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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73화 (17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3화

“내가 진짜로, 국선아 때 조작으로 올라간 멤버였다는 소문은 어때?”

안주원의 말에 멤버들이 돌아봤다. 딱 봐도 화낼 분위기라, 안주원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얘들아, 일단 들어봐.”

그리고 예상대로 정해원이 바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들어. 야, 소속사가 직접 로비해서 조작하는 건데, 그걸 소속사가 모르겠냐? 속을 만한 헛소문을 내야지.”

“모를 수도 있지. 사실 조작도 로비보다는, VMC 제작진 픽이었던 거잖아. 원하는 그룹 구성을 만드는 느낌으로……. 좀 들어줘, 나 진짜 TRV에서 개인 활동 하기 싫어서 그래.”

그 말에 무조건 우기려던 정해원도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안주원이 말을 이었다.

“내가 사실 조작으로 국선아 데뷔조에 들었다는 기사가 VMC 쪽에서 터질 거라고 해봐. 그렇게 되면 난 개인 활동을 아예 못 할 테니까, TRV에서 바로 손절하고 싶어 할걸?”

그 말을 듣던 신지운이 말했다.

“그때 안 그래도 싫어하던 해원이 형이 나타나서, 아무것도 모르고 퍼스트라이트랑 너 계약 기간 남은 거 자기한테 팔아달라고 하면, 최기문이 신나서 팔아버리겠네.”

“내 말이 그거야. 사실 조사 대상이었던 게, 국선아 최종 20위 이내만이었잖아. 그러니까 앞에 회차 순위 발표에서 조작이 있었다고 하면 어때.”

안주원이 동의를 구해보려 정해원을 보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고, 결국 박선재가 대신 호응했다.

“관련된 자료는 효준이 형이 어떻게든 구해줄 수 있겠네.”

“그치?”

“오히려 잘된 거 아냐? 안 그래도 주원이 형 아직도 막 조작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했잖아. 이참에 아주 확실하게 그 사람들 입 다물게 해버리면 좋겠다.”

“쟤, 자기 조작 아니라고 100% 확신하는 거 아니야.”

정해원이 말하자 멤버들이 그쪽을 보았다. 정해원이 특유의 냉랭한 눈으로 안주원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치? 너 평소에 어쩌면 앞의 회차에서, 진짜 조작으로 올라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이런 소리 하는 거지?”

“…….”

“저 새끼 성격이면 뻔하지.”

멤버들의 대화를 따라가기 어려워하던 민지호는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알아듣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안주원을 보며 물었다.

“진짜야?”

“……솔직히 TRV에서 국선아에 엄청 신경 썼잖아. 예영 누나도, 이형이 형도, 박종렬 엔터 곽 실장님도 투입하고. 연습생만 나 포함해서 다섯 명이나 갔어. 우리 회사에 조작이 아예 없었다고는 솔직…… 아, 지호야, 형 아프다…….”

민지호가 머리를 쿵 팔에 들이박자 안주원이 엄살을 부렸다.

“형, 거울 좀 보고 다녀요.”

한효석도 한소리 하자 안주원이 대답 대신 흐흐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혹시…… 어. 내가 앞 회차에서 조작을 한 적이 있어도 나 퍼스트라이트에서 안 뺄 거지?”

그 말을 하자마자 황새벽이 말했다.

“주원아, 가위바위보 하자.”

“왜?”

“합법적으로 때리게. 지면 팔 대.”

그러더니 가위바위보를 하고 가볍게 이겨 안주원의 손목을 검지와 중지로 때렸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안주원이 팔을 움켜쥐고 웅크렸다.

“아, 미친 거 아니냐?”

“형이 미친 거야!”

민지호의 호통에 바로 옆에 신지운이 귀를 막고 말했다.

“나 귀 막았으니까 오늘은 계속 소리쳐도 돼.”

“알아써! 형아, 미쳤냐! 미친 형이냐!”

민지호가 소리치자 안주원은 맞은 손목을 감싸야 하는지 귀를 막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정해원이 말했다.

“그렇게 하자.”

의외의 대답에 멤버들이 눈이 커져서 정해원을 보았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속여보자, 그걸로.”

“형.”

신지운이 붙잡았지만 정해원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안주원 말 맞아. 이것보다 확실한 헛소문이 어디 있어.”

그렇게 말하더니, 더 이야기할 생각은 없는 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빡치는 건 빡치는 거니까, 나가서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올게.”

정해원은 그렇게 말하고 연습실을 나갔다.

