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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76화 (17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6화

“그게 무슨 소리야?”

최기문이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묻자, 박중운이 말했다.

“와, VMC놈들이 말 안 했구나. 그 있잖아요, 2차 순위발표 보면 안주원이 8위거든요. 근데 3차 순위발표 전에, 안주원이 실력으로 좀 논란이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래서 그다음 주 3차 때 순위가 쭉 밀렸거든요. 21위까지가 생존이었는데, 그때 18위로 꽤 아슬아슬하게 붙었어요.”

국선아를 제대로 보지 않은 최기문은 모든 게 생소한 이야기였지만 일단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박중운이 말을 이었다.

“근데 그 아슬아슬하게 붙은 3차 순위발표가 조작이었다더라구요. 18위가 아니에요. 제가 증거도 보고 왔어요.”

어느 쪽으로 조작인지는 말을 안 했지만, 최기문은 한쪽으로 확정해 듣고 있었다.

18위가 아니다. 박중운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분명 21위 밖으로 떨어져 탈락했던 게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박중운이 말을 이었다.

“VMC에서도 정해원한테 벼르고 있긴 하더라구요. 피해를 어지간히 봤으니까. 그뿐이에요? 퍼스트라이트도 자기들이랑 계약한 줄 알았더니, 브삼 내부 배신자 따라서 다른 회사로 나가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 꼴받아가지고, 최대한 그 팀 망하게 하려고 구석구석 뒤지고 있나 봐요. 부대표님 말씀처럼 뭐 하나 건수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국선아의 조작 멤버가 포함된 건 확실한 데다, VMC가 더 많은 건수를 잡으려 뒤지고 있다는 것까지. 최기문이 듣기에는 모두 설득력이 있었다. 최기문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아, 이거. 이러다 우리 TRV까지 피 보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제 생각에는 퍼라 계약 끝날 때까지 그냥, 안전빵으로 최대한 굿즈나 뽑아서 팔고 새 앨범 같은 건 안 내는 게 좋죠.”

좋은 정보였다. 만에 하나, 앨범 다 만들어서 내놨는데 조작건이 터지기라도 하면 투자비도 회수 못 하고 활동을 접게 될 테니까.

아무리 회사에 관심이 없던 최기문이지만, 퍼스트라이트가 어떤 기원에서 만들어진 그룹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지한 건 아니었다.

퍼스트라이트는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서바이벌에서 도덕적으로 결백한 데뷔 조의 멤버들이 모인 팀이다.

뒤늦게 합류한 정해원마저도 데뷔 조는 아니었지만, 악편의 피해자라는 도덕적 우위의 포지션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팀에 순위를 조작한 멤버가 있다?

그건 분명히 퍼스트라이트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팀이 만들어진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니까.

최기문이 얼굴을 두 손으로 벅벅 문지르며 말했다.

“하, X발, 근데 안주원 그놈이 TRV랑 개인 계약이 남았다고.”

“그거…… 해지 못 합니까?”

“큰일 날 소리하고 있네. 그게 건수가 있어야 해지를 하지, 어떻게 막 해지를 해.”

“저도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제일 답답한 것은 최기문이었다. 그나마 최기문이 믿을 구석은 가지고 있는 TRV의 지분뿐이었다.

여차하면 이 지분을 팔아치울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계약 기간이 남은 안주원이 사고를 친다면, 안 그래도 퍼스트라이트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아 떨어지는 TRV의 지분 가치가 똥값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박중운 매니저가 말했다.

“아무튼 저는…… 혹시, 정해원이랑 관련된 건수가 있으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최기문은 자기 생각에 빠져 박중운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다. 미치고 팔짝 뛸 심정이었다. 일단은 TRV에 가서 상황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박중운이 한탄하는 게 들렸다.

“아, 정해원 올해 돈도 무지하게 벌었을 텐데…….”

정해원이 돈이 있어? 하긴?

최기문이 생각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 * *

나는 요 며칠, 얼굴에 철판을 깔고 TRV 사내에 죽치고 있었다. 최기문이 나타나면 냉큼 지분을 팔라고 권유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회계사인 황새벽의 누나에게 많은 상담을 받았다. 황새벽의 누나가 말했다.

-생각보다 사업 쪽을 좀 아네. 관심이 있었어?

“아.”

그게 예전에 꾼 꿈속에서 제가 망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라고 말했다가는 바로 미친 사람 취급할 것 같아 적당히 대답했다.

“네, 엄청요.”

