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64화
내가 TRV 부사장에게서 온 전화를 보고만 있으니 끊겼다가, 다시 걸려왔다. 작업실에 들어오던 강효준이 물었다.
“안 받아?”
“그러려고요.”
“왜 전화했는데.”
“솔로 음원 때문에요.”
“그거 네가 보내준 계약서 사본으로 법적인 거 다 확인 끝났고, 문제없이 새 레이블에서 나올 거야.”
“오.”
“생각보다 네가 계약서 꼼꼼하게 확인하고 사인했더라.”
고럼고럼. 딜할 수 있는 상황이면 끝까지 해봐야지. 계약서 한 장이 인생을 바꾸는 법이라고 국선아 때부터 신지운이 얘기했었다. 모든 계약은 신중히.
강효준은 프루티를 들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미 지겹게 들었는데도 매번 저렇게 진지하게 듣는다. 진짜 음악을 좋아하나 보다.
곡을 끝까지 들은 강효준이 말했다.
“됐다. 이제 뮤직비디오만 잘 나오면 되겠네.”
나도 동의하려는데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확인해 보니 티케 엔터 소속 프로듀서 강진기였다.
그 전화는 한 번 울리고 나서 바로 받았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강진기가 말했다.
-나한테 잘 배웠나 보다.
……갑자기?
-우리 A&R이 우연히 솔로곡 짧게 들었나 보더라고.
그 티케 엔터 A&R도 약간 스파이셨네.
워낙 유능한 스파이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보니, 나는 스파이에 좀 관대해졌다.
강진기는 아무래도 자기 음악 세계가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며, 앞으로 좀 더 자신의 영향력을 생각해 행동해야겠다는 반성까지 했다.
어차피 지금 대한민국에서 케이팝을 작곡하는 작곡가 중에 강진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나…….
그런데도 나 하나에게 영향을 줬다고 반성하는 강진기를 보면서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슈스가 되면 까칠해질 거지만, 나태해지진 않아야겠다. 하, 어떻게 까칠해지지. 벌써 고민되네.
일단 멤버들이 2시간 간격으로 굶주리고 있으니까 당당하게 끼니를 요구해야지. 지금은 멤버들이 방금 전에 밥 먹고 배고프다고 하는 게 민망한지 가끔 말을 못할 때가 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딴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강진기는 신나게 자기 자랑과 동시에 나태함을 경계하는 것에 대하여 설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전화를 끊고 나니 날 신기하게 보고 있던 강효준이 물었다.
“넌 진짜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저 다 컸는데.”
왜. 뭐 문제 있나?
내가 생각하는데 강효준이 말했다.
“아주 엔터계 전반에 인맥을 만들어 놓고 다니네.”
“그런가…….”
엔터계는 인맥이라는 걸, 아무 능력 없이 오로지 인맥만 있는 전 소속사 사장을 보고 배우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맥으로 남아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강효준이 말했다.
“다음 퍼스트라이트 타이틀도 어느 정도 작업했지?”
“네. 애들이 마음에 든대요.”
나는 강효준에게 헤드셋을 건네줬다. 데모를 듣던 강효준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태오 샘플링이네.”
멤버들과 회의하다가, 이 ‘뱀파이어 관련 컨셉’을 더 라이징의 서바이벌 곡이었던 마태오에서 시작되는 3단계로 이어가 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박선재에게서 나왔다. 멤버들은 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프리코러스에 마태오의 신스 리드를 넣고, 그 위에 트랙을 쌓아, 마태오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면 잘 안 들릴 정도로 숨겨놨다.
나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샘플이 귀에 익은 사람들한테, 당연히 더 잘 들리잖아요. 햇살이들이 마태오를 제일 많이 들었을 테니까, 제일 먼저 재미있어 해주면 좋겠어요.”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겠네. 넌 절대음감이라 어떻게 숨겨도 사용한 샘플이 다 분리돼서 들리잖아.”
약간 고생하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히히.
그렇게 음악을 들어보고 나서, 강효준이 말했다.
“아, 그나저나 ‘더 라이징 외전’.”
“어, 형 벌써 다 모니터링해요?”
“퍼스트라이트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다 모니터링해야지. 개인 활동도 다 봐.”
하, 이런 걸로 막 감동하고 이러네……. 눈 높여야지. 도도한 슈스가 되어야지…….
내가 헛생각을 하는 사이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게 해외 팬들 반응이 좋더라.”
“진짜요?”
