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62화
“뭐 먹을래?”
클라루스 송다온이 묻는 말에 나는 냉큼 대꾸했다.
“선배님이 사주시면 라면도 좋아요.”
“야, 너 빅 블루 팬이라며. 이준희한테 다 들었어.”
데뷔 2년 선후배 관계인 빅 블루 이준희와 송다온은 연예계 소문난 절친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같이 대화한 톡 내용을 서로 올릴 때 보면 이준희가 까칠하게 굴고, 송다온 혼자 치대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에 있을 때나, 한국에 있을 때나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서 만나는 걸로 유명했다.
하, 그 사이에 끼고 싶다. 그럼 엔터계에서 무서울 게 없을 듯…….
내가 말했다.
“에이, 제가 스키퍼인 건 맞지만, 좋은 음악은 다 좋아하져어.”
“어이구?”
송다온이 어이없어 허 웃는데 근처 식당을 예약하던 강효준이 말했다.
“쟤 내가 밥 살 때는 돈 많으니까 무조건 비싼 거 사라고 하는데.”
“너는 실제로 돈이 많잖아.”
“너도 이제 많잖아.”
“야이씨, 너네 양쪽 할아버지가 다 재벌이잖아.”
나는 같잖은 걸로 싸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이 사람들 서로 네가 더 돈 많다고 싸우는 건가? X나 어이없네. 나보다 한 살씩만 어렸어도…….
아티스트 보호가 과하기 이를 데 없는 강효준은 당연히, 카일룸에게 밥 먹일 때보다 더 과했다.
당연히 룸이 있어야 하고, 외부 테이블이 룸과 멀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문 앞을 지나가도 안쪽에 앉은 아티스트가 안 보여야 하는데, 무엇보다 본인을 위해 음식이 맛있어야 했다.
이것저것 전화로 따지며 가게 주인을 짜증 나게 하고 있는 강효준을 보며 송다온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쟤는 엔터계보다 요식업이 맞아.”
“제 생각에도요. 저 형 팔뚝 보면 면발 잘 뽑을 것 같은데.”
“어, 효준아, 나 짬뽕.”
면발 얘기에 생각났는지 송다온이 급하게 말하자 강효준이 대꾸했다.
“이미 중국집 잡고 있어.”
그리고 다시 전화하자 송다온이 말했다.
“귀신이야. 아티스트들 뭐 먹고 싶은지 안 물어봐도 안다니까.”
생각해 보니 그랬다. 소름 돋네, 뭐야. 내 주변에 직업 잘못 찾은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잠깐만, 인간은 끼리끼리라는데 나 포함은 아니겠지…….
아무튼 우리는 다 같이 중국집으로 이동했다. 얼마나 자주 왔는지 강효준을 보자마자 반가워하던 중국집 사장님이 그 뒤에 따라오는 나와 송다온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그 애기들이 아니네?”
카일룸은 아니지만 클라루스예요, 사장님! 클라루스!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클라루스는 당연히 아실 사장님이 송다온은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날 보고 말했다.
“아, 올림픽!”
“네? 아, 네. 제가 바로 올림픽입니다.”
내 말에 사장님을 포함한 사람들이 웃었다. 안 그래도 어른들이 날 보면 올림픽이라고 부르신다. 뭐로든 알아봐 주시면 되지……. 예능 힘이 엄청나긴 한가 보다.
룸으로 들어가서 송다온이 나에게 제일 안쪽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아티스트가 이리로 들어가시고.”
“아, 선배님.”
“사장님이 난 못 알아보시고 넌 알아보시는데, 여기선 네가 아티스트지.”
송다온은 깐족거리며 놀리고 강효준은 흐흐 웃고 있다. 어휴,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알면 배를 잡고 웃겠다.
여기는 해물누룽지탕이 유명하다고 해서, 그거 시키고 강효준이 시키는 게 웬만하면 맛있으니까 따라서 간짜장을 시켰다.
강효준이 기껏 안쪽이 안 보이는 자리로 잡았는데, 송다온이 장난치느라 내가 안쪽으로 앉는 바람에 문 앞 지나가던 사람 몇이 송다온을 발견했다.
“어! 어! 사장님!”
“저기 클라루스! 밥! 엄마!”
사장님 따님이신 듯한 분이 일을 도와주러 오셨는지 앞치마를 꺼내다가 송다온을 보고 기겁했다. 클라루스라는 말에 사장님도 뒤늦게 놀라서 다시 달려오셨다.