* * *

카일룸의 멤버, 차우석이 내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여기 힙하죠? 형 한국 가기 전에 이 카페도 가요. 근데 그때도 저 사진 진짜 최소 100장은 찍어주셔야 돼요? 아이돌인데 카페에서 100장도 안 찍는 건 직무유기잖아요!”

……빡쳐도 그냥 우리 멤버들이랑 있을 걸 그랬나? 얘 너무 시끄러운데. 근데 또 한편으로 정신 사나우니까 화났던 게 가라앉긴 한다.

아니, 말이 되나? 이 새끼 거울 안 봐? 팬들이 잘생겨서 뽑았다는데, 그렇게 확실한 논리를 왜 의심해?

하여튼 이눔시키가 인터넷 반응을 너무 많이 찾아봐서 맛탱이가 간 게 분명하다. 역시 이제 인터넷 반응을 못 보게 해야겠다.

어쨌든 시끄러운 놈이랑 카페에 가서 햇살이들 보여줄 사진을 백 장 찍어 온 건 잘한 일 같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때 옆에서 자기 태그하라고 성화를 하는 건 좀 피곤했지만…….

나는 또 안주원과 약간 서먹해졌지만, 리허설 하고, 레드카펫 들어갈 때까지도 너무 바빠서 불편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오후, VMC 뮤직어워드, 브엠뮤가 시작되었다.

2년 동안 TV로…… 아니, TV로도 못 보던 게 시상식이었다. 작년에는 소년들 무대가 있어서, 괜한 스트레스를 받느라 못 즐겼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브엠뮤는 합동 무대로 마무리하게 될 예정이었는데, 그 직전 무대, 그러니까 사실상 마지막 팀은 정말 오랜만에 시상식 무대에 아이돌로 서는 빅 블루였다.

2년 연속, MC를 맡은 이준희가 올해는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었다.

빅 블루의 일본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멤버 박민하는 혼자 돔 투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 빅 블루가 5년 만에 낸 곡이었다. 올해 한국에서만 콘서트와 팬미팅을 하고, 일본에서는 아직 일정이 없었다.

그래서 이 행사에 일본의 거의 모든 빅 블루의 팬, 스키퍼들이 입장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 경쟁이 어마어마하게 치열했다는 모양이었다.

물론 한국 스키퍼들도 그 경쟁에 참여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도 스키퍼인데 이렇게 아무런 경쟁 없이 바로 앞에서 무대를 봐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출연진이지만 그래도…….

브엠뮤는 총 4부로 이루어져 있었고, 퍼스트라이트의 무대는 3부의 마지막이었다.

퍼스트라이트는 데뷔 후 일 년 동안, 서바이벌 출신이라는 치트키가 있어 음악방송에서도 극초반에 무대를 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시간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대에 올라갈 시간을 기다리며 신지운이 안주원에게 말했다.

“나고야면 주니치지?”

“어, 그치.”

뭔 말인지 몰라도 분위기상 야구 얘기 중인 것이 분명하다. 아니, 지금 비하인드도 찍고 있는데 공연장에서 야구 얘기를 하면 케이팝팬들이 섭섭하지 않겠냐고…….

거기에, 안주원과 서먹한 것도 풀 겸 내가 참견했다.

“야, 아이돌이, 어? 이 돔에서 우리가 단독으로 공연을 하는 상상 같은 걸 해야지, 이 자식들은 고척에서도, 나고야돔에서도 야구 얘기네.”

“근데 해원아, 여기 한국 선수들도 많이 왔었어.”

그러더니 한국 선수들 기록을 줄줄 읊는다. 아무래도 안주원도 서먹한 걸 풀려고 안 해도 되는 정보까지 주는 모양이라, 내가 핀잔했다.

“주원아, 이 형아는 야구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너 또 내가 진짜 형이라고 하면 섭섭해할 거면서.”

“울지, 그럼. 신지운과 다르게 우리는 어른이잖니. 애들은 모르는 그, 어, 우리끼리 통하는 게 있지.”

내 말에 안주원은 흐흐 웃고, 신지운이 원통해했다.

“아니……. 아오, 진짜.”

신지운 놀리려고 안주원과 형 타령을 종종 했다. 이제 슬슬 이 그라데이션에도 적응하고 있었다.

하, 며칠 일찍 태어난 걸로 이렇게 저 평생 싸가지없는 놈을 갈굴 수 있다니.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무대 아래서 서먹한 걸 다 풀고 나서, 우리는 곧 무대에 올랐다.

* * *

퍼스트라이트의 일본 반응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었다.

특히 5년 만에 빅 블루의 컴백곡 작곡가이자, 최근 활동 중인 카일룸의 프로듀서인 정해원과 드라마 캐릭터로 확 인지도가 높아진 신지운에 대한 반응이 컸다.

