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2화
최윤솔의 음원이 공개된 후에야 나는 강효준이 가져다준 수정 전 데모를 받았다.
여전히 듣기 찝찝했지만 최윤솔도 내 작업실에 들어오려 했으니, 나도 한 번쯤 확인하는 게 공평하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해서 들은 수정 전 데모는 이상했다. 기본적으로 힙합을 하는 녀석이다 보니 비트(트랙, 반주)를 꽤 멋들어지게 찍어놨다고, 솔직히 생각했다.
문제는 탑라인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코드 진행도 좀 신경 쓰이지만, 그거야 최윤솔 스타일일 수 있으니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 코드 진행을 잘 쓰면 세련된 곡을 뽑아낼 수 있을 테니까.
진짜로 신경 쓰이는 것은 최윤솔이 만들어둔 멜로디다. 괜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들이 엉켜 있었다.
그래서인지, 음원으로 나온 곡은 랩 경연 프로그램 출신의 작곡가가 탑라인(멜로디)를 아예 들어내고 새로 만들었다.
최윤솔은 나보다도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 최윤솔 역시 절대음감이라는 걸 국선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불협화음을 만들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맨정신이라면.
나는 내 작업실 앞에서 취한 듯한 상태로 나타났던 최윤솔을 떠올렸다. 맨정신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국선아 때 최윤솔은 이렇게 개막장 인간이 아니었다.
술이었으면 좋겠다. 진짜 술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최윤솔이 개새끼여도, 약을 빨다가 인생을 조지길 바라지는 않는다.
최윤솔이 멀쩡한 정신으로,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이런 음을 찍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사이, 비행기는 나고야 주부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을 나가보니, 인천공항 이상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미지 피켓을 보니, 다 우리 얼굴이었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거의 고개만 꾸벅꾸벅하며 인사하다가 공항을 빠져나왔다. 차에 타는 멤버들마다 놀란 표정이었다.
“혹시 우리 인기 많은 거 아니냐?”
내 말에 민지호가 소리쳤다.
“형, 돔 투어 시켜줘! 나 돔! 투! 어!”
“선재야, 민조 좀…….”
황새벽의 말에 늘 체력 없는 형을 잘 봉양하는 박선재가 민지호에게 육포를 한 개씩 꺼내줬다. 다행히 민지호가 육포를 씹느라 조용해진 걸 돌아보고 내가 말했다.
“거의 육아 아니냐, 저 정도면.”
“나 다 컸는데!”
민지호가 소리쳤다. 내가 다시 시끄럽게 만든 것 같아서, 나는 가방에서 사탕을 꺼냈다.
“사탕도 줄까.”
“먹을래!”
그 말에 황새벽이 말했다.
“육포 다 먹고 먹어. 잘 씹고.”
“웅.”
민지호가 대답하고 내가 던져준 카페라떼 맛 롤리팝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도 손을 뻗어서 각자 좋아하는 맛으로 건네줬다. 아무래도 멤버들이 민지호를 공동 육아 중이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호텔 룸메이트는 황새벽이었다. 나는 짐을 풀고, 황새벽은 침대 위에 쓰러졌다.
나라도 캐리어를 열어놓지 않으면 황새벽이 챙겨온 그대로 들고 귀국할 것 같아서, 두 개 캐리어를 다 열었는데 내용물이 진짜 심하게 달랐다.
황새벽이 침대 끝으로 기어 와서 캐리어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햇살이들 보여주고 싶다.”
“야, 진짜 저건 너무 심한데…….”
내 짐은 압축팩에 모든 물건을 색깔은 물론 그라데이션까지 신경 써서 잘 정리해 넣었는데 황새벽의 캐리어는 말 그대로 그냥 다 던져 넣어서 뚜껑만 힘으로 덮은 수준이었다.
나도 햇살이들 보여주면 재미있어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황새벽의 가방 속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내 짐을 풀고, 도저히 황새벽의 캐리어를 무시할 수 없어서 황새벽 사복도 정리해 놓은 후, 스팀다리미로 대충 다려놨다.
그 후 운동이라도 할까 생각하는데 우리 숙소에 들어온 강영호 매니저가 말했다.
“강효준 대표님이 카일룸 연습실 구하면서, 퍼스트라이트 연습실도 같은 곳에 구하셨대요. 지금 가실까요?”
“진짜요?”
그 말에 나는 놀라고, 황새벽도 침대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나는 해외 스케줄 연습은 당연히 다 호텔 안에서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솔직히 나도 그랬다. 알고 보니 나만 눈이 낮은 게 아니라, 우리 멤버 눈이 다 낮았다.