“응. 새로 업로드되는 편이 여기저기 인기 동영상에 올라갔더라고.”
“형 해외 인기 동영상 올라갔는지도 확인해요?”
“TRV 안 해?”
“…….”
“네가 거친 소속사들치고는 그래도 네가 눈이 높은 편이다.”
칭찬 같지만 아니다. 허허. 속 쓰리네.
아무튼 강효준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해외 케이팝 팬들은 말로 떠드는 예능은 자막을 봐도 100%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아, 눈으로 보는 재미를 살리는 예능을 좀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더 라이징 외전이 들어맞았던 것 같다.
하긴 나도 생각보다 조회수가 많이 나와서 좀 놀랐다. 거기에 회차가 거듭될수록 반응이 점점 더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수영장에서 몸싸움한 편이 진짜 반응 좋더라.”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장소에서 우르르 몰려들어 서로 물에 빠뜨리는 걸, 엄청 영화적으로 편집했던 모양이었다. 정작 우리는 또 애들이 많아서 물에 던지면 무서운 것도 잊어버리고 꺄르륵 꺄르륵 웃었는데.
아무튼 잘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우리 팀에게도 좋고, 뉴데이즈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냥 뭔가, 강진영이 약간 사기꾼 스타일이긴 해도 워낙 열심히 사는 놈이다 보니 같이 잘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역시 호감을 주는 것에는 성실함이 최고인 것 같다. 비호감에 불성실이 잘 먹히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
* * *
정해원이 전화를 받지 않자, TRV 부사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최기문 부대표가 바라는 게, 그 아버지 최동국 대표가 바라는 것과 같을 거라고 단정해 버린 게 문제였다.
박희택 전 사장이 정해원의 재계약 시점에 워낙 아티스트에게 유리한 계약을 해줬기 때문에, 개인 앨범이 다른 소속사에서 나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해원이 개인 소속사에서 앨범을 준비하는 걸, 녹음 당일까지 몰랐다는 건 큰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정해원이 최기문 부대표와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전속계약해지 소송을 해도 TRV가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봐왔으니 퍼스트라이트 팬덤은 물론, RUSH로 정해원을 알고 있는 대중들까지도 정해원의 편을 들 것이다.
엔터 회사를 운영하는, 그것도 신인 그룹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조작적인 악플보다 대중을 불타게 하는 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최기문이 정해원에게 했던 손찌검일 것이다. 거기다 그걸 정해원이 영상으로 가지고 있기까지 했다.
아티스트 폭행.
그건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 소속사에 가지는 일반적인 불만과는 격이 다른,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다.
다시 상황을 확인하려 전화를 걸어온 최동국 TRV 대표에게, 부사장은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솔로 녹음하는 데 다녀왔다며. 어떻게 됐어?
“대표님. 저…… 최기문 부대표가 해원이한테 훼방 놓으라고 해서. 그게 대표님 말씀이신 줄 알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정신이 나갔었는지…….”
그리고 예상대로 욕이 쏟아졌다.
요즘 70대 초반이면 젊구나, 싶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이렇게 끊기지 않고 욕을 퍼부어댈 체력이 되니.
그렇게 욕을 퍼부어댄 최동국 대표가 말했다.
-이 새끼들이 내가 누워 있는 사이에 회사를 조져놨네.
방금 욕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하는 건 스톡홀름 신드롬 같지만, 부사장은 지금 최동국 대표가 필요하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최동국 대표가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회사는 잘 굴러가고 있었다.
최동국 대표가 쓰러진 직후에 갑자기 그 일가족이 회사에 들어오면서부터, 박종렬 엔터가 막아주지 않으면 매년 적자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퍼스트라이트라는 라이징 그룹을 잡았는데, 최기문이 자기 손으로 TRV와의 끈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그 행동에 기함했지만, 이미 일가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어 막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이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최동국 대표가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내가…… 그래, 이걸 누굴 탓하냐. 내가 누워 있는 게 죄지.
진짜로, 그게 죄였다. 두 번째는 아들을 그따구로 키운 것이고…… 부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최동국 대표가 말했다.
-알았다. 내가 기문이한테 무릎 꿇어서라도 잡으라고 할게.
“아, 예. 대표님.”
그런다고 돌아오기엔 이미 너무 먼 강을 건너버렸는데요…….
부사장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다른 모든 말처럼 진짜로 하고 싶은 말들은 다시 삼키고 잊어버리려 애썼다.
