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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77화 (17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7화

정해원은 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냈고, 금방 강영호 매니저가 달려왔다. 그 후에야 최기문을 포함한 세 사람은 TRV 인근의 횟집으로 들어갔다.

칸막이가 있는 창가 자리에, 정해원은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주 꼴 보기 싫은 놈이지만,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카메라 마사지라는 게 있긴 한지, 그 몇 달 사이에도 얼굴이 달라 보였다.

표정은 아주 예의와 범절을 분리수거로 내놓고 온 것 같았지만 최기문의 제안에는 의외로 유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정해원은 처음 말한 것처럼, 계열 분리의 형태로 레이블을 나누어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원했다.

“안주원의 남은 계약,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에 관련된 모든 라이선스만 있으면 돼요.”

말 그대로 TRV에서 흔적도 안 남기고 퍼스트라이트를 잘라내 달라는 것이었다.

원하는 걸 그대로 말하니, 최기문 입장에서는 너무 쉬웠다. 사업수완은 없는 놈이 분명했다. 그런 면에서 정해원이 점점 더 만만해졌다.

최기문 역시 퍼스트라이트가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었고, 특히 안주원의 국선아 조작 건이 터진다면 더더군다나 계약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기문은 핸드폰으로 아는 기자들의 번호를 확인했다. 정해원에게 지분을 매각하자마자, 곧바로 안주원의 조작 건을 기자들에게 뿌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반년은 활동이 어려울 것이다. 즉, TRV에서 사간 시간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최기문은 그날을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기분이었으나 속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내가 지분이 15%가 있으니까, 그걸로 계열 분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80억 정도 되겠네요.”

좀 깎아서 부르긴 했지만, 거의 정확했다. 최기문이 기가 차서 말했다.

“아주 작정을 했구만?”

“네. TRV랑 아주 연을 끊고 싶어서요.”

일부러 그러는 건지, 계속 속을 박박 긁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최기문은 빨리 저놈에게 퍼스트라이트 라이선스를 팔아치우고 싶어 몸이 달았다.

아무리 올해 잘나갔다고 해도, 재산 형성에 있어서 연차만큼 중요한 변수가 없었다. 올해 잘 벌어봤자 저 나이대에 비해 잘 번 거지, 80억을 끌어모으는 건 어려울 것이다.

최기문은 정해원과 술을 마시며 계열 분리에 지분이 얼마나 내놓을지에 대해 싸웠다. 최기문은 최대한 많이 팔려 했지만, 정해원은 적게 사려 했다.

스물한 살치고는 대단히 수완이 좋았지만, 그래도 이십 년 가까이 사업을 폈다, 접었다 해온 최기문에게는 당할 수 없었다. 점점 최기문이 원하는 쪽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정해원은 자신이 가진 저작권을 전부 담보로 하며, 그냥 그 위험을 감수하려는 듯했다. 반대로 말하면, 정해원의 활동이 막히면 빚더미와 함께 저놈 인생도 끝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흐뭇해져서 최기문은 계속 술을 마셨고, 중간에 강영호 매니저에게 술을 권했다. 최기문은 술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을 매우 싫어했다.

“아, 그래도 어떻게 세 사람이 있는데 나 혼자 술을 먹어!”

최기문이 떼를 쓰자, 결국 강영호 매니저가 술을 받았다. 그리고 정해원을 보니 대수롭지 않은 대꾸가 돌아왔다.

“내가 운전한다니까요.”

“대리 부를까?”

“형, 나 운전 잘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니 강영호가 슬쩍 술을 들이켰다. 역시나 회를 집어 먹다 보니 술을 안 마시는 게 어려웠던 듯했다.

강영호 매니저는 한 잔을 마시고 나서는, 연거푸 소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정해원이 그제야 처음으로 웃으며 강영호 매니저에게 말했다.

“와, 형 술 그렇게 좋아하는지 오늘 처음 알았네. 우리 있을 때 별로 안 마셔서.”

정해원도 술 생각이 나긴 하는지, 소주잔을 들었다가 끈질기게 다시 내려놓고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최기문은 정해원이 술잔 드는 걸 힐끔 확인하다가 다시 자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 * *

그렇게 자리를 파하고 나는 강영호 매니저에게 손을 내밀었다.

“차키 주세요.”

“에이, 대리 불렀어요. 잠깐만 차에 있으면 커피 좀 사가지고 올게요.”

“아, 왜 대리를 불러요. 내가 운전한다니까.”

“해원 씨 요즘 시상식 준비하느라 맨날 못 자잖아요.”

아, 거 운전 한번 하기 드럽게 어렵네. 하고 싶어도 운전대를 주질 않는다.

