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61화
숙소에 돌아가 보니 멤버들이 다 와 있었다. 때마침 신지운이 출연하는 드라마 시간이라 TV를 틀었다. 신지운이 괴로워하며 말했다.
“딴 거 보자.”
그러자 황새벽이 말했다.
“우리 누나가 요즘 퍼라 최애 너래. 처음엔 너 나와서 이입 안 된다고 했는데, 선겸인 선겸이고 너는 너라고.”
“우리 누나도 똑같이 말하던데요.”
한효석도 맞장구치자 드라마에 과몰입 상태인 민지호가 화면에서 눈을 못 떼고 말했다.
“근데 형 남주 못 될 것 같아. 불쌍한 선겸이.”
옆에서 같이 드라마에 집중한 안주원이 말했다.
“난 인혁이 형이 멋있더라.”
“맞아, 제일 멋있어.”
“아, 내 얘기만 해.”
잠깐 딴 배우 칭찬했더니 그새 신지운이 성질을 냈다.
아무튼 드라마 좋아하는 멤버들이 꽤 있어, 그 멤버들이 다 보고 난 후까지 회의는 미뤄졌다. 나도 드라마에서 혹시 소재를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 보고 있는데 황새벽이 말했다.
“정해원이 은근 열심히 챙겨봐.”
“아니, 나는 소재를…….”
그러자 박선재가 맞장구쳤다.
“해원이 형 취향이긴 해. 로코 좋아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신지운이 물었다.
“형, 누가 유안이(극 중 여자주인공) 남편 됐으면 좋겠어.”
“인혁이 형.”
“내가 멤버인데?”
“그래도 인혁이 형.”
나의 대답에 신지운이 삐져서 드러누워 버렸다. 피곤한 놈.
아무튼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야 우리는 드디어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를 요청한 내가 입을 열었다.
“전에도 얘기했던 건데…… 나 솔로 음원은 효준이 형이 따로 내는 레이블에서 내보려고. 뭐, 여러모로 조건도 괜찮고. 그냥, 다른 곳에서 해보고 싶어. 한 번.”
그 말에는 멤버들 모두 잘 생각했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여전히 긴장한 상태로 아까 찍어온 설계도를 보여줬다.
“이게 설계도인데, 여기가 내 작업실이고, 여기 연습실을 만든대.”
설계도를 본 안주원이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
“우리 연습실보다 훨씬 크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멤버들을 보았다.
“내가 먼저 가서 한번 일해보고. 괜찮으면 우리 다 같이 거기로 갈래?”
내 말에 잠시 멤버들이 조용해졌다.
당연하다. 재계약은 우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 먹고사는 일에 관한 것이니까.
연습생 생활을 같이하고, 7년 성공적으로 잘 버틴 그룹들도 재계약 시기가 되면 서로의 마음을 모르게 된다. 가족 같은, 제일 친한 친구여도 결국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처럼 다 다른 회사에서 연습생 기간을 보내고, 서바이벌에서 서로 마음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함께 팀으로 활동한 건 다 합쳐도 2년 남짓일 멤버들은 더더욱 재계약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없다.
거기다 재계약 시기에, 제일 나이가 많은 나와 황새벽이 스물둘, 나머지는 그것보다도 어렸다. 각자 소속사에서 키우는 아이돌 팀에 우리 멤버들을 끼워 넣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신인팀에 ‘얼굴이 알려진 멤버’가 있다는 건 치트키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난 우리 일곱 명이 같이 움직이는 게 무조건, 최우선이야. 한 명이라도 싫으면, 다른 방법 찾자.”
“형.”
민지호가 손을 들어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지호가 말을 이었다.
“난 무조건 형 가는 데 따라갈 거라서 내 의견은 이제 안 물어봐도 돼.”
“대답 안 급해. 좀 더 생각해도 돼.”
“생각해서 이건데! 난 어차피 개인 소속사도 없어서 탈TRV하면 자유인이야!”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얽힌 소속사가 없는 민지호가 말하고 히힛 웃으니까 멤버들이 좀 부러워했다. 나는 나머지 멤버들을 보았다. 다들, 어쩐지 무지하게 신나 보였다. 안주원만 빼고.
연습생 때부터 TRV 소속인 안주원이 입을 열었다.
“나는 퍼스트라이트 계약 끝나도, TRV에서 계약이 1년 남아.”
멤버들이 모두 안주원을 돌아봤고, 박선재가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몇 명은 다른 곳 볼까? 동시에 쳐다보면 부담스러워…….”
“아, 맞다.”