* * *
안주원의 싱글, ‘첫눈을 줄게’의 발매 당일.
오후 여섯 시. 안주원은 회사 304호실에서 X이앱을 켤 준비를 한 상태로 발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 여섯 멤버들도 모두 안주원을 둘러싸고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섯 시.
음원이 업로드되었다.
안주원은 뮤직비디오가 끝나는 3분을 일단은 기다렸다. 그리고 3분 뒤, 반응을 확인했다. 그리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유튜브 댓글을 보던 민지호가 말했다.
“햇살이들 다 울어…….”
따라 울 것 같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안주원은 다시 댓글을 보았다.
[주원아ㅠㅠㅠㅠㅠㅠ]
[우리 쭈어니가 이렇게 아이돌에 진심인 앤데ㅠㅠㅠㅠㅠ]
[이거 진짜 주원이랑 해원이가 만든 거야?]
[가사 너무ㅠㅠㅠㅠㅠㅠ주원이다워서 눈물 나와ㅠㅠㅠㅠㅠ]
[노래 진짜 예쁘다 주원이 목소리도 이렇게 좋은지 이번에 새삼 느끼네]
[우리 주원이 아이돌밖에 모르는 애라구ㅠㅠㅠㅠㅠ]
[엥? 이 안주원이 국선아 그 안주원이야? 그 안주원이 자작곡 냈어?]
[↳응 그 주원이가 자작곡 냈어. 해원이랑 공동작업이야]
[작곡 주원 해원, 작사 주원, 편곡 해원ㄷㄷㄷ]
[↳캬 본새]
[↳진짜 성장형이다 퍼라 덕질 X나 재밌을듯ㅋㅋㅋㅋㅋ]
[↳↳재미는 글쎄ㅎㅎ 아직도 구팬 신팬 X나 싸우던데]
[ㅎㅎㅎ조작충이랑 국혐이 공동작업하네]
[↳1점]
[↳0.0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다못해 얼굴 하나로 살아남았다고 하거나 조작이라고 하거나 하나만 해라]
[↳솔직히 X나 열폭이지ㅎ]
[아니 근데 정해원 합류하고 퍼라 진짜 신기하다 음악 스펙트럼 X나 넓어진 느낌]
[↳지난번에 새벽이 솔로도 개오짐…….]
[↳↳오로지 곡 좋은 걸로 수록곡이 차트인한 그 명곡 말씀이신가요]
[햇살이들 이 기사 봤니 주원이 인터뷰ㅠㅠㅠ]
[해원이가 너무 좋다, 이거 해보자, 라고 하더라고요. 처음 만든 데모는 정말 형편없었는데도요. 너무 고마웠어요. 아, 이런 말 하면 또 제가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일까봐 햇살이들이 걱정할 것 같아서 덧붙이고 싶어요.
해원이랑 회의를 정말 많이 했는데, 한 번은 해원이가 그러더라고요. 가끔씩 햇살이들이 너무 고마운데, 너무 고마워서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고, 그런 이야기냐고. 정확했어요.
‘첫눈을 줄게’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소심해진 사람의 이야기예요.]
[↳ㅠㅠㅠㅠㅠㅠㅠ]
[↳계속 참았는데 여기서 눈물 터짐ㅠㅠㅠㅠㅠ]
[↳주원이 진짜 따듯한 사람이다ㅠㅠㅠㅠㅠㅠ]
[↳해원이 햇살이 사랑 뭐야ㅠㅠㅠㅠㅠㅠ 왜 나 또 울려ㅠㅠㅠ]
[근데 나 진심 햇살이 아닌데 첫눈을 줄게 X나 좋아 지금 산책하면서 듣는데 X나 센치해 미쳤어 X발 24시간짜리 곡을 만들어도 되는 거임?]
[↳ㅋㅋㅋㅋㅋㅋ워워ㅋㅋㅋ]
외모는 좋지만 끼가 없다, 아이돌은 그냥 배우가 되는 발판으로 여길 것이라는 평을 줄곧 들어온 안주원이 가져온 따듯한 자작곡에 팬들은 울음바다였다.
안주원이 정해원에게 말했다.
“고마워.”
“응? 뭐가?”
또 자기가 나서서 밤새 곡 뜯어고치고, 안주원이 만든 것을 어떻게든 살려가며 프로냄새 물씬 나게 편곡해 놓고 왜 고마워하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햇살이들이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다고 하지만, 정해원을 보면 그래도 자신은 자신감이 충만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