결국 강영호 매니저가 커피를 사러 가까운 편의점으로 간 사이, 나는 차 앞에서 대리기사를 기다렸다.

거의 바로 대리기사가 도착했는데, 내 또래였다.

“일행이 커피 사러 가서요, 금방 오면 바로 가시죠.”

내 말에 대리기사가 ‘아…….’ 하고 바닥을 봤다. 내성적인 사람인가, 싶었다. 우리 멤버들 덕에 내성적인 사람에게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강영호 매니저가 돌아왔다.

바로 숙소로 향하고 있는데, 대리기사가 운전 도중 나를 힐끔힐끔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내 또래 같긴 해서, 알아보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신호에 걸리니까 또 나를 보다가 룸미러로 눈이 마주치니까 바로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요즘 사생 문제가 약간 스트레스라, 사적인 공간에서 누가 쳐다보는 것에 약간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는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숙소에 도착했다. 주차장까지 말없이 들어가 차를 대고 나와서, 내가 인사를 하는데 대리기사가 주춤주춤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네?”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대리기사가 나를 부르니까 강영호 매니저가 슬쩍 가까이로 왔다. 대리기사가 말했다.

“형, 저 햇살이예요…….”

“……어?”

아? 그런 거였어?

강영호 매니저가 술을 한잔하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크흑 하고 웃어서 내가 툭 치니까 바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웃는 걸 들어서인지 바로 가려고 해서 내가 얼른 말했다.

“아, 햇살이구나. 어쩐지. 나는 또 내가 아는 사람인데 못 알아보나, 했는데.”

“아…….”

그러더니 자기 핸드폰으로 최근 플레이한 음악을 보여주는데 프루티였다. 퍼스트라이트 앨범도 전부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내가 작업한 빅 블루 앨범도 가지고 있었다.

감동한 내 표정에 자신이 생겼는지 햇살이가 말했다.

“저도 원래…… 학교에서 따돌림 당해가지고, 자퇴하고…… 집에만 있었거든요.”

“으응, 네.”

“형 보고, 용기내서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형 따라서 일단 면허부터 땄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대리 뛰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고 있어요.”

“와…… 멋있네.”

나는 울컥해서 잠깐 돌아섰고, 술기운이 있는 강영호 매니저는 이미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나는 햇살이와 이야기를 좀 했고, 강영호 매니저가 엔터 쪽 생각 있으면 도와줄 테니까 연락하라고 명함을 줬다.

그렇게 인사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더니 멤버들이 걱정했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멤버들과 오늘 합의한 내용들을 설명해 줬다.

신지운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이게 진짜 된다고? 아니, 형도 형이고 그 스파이는 뭐야? 뭐 하는 사람이야?”

부업 스파이? 아니, 이제 전업 스파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아무튼 그건 그렇고.

멤버들 모두 걱정하는 걸 박선재가 대표로 물었다.

“형 돈 그만큼 없잖아. 위험부담 너무 큰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니까 그제야 황새벽도 중얼거렸다.

“우리도 돈 다 합쳐도 얼마 안 되고…….”

그래서 내가 대꾸했다.

“너희 누나가 피곤해하면서도 열심히 도와주셨어. 다 예상 범위야.”

“형 그러다 우리 망하면 형은 진짜, 그냥 막 엄청 망하는 건데!”

“우리가 왜 망해. 애초에 그럴 리도 없지만, 퍼라가 잘 안 돼도 내가 미친 듯이 일하면 갚을 수 있어.”

멤버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봐서 내가 웃었다.

“아, 우리 안 망한다고.”

“……저 형의 저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거예요?”

한효석이 안주원에게 묻자 안주원이 대답했다.

“해원이 원래 국선아 때부터 우리가 되게 대단한 줄 알잖아.”

“하긴…….”

한효석이 수긍했고, 솔직히 나도 공감했다.

처음 국선아 촬영을 하러 갔을 때, 내가 보고 여러모로 충격받아서 넌 어떻게든, 무조건 데뷔해야 한다고 등 떠밀던 게 여기 이 여섯 명이었으니까.

무조건 잘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걱정하는 멤버들 표정에 웃음이 터져서 말했다.

“야, 난 퍼라에 합류하는 게, 훨씬 더 무서웠어.”

“…….”

“그거에 비교하면, 이건 무서운 것도 아니야.”

“……하긴. 그치?”

히키코모리 생활 중에 몇 번이나 날 찾아왔던 신지운이 제일 먼저 말하고 흐흐 웃었다.

