 전 보내준 데모를 다시 한번 들어보고 있었다.

정해원에게는 솔로 앨범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지만, 이건 되는 거라 확신해서 기획안만큼은 쌈박하게 작성해 들고 갔다.

하지만 사장과 부대표가 날아간 곳에서 실세가 된 부사장에게, 음악을 틀기도 전에 까였다.

‘아들 날려 먹은 새끼, 적자 내가면서 솔로 내주면 대표님이 잘했다고 하시겠냐?’라는 것이 요지였다.

데모를 들어라도 보라고 설득할까, 생각하다가 괜히 지금 키우는 신인한테 이 곡 넘기라고 정해원을 설득하라는 소리나 들을 것 같아 들려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걷다가 복도에서 정해원을 마주쳤다.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였는지, 차디찬 인상과 어울리지 않게 살가운 정해원이 물었다.

“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아뇨……. 부사장님한테 프루티 기획안 들고 갔다 왔는데…… 음악 들려주면서 더 설득해 볼까 하다가도…… 그랬다가 애들 주자고 할까 봐요.”

“아.”

정해원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무슨 소리예요. 해원 씨 아니었으면…….”

퍼스트라이트에 회사 인력 다 때려 넣을 뻔한 걸, 정해원이 너무 많은 부분을 커버치고 있어서 신인을 키울 여력도 생기는 거라는 걸 임원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대표 눈치를 보며, 떠날 사람이라고 기본적인 것도 안 해주는 걸 보면 배은망덕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박선혜 팀장이 말을 이었다.

“TRV 직원들, 해원 씨 얼마나 고생하는지 다 알아요.”

A&R 일이 많다, 많다 해도 정해원이 알아서 컨셉이며 곡까지 다 만들어오고 있으니 A&R팀에 여력이 생겼던 게 사실이었다. 박선혜 팀장이 말했다.

“뭐 도와 드릴 있으면 말해주세요.”

“진짜요?”

정해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박선혜 팀장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진짜죠? 믿고 있을게요.”

정해원은 그렇게 몇 번 확인까지 했다. 국선아 후유증인지, 남들 할 것까지 자기가 끌어가서라도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정해원이라, 그냥 알았다고 하고 웃어넘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잠깐 의아해하던 박선혜 팀장이 물었다.

“혹시. 뭐 다른 계획 있으세요?”

“계획까진 아닌데 그냥…… 개인 활동은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려구요.”

아!

박선혜 팀장 머릿속에 생각들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개인 앨범은 다른 소속사에서 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근데 약간…… 신생? 그런 거면, 아무래도 경력 있는 A&R분들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확실하진 않아요. 아직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신생.

그렇구나.

박선혜 팀장이 서둘러 말했다.

“해원 씨, 우리 A&R팀한테 다 물어봐요. 꼭 대박 내야 하니까.”

“네?”

“대박 내서, 지들이 뭘 놓쳤는지 알아야 돼요.”

박선혜 팀장은 지금 자기 눈빛이 정해원을 흠칫거리게 할 정도로 번쩍번쩍한다는 걸 자각했지만 가라앉힐 생각이 없었다.

처음엔 당황하던 정해원이 이내 웃으며 말했다.

“엄청 든든하네요.”

“그나저나 어떤 신생인지 아주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네요.”

어떤 곳인지 몰라도, 신생 주제에 우리 해원이를…….

박선혜 팀장은 그 영세할 신생 소속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 * *

KQS 유튜브 채널 컨텐츠 촬영일.

촬영 장소는 ‘불을 켜’ 때 이후로 종종 왔었던,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그 폐교였다. 나는 멤버들과 학교에 들어서며 말했다.

“야, 여기 하도 많이 와서 난 이제 이 학교 졸업생 같다. 나 다니던 고등학교보다 더 많이 왔…… 아, 왜, 또.”

이번엔 민지호가 내 어깨를 잡아서 마구 흔들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국선아 때문이 아니라 나 연습생 하느라…… 아, 너네도 학교 별로 못 다녔을 거 아냐!”

“그냥 말하지 마!”

뭔 말을 못하겠네, 진짜. 내가 멘탈 약하다고 자책했는데, 이놈들 보니까 그나마 내가 괜찮은 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나약한 것들, 쯧쯧.

우리는 우선 옷을 갈아입기 위해 각자 대기실로 사용하는 빈 교실로 들어갔다.

이 컨텐츠의 제작진들이 모처럼 제작비를 좀 받았다고 들었다. 물론 받아도 아기자기한 돈이지만 어쨌든.

나도 내 사이즈의 교복을 받아 입었는데, 교복 핏이 엄청 마음에 들었다.

“오.”

회색 교복 바지에 네이비색 재킷, 그리고 우리는 빨간색 체크 넥타이가 있었다. 뉴데이즈와 같이 연습생 생활을 한 한효석이 말했다.

“뉴데이즈 애들은 초록색 체크더라구요.”

