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69화
“팀 활동할 때 문제 생길까 봐 걱정하더라구요……. 그래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던 안주원이 급하게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심약한 나는 심하게 놀라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야. 놀랐잖아.”
“어, 미안.”
나는 핸드폰을 다시 주워 다행히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다시 전화할게요.”
-어,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 안주원을 돌아봤다.
“어, 뭔 전화냐 하면.”
“뭔지 몰라도 안 돼. 애들도 다 안 된다고 할걸.”
“일단 들어봐봐.”
“안 들어도 돼. 이런 날 올 것 같더라.”
“무슨 날?”
“내가 걸리적거리는 날.”
“……이 자식 말하는 거 봐?”
나는 진짜로 욱했지만, 안주원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TRV랑 어떻게 계속 일하겠다는 말이 나와? 맞은 것도 그렇지만, 부대표가 너한테 악플 달던 거 잊어버렸어? 아주 작정하고 너 아이돌 못 하게 하려 한 건데.”
“최기문, 엔터계 못 들어오게 해준대.”
“그걸 믿어? 아들인데?”
“TRV 요즘 하는 거 보니까, 신인개발팀 위주로 돌아가서, 여기서 계약 종료될 때까지 더 앨범 내게 해줄 분위기가 아니잖아. 일본 활동 타이밍도 딱 좋고. 그리고 너희가 쓴 가사 보니까 일본 활동 곡으로 딱 좋을 것 같은데.”
박선재에게 주려던 곡 중, 하이틴 풍의 음악에 멤버들이 후렴 가사를 써왔다.
민지호가 요즘 몬스테라라는 말에 꽂혀서 ‘가사를 어떻게 쓰든지 몬스테라를 넣어달라!’라고 우겼다.
그래서 찾아보니 몬스테라의 어원인 ‘monstrum’이 괴상한 것, 괴물, 도깨비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몬스테라 몬스트룸 이상하다!]
민지호의 강한 주장을 꺾지 못하고 쓰인 후렴 가사였다. 나는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멤버들이 참 민지호를 잘 받아준다고 생각했다. 음과 상관없이 가사에 느낌표를 써주는 것만 봐도…….
나는 말을 이었다.
“너 때문 아니고, 진짜로 공백기 줄이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도 미니 하나는 내줄 거 아니야.”
“혹시 그게 된다고 쳐도 8개월은 너무 길어. 지금 드라마 일본에서 반응 와서 신지운 이름 알려지고, 조만간 황새벽 OST 뜨면 인기가 없기 힘드니까 내년 초가 적기라고.”
“갑자기 무슨 계획도 없던 일본 활동이야. 너 나 TRV랑 계약 남은 거 없었어도 일본 활동하겠다고 할 거냐?”
“어. 할 건데? 나 사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법이 없어서 말 안 한 거야.”
“네가 그런 생각을 했으면 우리가 몰랐겠냐?”
“아, 드럽게 내 생각 해주네.”
“내가 할 말이지, 그건.”
우리는 복도 한가운데서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다.
* * *
“……인기가 없기 힘들어? 정해원 왜 저래. 아, 부담스러. 체하겠다.”
황새벽이 부담감에 가슴을 움켜쥐며 힘겨워하자 어른스러운 박선재가 이해한다는 듯이 등을 두들겨 줬다.
민지호는 문틈으로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번갈아 보며 말했다.
“형아들이 싸워. 형아, 민조 무쩌워어…….”
라고 말하며 멤버들을 돌아봤다가 말했다.
“형아가 없네.”
“야, 내가 형아잖아.”
“나도 형안데.”
신지운과 황새벽이 번갈아 말했지만, 민지호는 뭔 소리냐는 듯이 둘을 보고 다시 문틈을 살폈다. 한효석과 박선재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형들이 진짜 형 같긴 하죠.”
“맞아. 이 형들은 의지가 안 돼.”
두 사람의 말에 신지운도 황새벽도 할 말이 없어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신지운이 딴소리를 했다.
“그나저나 저렇게 둘이 싸우는 건 신선한데.”
“저도 처음 봐요.”
다들 싸움 구경하느라 사태 파악에 관심이 없자 박선재가 한숨 쉬며 물었다.
“근데 왜 싸우는 건진 알아?”
그러자 한효석이 대꾸했다.
“일본 활동 가지고 싸우는 것 같은데.”
