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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75화 (17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5화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안주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오로지 얼굴 하나로 굴곡 없이 데뷔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굴곡인 줄 알았던 것까지도 가짜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많이 부럽다. 허허…….

처음엔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이게 맞긴 하다.

그 얼굴에, 그 나이 또래에선 흔치 않게 다정다감한 성격이라는 것도 방송에서 보였을 테니 언제나 데뷔 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더니 강효준이 말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

“생각해 보니까, 안주원이 진짜 18위라고 의심 없이 믿었던 게 너무 어이없어요.”

생각해 보면 안주원이 그 정도로 춤을 못 추거나,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뛰어나게 잘하는 게 아니다뿐이지.

하지만 저렇게 18위로 떨어졌을 때, 역시 ‘실력이 없어서 그렇다’라는 이미지가 콱 박혔다. 심지어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나에게조차도. 이미지라는 게 무섭긴 하다.

나는 빨리 가서 알려주려고 강효준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 그럼 바로 안주원한테 알려줄게요.”

“넌 괜찮아? 너희 소속사도 연관된 거잖아.”

“뭐. 대충 예상은 했어요.”

내 첫 소속사 사장이 다른 능력은 없어도 매니저 생활을 오래 해서 인맥이 좋았으니까, 만약 막을 생각이 있었으면 내가 처음 악편으로 문제 될 때부터 제작진에게 따졌을 것이다.

따지는 게 아니라도, 그렇게 술 좋아하는 사람이 제작진들과 술 한잔하고 그러면서 좋게좋게 가보자고 말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근데 안 했고, 반대로 같은 소속사의 우하정은 선역으로 좋은 편집이 나갔다.

소속사에서 날 버리는 패로 쓰고, 대신 우하정으로 대가를 받아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은 당연히 했다.

다만 그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조작질로 이어져 안주원에게까지 피해를 줬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내 첫 소속사와 국선아 제작진끼리는 상부상조였겠지. 내 덕에 국선아는 시청률이 잘 나오고, 소속사 입장에서는 밀어주는 우하정이 쭉쭉 올라갈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강효준이 말했다.

“하정 씨를 욕하려는 건 아닌데, 널 놔두고 걔를 왜?”

강효준의 말에 나는 흐흐 웃었다.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나 보다. 내가 말했다.

“그 사장님이, 제가 노래도 못하는데 얼굴도 별로라고 되게 걱정했거든요. 눈이랑 코 조금만 손보면 좋겠다면서. 국선아 나가면서 무산되긴 했는데.”

“……이런 말 진짜 미안한데, 그래도 네가 국선아 덕을 하나는 봤다.”

“와, 오늘 형이 잘해주네.”

그렇게 말하며 웃고 나서, 칭찬을 받았으니 뭔가 나도 하나 칭찬해 주려고 봤는데 그냥 찌들어 있는 직장인이라 별로 칭찬할 게 없었다.

“형…… 좀 자고 다녀요?”

“이제 자야지.”

“근데 옷 없어요? 맨날 똑같은 옷 같은데.”

“잘 보면 디테일 다 달라.”

“디테일 같은 소리 하네. 그리고 형은 뭐 안 어울리게 멘솔을 피워요.”

“어울리는 담배도 있냐.”

“박하 향 때문에 호흡기 신경이 둔해져서 연기 더 깊숙이 마시게 된대요. 니코틴 의존 높아진다고. 형 자꾸 멘솔 피우면 평생 금연 못 한다, 이제.”

“피곤하게 굴 거면 빨리 가라, 너.”

그 말에 나는 흐흐 웃고 말했다.

“제가 원래 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자꾸 뭔가 트집 잡을 게 보이고 잔소리하고 그러더라고요.”

“유기묘들 처음엔 눈치 보다가 나중에 마음 놓으면 진상되는 그런 건가.”

“하이참, 뭔 소리예요, 그게.”

“몰라, 갑자기 우리 집 고양이 생각났어. 아무튼 꺼져, 잔소리하지 말고.”

“형 고양이 키워요? 형처럼 집 안 들어가는 사람이 동물 키우면 안 돼요.”

“아니, 우리 본가. 안 그래도 날 볼 때마다 처음 본 사람인 것처럼 도망가더라.”

“집을 좀 가요, 그럼. 형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고양이 편을 들 수밖에 없어요.”

