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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63화 (16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63화

밖에 모여 있으면 부담스러우니 멤버들은 집에 보낼까,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스튜디오에 많은 사람이 돌아다녔다. 박선재가 나에게 말했다.

“형, 우리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치?”

“어, 진짜로…….”

티케 엔터의 녹음실을 한 칸 빌린 거니, 티케 엔터 A&R이 돌아다니는 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VVV엔터 A&R은…… 뭐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TRV 직원이 와있는 것도 뭐. 내가 다른 곳에서 음원을 내리란 걸 모르는 상태니까, 소속 가수 녹음하는데 와있는 것도 이해한다.

이렇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왜 와 있는지 나름으로 이해가 가서 누구 하나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혼자 조용히 녹음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진짜로, 우리 멤버들 안 와줬으면 녹음 망칠 뻔했다.

녹음실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계속 밖에서 기웃거리는 건 느껴졌다. 다행히 양이형이 험악한 표정으로 문을 닫아 버렸다.

“가뜩이나 보컬 때문에 쫄려 죽겠는데.”

내가 투덜거리자 내 보컬 선생님이자 보컬 디렉터 장석훈이 말했다.

“너 이제 노래 괜찮아. 내가 가르쳤잖아.”

“하나도 안 괜찮다구.”

장석훈이 징징거리는 내 등을 떠밀어 부스로 밀어 넣었다.

녹음 직전, 나는 티케 엔터의 녹음실 벽이 근사해서 쓰다듬어보며 말했다.

“와 씨, 벽도 멋있어.”

“야이 씨, 촌스럽게 굴지 마, 좀.”

양이형이 짜증 내서 내가 대꾸했다.

“아니, 진짜로 멋있잖아. 나도 나중에 이런 벽 해달라고 할까?”

“웃기지 마, 너 저런 어두운 벽 해줘도 싫다 그럴 거잖아.”

그건 맞지.

나는 민망해서 흐흐 웃으며 녹음을 시작했다.

* * *

티케 엔터 A&R이 신지운에게 물었다.

“저렇게 셋이 팀이죠?”

“멤버랑 밥 먹은 것보다 저렇게 셋이 먹은 밥이 더 많을 걸요.”

“아, 궁금해 죽겠네.”

A&R이 투덜거리며 민지호와 안주원 쪽을 돌아봤다. 유선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퍼스트라이트의 다음 타이틀곡을 듣고 있었다.

신지운에게 물어보니 다음 퍼스트라이트 타이틀이 지금 정해원에 솔로곡과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티케 엔터 A&R이 한숨 쉬었다. 곡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제목이 ‘프루티’라는 것만 들었기 때문에 신지운에게 물었다.

“일단, 어때? 밝아요? 상큼한 느낌이에요? 과즙 팡팡?”

“그런 느낌이 어울리는 형이 아니지 않아요? 전혀.”

“에이, 저 얼굴이면 무슨 컨셉을 해도 어울리지.”

그렇게 녹음실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TRV 직원이 자연스럽게 녹음실로 들어가려 했다. 신지운이 돌아보며 말했다.

“녹음 중이잖아요. 들어가지 마요.”

그러자 TRV 직원이 오히려 황당해하며 말했다.

“조용히 들어가면 되죠. 우리 회사 소속 가수 녹음하는데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면 어떡해요?”

그렇게 말하자 신지운이 이제는 표정을 대놓고 구기며 말했다.

“솔로 안 내준다면서요.”

“아니, 그게…… 얘기가 잘못된 거고, 내기로 했어요. 다시.”

주춤하던 TRV 직원이 녹음실 안으로 피하려는 듯 갑자기 문을 열었다. 안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티케 엔터와 VVV엔터의 A&R들이 직업병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티케 엔터 A&R이 말했다.

“……와, 이게 뭐야?”

심하게 왜곡된 현악기 소리가 수도 없이 많은 트랙을 뚫고 귀에 꽂혔다.

겹겹이 쌓인 악기들로 이룩한 웅장함을 뚫고 나오는 현악기의 멜로디 때문에 곡에서 처연함이 흘러넘쳤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판타지 느낌이 확 나지?”

