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59화
원래 VVV엔터가 좀 과하게 조심하는 편이라, 지나치게 겁준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는 군말없이 작업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모자만 눌러쓰고 가방에 중요한 걸 다 챙겨 넣고 있을 때, 창고 쪽에서 뭔가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쪽을 봤다가, 쫄아서 정신없이 작업실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TRV로 전화했는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터덜터덜 회사 쪽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건물로 되돌아왔다. 새벽 여섯 시인데, 생각보다 길에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들어갈까, 잠깐 고민이 됐다. 바스락 소리를 확인해 봤어야 했나 싶었다. 사람이어도 무섭지만, 혹시 벌레면…… 으.
하지만 다시 작업실을 들어가기에는 강효준이 너무 겁을 준 데다, 경고창까지 더해진 참이니 나는 택시를 잡고 기다리기로 했다.
운 좋게 바로 택시가 잡혀서, 자리에 앉아 문을 닫았을 때.
택시 창문 너머로 내 작업실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등골이 오싹했다.
택시는 바로 출발했기 때문에 나는 거기서 누가 나오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다행히, 얼마 전에 강효준이 문 안 잠그는 걸 잔소리하더니 작업실 문 앞이 잡히는 CCTV를 설치했다. 거기서 알아서 확인해 줄 것 같다.
숙소로 되돌아가는데 강효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어디야? 회사에 연락했어?
“아무도 안 받아서 택시 탔어요. 근데 진짜 누가 있어요…….”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말을 이었다.
“건물 들어오는 문은 카드키 있어야 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보통 인터폰들 비밀번호 알면 다 뚫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잠그라니까.
“저 외출할 땐 잠가요. 그래야 보안 시작되잖아요.”
-……이 새끼들 너 있는 거 알고 들어온 거구나?
“아?”
하긴. 작업실이 지하이긴 한데, 언덕에 있어서인지 작업실 쪽에 아주 작은 창이 있었다.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게 보이긴 하겠다. 아무래도 내 방 불은 실수로 켠 모양이다.
……잠깐만, 그럼 실수 안 했으면 난 모르고 자는 거였잖아? 생각할수록 점점 더 공포네.
내가 생각하는데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너 작업실 옮겨야겠다.
“안 돼요.”
머리를 거치지 않고 대답이 튀어나왔다. 내 버프 걸린 작업실을 포기할 수는 없다. 거기가 아니면 내가 지금 스케줄을 다 소화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나는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고, 강효준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괜찮은 곳으로 옮겨줄게.
“저기가 좋단 말이에요. 이제 문단속 잘하면 되지.”
-네가 애긴 한데, 애새끼처럼 굴 나이는 아니다.
강효준이 잘라 말하고, 내가 뭐라 말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지금 신고하고 작업실 확인할 테니까 일단 집에 가.
그건 우리 회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화를 안 받으니까 일단 알겠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갔더니, 황새벽이 거의 눈을 못 뜨고 방에서 나왔다. 황새벽은 새부기인데 참 문소리 하나는 잘 들었다.
“작업실 갔던 거 아니야? 왜 돌아와?”
“누가 들어왔더라고.”
“……응?”
“확인은 못 했는데…… 아, 회사에 다시 전화해야겠다.”
“누가 들어왔다는 게 뭔 말이야. 누구?”
“바로 도망 나와서 누군지는 못 봤어. 회사에 전화했는데 아무도 안 받아서, 지금 효준이 형이 확인하고 있어.”
“…….”
“어우, 무서워, 무서워.”
나는 바로 엄살을 떨기 시작했다. 황새벽은 바로 판단이 안 되는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니까, 너 있는 작업실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다고?”
“모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자는데, 누가 들어와서 불 켰다가 나 있는 거 보고 바로 나가더라고.”
“……야, 회사 내가 전화할게.”