나는 트레이닝복 위에 항공점퍼를 걸쳐 나갈 준비를 했고, 황새벽도 카디건을 꺼내더니 말했다.
“그새 다렸냐. 징그럽다, 진짜.”
“아이돌이 막 어, 카디건 꾸겨 입고 다니고 그럼 안 된다고.”
“카디건은 원래 막 던져놔도 안 꾸겨지는 옷이잖아?”
“…….”
그렇게 생각해서 어지간한 계절 사복은 카디건 하나로 버티는 거였구만. 이제 황새벽의 패션이 이해가 간다.
* * *
연습실은 호텔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다. 날 보자마자 차우석이 달려와서 인스타 사진을 강요했다.
“아, 혀엉. 이따가 예쁜 카페 가서 사진 찍어여어. 팬들한테 그 정도도 못 해줘요? 아이돌의 의무 아니에요?”
얘네는 왜 첫 앨범부터 잘돼서 시상식은 오고 난리냐. 하, 얘네 프로듀서 누구야. 누가 그랬어. 어?
아무튼 우리 멤버들이 워낙 운동 제외하면 숙소에만 있는 집돌이들이라. 사고를 칠 걱정은 없어 좋지만, 돌아다니고 싶은 나는 외롭다.
근데 친구라고는 멤버들밖에 없으니까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양이형은 힙한 카페 가자고 하면 쌍욕을 할 거다.
……잠깐만, 나 같이 힙한 카페 가서 사진 찍을 사람이 매니저 형 아니면 차우석밖에 없어? 알고 보면 내가 멤버랑 양이형 외에 제일 친한 건 저놈인 건 아니겠지.
어휴, 내가 왜 이런 끔찍한 생각을. 그럴 리가, 허허.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회피하며, 연습 끝나고 가자고 대충 얼버무리고 우리 연습실로 들어갔다.
꽤 널찍한 연습실이라 민지호를 풀어놓을 수 있겠다며 멤버들이 만족스러워했다. 이래서 키즈카페가 존재하나 보다.
리허설은 한국에서 하고 왔지만 좀 더 디테일한 연습을 할 여유가 생겼다. 멤버들이 개인 스케줄로 바빠서 다 모일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작정하고 연습할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연습을 하다가 잠깐 복도에 나왔는데, 카일룸을 연습실 쪽에서 때마침 스파이1, 박중운 매니저가 나오고 있었다.
“어, 형.”
“아, 해원아.”
나는 반가워하는 박중운 매니저에게 슬쩍 물었다.
“브삼에 뭐 재미있는 일 없어?”
“많지. 어느 분야?”
“……많아?”
가끔 스파이를 보면 섬뜩할 때가 있다. 이렇게 VVV엔터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것은, 반대로 나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는 것…….
“음, 4본부 어때. 본부장 새로 왔다며.”
“나쁘진 않은데. 좋은 분위기도 아니더라. 원래는 강효준 팀장님 선에서 보고가 다 끝났잖아. 근데 보고서가 하나 더 위로 올라가야 되니까. 되게 깐깐한 사람 같더라.”
“음.”
저쪽도 정치질로 한 번 할 일 두 번 하고 그러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스파이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형이 나한테 VMC 정보 알려주는 거, 효준이 형이 알 때도 됐는데 모르네.”
“모르게 해야지, 아무래도 스파이니까…….”
……아? 알아서 잘 숨기고 있어서 모르는 거였어?
나는 스파이의 철저함에 압박까지 느끼다가, 드디어. 스파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물었다.
“형의 스파이 능력은 어디까지야?”
“내가 능력이 어디 있어…….”
있을걸? 많이 있을걸?
나는 생각을 감추고 말을 이었다.
“최기문 부대표, 상황 좀 알아다 줄 수 있어?”
나는 최대한 우리 계획은 감추고 전달하려 했지만, 스파이는 전부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어쩌면 스파이가 우리 회사로 같이 이동하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무래도 이렇게 정보를 다 빼 올 수 있는 사람인 걸 알면서 내 회사에 들이는 건 좀…….
나는 스파이가 부탁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대신.”
“아냐, 내가 잘못했는데 대신이 어디 있어…….”
……이 형 진짜 뭐지?
나는 어이없었지만, 말을 이었다.
“VMC에서 자리 잘 잡고, 팍팍 위로 올라가게 나도 힘써볼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되지, 정해원이 밀어주는데.”
“밀어줘야지. 그동안 형이 힘써준 게 얼만데.”
