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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78화 (17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8화

강영호 매니저는 최기문이 무슨 허튼짓을 제안할지 궁금하다며 얘기를 들어본다고 했다.

그 후 나는 모처럼 여유 시간이 있어서 리모컨을 들고 말했다.

“내 최애 영상 봐야지.”

“아, 그만 보라고.”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박선재가 핸드폰을 뺏었다. 그러자 신지운이 다시 뺏어서 안 주려고 손을 들었는데 천장에 여유 있게 리모컨이 닿았다. 박선재가 올려다보며 말했다.

“와. 형, 이제 무조건 백구십 넘었다.”

“안 넘었다고.”

“왜 백구십 넘는 걸 그렇게 싫어해?”

“너무 크면 강아지 같지가 않잖아.”

그 말에 한효석과 함께 시리얼을 꺼내 먹던 민지호가 말했다.

“형은 쬐끄매도 강아지 같지 않아!”

“네가 강아지에 대해서 뭘 알아. 그리고 다이어트를 너는, 어? 시리얼을 한 통씩 먹을 거면 차라리 밥을 먹어, 그냥.”

“저지방 우유랑 먹으니까 괜찮대, 효식이가.”

“한효식도 은근히 많이 먹어, 요즘.”

신지운의 지적에 한효석이 약간 뜨끔해하는 게 보였다.

신지운이 나에게 리모컨을 던져줘서, 나는 잽싸게 내 최애 영상을 찾아 틀었다.

“아, 진짜. 왜 보는 거야, 도대체.”

박선재는 괴로워했지만 내가 그 영상을 틀자마자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박선재가 2014년 창작동요제에 참가한 영상이었다. 여덟 살에 통통한 박선재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식물관찰을 좋아하는 여덟 살 박선재입니다.”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멤버들이 거의 반사적으로 따라 했다. 박선재는 포기하고 내 옆에 앉아서 같이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네, 박선재 어린이는 어떤 식물을 좋아해요?”

민지호가 말하자 옆에서 신지운이 말했다.

“저는 나팔꽃을 식물 중에 제일 좋아…… 야, 왜 하필 나팔꽃이야?”

그러자 박선재가 한숨을 푹 쉬고 대꾸했다.

“저 때 아마 나팔꽃 키웠을걸? 숙제 같은 걸로. 아니, 근데 이런 데다가 관심 주지 말고 딴 걸로 관심 주라고.”

박선재가 투덜거리는 사이에 동요가 시작되려는데, 민지호가 잠깐 정지를 누르고 말했다.

“누가 찍어줘. 나 안무 다 땄어.”

그리고 한효석에게도 나오라고 손짓하자 안 해주는 게 더 피곤하다는 걸 아는 한효석이 체념하고 일어났다. 어쨌든 동요 안무를 같이하긴 하는 걸 보니, 쟤도 뼛속까지 아이돌이다.

나와 안주원과 신지운이 전부 핸드폰을 들고 찍었고, 핸드폰을 들 힘이 없는 황새벽은 리모컨으로 플레이를 누르는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다.

바로 동요, 나팔꽃이 시작되며 빌런즈가 안무를 시작했다.

“보랏빛, 예쁜 꽃, 할머니랑 함께 심은 꽃.”

중간부터 민지호가 재촉해서 결국 박선재도 마지못해 같이 율동을 했다.

“근데 잘해.”

“열중한 모습이 왠지 멋있어.”

황새벽의 말에 나도 맞장구쳤다.

무대가 완벽하게 끝난 후 우리는 영상을 다 돌려보고 제일 잘 찍은 내 영상을 X버스에 올리기로 했다. 물론 박선재가 반대했지만 다수결에 의해 5:2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한효석은 박선재 편을 들어줬지만, 올려도 별로 상관은 없어 보였다.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다.

[왜 이렇게 막내 괴롭히기에 진심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춤선 다른거 발린다]

[형들 웃는 소리 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아기 명창ㅠㅠㅠㅠㅠ]

그렇게 햇살이들을 웃겨주고 나니까 결국 박선재도 만족해했다. 박선재가 말했다.

“그리고 나팔꽃은 명곡이야. 많이들 알아줘야 돼.”

“그건 맞지.”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멤버들이 떠들기 시작한 숙소를 돌아보았다.

계약이 끝나면 이 숙소도 끝. 어차피 내년 여름에 들어오든, 당장 들어오든 들어오게 될 테니 강효준은 미리 숙소를 구해놨다고 했다.

