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70화 (17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0화

나는 멤버들이 한 이야기를 생각해봤다. 그러니까, 최기문한테 퍼스트라이트의 8개월을 팔게 하자는 얘긴데…….

최기문이 그렇게까지 멍청한 짓을 할까, 싶다가도 충분히 그럴 놈이란 생각이 교차한다. 뒷일 생각 안 하고 막 저지르는 것만 봐도…….

찾으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계열 분리 같은 형식으로, 최기문이 가진 지분으로 레이블을 따로 만들어 그 레이블을 판다든지, 또는 말 그대로 돈 받고 전속계약을 해지하는 방법 같은 것들.

대표 몰래……가 문제지만. 그건 최기문이 알아서 하겠지.

후자가 더 쉬워 보이지만, 전자라면.

“……우리가 살 수도 있겠다.”

“형 돈 많지!”

“모자라면 은행이 빌려줄 거야.”

라고 강효준한테 배웠다. 허허.

나한테 얼마가 있는지 정확히 몰라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은행 어플을 켜서 숫자를 확인하고 목을 긁적거렸다.

“……이게 내 계좌야?”

돈이.

엄청 많았다.

내가 반년 계약 후에 한 재계약에서 받은 계약금은 장난처럼 보일 정도였다. 멤버들이 내 계좌를 보더니 한마디씩 했다.

“엄청 많긴 많은데, 생각만큼은 아니네.”

“저작권료가 그렇지.”

“형 부자니까 민조 맛있는 거 사줘도 되겠다!”

“지금 먹을 게 중요해? 해원이 형, 빨리 은행 좀 가요. 누가 예금 계좌에 돈을 이렇게 넣고 다녀요, 위험하게.”

한효석이 침착하게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나의 낮은 경제 관념을 갈구기 시작하더니, 아직 집을 살 생각이 없다면 정기예금으로라도 묶어 놓으라고 했다. 나는 바로 정기예금으로 돈을 묶으며 투덜거렸다.

“나도 처음에 저작권료 들어올 땐 했는데, 매달 확인하기가 귀찮아 가지고.”

“아니, 이거 몇 분이나 걸린다고 귀찮대요. 이게 귀찮으면 숨은 어떻게 쉬어요?”

“잔소리 그만해. 알았어. 내가 진짜 경제 관념 없는 바보 멍청이야. 됐냐?”

“네.”

한효석이 그렇게 대답하는 바람에 나는 바보 멍청이가 됐다. 하…….

뭐, 아무튼.

“우리 진짜, 어쩌면 TRV랑 계약 안 해도 되겠네.”

솔직히 말하면, 진짜 싫다. 그냥, 우리 마음대로 아무것도 안 되는 분위기도 싫고 무엇보다 최기문이 진짜, 정말 싫었다.

여전히 인터넷을 거의 안 보는 나에게 햇살이들과 유일한 소통창구가 X버스와 X이앱인데, 최기문이 악플을 달아대는 바람에 그 둘을 다 못 쓰게 됐었다. 그게 용서가 안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좋아. 해보자.”

그리고 안주원을 보니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물었다.

“왜?”

“…….”

안주원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 정말로 내가 자기 때문에 최기문을 용서하고, TRV와 일본 활동 계약을 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게, 지금 안주원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박선재가 안주원의 옆에 같이 앉아서 등을 토닥거렸다.

우리는 무슨 말을 더하는 대신,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저 함께 있어 주었다.

우리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TRV의 분위기도 좀 알아야 하고, 얼마가 필요한지도 알아야 하고. 일단 무엇보다 최기문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가장 바라던 방향이었다. 다행이었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연습실로 돌아와서, 안무팀이 오기 전에 내가 말했다.

“우리 계획대로 되면 좋지만, 안 될 가능성이 크잖아.”

부정적인 얘기도 필요하니까. 내가 말하자 멤버들이 내 쪽을 봤다. 이제 다들 내가 분위기 깨고 부정적인 얘기하는 것에 적응한 것 같다.

고맙다. 딴 팀 가면 나 따돌렸을 것 같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TRV한테, 일본 활동에 관한 확답은 안 할게. 고민해 보겠다고 하려고.”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바탕 싸우고, 떠들고 난 뒤 못한 연습을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미뤄진 만큼 두 배, 세 배 집중해서 체력을 쏟아가며 연습을 마쳤다.

그러고 숙소에 돌아와, 멤버들 모두 기절한 듯이 잠이 들었다.

