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60화 (16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60화

나는 영상을 몇 번 더 반복해서 확인했다.

분명 영상에 보이는 사람은 취한 상태 같았다. 문을 열었다가 그냥 가는 걸로 봐서는 들어오는 것까지는 자신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나는 사람 있나 봐?”

강효준의 말에 나는 바로 내 핸드폰을 들며 말했다.

“좀만 더 확인해 보고 말할게요. 저 그 영상 좀 보내주세요.”

“너 또 뭐 위험한 짓 하려고.”

“아뇨, 아는 사람 있어서 그래요…….”

나는 투덜거리며 강효준이 보내준 영상을 바로 스파이1에게 보냈다.

[형 이거 영상]

[혹시 누군지 알겠어?]

이걸 어떻게 알겠냐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스파이1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믿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파이1에게서 소름 돋는 답이 왔다.

[스파이1 : 윤솔 씨 아냐?]

과장 아니고, 진짜 양팔에 소름이 돋았다.

[스파이1 : 얼마 전에 윤솔 씨 인스타에서 저 핸드폰 케이스 본 것 같은데…… 뭐, 케이스 아니어도 체형이랑 스타일이]

[형이 최윤솔 인스타를 왜 봄?]

[스파이1 : 아니 네가 지난번에 윤솔 씨랑 소재 문제로 싸웠잖아. 주의 깊게 봤지…….]

내가 지금 사생 걱정할 때가 아닌 거 아냐? 이 형이 더 스토커 같은데……?

담당하는 아이돌 데모를 유출하다니, 엔터계에서 성공할 생각이 있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런 근시안적인 생각을 하던 머리로 어떻게 다른 레이블 연예인의 핸드폰 케이스를 외우고 있느냔 말이다.

[스파이1 : 아 이거다]

내가 기함하는 사이, 스파이1이 최윤솔의 인스타그램에서 사진 하나를 찾아 보내줬다.

거울 셀카에서, 거울에 핸드폰 케이스가 보였는데 영상과 같은 케이스였다.

“와씨. 이 새끼가 진짜 남의 작업실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니까 강효준이 달라고 손을 까딱거렸다. 나는 스파이1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사진을 저장해서 보여줬다.

“최윤솔인 것 같아요.”

“……네 정보원 도대체 누군데 항상 우리 회사 정보를 나보다 빨리 찾냐?”

이해한다. 나도 놀라운데, 남은 얼마나 놀라울지.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그냥 저러고 돌아갔으니까, 신고해도 소득이 없겠는데. 집에 들어온 사생도 처벌이 어려운데.”

“그래도 어쨌든, 우리 팀 멤버가 증거가 될 자료는 뭐든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좋대요.”

“터미널 엔터에는 내가 연락해 볼게.”

“아, 형 A&R이니까, 최윤솔 데모 좀 들어 볼 수 있지 않아요? 혹시.”

“응, 네 스타일 베낀 거 있으면 말해줄게.”

강효준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어느 정도 털어놨더니 마음이 좀 편해져서, 식사가 잘 들어갔다. 나는 줄어든 김치찌개를 보며 말했다.

“이제 라면사리 먹어요.”

“이거 다 먹고 하나 더 시켜서 넣자.”

“아무리 봐도 회사가 굶기는 것 같은데.”

우리가 시킨 대자가 4, 5인분이었는데, 결국 라면을 먹으려고 소자 하나를 더 시켰다. 라면을 먹으며 강효준이 물었다.

“작업실은 왜 안 옮긴다는 거야?”

“거기가 작업이 잘돼요. 두 배 정도.”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죠.”

내 대꾸에 강효준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 좀 돈 거 아니냐? 걔네 너 거기서 자고 있는 거 알고 그 방 들어간 거야.”

“그건 아는데.”

“네 눈으로 못 봐서 그래? 직접 가서 만나 봐야 무서운 줄 알겠어? 남의 집 문 따고 들어가는 것들이 제정신으로 보이냐? 한 번 경찰서 갔다 나오면 무서워서 다시 안 그럴 것 같아? 또 해, 걔네. 네가 그 작업실에 계속 있으면, 그 앞 건물에 세 얻어서 너 들락거리는 보고 있을 놈들이야.”

“그걸 내가 몰라서 그래요?”

“그럼 거길 왜 다시 간대.”

“말했잖아요. 집중이 잘된다고.”

“야이씨…….”

“형.”

이번엔 내가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저 지금 카일룸 미니 두 개를 더 작업해야 해요. 그거 형이 시켰잖아요.”

“…….”