돈이 남아도나 보다. 뭐, 남아돌긴 하겠지…….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영호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고, 강영호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최기문, 뭐 아무 얘기도 없던데요. 그냥 술만 한잔했어요.

“아…….”

최기문 이 자식, 이간질하려는 건가?

아무래도 남자들끼리 술 한잔하면서 친해지는 것과 술을 아예 안 마시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내가 술을 아예 안 하다 보니까, 최기문이 속을 다 내보이는 것보다, 술만 한잔했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강영호 매니저가 말했다.

-진짜로, 술만 마시고 바로 나왔어요.

“형.”

지금 최기문과 오가는 것은 내가 호구여야지만 성립되는 거래다. 최기문이 아무리 사업에 눈이 멀었어도, 내가 충분히 호구처럼 보이지 않으면 이상함을 느끼고 발을 뺄 것이다.

최기문이 안주원의 조작 건에 대해 더 깊이 파보기 전에 빨리 계약을 마쳐야만 했다.

강영호는 같이 술자리에서 그런 나와 최기문의 대화를 보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최기문이 화려한 언변으로 TRV의 가치를 역설할 때, 옆에서 별다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던 나를 봤으면, 아무래도 생각이 흔들릴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그냥 무조건, 날 믿어, 나도 형 믿어, 이런 말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강영호 매니저는 의리가 있지만, 그전에 한 명의 개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영호에게 천천히,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나와 멤버들이 기획한 내년 일정들을, 이제 TRV에서 분리한 레이블을 흡수하며, 지분 가치를 판단해, 우리에게 회사 지분을 재분배해 줄 새 소속사의 대표 강효준과, 퍼스트라이트의 우리 멤버들만이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했다.

매번 ‘어렵다’는 TRV의 대답이 돌아오던 멤버들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강효준에게는 ‘좋다’는 대답으로 돌아왔다는 것.

도전적이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새 소속사에서 퍼스트라이트가 어떻게 얼마나 발전할지를 나는 자신 있게 설명했다.

한참을 듣던 강영호 매니저가 물었다.

-그거, 대외비 아니에요? 나한테 다 말해도 돼?

그 말에 나는 흐흐 웃고 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형, 중운이 형이 저 배신하고 나서…… 저 되게 우울하고 슬펐어요. 역시 내가 사람들한테 미움받는 스타일이구나. 난 평생 사랑받는 아이돌은 못 될지도 모르겠다.”

-…….

“근데 형이 그때, 똑같은 제안 받고 거절해 줬다고 했잖아요. 그거 진짜. 저한테 엄청 큰 힘이었어요. 그래도 내 편도 있구나. 그게 진짜로, 컸어요, 저한테.”

* * *

솔직히 말해서, 강영호 매니저는 술자리에서 나오며 마음이 좀 싱숭생숭했다.

최기문은 강영호 매니저가 지금 급여로 잘 가보기 힘든 좋은 술집을 데려갔다.

2차까지 가자는 걸 거절하자, 최기문은 강요하지 않고, 별다른 부탁도 하지 않고 다음번에 한잔 더 하자고 말하고 떠났다.

흔들린 것까진 아닌데, 좀 싱숭생숭하긴 했다. 정해원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아이돌이라고 믿었지만, 아무래도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스물한 살짜리가 사업적인 부분을 잘 알아야 얼마나 잘 알겠나, 싶기도 했고, 새 회사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도 걱정됐다.

그래도 일단 얘기해 보자, 싶어서 전화했는데 뜻밖에, 정해원은 이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여기고 자신을 붙잡기 위해 멤버들과 새 회사 대표밖에 모르는 일정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이만큼 발전할 거다, 라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러나 과장하지 않는 침착함으로 말하는 정해원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심장이 뛰었다.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불안감은 단숨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지막 정해원의 한방이 마음을 꽉 붙잡았다.

-형.

“응.”

-형은 내 사람이에요. 같이 가요, 끝까지.

그렇게 듣고 나니, 왜 배신했던 박중운이 다시 정해원 편에 붙어 스파이 짓을 해주고 있는지 좀 이해가 갔다.

정해원은 내 사람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익에 따라서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대우해 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사람’이라는 말을 아무한테나 내뱉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강효준 대표도 아직 자기 사람이라고는 확실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게감이 있었다.

“그거야 당연하죠.”

저절로 그런 대답이 나왔다.

* * *

정해원은 황새벽의 누나인 황샛별 회계사와 부지런히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12월 내내 시상식과 지분 인수 준비, 대출 심사를 받고, 새 소속사에서 내년 한 해 꽉꽉 채운 활동들을 준비하느라 이동 중 차에서 자는 것으로 대부분의 수면 시간을 때웠다.