VVV엔터 A&R의 혼잣말에 티케 엔터 A&R이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FX(효과음)가 RPG게임에서 쓰는 FX라서 그런 것 같은데요.”

“아. 그거네. 아우, 감사합니다. 와아씨…… 이게. 이야…… 그냥 좋네.”

밖이 시끄러워진 반면, 정해원은 문이 열리자 바로 녹음을 멈췄다. 본인 목소리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TRV 직원의 얼굴을 보고 대충 상황을 이해했는지 표정이 굳었다.

민지호가 재빨리 문으로 달려가서 말했다.

“형 노래 늘었어! 잘해! 쫄지 마!”

그 말에 정해원이 멤버들에게도 낯설 정도로 드물게 짓던 싸늘한 표정을 풀었다. 정해원이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하며 웃고, 민지호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TRV 직원에게 말했다.

“도움 줄 것도 아니면서 왜 방해해요!”

평소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민지호를 늘 말리던 막내즈들도 이번에는 말리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아니, 소속사에서 낼 음악을 들어도 안 보고…….”

“안 내준다면서요!”

“내주기로 했다니까요?”

“싫어요!”

“그게 지호 씨가 결정하는 게…….”

“아, 싫다고!”

복잡한 상황 설명할 것도 없이 민지호가 떼쓰는 것처럼 무조건 싫다고 하니 대화가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에 대한 파악이 되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는 가장 적절한 답에 가까웠다.

그때 녹음실에 들어선 강효준 A&R이 상황 설명을 듣더니 TRV 직원에게 말했다.

“해원이 솔로, 새 레이블에서 낼 건데요.”

“네?”

“제가 대표입니다. 저한테 말씀하시죠.”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정해원이 솔로 음원을 다른 소속사에서 내리라는 것을 조금도 전해 듣지 못하고, 짐작조차 하지 못한 TRV 직원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를 하며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회사에 보고하는 듯했다.

* * *

양이형은 녹음실 문이 닫힌 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심한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장석훈에게 말했다.

“회사에 망조가 들긴 했다.”

“그러게요. 해원이 TRV 무사히 잘 나갔으면 좋겠다.”

두 사람이 그렇게 때마침 회사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사이, 나는 잠깐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바로 말했다.

“그니까 형들도 빨리 짐 챙겨놔. 이형이 형은 작업실 머니까 새 회사 가까이로 가자.”

아직 ‘같이 가자’고 확실하게 말을 안 했다.

당연히 가주겠지, 라는 생각과 그래도 TRV와 함께 일한 게 몇 년인데 양이형 짬에 뭣도 없는 신생 회사로 가주겠나, 싶기도 했다.

내 말에 양이형이 힐끔 날 보더니 장석훈에게 말했다.

“쟤 뭐야. 그냥 저렇게 말하면 우리가 가야 되냐?”

“갈 거잖아요?”

“아니, 갈 건데. 좀 밥이라도 사주면서 말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 말에 마음이 탁 놓였다. 나는 히히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어차피 갈 건데 뭐하러 물어봐? 이심전심 아님?”

“야, 우리도 어, 인권이 있어.”

퍼스트라이트 없는 TRV는 성장의 문제지만, 양이형이 없는 TRV는 현상 유지의 문제였다.

다행히 양이형은 TRV와 척을 지거나 말거나, 나를 따라오겠다는 모양이었다. 장석훈도 마찬가지로, 양이형의 대학 후배다 보니, 양이형이 오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본인도 오지 않을 것이다.

고민도 안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내 최측근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생각해 보니, 살아가며 만난 의리 없는 사람보다 의리 있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은근 인복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들뜬 것을 감추려 괜히 더 트집을 잡았다.

“인권이랑 뭔 상관이야. 그냥 죽으나 사나, 어, 나랑 한 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웃기시네, X발. 야, 죽게 생기면 각자 죽자.”

“아. 형은 사람이 왜 이렇게 건조하냐.”

“야이씨, 같이 죽자는 건 안 건조하냐?”

“촉촉하지.”

내가 양이형과 투닥거리니까 장석훈이 참다가 드디어 소리를 쳤다.

“아, 목 아껴!”

“앗, 넵.”

나는 입을 다물고 다시 녹음을 이어갔다.