비하인드 영상이 올라온 후, 빠른이 정리가 안 된 그라데이션즈에 대한 복잡한 설명 영상이 함께 올라왔다.

[해원-주원=친구 주원-지운=친구 해원-지운=형???]

[↳이왜진]

[↳복잡해요ㅠㅠㅠ]

[거북이님은 또 쉬고 계셔ㅋㅋㅋㅋㅋ]

[↳맏막즈 자주 같이 있던데 친한가 봐? 귀여워]

[↳↳현 룸메]

[↳↳맏막즈는 노부모를 봉양하는 늦둥이 같은 관계야]

[↳↳↳어ㅋㅋㅋㅋㅋㅋㅋ?]

[한국 햇살이들! 효석이가 지호한테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영상 뭐예요????]

[↳안무 영상이요]

[↳지호가 조용하다 싶으면 뭔가 춤 관련 영상 틀어준 거예요]

[↳↳아 애기한테 유튜브 틀어준 그런 효과군요]

그렇게 일본 팬들이 멤버들에게 친숙해지고 있을 때,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 바닥과 LED 패널이 전부 같은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영상으로 뒤덮였다.

[빛의 속도로 달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소리도 끝도 없던 void에서 별빛을 만났을 때]

올해 6월에 발표한 퍼스트라이트 싱글, 별빛이 흘러나왔다.

[oh 우주를 여행하는 건 즐거웠어]

[네가 있는 곳이 나의 목적지였거든]

대형 공연장, 대형 스피커에 더욱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지나온 공허는 다시 우주가 되어 별이 빛나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반가워 웃어]

일곱 명의 멤버들은 모두 이 큰 공연장에서의 무대가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눈이 마주치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무대에 실시간 반응이 터져 나왔다.

[퍼라가 나고야돔 찢고 있는데……?]

[일본에 퍼라팬 많아? 거의 콘서트 호응이네]

[↳이제 좀 반응 오는 정돈데 그냥 퍼라가 원래 무대를 X나 X나 잘해]

[↳↳ㅇㅇ퍼라 무대는 가서 봐야 진짜더라]

[내가 이거 맨날 말하는데 퍼라 노래는 공연장에서 들어 줘야 돼ㅠㅠㅠ X나 짜릿함]

[↳궁금한데 콘서트 언제 해?]

[↳↳내년 초쯤 하지 않을까 싶은데 소속사가 일을 안 하네]

[↳↳222 소속사가ㅎㅎ]

그렇게 3부가 마무리되고, 마지막 4부.

긴 시상식의 마지막 팀, 빅 블루가 무대에 올랐다. 빅 블루의 공연을 기다려온 일본의 스키퍼들은 자신이 보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기다리란 말 이제 안 할래]

[우린 항구를 떠나 저 먼바다를 항해할 거야]

[언젠가 만날 거란 말 더는 안 믿어]

[비가 와도 눈이 발목까지 쌓여도]

[지금 네 손을 잡고]

[나는 너를 믿고 떠날 거야]

[바다로 나가자 (가자)]

[낯선 곳의 이방인이 되어도]

[너와 함께면 네 손을 잡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긴 공백기의 끝에, 지금 당장 만나자고 말하는 곡을 받아 든 팬들의 얼굴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이 감돌았다.

* * *

나는 세상에 오로지, 아이돌과 그 팬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늘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함께 시간을 쌓아온, 그런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오로지 아이돌과 팬 사이의 감정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어떤, 북받치는 그런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

눈물 많은 빅 블루의 멤버 유찬희를 시작으로, 모든 멤버들의 눈이 촉촉했다.

무대가 끝났을 때, 박민하가 소리쳤다.

“우리 1월에 만나요!”

1월 콘서트를 예고하는 박민하의 말에 돔 안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이거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아이돌이었다. 나는 이런 순간, 순간들을 상상하며,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하나씩 옮겨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했었다.

나는 민지호에게 말했다.

“우리 빨리 커서, 세상에 큰 공연장은 다 가봐야지?”

내 말에 민지호가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나는 흐흐 웃고 나서, 힐끔 안주원 쪽을 봤다.

서먹한 걸 풀고 나니 괜히 화냈나, 싶어 좀 후회가 됐다.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 봐도, 안주원이 조작일 리 없으니까, 개인 계약까지 풀어버리게 할 좋은 헛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인간이란 게, 아닌 걸 알아도 불안감을 느끼는 나약한 동물인 모양이다. 이따가 같이 거하게 무알코올 맥주나 한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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