아까 대리기사 햇살이를 만나고 와서 그런가, 괜히 더 아무렇지도 않게 내 합류를 반겨준 이놈들이 고마워졌다.

* * *

[와 심장 벌렁벌렁한다ㅠㅠ 잊어버릴까봐 기록함 개인정보 비슷한 거라도 보이면 지적 바람]

[일단 콜 받고 갔는데 멀리서 봐도 해원이 형이라서 설마설마함. 별로 꾸민 것도 아닌데 파워 연예인이었음. 비율 오지고 얼굴 개작음. 가까이 가보니까 진짜 해원이 형이었다…….]

[옆에서 매니저님이 해원이 형 밤샘 작업해서 운전하겠다는 거 못 맡기고 대리 불렀다고 혼잣말하심 나도 해원이 형 술 안 드시는 거 알아서 끄덕끄덕함]

[형이 옷 잘 입은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내가 평소 입는 거랑 비슷했음ㅎㅎ 당연함 평소 해원이 형 손민수 X나 하는 히키임 천쪼가리 주제에 사람 가려서 빡침]

[안 되는 거 아는데도 너무 신기해서 자꾸 보게 됐음 룸미러로 눈 마주쳤는데 음습 히키가 자꾸 힐끔거리니까 약간 표정 안 좋으셔서 솔직히 많이 쫄았따ㅠㅠㅠ 그때부터 집중하고 운전함]

[숙소 도착했는데 아무래도 나쁘게 기억될 것 같아서 햇살이라고 케찹고백 했더니 해원이 형 바로 표정 풀리심 햇살이들이 해원이 형이 팬들 보면 버터 녹는 것 같다고 하는데 진짜 버터 같았음]

[진짜 편견 없으시더라ㅋㅋㅋㅋ나도 실수로 거울 보면 기분 X같은데 햇살이라니까 바로 키라키라 아이도루 돼서 꿀 떨어지는 눈으로 보셨음 우리 엄마도 나 그렇게 안 본다ㅎㅎ 성별 불문 내가 본 쓰리디 인간 중에 제일 설렘]

[학폭 당하고 히키질하다가 해원이 형 보고 용기 내서 대리 뛰기 시작한 얘기하는데 진짜 다정한 얼굴로 들어주시더라 중간중간 한 마디씩 대단하고 멋있다고 따듯한 말 해주시는데 X나 멋있는 어른 남자였음]

[오따꾸특 들어주니까 흥분해서 X나 떠들고 집에 와서 이불 찬다…….]

[아무튼 실물 후기 그냥 빛이라서 중졸 손가락으로는 묘사 못하겠고 개잘생겼다는 건 확실함 카메라는 뿌셔야 된다]

[여기 목격담 되나? 대리기사 햇살이 후기 봤어? 일단 가져왔는데 믿지는 말고 재미로만 보자]

[↳헐 처음 봐]

[↳아닠ㅋㅋㅋㅋ남팬 후기가 이렇게 설렐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나까지 설레ㅋㅋㅋㅋㅋㅋㅋ]

[↳후기만 봐도 해원이 진짜 따듯하다ㅠㅠㅠ]

[↳해원이 목격담 보면 ‘차가워 보였는데 햇살인 거 알고 녹은 버터됨’ 이 부분 꼭 있더라ㅋㅋㅋ]

[↳홈마들 사진만 봐도 말랑버터인데 표정 굳은 사진은 백퍼 사생이라고 보면 될 듯]

[↳↳해원이 사생홈 찾기 난이도 최하 아니냐ㅋㅋㅋ]

* * *

안주원이 대리기사 햇살이의 목격담을 찾아줬다. 후기를 읽다가 내가 말했다.

“내가 말랑버터야?”

“어, 햇살이들이 너 그렇게 많이 부르더라.”

나에게 너무 지나치게 귀여운 수식어 아닌가, 생각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솔직히 좀 많이 좋았다.

그렇게 후기를 보고 있을 때, 강영호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전화를 받으니까 강영호 매니저가 말했다.

-최기문이 나보고 따로 좀 보자는데 어떡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흐 웃었다.

“형은 어쩌고 싶어요?”

-뭔 소리를 하는지 궁금하긴 해요. 아, 듣고 와? 스파이2 한번 해?

내가 박중운 매니저를 스파이1로 저장해 놓은 걸 이제는 아는 강영호 매니저가 농담했다.

강영호 매니저는 스파이1이 나를 배신할 때, 똑같은 제안을 받고도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 팀이 가장 믿는 매니저이고, 함께 새 회사로 이동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매수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최기문도 참 사람 보는 눈 드럽게 없다.

하긴, 그게 있었으면 퍼스트라이트에게 진작 올인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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