* * *

신지운이 방을 나와보니 예상대로 안주원이 잠들지 못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신지운이 잔 하나를 더 꺼내오며 말했다.

“혼자 마시면 알코올 중독 생긴다.”

그 말에 안주원이 흐흐 웃고 마주 앉은 신지운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마시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방을 멘 정해원이 조심조심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둘을 보고 혀를 찼다.

“05들 저거, 알코올 중독 생기겠어.”

그 말에 둘이 웃으니까 정해원이 물었다.

“앞에 누가 알코올 중독 얘기했어?”

“응, 이미 지나간 주제야.”

안주원의 말에 정해원이 같이 웃더니 자기도 잔을 가져왔다. 그리고 음료수를 채우고 말했다.

“짠.”

그 말에 신지운이 건배를 해주며 말했다.

“일하러 가게? 지금?”

“응. 몬스테라 그거 좀 만들어 보게. 가사가 웃기긴 한데, 좋아.”

국내 데뷔를 성공적으로 끝내자마자 카일룸은 일본 활동을 시작했고, 그 첫 번째 활동곡 역시 정해원이 VVV엔터의 프로듀서와 팀업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반응이 쏠쏠해서인지 정해원은 일본 활동곡에 약간 자신이 붙은 것 같았다.

아무리 일 중독자여도 피곤하긴 한지, 정해원이 하품을 하고, 테이블에 잠깐 엎드리며 말했다.

“어떻게 되든. 나는 진짜 내년 상반기가 일본 활동 적기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그거 노리고 만들어보려고. 몬스테라, 몬스트룸, 이상하다…….”

정해원이 졸린 목소리로 후렴을 흥얼거리자, 신지운이 말했다.

“이야, 진짜 고레벨 일중독자다. 왜 일을 사서 하지, 이 형은?”

“너희 의견을 들으니까 하고 싶은 게 늘어서 그래.”

정해원이 다시 일어나 모자를 고쳐 쓰고 말을 이었다.

“우리 8개월이랑. 그동안 TRV에서 냈던 앨범, 영상들까지, 우리 관련된 건 전부 다 사서 독립하고 싶어.”

성장 서사는 아이돌의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정해원이 원하는 것을 이해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작곡가 형, 누나들 보니까, 저작권으로 담보 대출받더라고. 나도 저작권 쌓아서 그렇게 하려고.”

그 말에 신지운이 핀잔했다.

“미쳤냐?”

“왜 미쳐. 난 우리 팀 믿어. 우린 무조건 잘될 거야.”

“아, 이 형 운전하면 안 되겠는데. 졸려서 헛소리한다.”

“안 그래도 TRV 매니저 형 와 있어.”

정해원이 꾸벅꾸벅 졸면서 중얼거리더니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갔다 올게에.”

그리고 일어나 숙소를 나갔다.

정해원이 나간 후 신지운이 말했다.

“근데 최기문,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약간 좀 모자란 거 아니냐? 저 형 진짜 거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내가 소속사 사장이면 업고 다녔다.”

“그래서 정상적인 업계인인 효준이 형이 이미 업고 다니잖아.”

“하여튼 저 형이 없어봐야, 앨범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닌 줄 알지.”

“이번에 프루티도 진짜 좋지.”

“그것도 좋은데, 난 우리 다음 타이틀 있잖아. 그게 진짜 미쳤지. 와. 그거 콘서트에서 대형 스피커로 쿵쿵 때리면 난리 날 것 같은데…… 근데 솔직히 지금 약간 장르가 애매하니까, 완전히 힙합 장르로 빼버렸으면 좋겠어.”

“톡 보내.”

“어, 그래야겠다.”

신지운이 바로 톡을 보냈다. 그 사이 안주원이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난 아직도 해원이가 무대에 서는 것만 봐도 신기하고, 친구가 할 말은 아닌데. 기특해.”

“우리 다 그렇지. 심지어 막내도 기특하다고 생각할걸.”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은 술잔을 비운 후 그대로 술자리를 끝냈다. 멤버가 일하러 갔는데, 술을 더 마시려니 양심에 가책이 생겨 그럴 수가 없었다.

안주원은 박선재의 곡 가사를 쓰기 시작했고, 신지운은 준비 중인 믹스테이프 작업을 이어갔다.

* * *

VVV엔터로 가는 차 안에서 푹 자고, 일어나 보니 신지운에게 퍼스트라이트의 다음 타이틀에 대한 의견과 사진 하나가 와 있었다.