“거기에 우리 팬들도 기다리는데. 우리 회사 A&R 싹 다 신인팀으로 들어가서, 아무도 우리 앨범 못 봐줘요. 멤버들이 저 없는 단톡방에서 무슨 얘기 했는지 알아요? 저 바쁘니까, 부담 덜 되게 개인 활동 하재요. 걔네가 보기에 그거밖에 답이 없으니까.”

나는 말하다가, 답답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브삼에 가면, 잘 밀어줄 거 같아요. 멤버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데, 그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질 않아요. 근데 거긴 가기 싫고, 그러려면 내가 더 잘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그런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나는 막 뱉던 도중에 정신을 차리려고 심호흡을 했다. 잠깐 이성을 놓아버렸더니, 긴장으로 붙잡고 있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자는 방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나는 내가 지독히 겁을 먹은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고집부려 봤자, 나는 그 작업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 * *

식사가 끝나고 작업실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룰렛을 확인했다.

[(모든 룰렛 사용 가능) L급 티켓X1]

예상 못 하게 버프 걸린 작업실에서 쫓겨나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이, 프로듀서용 룰렛으로 돌리기로 했다.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좋은 거, 제발 좋은 거. 체력 관련된 거…….

간절하게, 좋은 게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지난번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이 나올 때와 같은 이펙트가 보였다. 그리고 룰렛이 멈췄다.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 (B)]

[등록된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줄어듭니다(0/1)]

[*체력 한정 회복 포션입니다]

어?

같은 거?

그럼 이동한 새 작업실에서도 같은 환경처럼 일할 수 있겠다. 내가 크게 안도하는데 상태창이 이어졌다.

[L급 티켓 사용으로 추가 보상이 적립됩니다]

[L급 히트곡 제작 확률 0%(+0.35%)]

“오?”

극히 미미하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생겼다.

[동일 포션이 발견되었습니다]

[융합을 통하여 새로운 포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2개 이상)]

잠깐만.

그럼 저쪽 작업실 포션 갈아버려도 되나?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 (A)]

[등록된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줄어듭니다(1/1)]

(A)라고 적힌 게 내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건가 보다. 나는 그걸 선택하고, 나머지 융합할 포션들을 찾았다. 같은 룰렛에서 적용되는 포션들이 보였다.

[프레젠테이션 기술 B급]

[탑라이너 B급]

[창작자의 민감 S급]

저 세 번째건, 트라이얼 기간만 써보고 더 이상 사용하지 못했다. 저걸 쓰면 내가 약을 먹어도 약을 먹지 않은 상태와 비슷해지는데, 멤버들이 옆에서 엄청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내 멘탈이 우선이니까, 이걸 갈자…….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 (A)]

[등록된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줄어듭니다(1/1)]

[*체력 한정 회복 포션입니다]

[창작자의 민감 S급]

[히트곡 제작 확률이 상승합니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융합을 시작합니다(성공확률 20%)]

아니, 잠깐만 이 사람아. 성공확률이 100%가 아니라고 안 하셨잖아…….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포션 두 개가 섞이는 화려한 이미지가 보였다.

확률에 당황한 마음을 잊고, 영화 보는 기분으로 보고 있었더니 곧 이미지가 사라졌다.

[대성공☆]

오 별 달렸다. 귀엽네.

[절대 실패하지 않는 프로듀서의 기술 L급]

[모든 작업물에서 B급 히트 이상이 가능해집니다]

[A급 히트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프로듀서 (정해원)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대폭 상승합니다]

[업계의 거목들이 주목합니다]

아주 잠깐 이게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이면 좋았겠다는 배은망덕한 생각을 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사랑은 내 힘으로 받고 싶다. 그래야 내 스스로도 믿을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B급 히트 이상이 가능하다니. 퍼스트라이트야 어느 정도 기대치가 있지만 쌩신인인 카일룸 놈들은…… 고마운 줄 알아라, 이것들…….

이라고 생각하는 걸 읽기라도 한 듯, 차우석이 달려 들어왔다.

“형, 사생이 들어왔어요? 우와씨, 무섭다.”

“어떻게 아냐?”

“효준이 형이요.”

“입 가볍네.”

“형이 저 보면 짜증 나서 사생일 좀 잊을 것 같다고 가보래요. 짜증 안 나죠? 형 저 카일룸에서 제일 친하잖아요.”

“그건 그거고, 짜증 나는 것도 맞지.”

내 말에 또 차우석이 징징거린다.

그래도 요즘 느끼지만,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이 대하기가 편한 것 같다. 내가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게 되니까.

잠깐 걱정하고, 나머지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차우석이 짜증 나는데, 동시에 꽤 편하다. 하,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차우석이 계속 떠드는 걸 좀 듣다가, 때마침 전화가 와서 받아야한다고 떠밀어 쫓아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전화는 반갑지 않았다.