“…….”

강효준은 온 표정으로 피곤해하더니 나한테 꺼지라고 손짓했다.

이번에도 안 가면 한 대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낄낄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빨리 사전녹화를 위해 달려가다가 멈칫했다. 주차장 쪽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사생들이 있었다.

“어, 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퍼스트라이트의 사생들은 전반적으로 날 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따라다닌다. 진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하긴, 이상한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이해하면 나도 이상한 사람인 거겠지.

“쟤 못 듣는 척하는 거 봐.”

“어유, 야, 귀엽다, 귀여워.”

내가 저쪽을 보면 사진을 찍을 것 같고, 사전녹화 시간도 가까워져서 그냥 무시하고 다시 건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니 강효준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강효준 형 : 시큐리티 불렀어]

[강효준 형 : TRV 뭐 하냐 장난해?]

[감쟈합니다]

내 작업실에 왔던 것도 저 사람들이겠구나, 짐작이 간다. 아마 그래서 강효준도 알아본 거겠지?

이제 진짜 강효준 말대로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은 들지만, TRV에서 붙여주는 직원 수가 적어 어렵긴 하다.

아무튼 나는 신나게 우리 대기실로 달려갔다. 내가 걸음걸이가 너무 신나 보였는지 이예영 스타일리스트가 웃으며 물었다.

“너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누나가 옷 이쁘게 입혀줘 가지구요……. 아, 그럼 맨날 신나야 되는구나.”

내 능청에 이예영이 으이구, 으이구 하며 내 팔을 때렸다. 아, 이상하게 누나들한텐 칭찬하라고 하면 하루 종일 칭찬할 거리가 보이는데 형들한테서는 깔 것만 보인다. 이유를 모르겠네. 허허.

아무튼 바로 리허설이라 나는 무대로 향했다. 우리는 시상식마다 겹치지 않게 편곡도 다르게 하고, 세트리스트도 다르게 했다.

오늘은 내가 혼자 프루티로 무대를 열었기 때문에, 따로 사전녹화를 하고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빨리 돌아가서 안주원에게 알려주고 싶다.

* * *

사전녹화를 마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가 보니, 멤버들은 다 자고, 할 말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안주원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야?”

안주원이 물어서, 나는 한 번 뜸을 들이고 바로 결론을 말했다.

“3차 순위발표에서, 네 순위 조작했대.”

결론을 반만 말했다. 놀리고 싶었다. 히히.

그리고 내 말에 안주원이 한숨 쉬더니 중얼거렸다.

“……그럴 줄 알았어.”

……이 새끼 자존감 봐?

낚아놓고 그냥 냅두니까 안주원이 계속 땅을 파고 들어갔다. 갑자기 아득해지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중얼거렸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내가 데뷔 조에 들어갈 리가 없는데 어떻게 들어갔나.”

“10위인데 18위로 바꿔치기했대.”

“8위나 바꿨어? 심각한…… 잠깐만. 어?”

“너 3차 순위발표 때 원래 10위였는데, 그 쓰레기 같은 제작진이 18위랑 바꿨다고.”

자기가 예상한 것과 너무 거리가 먼 진실이었는지, 안주원이 이해를 하느라 눈동자가 이리 굴러갔다, 저리 굴러갔다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에게 물었다.

“올린 게 아니라, 내렸다고?”

“어. 많이.”

“진짜로 팬들이 나한테…… 투표를 해줬다고?”

“그렇다니까. 진짜로, 네가 그 정도로 잘생긴 거라고. 봤냐?”

여전히 못 믿겠는지, 안주원이 말문이 막혀 허, 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 소리만 낸다. 그러다 나에게 말했다.

“야. 근데 그럼 18위.”

“응, 그때 나랑 같은 소속사였던 우하정.”

“……너희 소속사 하는 짓 참 X 같네?”

안주원의 말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하여튼 이놈도 순한 것 같다가, 가끔 진짜 욕먹어도 싼 놈들한테는 그냥 욕을 뱉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 안주원에게 말했다.

“지금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 네 순위가 중요하지.”

“뭐…… 근데 TRV한테 호재잖아, 이거.”

“그치? 조작은커녕 오히려 TRV가 피해만 봤다는 거니까.”

나는 중얼거리다, 곧 말을 이었다.