한바탕 소동이었다. 송다온은 웃느라 정신없고, 음식점은 시끌시끌했다. 식사 시간이 소란스러워졌으니 짜증 날 법도 한데, 이 난리를 그냥 즐기고 있는 송다온이 신기했다.
나는 저렇게 우주대스타가 되면 엄청 까탈스럽게 굴 예정인데…… 뭐, 지금이라고 무던한 건 아니지만.
송다온을 보고 있으니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멤버들도 얼굴만 보면 어느 정도 조건이 되는데 성향이…… 성격도 나쁘지 않은데 그 극히 내향적인 성향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고 더 많이 사람들과 만나고 충돌하며 모난 부분이 깎이고 둥글둥글…….
……해지는 것도 생각해 보니까 좀 별로네. 모난 부분도 있어야 사람다운 건데.
강효준이 바로 쫓아내려고 하니까, 송다온이 말렸다. 저 인상으로 쫓아내면 기억에 안 좋게 남을 것 같았나 보다. 이해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음식을 가져다준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음식 다 나왔어요?”
“아, 응. 다 나왔어요.”
“우왕,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저희 밥 먹는 동안 잠깐만 문 잠글게요.”
“어휴, 괜찮지.”
나는 꾸벅 인사하고 사장님이 나가자마자 더는 손님들이 못 기웃거리게 문을 잠가 버렸다. 그리고 날 보고 있는 송다온에게 말했다.
“제가 조용히 밥 먹는 거 좋아해가지고.”
내 말에 송다온이 잠깐 날 보다가 웃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간짜장이 맛있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송다온은 강효준에게 다음 앨범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다음 앨범은 내년 가을 정도에 나올 예정이라는 것 같았다. 기자들이 알면 난리 날 소식을 이렇게 미리 알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카일룸을 프로듀싱 하고 있으니, VVV엔터 내부인 취급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송다온이 말했다.
“후배님이랑 한번 작업해 보면 좋은데, 일정을 너무 다 짜놨네.”
그 말에 중국집에서 서비스로 준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열심히 먹던 내가 대꾸했다.
“에이, 클라루스가 그 정도 일정도 없으면 이상하죠.”
“그래?”
내가 목적을 가지고 치대는 줄 알아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선배님, 저 그냥 후배예요. 프로듀서 이전에, 아이돌 후배요. 뭐 맡겨야 한다고 부담가지시면 제가 더 불편해요.”
내 말에 송다온이 씩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정해원은 작업실로 돌아가고, 송다온은 모처럼 1본부에서 함께 으쌰으쌰하던 강효준과 VMC 빌딩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송다온이 말했다.
“난 또 해원이가 곡 준비한 거 있나, 싶어서 나 혼자 괜히 부담가지고 있었네. 아니, 날 너무 좋아하니까.”
“그거 그냥 네가 좋은 거야. 쟨 돈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 지가 하고 싶은 음악 해야지, 돈만 보고는 일 못 해. 의리 때문에는 몰라도.”
“음.”
“쟤는 그냥 오로지 아이돌이야.”
송다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효준아, 해원이가 기가 막힌 곡 만들면, 우리부터 알려줘라. 너네 애들부터 주지 말고.”
“퍼스트라이트부터 주려고 할걸.”
“그래도 설마. 아무리 돈에 관심 없어도 우리가 부르는데?”
“하긴. 클라루스는 상식 밖이긴 하지.”
강효준의 말에 송다온이 흐흐 웃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 * *
그사이 안주원의 솔로, 싱글 일정이 공개되었다.
원래는 첫눈 시기에 내고 싶었지만, 안주원이 시상식 준비도 바쁠 거라고 10월 초로 하겠다고 했더니 TRV가 거기 맞춰서 빨리빨리 준비중이었다.
이럴 때 보면 일을 잘할 수도 있는데, 안 하는 거구나 싶다. 그래도 뭐, 안주원에게 잘해주면 됐다.
숲속의 나무집 창가에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한 컷에 분위기 있는 옅은 녹색 타이포그래피로 싱글 공개 일정이 적혀 있었다.
당연하지만, 얼굴 하나로 난리가 났다. 크, 이게 퍼스트라이트의 얼굴이다.
아무튼 그사이 나도 여러 명을 고생시키며, 프루티의 작업이 끝. 드디어 본녹음 일정이 잡혔다.