술자리 치우고, 둘 다 노트북 펴고 일하고 있다는 증명사진이었다.

[신지운 : 죄책감을 심어주고 가다니 흑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특한 놈들]

나는 그렇게 보내고 기지개를 켰다.

강효준이 자꾸 TRV를 사라고 할 땐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제 좀 이해가 갔다.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 TRV니까, 내가 TRV를 사야만 했던 것이다.

잠시 후 나는 VVV엔터 내 작업실에 도착했다. 이제 다음주면 작업실 인테리어가 끝나서, 그쪽으로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

VVV엔터는 우리 숙소에서 멀어서 빨리 작업실을 옮기고 싶었다.

새벽 1시, 회사는 고요했지만, 그래도 일반 업종에 비하면 남아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특히 카일룸 멤버가 지금 X이앱을 하고 있어서 모니터링하는 직원들도 꽤 됐다.

나는 나름 방해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작업실로 향했다.

이 작업실에서는 체력 버프를 못 받아서인지 영 체력이 딸렸다. 하지만 또 은근히, ‘피곤해 뒤지겠다’, 싶을 때만 나오는 것들이 있다. 켜놓고 뭐 하지, 하고 멍 때리다가 불시에 여느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프루티와 연계된 다음 타이틀을 켜놓고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예 힙합으로 가보는 게 어떠냐는 신지운의 의견을 떠올리고, 맨 처음부터 만들어놨던 킥과 808베이스를 만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뭔가, 될 것 같았는데. 진짜로 됐다.

“오. 이거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든 사운드가 마음에 들어서 혼자 히히 웃었다.

“신지운이 뭘 좀 아네.”

우리 팀은 운이 좋았던 게, 멤버들마다 취향이 아주 다르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하우스를, 황새벽은 락, 신지운은 힙합을 좋아한다. 민지호는 안무와 음악의 결합을, 안주원은 서정성을, 한효석은 흐름을, 박선재는 보컬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나는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이 영원히 다채로울 거라고 믿는다.

* * *

터미널 엔터에서, 전 소년들 멤버 최윤솔의 솔로 데뷔 데모를 듣고 난 강효준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VMC 빌딩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최윤솔이 훔친 것이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분명 어떤 면에서 겹치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가사를 봤을 때, 정해원에 대한 저격까진 아니더라도, 퍼스트라이트에 들어가지 못한 아픔에 대한 이야기라 어쩔 수 없이 정해원에 대한 이야기도 끌려 나올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고민거리가 많아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고 있을 정해원이었다. 정해원의 멘탈이 나가기라도 하면 퍼스트라이트고 카일룸이고 올스탑이었다.

강효준이 한숨을 쉬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팔을 툭 건드렸다. 클라루스 송다온이었다.

“넌 회사원이 새벽도 없냐.”

송다온의 말에 강효준이 대꾸했다.

“엔터 회사 직원한테 새벽이 어디 있어. 넌 시상식 준비 때문에 한국 왔어?”

“응. 아, 지금 해원이 있나? 인사하고 가게.”

“어, 있어.”

두 사람은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4본부로 향했다.

정해원의 작업실이 가까워지자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작업실이 방음이 꽤 잘 되긴 하는데, 바로 앞에 서면 희미하게 음악이 들렸고, 특히 베이스 사운드는 어쩔 수 없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강효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작업 중인 정해원을 보며 말했다.

“너무 집중한 것 같은데, 그냥 가자.”

그렇게 말하는데, 정해원이 다시 킥과 808베이스만 잡아 다시 플레이했다.

미묘한 차이였지만, 강효준이 이전에 들었던 타이틀곡의 사운드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음악을 들을 만큼 들었다고 생각하던 강효준조차 처음 듣는 사운드였다. 귀에 제대로 꽂히는, 극도로 세련된, 마이너 코드를 사용한 힙합 사운드.

정해원은 강효준이 본 이래 처음, 진짜로 마음에 드는지 웃으며 의자에 뒤로 기대고 있었다.

“……방금 쟤 뭔가 제대로 터득한 것 같은데.”

강효준이 중얼거리는데 송다온이 아까부터 대답이 없었다. 강효준이 송다온 쪽을 보니 어렴풋이 들리는 베이스 사운드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였다.

하기야 자신과 같은 걸 들었으니 저럴 만하다고, 강효준은 생각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