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1화
나는 타이틀곡 작업을 저장하고, 바로 멤버들에게 들려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문밖에 강효준과 클라루스 송다온이 서 있었다.
나는 잽싸게 문으로 달려가서 인사를 했다.
“선배님!”
“너 진짜 나 반가워한다.”
나는 문을 활짝 열었고, 송다온과 강효준이 안으로 들어왔다. 강효준이 모니터를 턱짓하며 말했다.
“밖에서 들으니까, 바꾼 거 좋던데.”
“저도 마음에 들어요.”
최근 들어, 내가 만들고 이렇게 내 마음에 든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최근이 아니라 그냥 지금까지 만든 사운드 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다.
A&R도 괜찮다고 하니, 마음을 완전히 놓았을 때, 송다온이 물었다.
“한번 들어봐도 돼?”
“아, 그럼요, 그럼요.”
안 될 거야 없었다. 오히려 클라루스가 들어준다는데 고맙지. 나는 바로 음악을 플레이했다.
이제 내년이면, 빠른인 박선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성인이 된다. 다음 앨범의 목표로, 박선재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했다. 그만 귀엽고 싶다나?
나는 노력해 보겠다고 했지만, 신지운조차 잘 보면 귀엽다고 할 정도로 귀여움의 범위가 넓은 사람들이 우리 팬들이라 ‘그만 귀여운’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도 귀엽다고 하는 사람들 아닌가.
원래 그런 사람들이 우리 팬이 되는 건지, 아니면 우리 팬이 되는 바람에, 안 귀여운 우리를 수용해 주느라 귀여움의 범위가 넓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나는 이번에 ‘멋진’ 느낌을 찾는 것에 집중했고, 신지운의 말대로 확 힙합으로 장르를 돌려 버리면서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모처럼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있을 때, 음악을 끝까지 들은 송다온이 나를 보았다. 나는 어린애처럼 칭찬을 기대하며 송다온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이거 나 주면 안 돼?”
음? 어?
칭찬을 기다리긴 했는데, 과한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가, 도와달라고 힐끔 강효준을 돌아봤지만, 내 곡이라 그런지 알아서 하라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결국 대선배에게 직접 거절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저희 다음 타이틀이라……. 심지어 중간에 저희가 서바이벌에서 부른 곡도 나오거든요.”
“아, 마태오?”
우리 노래를 송다온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또 한 번 감동할 뻔했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라 힘들게 표정을 관리하고 말했다.
“네. 마태오요. 그래서 아무래도…….”
내 말에 송다온이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 쉬더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
“우리 다음 앨범까지 시간이 너무 남아서. 나도 개인 작업 준비하고 있었거든. 근데 딱, 이거다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아쉬운 표정으로 날 본다. 나는 허리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그만해.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송다온이 투덜거리더니 모니터 쪽을 봤다.
“진짜 내가 원한 건데.”
“죄송…….”
“알았다고.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래도 내가 좀 쫄아 보였는지 일부러 웃어 보였다.
본인은 원래 순한 편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세계 정상을 찍어본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에 주변 사람들 기가 눌리는 것 같다.
물론 내가 기가 약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송다온이 다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대신 저런 느낌의 곡, 또 만들면 나부터 들려줘. 너네 멤버들 말고, 우리 멤버들도 말고, 이준희도 말고 나.”
“넵. 저야 그럼 감사하죠.”
“웃기지 마. 또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너네 멤버들부터 들려주겠네, 딱 봐도.”
“아니에요. 저 약속하면 절대 안 그래요.”
내가 억울함을 표현하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니까, 송다온이 좀 기분이 풀렸는지 흐흐 웃었다.
잠시 후 송다온이 떠난 후, 기가 쭉 빨린 나는 지쳐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강효준에게 물었다.
“저 지금 클라루스한테 곡 안 준다고 한 거예요? 아니죠? 제가 그렇게 멍청할 리가?”
“고민도 안 하던데.”
“고민 안 해 보였어요? 저 엄청 망설였는데?”
“네가 언제? 칼같이 끊던데.”
왜 그렇게 보였지. 내 인상 때문인가. 하, 이놈의 도움이 안 되는 인상…….
나는 의자 위에 다리를 끌고 올라와 웅크려서 말했다.