그러더니 황새벽이 바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누군가가 받은 모양인데, 난 황새벽이 저렇게 빠르게 말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거의 처음 봤다.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떡해요? 자고있는 방에 들어왔다잖아요. 무슨 일 났으면 어떻게 하실 거였는데요? 아니, 씨…… 하. 최소한의 멤버 안전도 보장을 못 해줘요? 그게 무슨 소속사예요?”
그렇게 화를 내는 소리가 낯설어서인지 방문이 열리고 멤버들이 하나둘 거실로 나왔다.
민지호가 눈을 비비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새벽이 형 화났어? 왜? 큰일 났어?”
멤버들과 싸움이 나도 체력이 없어서 그냥 욕 몇 마디 하고 마는 게 황새벽이었다. 저렇게 말로 싸우는 건 멤버 모두에게 낯설었다.
내가 말했다.
“아니, 작업실에…… 이걸 몇 번째 말하는 거냐. 아무튼.”
“누가 들어왔어?”
안주원이 뒤에서 물어 내가 대답했다.
“응, 누군지는 못 봤어.”
“뭔데.”
신지운도 나오며 묻는다. 이러다 멤버수만큼 설명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먼저 나온 멤버들이 뒤에 나온 멤버들에게 설명해 주며 더이상 말할 필요는 없게 됐다.
내가 물었다.
“야, 근데 나 진짜 너무 졸린데 좀 자도 되지?”
“어, 자.”
“너네도 자. 괜히 깨웠네……. 아니지. 물론 다 같이 날 걱정해 줘야 되긴 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흐흐 웃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쓰러져 잠들었다.
* * *
정해원이 들어간 후, 나머지 멤버들은 잠들지 못하고 거실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한효석이 중얼거렸다.
“저 형은 웃음이 나오나.”
그러자 옆에 앉은 박선재가 말했다.
“야자타임 한 번 더 하자고 해. 이번엔 아주 혼을 내야 돼.”
“맞는 말이네.”
그러자 듣고 있던 황새벽이 말했다.
“효석아. 운동을 시켜.”
“그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인데.”
“아니. 정말 싫어할걸.”
“원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잖아요.”
“나도 나지만 너도 참 너다.”
황새벽이 그렇게 결론 내리는 사이, 정해원을 뺀 모든 멤버들이 진이 빠져 거실에 늘어졌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비공개 스케줄에 사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따라붙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오늘 학교에서 컨텐츠를 촬영할 때 좀 더 확실해졌다.
민지호가 바닥에 누워서 투덜거렸다.
“아, 사생이어도 해원이 형 문 못 잠그는데.”
그러자 신지운이 대꾸했다.
“작업실을 큰 건물로 옮겨야지, 뭐.”
“해원이 형이 건물 사고 싶대써. 옮기기 싫다구.”
“아, 그럼 거길 계속 쓰냐? 문도 못 잠그는데?”
“그래도 그 작업실 좋다고 했단 말이야!”
“상황이 이렇게 되면 옮겨야지.”
“싫댔다고!”
은근히 자주 싸우는 둘이 시비가 붙자 여느 때처럼 박선재가 중재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계속 직원과 싸우던 황새벽이 신경이 날카로워진 얼굴로 말했다.
“지금이 우리끼리 싸울 때냐?”
평소 귀찮아서 화를 안 못 내는 황새벽이 한 소리 하자 두 사람이 짜증이 가라앉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 * *
나는 계속 잠을 설쳤다. 멤버들 깨운 것도 미안하고, 나 스스로도 몸이 떨려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까는 정작 괜찮았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섬찟했다.
내 방의 침입자…… 세 명이니까, 침입자들은 작업실 앞 CCTV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경찰은 인근 CCTV들을 확인해 침입자들의 신상을 확보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작업실에서 나올 때, 그 안에 세 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소름이 끼치지만, 오히려 그때 나한테 들켜줘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들락거려도 모를 뻔했으니까.
그것도 공포지만, 작업실이 출입금지 상태라 갈 곳이 없다는 것도 공포다.
잠깐 양이형에게 신세질까, 하다가 강효준이 VVV엔터에 임시로 작업실을 마련해 주겠다고 해서, 그쪽으로 향했다.