여전히 잘 파악이 되지 않아 귀를 기울이다, 개중 제일 오래 두 사람의 싸움을 살피던 민지호가 말했다.
“해원이 형이 TRV랑 계속 일할 거래. 일본 활동 하고 싶대. 근데 주원이 형 개인 활동 계약이랑 상관이 있나 봐. 그래서 주원이 형 화났어. 해원이 형도 화났어.”
그냥 들리는 대로 민지호가 이야기하자 신지운이 대충 머릿속으로 이어붙이고, 파악을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네. 우리가 일본 활동 시작하려면 아직 뭣도 없으니까 투자를 엄청 해야 되잖아. 근데 그 수익은 우리 다음 소속사가 다 먹을 거 아냐.”
“그치?”
“그러니까 타협을 해서, 일본 활동만큼은 길게 계약해서 수익을 TRV가 먹게 해달라고 한 거지. 해원이 형은 그거 받아들이는 대신 안주원 개인 활동 계약 풀어달라고 협상해보자는 거고, 안주원은 자기 아니었어도 저 제안을 받아들였겠냐고 화난 거고.”
그 말에 멤버들이 신지운을 돌아봤다. 그리고 민지호가 물었다.
“……형은 머리가 그렇게 좋은데 왜 안 써?”
“뭘 안 써, 나 맨날 머리 쓰고 있어.”
“못 봤는데!”
“네가 안 볼 때 썼겠지.”
둘이 티격태격하기 시작하자 박선재가 떼놨다.
“아, 왜 또 둘이 싸워. 우리도 같이 고민해도 모자라.”
“내 말이.”
황새벽이 옆에서 맞장구치자 한효석이 조용히 물었다.
“……형이 리더인데 좀 더 강경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연습하느라 체력이 없네…….”
“아…….”
“우리가 안 맞아.”
“그니까요.”
잠시 후 민지호가 문을 조심조심 닫고 연습실 한가운데 앉아서 멤버들에게 손짓했다.
“우리끼리도 회의하자!”
그 말에 멤버들이 동의하며 민지호를 중심으로 둥글게 앉았다. 민지호가 말했다.
“난 일본 활동 좋아. 나 초대형 아이돌 돼서 돔 투어 하고 싶어! 하고 싶다고! 근데 대표 아들이 해원이 형 때렸잖아? 그래서 싫어!”
“……어느 쪽이야?”
신지운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민지호가 신지운의 귀에 소리쳤다.
“몰라!”
“아오, X발.”
“욕하지 마! 나도 답답해!”
민지호가 또 소리를 치자 한효석과 박선재가 같이 입을 틀어막아 뒤로 끌어다 놨다. 민지호가 다시 쭈르륵 엉덩이로 미끄러져 자기 자리로 되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근데 우리가 만약에 TRV랑 일본 활동 계약을 길게 한다고 쳐. 장점은 우리가 내년 상반기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거잖아? 단점 뭐 있어?”
그러자 신지운이 대답했다.
“인기가 있으면 일 년 내내 일본 활동만 시키겠지.”
그 말에 황새벽이 중얼거렸다.
“나 외국 음식 일주일 이상 못 먹어.”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새벽이 형은 연약해서 안 돼.”
“허약…….”
“허약해서 안 돼.”
황새벽의 말에 박선재가 고쳐서 다시 말했다.
한효석이 다시 말했다.
“전 해원이 형 떠나서, 그냥 싫어요. 못 믿겠어요.”
그 말에 신지운이 동의했다.
“나도. 지금 이렇게 일본 활동만 계약 기간 늘려달라는 이유가 뭐겠어. 딱 투자금 회수 때문이잖아.”
“제 말이요. 인기가 있으면 오히려 다행일걸요. 인기가 없으면 별의별 방법으로 투자금 회수하려 할 텐데.”
두 사람의 의견이 같았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안주원이 TRV 연습생 생활할 때 최동국 대표 얘기 많이 들었다는데. 진짜 돈만 되면 뭐든지 할 사람이더라. 부대표가 누구 아들인데. 그 새낀 멍청하기라도 하지.”
그러자 황새벽이 말했다.
“맞아, 옛날엔 막 때리고 협박하고 그랬대.”
“그니까, 그 버릇 어디 가겠냐고.”
멤버들의 의견을 듣던 박선재가 말했다.