그래서 내 스파이가 VMC에 높이 올라가면 더 많은 정보가……. 흐흐흐…… 이런 게 상부상조 아닌가?
다행히 스파이도 VMC에서 줄을 타고 올라가는 게 싫지 않은 듯했다. 하긴 야망이 있어서 내 뒤통수를 때린 사람이었으니까, 애초에.
나는 최윤솔에 대해서도 물어볼까, 생각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물론 최윤솔이 내 자리가 자기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곡을 만든 건 무지하게 화나지만, 마약은 아이돌 생활을 그대로 끝내버릴지 모르는 치명적인 문제다. 확실하지 않으면 절대로 입을 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확실하다면, 자수 권유하고, 안 하면 신고할 생각이다. 손가락을 자르는 건 우리 팀 멤버들에게만 먹히는 권유니까. 이 새끼들 마약 근처에만 가봐라, 아주 그냥.
그리고 애초에 마약은 절대 아닐 거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연습실 쪽으로 강효준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안 그래도 무섭게 생긴 얼굴로 팍 인상을 썼다. 그걸 보고 나는 말을 걸었다.
“형은 진짜 세계 어딜 가도 시비 안 털릴 것 같아요.”
“어, 그렇더라.”
그사이 박중운 매니저가 꾸벅 인사하고 잽싸게 사라졌다.
나는 박중운 매니저를 VMC에서 밀어줄 생각이니, 언젠가는 강효준에게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었다. 둘이 손잡으면 VMC의 실권을 쥐는 것이 좀 수월해질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말하지 않아서, 강효준이 핀잔했다.
“유출범이랑 왜 이렇게 친하게 지내냐?”
그러다 또 유출한다, 는 말이 함축되어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내가 박중운 매니저와 대화하는 걸 몇 번 봤을 텐데도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니 유출범이 내 스파이인 건 정말 예상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마 최기문도 절대 모르고 있겠지? 유출범이니 나와 박중운 매니저가 엄청 적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거, 최기문에게 퍼스트라이트의 남은 계약 기간을 팔게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나?
강효준이 떠난 후, 나는 복도에 서서 잠시 머리를 굴렸다.
* * *
민지호가 신지운에게 말했다.
“형, 창밖 보여?”
“어, 보여.”
“역시 백구십.”
“아니, 네 맘대로 키우지 말라고. 그리고 창밖 너도 보이잖아.”
신지운이 말하며 힐끔 창밖을 보았다.
“유출범 새끼 갔다.”
“정해원은 왜 유출범이랑 자꾸 얘기하냐.”
황새벽이 거슬려 하며 말하자 한효석이 대꾸했다.
“원래 해원이 형이 센 척해서 그렇지, 은근 호구잖아요.”
“…….넌 막말을 할 거면 말을 놓지 그러냐?”
“그럼 진짜 막말 돼서 안 돼요.”
그 말에 박선재가 말했다.
“사실 효식이 이 정도면 대놓고 호구라고 생각하는데, 형이라서 은근을 붙인 걸걸?”
“그러냐…….”
황새벽은 지쳐서 더 따지지 않고 수긍했다. 잠시 후 정해원이 연습실로 들어오자 민지호가 곧바로 불만을 토로했다.
“형, 유출범이랑 잘 지내지 말라고! 왜 잘 지내는데!”
“멤버들 걱정해.”
안주원도 동조하자 정해원이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저 형이 내 스파이인데. 그동안 도움 많이 받았어.”
그 말에 멤버들이 멈칫했다. 안 그래도 그동안 스파이 얘기 많이 들었는데, 그게 유출범이었다니?
멤버들이 상황 파악을 하느라 말문이 막혀 있을 때,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최기문한테 스파이가 헛소문을 전달하게 할까, 생각하는데 어때?”
“무슨 헛소문?”
안주원이 묻자 정해원이 대답했다.
“뭐든지, 내년 중순까지 우리를 데리고 있으면 오히려 회사에 피해가 될 것 같은 사고가 터질 거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열애설 같은?”
신지운의 말에 한효석이 정색했다.
“그건 거짓말이어도 안 돼요.”
“그치? 내가 뭔 개소리를.”
신지운도 이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바로 자기가 한 말을 취소했다. 그러자 황새벽이 중얼거렸다.
“아예 숨겨둔 자식이면, 없으니까 헛소문이란 게 밝혀지지 않을까…….”
“새벽이 형이 요즘 드라마를 많이 봐…… 아니, 그보다. 그 형이 스파이였어?”
황당해하는 박선재의 말에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