나는 VVV엔터에 잠깐 들렀다가, 강효준이 외부에 따로 잡아준 녹음실로 향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긴장도 풀 겸, 햇살이들한테 댓글을 달아주며 놀려고 X버스에 들어갔다.
뉴데이즈와의 데스게임, 더 라이징 외전에서 보물찾기 파트가 나갔나 본데, 피드에 내가 카메라 감독에게 창고 무서우니까 같이 들어가 달라고 징징거린 부분의 짤이 올라와 있었다.
[누가 공식 유튜브 아닌 곳에서 애교부리래……?]
[정해원 너 누나가 밖에서 귀엽지 말랬지?]
아니…….
나는 바로 댓글을 달았다.
[해원 : 햇살이들 눈에만 귀여운 거라니까…… 귀엽다고 해줘서 좋긴 한데 그래도…….]
[↳지우니 : 맞아 우리 팀에서 귀여운 건 나뿐이니까]
[↳↳오빠 귀여운이라는 말에 알람 울리게 해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귀엽단 얘기만 나오면 1초만에 나타나네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이들…… 신지운?이라는 남자가 강아지로 보입니다…….]
[↳평범한 햇살이네요]
[↳지우니 : 강아지?니까]
[↳↳해원 : 어휴…….]
아무튼 마음 넓은 햇살이들은 신지운을 귀여워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아무래도.
[해원 : 햇살이들 지운이도 이렇게 귀여워하는데 저는 당연히 귀여울 듯]
너무 꼴보기 싫은가? 올리지 말까.
나는 평소 이런 습관이 없는데도 괜히 손톱을 씹으며 고민했다. 하지만 햇살이들이 내가 햇살이들 눈에만 귀엽다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무래도 우리 애가 자존감이 낮은 것 같다ㅜㅜㅜ라며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귀여운 이모티콘을 붙여 당당하게 올렸다. 그리고 반응은 못 보겠어서 덮었다.
그러고 나니까 우리 단톡방이 울리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가 귀엽다고 또 싸우는 거였다. 우리 팀 멤버들이 신지운 외에도 은근히 귀여움에 집착이 심하다.
아무래도 키도 있고, 인상도 유한 편은 아니라서 그런 모양이다. 물론 나도 좀 귀엽고 싶다…….
그렇게 하나도 안 귀여운 것들이 자기가 귀엽다고 우기는 걸 보면서 낄낄거리고 쉬다가, 더 라이징 외전의 조회수가 어느 정도 나오나 궁금해서 유튜브를 들어갔다.
그런데 1화 조회 수가 200만이 넘어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잘 나와?”
안 그래도 강진영이 문자로 조회수 잘 나온다고 우는 시늉하더니 진짜로 잘 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잘 나오는데…….
그렇게 녹음실에 도착해 보니, 문 앞에 양이형, 그리고 늘 나와 함께 보컬 디렉팅을 봐주는 장석훈이 도착해 있었다.
내가 물었다.
“이 녹음실 좋아? 나 처음 와봐.”
그러자 양이형이 대답했다.
“당연히 좋지, 여기 티케 엔터 거야.”
“아, 여기가 거기야?”
아이돌 명가, 티케 엔터 소유의 녹음실은 장비가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양이형이 말을 이었다.
“네가 지운이 드라마 그거 많이 도와줬다며. 티케 엔터에서 너 쓰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더라고.”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민망하다, 진짜.
그나저나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녹음하는 건.
녹음실로 들어가며 긴장이 안 풀려서인지,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아서 손발을 탈탈 털었다. 한 곡 전체에 내 목소리만 나오는 거 괜찮나. 그니까, 음악적으로 괜찮은 건가…….
물론, 아무리 노래를 못해도 녹음을 할 수 있다. 기계가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녹음실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익숙한 형체 여섯이 보였다.
“어?”
내가 멈칫하자 졸던 민지호가 손을 흔들고 말했다.
“짜잔…….”
그리고 다시 안주원에게 기대 졸았다. 황새벽은 아예 누워서 손만 겨우 들었다가 다시 떨궜다. 내가 물었다.
“왜 왔어? 뭐 해?”
내 말에 박선재가 대꾸했다.
“우리 안 오면 삐질 거잖아. 다 알아.”
사실 그렇다. 허허.
낯선 녹음실에, 혼자 한 곡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솔직히 은근 쫄렸는데 우리 멤버들이 죄다 와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 든든했다.
그렇게 풀려고 해도 안 풀리던 긴장이 멤버들 얼굴을 보는 순간 확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