“근데 해원이 형 말도 맞아. 지운이 형 드라마 때문에 인지도 확 올라가고, 해원이 형 뮤직비디오도 계속 일본 인동에 있잖아. 거기다 새벽이 형까지 잘 나가면…….”
그 말에 황새벽이 부담감을 느끼고 박선재의 팔을 붙잡았다.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새벽이 형 말고 아무튼 두 형이 다 인지도 올라가고 있잖아. 타이밍은 지금이 맞아. 제일 좋은 방법은 전속 계약 해지인데 그거, 소송 시작하면 오히려 시간 더 많이 날릴걸.”
법 관련 이야기에 멤버들이 모두 신지운을 보자, 신지운이 대꾸했다.
“부모님한테 물어봐야 되겠지만, 선재 말이 맞긴 하지.”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해원이 형 말대로 주원이 형 계약도 남아 있고. 난 해원이 형 이해해.”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민지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강효준 형 돈 많잖아. 우리 계약 기간은 못 사는 거야?”
그 말에 신지운이 멈칫하더니, 민지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찾아보면…… 방법이 없진 않겠지.”
그리고 이내 물었다.
“우리가 투자할 수도 있고. 너네 돈 좀 있냐?”
“해원이 형 많아!”
“심지어 걘 쓰지도 않고 통장도 안 봐. 예금통장에 그대로 쌓이고 있을걸.”
황새벽이 투덜거리고,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지금 어쨌든…… 최동국 대표는 퍼스트라이트로 8개월 동안 최대한 뽑아먹고 싶어 하고, 최기문 이 새끼는 그냥 삐지고 사업병 걸려서 우리가 망했으면 하는 거잖아.”
그 말에 한효석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정리하니까 부대표 진짜 멍청하네요.”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오히려, 최기문이랑 얘기해야 돼. 퍼스트라이트 아버지 몰래 팔아서, 그 새끼가 원하는 자기 엔터 회사에 투자금으로 쓰라고.”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게는 안 할 것 같은데…….”
한효석의 말에 박선재가 말했다.
“근데, 우리 큰아버지 보니까 사업에 눈 돌아가면 별짓 다 하더라구. 으.”
“그래?”
“응. 우리 아빠 그래서 큰아버지랑 절연했어. 나중에 내 앞길 막겠다고.”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이 생각하기에, 최기문은 충분히 멍청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합의를 보고 나서, 슬슬 싸우는 걸 말려보려고 멤버 다섯이 일어나 복도로 나섰다.
안주원과 정해원이 싸우다가 지쳤는지 복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왜 우리가 싸워, 이게 다 최기문 때문인데.”
“내 말이. 개새끼.”
“죽이고 싶다.”
그 말에 반쯤 탈진 상태인 정해원을 제외한 멤버들이 충격을 받아 안주원을 보았다. 안주원 입에서 저렇게 험한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곧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안주원이 말했다.
“내 걱정 많이 해주는 거 알아. 고맙다.”
그러자 정해원도 좀 누그러져서 중얼거렸다.
“……나도 내 걱정해 주는 거 알아. 화내서 미안해.”
“나도 미안해. 근데 해원아.”
“응?”
“다른 멤버들이 듣고 있는데.”
“…….”
정해원은 고개를 들어 멤버들을 보고 한숨 쉬며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욕을 했다. 민지호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와서 말했다.
“너무 감동적인 장면이야. 눈물이 난다. 흑흑.”
“……하.”
신지운도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오구, 착하다. 친구랑 화해했어?”
“아, 왜 나한테만 그래. 안주원도 그랬는데.”
“쟤는 원래 저렇게 말하는 성격이잖아.”
“아오씨…….”
정해원이 억울해하며 놀림을 당하고 있을 때, 안주원이 말했다.
“미안해, 우리 싸우고 있어서 기다렸지?”
“형들이 감정적으로 싸울 때 우리는 이성적으로 토론을 했어.”
막내의 어른스러운 말에 안주원과 정해원이 민망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정해원이 중얼거렸다.
“전속 계약 해지 소송 생각한 거면, 이기더라도 너무 오래 걸려.”
“아, 그것도 얘기했는데. 그보다.”
박선재가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걸 확인하고 두 사람에게 소곤거렸다.
“최기문 부대표가 자기 사업 자금 필요한 상태니까, TRV 몰래 퍼스트라이트를 팔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떤 것 같아?”
그 말에 정해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