“다온이 형이 저 싫어하면 어떡해요? 혹시 클라루스 선배님들이 저따위가 곡 안 줬다고 다 저 싫어하시면 어떡해요?”
“너 이제 ‘따위’ 아니야. 클라루스를 거절했잖아. 클라스가 올라갔어.”
그 와중에 강효준이 놀린다. 나는 한동안 한숨을 푹푹 쉬며 괴로움을 토했다.
클라루스가 나한테 두 번 기회를 줄 리 없으니, 아마 클라루스와 작업하는 건 영원히 안녕일 것 같다.
* * *
“송다, 왜?”
송다온이 우울하게 연습실 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커피를 마시며 들어온 클라루스 서민혁이 발로 송다온의 운동화를 툭툭 찼다. 그러자 송다온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 까였어.”
“어휴, 잘됐다. 넌 좀 까여야 돼.”
“아, 나 우울해.”
“알았어. 왜. 누가. 누우가.”
“아니, 아까 해원이가 걔네 팀 타이틀 작업한 걸 들었는데…… 진짜 딱 내가 솔로로 하고 싶은 스타일인 거야.”
“아, 그. 까리 홀리?”
“응, 까홀.”
“우리도 이제 아저씨 다 됐다. 까홀 뭔데.”
서민혁이 핀잔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어, 내 친구를 까?”
“그치이? 너무하지?”
“어, 너무하네.”
서민혁이 편들어주자 송다온이 흐흐 웃더니 다시 축 처져서 말했다.
“하, 그거 진짜 딱 내가 원하던 건데.”
“그분 어리지 않나? 벌써 네 귀에 차는 걸 만들었으면, 진짜 빨리 크는 거네.”
서민혁은 어려운 연습생 생활을 했기 때문에, TRV의 최기문이 연습생을 빼갈 뻔한 사건에 크게 화를 냈고, 의리로 정해원이 작곡한 곡들을 꾸준히 듣고 있었다. 송다온이 대답했다.
“04래.”
“와 씨, 우리보다 열 살 어리네.”
나이로 충격받는 서민혁에게, 송다온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비슷한 스타일 곡 만들면 나 제일 먼저 들려주기로 했어.”
“그래? 다행이네……. 잠깐만, 근데. 네가 까였다고?”
“어! 아, 진지하게 안 듣네?”
“아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황당하네. 우리 클라루스인 거 알지?”
“내 말이!”
서민혁은 뒤늦게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자기 팀 타이틀이라는데 홀랑 줘버렸으면 살짝 실망할 것 같긴 했다.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역시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 *
나는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계속 충격에 빠져 있을 수는 없으니 정신을 차리고 강효준에게 물었다.
“근데 형 뭐 전달해 주려고 온 거 아니에요?”
“아, 맞다. 최윤솔 씨, 이제 믹싱 할 거라고 해서 음원 들어봤는데.”
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효준이 매사 덤덤하던 평소와 달리, 약간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기가 퍼스트라이트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사더라고.”
“…….”
“최윤솔 씨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 같은데. IMX랑도 같이 작업한다더라. 터미널 엔터에서 본격적으로 밀어주고 있더라고. 작곡팀을 진짜 최고로 붙여줬어.”
“제 거 가져간 거 있어요?”
“내가 들어본 건 작곡팀이 편곡한 버전이라 없었어. 근데 아무래도 너랑 스토리텔링이 겹치는 부분이 있지. 편곡 전 데모 보내 달라고 할까? 들어볼래?”
“아뇨.”
나는 거절했다. 발매 전에 들었다가, 반대로 최윤솔 측에서 걸고넘어질 수 있었으니까. 강효준도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찝찝하면 못 내게 하고.”
“뭐, 그걸 어떻게 못 내게 해요.”
나는 별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짜증은 감추기 어려워 의자 뒤로 기대며 말했다.
“……내가 걔한테 뭐 잘못했나?”
내가 열기 싫은 국선아 때 기억을 열어보며 중얼거리자 강효준이 말했다.
“윤솔 씨한테 네가 라이벌인가 본데.”
“어릴 때 우리 둘 다 피아노 친 거 말고는 겹치는 분야가 없는데요?”
내 말에 강효준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동갑에 둘 다 피아노를 쳤는데 어떻게 겹치는 게 없어?”
“……서로 몰랐으니까요?”