민지호가 바로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봐줬다. 안주원이 말을 이었다.
“1년 정도는 내 개인 활동 걸고넘어지면서 훼방 놓을 수도 있어. 그럴 땐…… 나 빼고 일정 잡아서 활동해 주라. 1년이면 돼.”
그 말에 잠깐 딴 곳을 봐주던 멤버들이 전부 인상 쓰며 안주원을 봤다. 안주원이 말을 이었다.
“그거 약속 안 하면 나 안 가.”
안주원이 말하고 잠깐 침묵이 흐른 후, 황새벽이 날 툭 치며 말했다.
“네가 말해봐.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설득력이 있잖아.”
그 말에 신지운이 동의했다.
“맞아. 개중 낫지.”
솔직히 나도 인정한다. 이놈들보다야…….
나는 안주원을 보며 말했다.
“그런 약속 안 해. 그래서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
“……야.”
“그럼 나도 멘탈 깨지거나 슬럼프 오면, 다른 작곡가한테 곡 받아서 나 빼고 활동한다고 약속할 거냐?”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안주원이 말했다.
“너랑 나는 비중이 다르잖아.”
그 말에 박선재가 정색하며 말했다.
“와, 본심 나왔다. 본심 나왔어. 저럴 줄 알았지.”
“형 진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
한효석도 정색하며 말했다. 나는 뒤로 기대앉으며 투덜거렸다.
“안주원은 저렇게 생겨가지고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냐. 퍼스트라이트 얼굴인데.”
내 말에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난 지운이랑 효석이라고 생각하는데.”
“효식인 인정하는데 웬 신지운.”
“나 뭐. 내가 제일 잘생겼지.”
삐진 신지운이 투덜거리고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난 네가 제일 잘생긴 것 같은데.”
“너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냐? 2등은? 2등은 민조지? 쟤가 까불어서 그렇지, 매력 빼도 엄청 예쁘게 생겼잖아.”
“아, 2등 지운이지.”
그 말에 민지호가 말했다.
“새벽이 형 쎈 얼굴 좋…… 아냐, 해원이 형은 아냐. 형아는 귀염둥이야.”
민지호가 내가 상처받을까 봐 얼른 포장해 줬다. 그러니까 신지운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귀염둥이는 나지.”
“아니야!”
“너도 안 귀여워.”
“하, 웃기시네.”
민지호가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었다. 이건 귀여움의 인간화인 민지호의 압승이었지만 신지운의 뻔뻔함은 그 결과를 뛰어넘었다. 민지호와 서로 자기가 귀엽다고 우기는 걸 보니.
그러다 민지호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나 1등, 나 빼면 새벽이 형! 만화같이 생긴 얼굴 좋아. 비현실적이야.”
“아니, 그래도 딱 이목구비 잘생김만 보면 선재랑 주원이 형이지.”
한효석의 말에 박선재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해원이 형이랑 새벽이 형처럼 만화 캐릭터같이 생기고 싶었어. 분위기가 딱 머리에 남잖아.”
어릴 때 사자랑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 에 대해 싸울 때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자기 눈이 맞다고 일곱 명이 우겨대기 시작했다.
잘생긴 걸 물어봤으면 ‘이목구비 딱딱 있는 정석 잘생김’이 우선이라는 파와 ‘트랜디한 얼굴도 똑같은 잘생김’이라는 파가 갈렸다.
그리고 중간에 매력 포함 순위를 다시 정하기까지 했다. 인간의 미감은 은근히 제각각이라는 걸 실감했다.
나도 신나게 내 주장을 우겨대다가, 중간부터 말리기 바쁜 안주원에게 말했다.
“주원아.”
“응.”
“그런 약속 하지 말고, 그냥 가자.”
“…….”
“효준이 형이 퍼스트라이트, 우리 팀 깨지면 안 된다는 거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어. 말뿐인지 몰라도, 그 말이라도 해주는 사람이 처음이었다고. 그래서 한번 믿어보자는 거야. 그런데 활동 빠지는 걸 약속하라니.”
“…….”
“야, 우리가 TRV여서 눈이 낮아진 건데. 각자의 개인 소속사까지 조율해 주는 게, 소속사 일일걸, 아마?”
강효준의 말을 이용한 내 말에 안주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웃었다.
“알겠어. 그래도…….”
“어, 그래도 혹시 네가 신지운처럼 잘될 것 같은 극본 가져오면 당연히 보내주지.”
“맞아! 나 멤버들 드라마 나오는 거 좋아!”
민지호의 말에 한효석이 핀잔했다.