VVV엔터에 도착해 강효준이 보여준 임시 작업실은 몇 번 쓴 적이 있어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그제야 묘하게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니터와 스피커, 건반이 있는 이 풍경만큼 나를 안심하게 하는 건 없다.
“와씨. 겁나 쫄았네…….”
나는 그제야 솔직하게 겁먹은 티를 팍팍 내며, 모자를 쓴 머리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나 혼자라고 믿고 있던 공간이, 모르는 사이에 열려 버린다는 게 생각 이상으로 철렁했다.
그때 강효준이 전화를 받고 잠시 작업실을 나갔다가,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프루티, 아까 파일 보낸 거 다시 듣자.”
바로 일 얘기를 시작한다.
이건 내가 보기에 진짜 일이 급해서가 아니라, 내가 작업실 침입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멘탈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 것 같았다.
그래서 화제를 바로 잡았다.
“형, 저 지금 멘탈 괜찮아요. 상황치고는. 경찰에서 뭐래요?”
내 말에 강효준이 목덜미를 긁적거리더니 말했다.
“그래, 네가 모르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뭔데요.”
“지금 신상 확보한 사생 하나가, 너네 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더라고. SNS에서, 너랑 관련된 글마다 댓글을 달고 다녔대. 언뜻 보면 안티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나 봐. 그, 까빠라고 하나.”
“그게 뭐예요?”
“나도 잘 몰라. 아무튼, 그 사생이 네 핸드폰 번호랑, 작업실 비밀번호를 SNS에서 샀대.”
“……누가요?”
“그걸 찾기가 어려운가 봐. 아무래도 해외 SNS 사이트인 데다가, 개인정보 판 게 한국인도 아닌 모양이고.”
하긴.
나도 TRV 쪽에서 악플을 고소하는 시늉을 하려 할 때 보니까 개인정보를 얻기 번거로운 해외 사이트들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더 빡시게 캐면 알 수 있겠지만, 그만큼의 노동력이 필요할 테니까. 송사에는 엄청나게 긴 시간과 많은 돈이 드는데, TRV는 그걸 해줄 생각이 없었다.
개인정보를 파는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걸 사는 사람들도 똑같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문도 잘 잠그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강효준이 말했다.
“뭐가 나올진 몰라도, 일단 CCTV 설치한 이후부터 저장된 거 전부 확인하고 있어.”
“누가요?”
“형 친구들. 한가해.”
“……형 친구들 법에 위배 되지 않는 일을 하며 건실하게 살고 있죠?”
강효준도 많이 회사원화 되어서 그렇지 한 인상하는데, 친구들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멍하니 앉아 있으니 강효준이 물었다.
“밥은?”
“어…… 아직 못 먹었어요.”
“지금 저녁 먹을 시간인데 무슨 아직이야.”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가요?”
“어.”
“하긴, 형은 예외긴 하다. 형, 저 짜장면.”
“첫 끼는 밥을 먹어야지.”
“그럼 새벽에 첫 끼 먹으면요?”
“그건 야식.”
“하루에 첫 낀데?”
“…….”
그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하며, 회사 근처 김치찌개 전문점에 도착해서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그때 강효준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가 뭔가 발견한 걸 알고, 보여달라고 공손히 두 손을 내미니까 강효준이 마지못해 핸드폰을 건네줬다.
받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봤는데, 건물로 들어오는 유리문 너머에 후드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였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유리문을 열었는데, 들어오지는 않고 안을 보다가, 약간 취했는지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꽤 키가 큰 남자 같아 보였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뿌옇고, 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
이상하게 그 영상을 보며, 나는 소년들의 멤버였던 최윤솔을 떠올리고 있었다. 체형이 비슷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하지만 그놈이 야비하긴 해도, 내 개인정보를 사들일 정도로 바닥을 칠 놈은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최윤솔을 지나치게 수상하게 여기나 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영상으로 뭘 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