“어쨌든 최기문한테는 그냥, ‘조작이 있었다’까지만 말해줄까 하는데 어때. 어쨌든 사실이잖아?”

졸지에 최기문에게 그냥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게 생겼다. 허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안주원이 말했다.

“근데 TRV가 몰랐을까?”

“응, 몰랐어. 안 그래도 효준 형 회사로 옮겨 온 TRV 직원분한테 물어보니까, 네 순위를 뒤로 미룬 건 전혀 몰랐다더라고. 하긴, 순위를 오히려 떨어뜨린 걸 제작진이 왜 알려주겠어?”

“너 되게 여기저기 귀가 많다?”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그러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 스파이 형이 최기문한테 접근 중이야. 그다음에 나 혼자 가서 조용히, 우리 남은 계약 기간이랑 네 계약 기간 거래하는 호구 역을 해볼게.”

“해원아. 최기문 만날 때 매니저 형 꼭 데리고 가. 무조건.”

“당연하지. 내가 느낀 바가 있어. 이제 한국에서는 혼자 다니지 말아야겠다.”

“일찍도 느꼈다.”

그 말을 나는 히히 웃어넘겼다. 안주원이 물었다.

“그런데 스파이, 어떻게 접근하고 있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유출범이잖아. 그렇게 믿고 맡겨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믿어도 돼. 괜찮아.”

내가 말했지만 안주원도 그렇고, 우리 멤버들 어느 누구도 박중운 매니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이해는 하는데, 또 설명을 다 하자니 곤란하고…….

내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안주원이 말했다.

“네가 좀 호구잖아. 걱정된다.”

“뭔 소리야. 나처럼 실리 따박따박 챙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해원아.”

안주원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10위랑 18위 바뀐 거. 어이없긴 한데, 듣고 나니까 난 솔직히 좀 좋다. 진짜로 쭉 날 지지해 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고마워. 근데 18위 우하정이었다며.”

“응.”

“난 이 상황에서 더 화나는 건 너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딱 봐도.”

“진짜로, 거기에 화낼 체력이 없다.”

나는 피곤해져서 말했다. 진짜로 거기 화낼 체력이 없었다. 그러니까 안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그래. 뭐 어차피 순위 조작 관련된 거 기사 나가게 되면 우하정도, 그 소속사 사장도 꽤 손해 보게 되겠지.”

“기사 나가도 돼?”

“나갔으면 좋겠어.”

안주원이 명확하게 말했다. 사실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 사장, 너 잘나가는 거 보면 이미 무지하게 배 아파하고 있을걸.”

“벌써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 앞으로 훨씬 더 잘나갈 거라서.”

내 말에 안주원이 흐흐 웃고, 나는 말을 이었다.

“내일 멤버들 일어나면 다 얘기해주자. 엄청 화내고, 엄청 좋아하겠다.”

나는 내일 멤버들에게 알려줄 생각에 히히 웃으며 방으로 향했다.

* * *

스파이1, 박중운 매니저는 연차를 내고 최기문 부대표를 우연히 만났다.

최기문이 TRV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준비하는 새 회사에 인생을 걸어보려 구인 공고를 올렸는데, 박중운이 그것을 확인한 후 이력서까지 뽑아 들고 찾아간 참이었다.

최기문은 원래 직원들을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박중운 매니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력서를 확인하고서야 TRV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TRV에서 브삼씩이나 갔는데 그만둔다고?”

“아, 저 그게…….”

박중운 매니저는 한숨을 푹 쉬고, 정해원의 음원 유출 건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VVV엔터로 이직했지만,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새 직장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기문은 원 없이 함께 정해원을 욕해줄 사람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 책상을 주먹으로 쾅 때렸다. 그러나 곧 진정하며 말했다.

“그놈한테 쌓인 게 좀 있겠네.”

“예, 아무래도…… 솔직히 망했으면 좋겠는데, 계속 잘나갈 것 같아서 역겹더라구요.”

“뭐, 그래도 연예인들 사고 하나 터지면 매장되는 거 순식간이니까. 하루아침에 인생 조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이 건수만 하나 있으면…….”

“그러니까요. 저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는데…… 근데 그, TRV의 안주원은 좀 위험 요소가 있어 보이더라구요.”

“위험 요소 왜?”

“예? 알고 계시는 거 아니에요?”

“뭔데?”

“안주원, 조작 멤버인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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