-넌 체력도 좋다. 난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지금 황새벽이랑 전화하고 있나. 아닌데. 왜 멘트가 똑같지……?

“누나가 일이 많잖아요.”

-그만둘까…….

“왜 그만둬요. 어렵게 회계사 붙어서.”

-직업을, 잘못 골랐어. 좀 더 일을 적게 하고 싶어……. 굶으면 밥값도 안 들 텐데, 어떻게든 적은 돈으로 평생 살 수 있지 않을까…….

“누나. 정신 차리세요. 이 각박한 현대 사회에 지면 안 돼요.”

-나는 그냥 지고 싶어…….

어휴, 이 나약한 남매를 어떡하냐. 나는 힘을 내라고 열심히 누나를 북돋아주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 과정에서 같이 기운이 쭉 빠진 기분이라, 이 기분을 반전시킬 만한 빡센 멤버를 찾아냈다.

“한효식, X이앱하자.”

“지금요?”

요즘 출연 중인 발레 예능의 준비를 하던 한효석이 오후 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확인하고 나에게 말했다.

“이 시간에 X이앱을 켜면 학교에 있거나, 사회생활 중인 햇살이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을까요.”

“다시 보기 보면 되지. 그리고 해외 햇살이들이랑 우리 누나 같은 프리랜서들도 많을 거고.”

“그러네요.”

한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효석은 본인이 따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X이앱을 거의 켜지 않았다. 햇살이들의 시간을 아껴줘야한다고 했다.

나는 한효석과 304호실에서 같이 X이앱을 켜기로 결정하고, 함께 썸네일 사진을 찍은 후 X이앱을 시작했다.

[어? 신선한 조합이네]

우리 둘이 X이앱을 켠 것도 처음이고, 룸메이트인 적도 없다 보니 햇살이들이 신기해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한효석이 출연 중인 예능 이야기를 좀 했다.

[효석 멘토님 멋있어!]

“그쵸? 멤버들도 맨날 효식이 멋있다고 해요.”

[해원이 진짜 멤버들 나오는 거 다 보네]

“그러니까요. 저도 성실한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이 형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한효석의 말에 햇살이들이 화내기 시작했다.

[해원이 잘못이지 건강 깎아서 일하는 거 배우지 마 효석아]

[이건 진짜 해원이가 잘못했다ㅋㅋㅋ]

[정해원 제발 좀 쉬라고…….]

그 댓글을 읽다가 내가 한효석에게 핀잔했다.

“야, 너 때문에 햇살이 화났잖아.”

“누가 봐도 형 때문에 화난 거죠. 좀 쉬라구요.”

“그렇다고, 어. 내가 너 나오는 예능 안 보면 좋겠어?”

“그럼 삐지죠.”

“그봐. 하여튼 우리 멤버들 은근 피곤해.”

“형이 제일 피곤해요.”

“그니까 나 포함해서 피곤하다고.”

“알고 계시니 다행이네요.”

[이 조합 은근 많이 싸워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퍼라에서 제일 말싸움 잘하는 듯]

[초딩즈(신지운, 민지호) 말싸움이랑은 느낌이 달라ㅋㅋㅋㅋ]

[다섯 살 민지호VS다섯 명 민지호]

그 댓글을 읽은 한효석이 말했다.

“다섯 살 민지호, 다섯 명 민지호? 이거는 진짜 고민거리도 아니에요.”

“그치? 일단 지금 민조가 다섯 살이나 다름없는데.”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아, 민지호가 다섯 명…….”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효석이 중얼거렸다.

“오히려 다섯 살 민지호가 더 의젓할걸요.”

“맞아, 다섯 살이면 애기라고 놀리면 의젓한 척이라도 하지. 민조한테 애기라고 하면 나 애기야? 내가 그렇게 귀여워? 이럴걸.”

“와, 너무 상상돼서 소름 끼쳤어요.”

[퍼스트라이트에서 민지호란 뭐냐구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해원이 민조 따라하는 거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가 이어지는 댓글을 보다가, 내가 한효석에게 말했다.

“너는 다섯 살이어도 진짜 의젓할 것 같아.”

“형이 다섯 명이면 케이팝이 발전할 것 같아요.”

그 말에 내가 감동한 표정으로 한효석을 한번 안았다가 놨더니, 한효석이 댓글을 읽었다.

“아, 해원이 형이 잘 치댄다구요? 근데 이 형 아이돌 자아가 켜질 때만 이러지, 평소에 스킨십 진짜 싫어해요.”