TRV 부사장이었다.

-해원 씨, 많이 놀랐지? 이제 연락해서 미안해요. 이게 중간에 오해가 있었나 봐.

“……오해요?”

-아니, 해원 씨가 최기문 부대표님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직원 중에 자기도 그래야 하는 줄 안 사람들이 있었나 봐. 아주 혼을 내놨으니까, 이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이참에 작업실 다시 TRV 사내로 옮깁시다. 해원 씨 TRV 나가도, 작업실 비워둘게. 그게 의리지.

미친놈인가?

내가 생각하는데 부사장이 말을 이었다.

-솔로도. 아, 그거야말로 박 팀장이 완전히 잘못 알아들었어. TRV에서 내지, 왜 못 내. 우리 사람인데. 팍팍 밀어줄게.

탓은 하는데, 아직 내가 다른 회사에서 솔로 낼 거란 걸 모르는 걸 보니 박선혜 팀장이 내가 다른 곳에서 솔로 내는 것에 입을 다물어준 모양이다. 고마웠다.

“저 TRV에서 안 낼 건데요, 솔로.”

-기분 상한 건 아는데, 그러지 말고…… 어쨌든 회사 오면, 다시 한번 얘기해 봐요, 우리.

짜증은 정말 강한 감정이었다. TRV가 유발한 짜증이 몸에 있던 두려움과 긴장을 밀어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강효준이 있는 A&R팀으로 향했다. 다들 외근인지 강효준밖에 없어서, 나는 거리낄 것 없이 말했다.

“형. 새로 레이블 내는 거요. 거기 제 작업실 만들어주세요.”

“……당연한 걸 왜?”

오히려 황당해하더니 나에게 종이 설계도와 인테리어 렌더링을 보여줬다.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는 내 첫 번째 소속사 같은 협소한 모습이었다. 비 오면 연습실에 비가 새서 연습하다 미끄러지는 그런 곳. 사장이 뭐랬더라, 비 오는 무대 예습이라 생각하랬나.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건 딱 봐도 큰 규모를 가진 회사였다.

내가 문을 잠글 필요 없는 위치의 작업실과 엄청 큰 연습실이 보였다. 우리 멤버들이 다 들어가고도 남을 규모로 보였다. 지금 TRV 연습실보다 훨씬 커서, 댄서들까지 북적거리면 벽에 몇 명이 붙어 있을 필요가 없게 될 것 같았다.

“와, 민조가 이 연습실 보면 여기서 살겠다고 하겠네.”

“그러니까 데려와.”

의외의 대답에 나는 좀 놀라서 되물었다.

“형 원래, 우리 멤버들 브삼에 남게 하려고 했잖아요?”

“넌 국선아 관계자들 싹 다 나가리 되기 전엔 VMC 계열 절대 안 갈 거잖아.”

“…….”

“애초에 너도 알잖아. 난 물론, 퍼스트라이트라는 팀도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네 프로듀싱 능력이 더 필요해. 근데 네가 퍼스트라이트 7명 모두 함께 움직이는 방법만 받아들일 거잖아. 그럼 퍼스트라이트가 갈 곳을 만들어봐야지. 최소한.”

카일룸을 프로듀싱하는 내내, 나는 그놈들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협조적인 소속사 덕에 본인의 아이돌 활동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그리고 이번에 작업실에서 나와 TRV에게 건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았을 때, 그런데 뭔가 위아래 말이 안 맞았는지 다시 솔로 앨범을 제안할 때, 나는 마지막 기대까지 끊어져 버리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작 계약 후에는 딴소리할지 몰라도, 강효준은 일단 우리 팀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걸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업가였다. 거기에 왠지 모르게 내 능력치도 좀 과하게 높이 사는 것 같고…….

나는 설계도를 핸드폰으로 찍으며 거들먹거렸다.

“아, 우리 멤버들 잘나가서 이런 신생 안 갈 텐데.”

“잘해줘야지.”

“저 벌써 계약 두 번이나 해봤잖아요. 예리한 눈으로…….”

“해원아, 거듭 말하지만 네 눈이 낮아서 거기 맞추는 거 어렵지 않아.”

“아, 진짜.”

내가 짜증내니까 강효준이 하이파이브나 하라고 손을 들었다. 나는 어이없어 흐흐 웃으며 하이파이브나 하고 말았다. 손이 돌덩이 같아서 한 대 맞으면 내가 뒤질 것 같다. 웬만하면 시비 걸지 말아야지. 이 사람이 음대를 나왔다니…….

아무튼 나는 곧 회사를 나왔고, 멤버들에게 톡을 보냈다.

[회의 요청!]

새로운 소속사를 찾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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