어차피 보컬 편집은 내가 할 거고, 어디에 뭐가 필요한지도 내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상의하거나 이러는 시간은 필요 없었다. 중간에 변경하는 부분도 거의 없었다.

다만 내가 워낙 목이 약한 편이고, 한 곡을 한 번에 부르는 것도 무리라 중간중간 휴식이 필요했다. 따듯한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도 해가며 녹음을 하느라, 한 프로(3시간 30분 내외)를 다 썼다.

내가 녹음을 끝내고 나오며 말했다.

“오늘 보컬 편집하려면 밤새야겠네.”

“내가 할게. 석훈이랑 상의해서.”

양이형이 말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 형이 해. 내가 할 거야.”

“아, 네가 하려는 거, 뭐 어떻게 할 건지 다 회의해서 알잖아. 근데 네가 하면, 네 목소리 흔적도 없이 다 이펙팅해 버릴 거잖아.”

“그러려고 만든 곡이니까여.”

같이 먹고 자고 해서인지, 양이형은 내가 내 목소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죄다 왜곡시켜 놓을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내가 내키지 않아 하니까 양이형이 말했다.

“야, 같이 죽자며. 근데 보컬 편집 하나를 못 맡기냐? 나 믿어봐.”

“같이 죽기 싫다며?”

“아, 같이 죽어줄게, 죽어주면 되잖아.”

우리가 쓸데없는 걸로 싸우니까 녹음이 끝났다는 사인에 녹음실 문을 열었던 안주원이 의아하게 물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데 같이 죽자는 말이 나와?”

그래서 내가 신나게 대꾸했다.

“이형이 형이 나 죽으면 따라 죽는데.”

“아, 저 미친놈이 저걸 저렇게 왜곡하네.”

“……뭘 왜곡하면 이렇게 돼?”

안주원은 황당해하고, 양이형은 빡쳐서 뒷목을 잡고, 나는 신이 났다. 히히.

녹음실에서 나왔는데, 발레 예능 촬영을 위해 먼저 간 한효석과 얼마 전 녹음한 일본 드라마 OST 관련 스케줄 때문에 간 황새벽을 제외하고 다들 나를 기다려줬다. 나는 솔직히, 많이 감동한 걸 숨기고, 안주원에게 물었다.

“여태 뭐 했어?”

“근처에서 영화 봤어.”

“아, 너네 왜 나 없이 영화 보냐?”

“……너 기다리면서 영화 본 거잖아?”

“응, 알지만 그냥 찡찡거려봤어.”

나는 말하고 흐흐 웃었다.

의리로 와준 것도 고마운데 녹음 끝까지 기다려줄 줄은 진짜로 몰랐다. 나는 기다린 사람들과 함께 뒤풀이로 밥을 사기로 했다. 밥값은 예상대로 무지하게 많이 나왔다.

* * *

다음 날 나는 작업실에서 프루티와 연결되는 곡 작업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안주원의 싱글 제목 공개를 기다렸다.

‘첫눈을 줄게’

확인하고 바로 X버스에 들어가니 예상대로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햇살이들, 심의 확인하고, 안주원과 내가 공동 작업한 거란 걸 알면 더 신기해하겠지? 햇살이들 좋아할 걸 생각하니 기대된다.

양이형은 녹음 직후부터 밤새 보컬 편집을 해서, 다음날 작업실에 있는 나에게 음원을 보내줬다.

솔직히, 좋았다. 양이형이 전화로 생색을 냈다.

-거봐, 네 음색 살려도 괜찮잖아.

“누가 이렇게 보컬 편집을 잘했어?”

나는 감탄하며 공치사를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바로 강효준에게 문자를 했다.

[프루티 왔어요]

[형 빨리 와요 빨리]

문자는 저렇게 보내도 내 소속사의 대표가 될 사람이라 그런지, 남의 회사 A&R일 때와는 다른 묘한 긴장이 있었다. 어쨌든 대표가 A&R이면 음악적으로 신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효준을 기다리고 있는데, TRV 부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녹음실에서 내가 솔로를 다른 곳에서 낸다는 걸 처음 들어서 전화하는 모양이다. 요즘 그거 말고는 전화하는 일이 없으니까.

아니, 내가 내달라고 가져갔을 땐 정작 안 내준다고 그러더니,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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