“진짜, 싫어하는 것까진 아니고.”

아무래도 아이돌이니까 카메라 앞에서는 멤버들에게 잘 치대고, 치대는 것도 받아주고 하는데 카메라 꺼지면 근처에만 와도 좀 귀찮긴 하다. 내가 말했다.

“근데 그래도 또 너무 떨어져 앉으면 내가 외로우니까 적당한 간격을 둬줘야 돼.”

“아, 햇살이들, 이 형 이거 진짜로 이래요.”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피곤한 놈이긴 하다.

아무튼 평일 오후 2시인데도 햇살이들이 많이 들어와 준 덕에 북적북적한 분위기로 재미있게 놀았다. 한효석도 은근 즐거워했다.

X이앱을 한 시간 좀 넘게 하고 끈 후, 한효석은 다시 예능 분석을 하고, 나는 복도로 나왔다.

그때 핸드폰을 보니, 문자가 와있었다.

[스파이1 : 최기문 TRV 갔어]

[오 고마워]

나는 답장을 하고 최기문과 우연히 마주치기 위해서 회사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부사장과 이야기하고 나오는 최기문을 발견했다.

와아, 모처럼 봐도 드럽게 안 반갑네.

그나저나 나처럼 사이 나쁜 놈이 와서 덥석 지분을 팔라고 하면 팔까, 싶다. 나라면 안 팔 것 같은데 뭐라고 말 걸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최기문이 먼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오랜만이네.”

……이 미친놈이?

내가 표정을 구기는데, 최기문이 말을 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원 군한테 헛짓거리를 많이 했어. 그, 참 미안하게 됐네.”

어…… 잠깐만? 왜 저자세지?

“시간 있으면 술이라도 한잔 먹자고. 이게 또 같이 엔터계에서 평생 볼 텐데. 척져서 좋을 게 없어요. 언제 어떻게 돼서, 뭐로 만날 줄 알고.”

최기문의 그 말에, 나는 거의 확신했다.

이 새끼.

나한테 지분 팔려고 먼저 작업 치는 것 같은데?

나는 손 안 대고 코를 풀어줄 기미를 보이는 최기문에게 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표정을 굳히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기문이 나를 회유하느라 본색을 드러내지 않아서, 일단 물꼬를 터보기로 했다.

“갑자기 이러시는 거 보니까, 뭐 필요한 거 있나 봐요?”

“내가 필요한 게 아니고, 해원 군이 필요한 게 있나, 싶은 거지. 올해 돈 어지간히 벌었잖아?”

“감당이 안 되게 벌었죠.”

는 거짓말이긴 한데.

사업하는 사람이 자기 체급 부풀리는 건, 다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부풀린 큰 체급에 맞는, 큰 거래가 오갈 수 있게 하니까.

뭐 어쨌든 제법 번 건 사실이고, 차를 산 것 빼고는 따로 크게 돈을 쓴 곳도 없었다. 내년에 세금은 내년에 내가 알아서 벌겠지. 흐흐.

내 말에 최기문이 흥분한 표정을 못 숨기고 말했다.

“퍼스트라이트가 계약 기간이, 반년 넘게 남았잖아.”

“네.”

“나도 또 사업 자금이 필요하고, 해원 군은 이미 여기 질렸을 텐데 빨리 뜨고 싶잖아.”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최기문이 말할까, 말까 뜸을 들였다. 이쯤에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TRV 지분, 레이블로 빼서 파시게요?”

내 말에 최기문이 허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제가 지금 대표님한테 그거 제안해 보려고 했거든요. 대표님은 그래도, 저 꽤 좋게 보시잖아요. 아니에요?”

“아니, 뭘 어렵게 그래. 나한테 사면 되지.”

물었다고 해야 하나. 내 생각에 이건 거의 물고기가 직접 그물 치고 알아서 들어간 느낌이다.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제가, 부대표님을 어떻게 믿고 거래를 해요. 제 전재산에 대출까지 받아서 진행하는 일인데. 제 인생이 걸렸어요, 여기.”

내 말에 최기문이 못 참고 하하 웃는다. 이 새끼, 내 인생 조지는 게 너무 보고 싶어서 웃음이 안 참아지나 보다.

“그니까, 한잔하면서 얘기하자고.”

“저 무알콜만 마셔요.”

“그래, 뭐. 마아아음대로 하셔. 지금 시간 있어?”

“네.”

히히.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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