“아, 그래…… 그래?”

두 팀이 서로 경쟁을 하기야 하겠지만, 데스게임이라는 게 원래 한 사람만 살아남는 거 아닌가? 그럼 팀 상관없이 잘 섞이게 만들려고 애써도 모자란데, 왜 넥타이 색을 다르게 해서 구분을 하는지 모르겠다.

심 피디님…… 믿어도 됩니까……. 팀전으로 힘쓰는 경기라도 하면, 아무리 우리 멤버들이 한 명 적다고 해도 1분 만에 이기고 방송 재미없게 만들 것 같은데…….

나는 불안해져서 심 피디에게 물었다.

“피디님, 첫판 팀전이에요?”

“왜, 왜?”

“넥타이 색깔 나눴다고 해서요.”

아니, 물어볼 수도 있는 질문인데 너무 놀라시는 것 아닌가. 이 방송…… 괜찮나?

내가 슬슬 제작진의 능력을 의심하며 걱정하고 있을 때, 대기 시간이 끝났다. 우리는 2학년 2반 교실에 모였다.

더 라이징 이후 모처럼 두 팀의 멤버들이 모여서 서로 인사를 했다.

강진영이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굽혀가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야, 하지 마, 하지 마.”

“하, 해원이 형 덕분에 제가 이렇게 호강을.”

아, 이 도라이…… 나는 욕이 나올 것 같을 때마다 입을 꽉 다물었다. 아마 이 대화도 오프닝에 붙어서 나갈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어이없어도 욕하지 말자, 정해원. 나는 반짝반짝 아이돌이니까…… 비록 몸은 피곤한 현대인이지만 마음만은…….

나는 또다시 낯가림에 맨 뒷자리나 벽에 붙은 자리에 가서 앉으려 하는 멤버들의 멱살을 잡아 최대한 앞자리에 앉게 분포시켰다. 시작부터 뉴데이즈에게 포커스를 뺏길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 멤버들이 한 번 자리를 잡은 후, 제작진이 다시 두 팀 멤버들을 골고루 찍을 수 있도록 자리를 약간 바꿔줬다. 훨씬 내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대본에 아무 대화나 하라고 쓰여 있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넥타이를 봤다. 그때 강진영이 나에게 말했다.

“형, 첫판은…….”

“왜 형이야, 우리 같은 반임.”

“어, 해원아. 근데 첫판은 팀전이겠지?”

아까 내가 심 피디에게 물어본 거랑 똑같은 소리를 한다. 뇌 구조가 야아아악간 비슷한가 보다. 내가 말했다.

“그치, 아무래도 넥타이 색이 다르니까…… 나랑 바꿀래?”

“아니.”

“왜에, 친구끼리 편 가르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내가 말하는데 뒤에서 신지운이 말하는 게 들렸다.

“……쟤 불리하면 저러잖아?”

“우리 불리해?”

민지호가 화들짝 놀라서 소곤거리는 게 들린다. 아, 왠지 기분이 찝찝…….

하다고 생각할 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엄청 무서운 피에로 가면을 쓴 남자였다.

“아이씨…….”

겁 많은 박선재의 쫄아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뒷자리 박선재를 토닥토닥거리는데 쾅 소리가 들리며 교실 불이 깜빡거렸다.

“아니, 왜 공포야!”

“이런 말 없었잖아요!”

뉴데이즈 여덟 명, 퍼스트라이트 일곱 명. 남자 열다섯 명이 있는데 피에로 가면과 깜빡거리는 조명에 겁먹어 아우성이었다.

피에로 가면이 리모컨을 누르자, 대형 화면이 켜지며 글씨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2학년 2반 여러분!]

[지금부터 게임이 시작됩니다]

[이 게임은 마지막 한 명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탈락자는 다음 게임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지금 당장 투표를 해서]

[한 명을 떨어뜨려 자신의 생존력을 높일 수 있다면]

[누구를 탈락시키실 건가요?]

[지금부터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태블릿에 투표용지 화면이 떴다. 남은 시간은 1분 59초, 58초…….

“뭐, 뭐야?”

“이렇게 바로? 그럼 바로 떨어지는 거야?”

“어, 벌써 집에 가기 싫은데!”

바로 결정하라는 압박에 멤버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초조해졌다. 뉴데이즈 멤버는 8명, 퍼스트라이트 7명. 그러니까 이건 입 열고 상의하는 순간 우리가 지는 게임이었다.

안 돼, 우리 멤버들 분량이! 나야 떨어지면 작업하러 가면 되지만 우리 애들 인지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투표용지 아래 작게 적힌 주의사항이 보였다.

[※자리를 이동하지 마세요. 투표 시간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나는 그걸 읽자마자 바로 투표용지에 이름을 써서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타이머가 15초가 줄어들었다.

나는 우리 멤버들에게 말했다.

“야, 빨리 이름 쓰고 일어나.”

서로 상의 못 하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강진영의 입을 틀어막으려 급하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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