“놀릴 수 있어서 좋아하는 거지?”
“앙.”
민지호가 대꾸하고 히히 웃었다.
나는 나머지 멤버들을 돌아봤다.
“그래서…….”
“아.”
뒤로 기대 웃던 황새벽이 웃음을 그치고 바로 앉았다.
“물론 좀 더 계약 조건 따져야겠지. 하지만 이만큼 납득할 만한 답, 다른 곳에 없다는 건 다들 동의할 거라고 봐.”
“요즘 황새벽 은근 리더답다.”
내 말에 황새벽이 민망한지 괜히 코를 찡긋거리더니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무조건 같이 움직이자. 배신자에게는 죽음뿐이야.”
맞다. 우리 그랬지. 그거 은근, 무섭고 든든한 약속이다. 우리는 손을 모으고 구호를 한번 했다. 소속감이 쫙 올라온다. 허허.
* * *
안전을 위해서, 임시로 VVV엔터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상태창이 떴다.
[업계의 거목들이 주목합니다]
……오류났나?
내가 생각하며 두 손을 휘젓고 있는데 강효준이 작업실로 들어오다 물었다.
“뭐 해?”
“스트레칭이요.”
“아.”
예민과는 거리가 먼 강효준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물었다.
“형, 근데. 혹시 애들이 새 소속사 오겠다고 하면, TRV에서 같이 올 생각 있는 팀도 꼬셔보면 안 돼요?”
내 말에 강효준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해? 경력직 빼 오는 건데. 안 오겠다는 게 문제지.”
“꼬셔봐야겠다.”
내가 말하고 히히 웃는데 강효준이 자료를 내밀었다.
“뭐예요?”
“홍 감독한테 데모 들려줬더니 급해졌나 봐. 다짜고짜 자료를 보냈더라고.”
“와, 뭐야, 이게…….”
나는 콘티를 넘겨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아니, 내가 이 컨셉을…… 이게 되나?
그나저나.
“제작비 잘못된 거 아니에요? 우리 팀 뮤직비디오 제작비보다 더 많은데?”
“말했잖아. 너 눈 낮다고.”
“아니, 숫자 봐봐요. 이게 맞아요?”
“맞아. 설마 숫자를 잘못 썼겠니, 아마추어도 아니고.”
나…… 진짜 눈 낮구나?
나는 내가 사실은, 그래도 나름은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소속사 첫 앨범인데 당연히 잘 뽑아야지. 음방도 한두 군데는 하자.”
음방이라는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가, 막 뛰었다가를 번갈아 반복했다.
혼자 무대? 진짜 혼자? 콘서트도 아니고, 팬미팅도 아니고 음악방송에서 혼자? 햇살이들 나 보러는 안 오면 어떡하지…….
나는 더 라이징 때, 뉴데이즈와 함께하는 무대에서 발이 안 떨어져 우리 멤버들이 떠밀어줬던 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내 약한 멘탈에 대한 우려와 달리, 의외로 금방 진정이 됐다.
강효준이 미심쩍게 물었다.
“뭔 생각하냐?”
“무대 올라갈 생각이요.”
“아, 그래. 신나 보이네.”
그 말이 맞았다. 무대에 대한 설렘이, 두려움을 있는 힘껏 몰아내고 있었다. 나도 성장이라는 걸 하는 모양이다.
나는 잠깐 무대 생각에서 벗어나 물었다.
“그나저나 형 소속사 이름 뭐 해요?”
“아직 생각 중이야. 뭐 괜찮은 거 있어?”
“에이, 저 제목 짓는 시간이 작곡 시간보다 긴 거 알면서.”
“하긴.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던 도중에, 작업실 밖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조막만 한 얼굴에 큰 눈을 가진 누군가가 안을 들여다보는 게 보였다.
누군지 알아보자마자 나는 급하게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고, 강효준은 문을 열며 말했다.
“네가 4본부에 왜 있냐?”
“그냥 간만에 회사 온 김에 니 뭐하나 구경 왔지.”
우주대스타, 클라루스의 멤버 송다온이 대꾸하더니 내 쪽을 힐끔 봤다. 대스타의 아우라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퍼스트라이트 정해원입니다!”
“아, 네가 해원이야?”
엄마, 아빠. 우주대스타가 나 알아. 우주대스타가…….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밥 먹자.”
“저 안 먹었지만, 먹었어도 또 먹을 수 있어요, 선배님.”
“아, 그래?”
내가 뻘짓하는 게 웃긴 지 송다온이 으흐흐 웃고 나오라고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