“너만 모른 거 아니야? 윤솔 씨도 너 몰랐대?”
“그런 얘기 안 해봤는데.”
콩쿨에서 봤나…….
근데 그때 내가 초등학생이었다 보니, 그냥 어른들 손에 이리저리 따라다니느라 바빴던 기억밖에 없다.
아무리 애여도, 곧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하는 사람이 주변 둘러보고 있을 시간은 없다. 최윤솔도 그랬을 거고.
그놈이 왜 그렇게까지, 그러니까 내 작업실에 와볼 정도로 내 작업에 관심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만든 음원에 내가 무슨 수를 쓰나 싶었다.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까. 방금 강효준이 못 내게 한다고 했나?
“근데 못 내게 한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내 소속사 아티스트한테 악영향이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지.”
“…….”
이 아저씨 무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네. 가급적 시비는 안 걸어야겠다. 근데 저렇게 키우니까 카일룸 놈들이 데뷔도 하기 전부터 그…….
“……데뷔 직전 우석이 생각하니?”
“네.”
“그래도 이제 딴판…… 하, 고맙다, 해원아.”
공치사 들으려던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허허.
아무튼…….
뭐. 다행히 최윤솔이 뭔가 사고를 치려 해도 강효준이 먼저 알 것 같다는 면에서는 좀 안심이 됐다.
* * *
얼마 뒤, 최윤솔의 음원이 공개되었다.
특기인 힙합 베이스의 멜로디가 있는 랩과 보컬로 이루어진 곡이었다.
‘내 자리가 네 자리’라고 직접적으로 저격한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듣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곡이었다.
가사는 자신이 없는 퍼스트라이트가 저 멀리 달려가는 것을 뒤쫓다가 지쳐서 멈춰 서버렸음을 은유하고 있었다.
[슬프다ㅠㅠㅠㅠㅠㅠ]
[윤솔이 진짜 속이 말이 아닐 듯……. 데뷔 엎어졌지, 조작멤 뺐다는 그룹에는 회식 접대했다고 못들어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회사가 접대를 했는데 어떻게 조작이 아니야?]
[↳↳조작을 해야 조작한 거지]
[↳↳난독인 거야 머리가 나쁜 거야]
[↳↳실제로 조작을 한 멤버들이 있는데 최윤솔은 아니잖아]
[근데 진짜 곡 좋다 국선아 X발놈들ㅠㅠㅠ 해원이도 그렇고 윤솔이도 이렇게 재능있는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ㅠㅠㅠ]
[진짜 얘네 둘 생각하면……]
[↳그래도 해원이는 좀 낫지 퍼라 잘 되고 있잖아…….]
[↳그니까…… 솔직히 윤솔이가 아픈 손가락이라……. 이러면 안 되는데 가끔 해원이 좀 얄미워ㅠㅠㅠ]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국선아 찐피해자가 얄미우면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윤솔이 자리에 해원이가 들어간 건 맞는데 이 정도 말도 못해?]
[↳↳↳난 이해가는데]
[↳↳↳어떻게 이게 이해가냐ㅎㅎ]
[해원이가 고생한 거 아는데 해원이 팬들 좀 과함 누가 더 불행했는지 배틀하자는 거 아니잖아 윤솔이도 우울했고 아팠다잖아]
[↳그니까]
[↳오히려 정해원 팬들이 더 불행을 컨셉화 시키는 듯]
[↳아니 해원이가 자리 뺏은 것 같아서 얄밉다는 사람이 나오잖아]
[↳↳그런 글 딱 하나 있었다 어휴]
나고야돔에서 하는 VMC 뮤직어워드 시상식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안주원이 핸드폰으로 확인하고 있으니 정해원이 말했다.
“야, 미간 펴. 주름 생겨.”
“아, 그래.”
안주원이 듣고 표정을 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아냐. 아, 나고야 지금 추운가?”
“패딩 입을 정도는 아니래. 이 정도면 될걸?”
정해원이 말하며 입고 있는 재킷을 흔들더니, 말을 이었다.
“또 최윤솔 신곡 반응 봤냐?”
“……어떻게 알았어?”
“그냥 그런 것 같더라고. 가자.”
덤덤한 정해원의 말에 안주원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들었다.
분명 신경이 쓰일 것 같은데, 정해원은 최윤솔의 음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