시상식 스케줄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서, 박선재가 조수석에 앉자마자 깊이 잠든 정해원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해원이 형 안 움직여.”

그러더니 얼른 숨 쉬는지를 확인한 후 말했다.

“아, 살아 있다…….”

그러자 박선재의 옆자리 황새벽이 말했다.

“아니, 멤버가 살아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되냐.”

그 말에 박선재가 황새벽을 힐끔 보았다.

원래 강효준과 연락하던 정해원이 바빠지면서, 황새벽이 양쪽 소속사와의 조율을 전부 책임져 리더 역할을 몇 배로 하고 있었다.

정작 상황이 그렇게 되자, 황새벽은 오히려 피곤해서 뻗어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의무감 때문에 피곤을 못 느끼고 있는 듯했다. 박선재가 말했다.

“형은 최고의 리더야.”

“갑자기 난 왜?”

황새벽이 민망해하는데, 정해원이 일을 벌이는 만큼, 무대 구성과 안무 준비로 연일 바쁘던 민지호가 뒷자리에서 잠결에 말했다.

“맞아…… 새부기 최고의…… 리더…….”

“아, 왜 이래. 계속 잠이 자라, 민조.”

“민조 형아들 쪼아…….”

“내일모레면 쟤도 스무 살인데 어떻게 삼인칭이 안 어색할 수가 있냐.”

황새벽의 말에 박선재가 말했다.

“쟤는 할아버지 돼도 저거 안 어색할걸.”

“프로 아이돌이다, 프로 아이돌. 우리 메보 막냉이 목 관리 잘해라. 여든에도 귀여운 노래 불러야 하게 생겼어, 민조 때문에.”

“말 나온 김에 도라지청 먹어야겠다.”

박선재가 말하며 도라지청을 꺼내 먹었다.

잠시 후 차가 숙소에 가까워지자, 황새벽이 말했다.

“선재야, 솔로곡 불러줘. 그럼 애들 바로 일어나.”

“그럴까.”

박선재가 바로 정해원이 작업 중인 솔로 데모를 틀었다.

[봄이니까 봄이니까]

[오늘 나를 보러 와 카페에서 기다릴게]

[단골 추천 메뉴는 시나몬을 뿌린 당근 케이크]

[언제나와 같이 너와 나는 아메리카노]

[일상적인데, 오늘 봄인 건 달라]

[그러니까 이 좋은 날씨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봄이니까 봄이니까]

[오늘 나를 보러 와 카페에서 기다릴게]

처음에는 좀 더 무게감 있던 음악이 박선재의 의견을 수렴한 안주원의 작사를 바탕으로 수정과 수정을 거듭해 봄 냄새 물씬 나는 곡으로 편곡되었다.

그러면서 앨범 분위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게 되자, 정해원은 그 곡을 그냥 박선재의 개인 소속사 쪽으로 넘겨줬다.

예상대로 정해원이 깨서 중얼거렸다.

“카페 온 것 같다.”

그리고 민지호도 깨서 말했다.

“이 노래 쪼아…….”

그러자 박선재와 같은 개인 소속사의 황새벽이 말했다.

“좋지? 소속사에서 이거 진짜 좋아하더라. 선재 개인 활동으로 뮤지컬 하라고 그렇게 꼬시더니, 그냥 이거면 된대. 다 만족했어.”

그러자 정해원이 기지개를 켜고 말했다.

“막냉이 내년에 진짜 바쁘겠다. 2월 초에 컴백하고, 3월에 일본 데뷔하고, 4월에 솔로 나오는 거잖아.”

“형이 할 말 아니야.”

요즘 워낙 바쁘다 보니 박선재의 핀잔에 할 말이 없어 정해원이 흐흐 웃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오래간만에 늘어지게 자고, 다음 날 오후에 정해원은 강영호 매니저와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정해원이 구두를 신으며 말했다.

“그럼 계약 픽스하고 올게.”

그러자 안주원이 말했다.

“어, 우리도 좀 이따가 나갈게.”

정해원이 손을 흔들고 숙소를 나갔다. 한효석이 핸드폰을 보더니 말했다.

“오늘 저녁에 눈 온대요.”

그러자 신지운이 같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우리 뭐 중요한 일 있을 때마다 눈 오네.”

“그러게요.”

“잘 풀릴려나 보다.”

신지운이 미신에 의지하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멤버들 모두 긴장을 풀지는 못했기 때문에, 모처럼의 쉬는 날을 즐기지 못하고 연신 핸드폰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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