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79화
오늘 나는 나름으로 패션에 신경을 썼다.
뭘 입어도 애새끼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점퍼보단 좀 낫지, 싶어서 정장을 입고 코트를 걸쳤다. 나름 머리도 최대한 어른처럼 만져봤다.
아무튼 그렇게 TRV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강효준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기문이 기자들한테. 주원 씨 국선아 조작에 관한 거 흘렸더라.
“……벌써요?”
-오늘 기자 몇 명이 연락하더라고.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어떻게 조작한 거냐고.
‘벌써’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빠른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의 준비가 덜 돼서 그렇지…….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최기문이 자세한 내용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계약하고 나와.
“네엡.”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조건 오늘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고 있을 때, 이번엔 스파이1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고 나니 스파이1이 말했다.
-VMC 이춘형 이사 있잖아.
“효준 형네 사촌 형?”
-응.
국선아의 원흉인 이춘형 이사의 이름을 듣자, 안 그래도 초조하던 마음이 더 쫄렸다. 스파이1이 말을 이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었는데. 여름쯤에 서바이벌 준비하는 것 같더라고.
“또?”
-근데 출연자로 널 섭외하려는 것 같던데.
“…….”
날 왜?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도 먼저, 이걸 어떻게 우연히 들었다는 건가, 라는 황당함부터 들었다. 스파이1이 말을 이었다.
-아마 복면 프로듀서 같은 느낌의 경연인가 보더라. 소년들 출신 최윤솔도 섭외 중인 것 같고. 이춘형 이사가 퍼스트라이트 조건부 계약한 것 때문에 많이 화났잖아. 뭔가, 네 화제성이랑 프로듀싱 능력치 이용도 할 겸, 끌어내리기도 하려는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아?”
-그냥 지나가다가 회의하는 게 들렸어…….
그니까, 그게 어떻게 들리냐고.
나는 궁금했지만 이번에도 그냥, 자세한 건 모르고 넘어가기로 했다.
“알았어, 고마워, 형.”
그렇게 인사하고 끊은 후, 나는 바로 강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서바이벌을 준비 중인 것 같으니 알아봐 달라, 라고 하니까 강효준이 물었다.
-스파이가 알아 왔어? 또?
“그럼 누가 알아 와요.”
-혹시 스파이가 다섯 명 정도냐?
“아뇨. 한 명인데.”
-그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아냈대?
“저도 알고 싶지 않아요. 그냥 모르고 있으려고요.”
-하, 우리 보안 진짜 철저하다고 생각했는데…….
강효준이 믿기지 않는지 한탄했다. 미리 놀라고 난 후인 내가 말했다.
“아무튼 진짜 하는 건지 확인해 주세요.”
-그래야지.
“제가 할 만한지도요.”
-안 되지, 과로사할 일 있냐.
“아니, 더 라이징 해보니까. 그런 서바이벌에 무대 하나 남는 게 해외 팬들한테 엄청 영향이 크더라구요. 혹시 우리 멤버들 그런 무대 만들 기회 주면…….”
-그니까, 뒤질 일 있냐고. 걔네가 퍽이나 너 이쁘게 편집해 주겠다.
“하겠다는 게 아니라, 궁금하니까 알아만 보자는 거죠. 아니, 형네 회사 가면 빡세게 굴려줄 줄 알았더니.”
-헛소리하지 말고 끊어.
하, 참내.
하여튼 저렇게 어지간히 아티스트를 싸고도니까 애들을 그렇게 베려놨지. 카일룸 차우석이 하도 힘들다고 징징거려서 진짜 스케줄이 많은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냥 엄살이었던 거 아닌가 싶다.
그놈 성향을 생각해 보니까 그럴 만도…….
내가 실수로 지나치게 과보호하는 소속사에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사이 우리는 TRV에 도착했다.
이것저것 따지고 고려했을 때, 최기문이 가진 15% 중 일부인 9.3%를 계열 분리를 통해 내가 매수하고 거기에 이것저것 라이선스 비용까지 합쳐서 60억 정도에 맞췄다.
나머지 멤버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투자한 작고 소중한 돈과 내 전 재산과 저작권을 전부 담보한 대출, 심지어는 강효준이 미리 땡겨준 계약금까지 전부 다 올인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98억짜리 부동산에 돈을 물 쓰듯이 써서 인테리어를 갈아엎은 강효준은 그까짓 60억 금방 벌 텐데 왜 이렇게 쪼냐고 한소리 했다. 아주 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이 레이블 안에 내가 원하는 것들이 다 들어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살면서 꼭 가지고 싶은 게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사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무조건, 무슨 수를 써서든 살 것이다.
* * *
TRV에 최기문 라인이 아직 있긴 했는지, TRV 직원들이 꽤 많이 왔다.
협상 시간이 길어지며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상황이 닥치자 식사도 할 겸, 한잔하면서 감정 풀고 마저 진행하자고 최기문이 회의에 온 사람들을 회유했다.
빨리 사인해서 넘기고 싶은데 드럽게 질질 끈다.
그래도 그 초조함을 드러내는 게 독이 될 것 같아서 급하지 않은 척하려 애썼다.
예상대로 밥집이라기보다는 술집에 가까운 장소에 도착했고, 나는 허한 기분에 허기가 져서, 주문한 무알코올 칵테일이 나오기도 전에 안주를 부지런히 집어 먹었다.
그때 강영호 매니저가 받은 술잔을 옆에 두고 못 마시는 게 보였다.
“형, 오늘이야말로 진짜 내가 운전할게요.”
“안 돼, 오늘은 진짜 안 마셔요.”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최기문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자며 잠깐 강영호 매니저를 불렀다.
잠시 나갔다가 자리로 돌아온 강영호 매니저는 얼떨떨한 얼굴로 좀 앉아 있다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나가서 나에게 문자를 했다.
[강영호 형 : 최기문이, 해원 씨 무알코올 칵테일, 도수 있는 걸로 바꿔치기해서 딱 운전대 잡는 것까지만 찍어놓재요. 약점 잡아만 놓자고. 이 쓰레기 같은 새끼…… 하긴, 누구 아들인데요. 대표에 비하면 최기문은 착하다더니.]
자기가 들은 말이 너무 어이없는 데다, 한잔해서 욱하는 게 올라오기까지 한 강영호 매니저가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그걸 보니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뭐 애초에 최기문을 속이는 것에 부채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더더욱 완전히 홀가분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주 그냥 뼛속까지 야비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이러려고 미리 강영호 매니저에게 술을 사주며 밑밥을 깐 모양이다.
[형, 녹음했어요?]
[강영호 형 : 했죠]
[그럼 그냥 저한테 술 주세요 원하는 게 그거면 빨리 마셔주고 사인하죠, 뭐]
그래, 수작이 부리고 싶으면 그냥 넘어가자. 그래서 사인이 빨라지면 나야 좋지.
1월 1일에 민지호랑 한효석 성인 된 기념으로 마셔줄 때까지 금주하려 했는데, 그 부분만 좀 아쉽게 됐다.
그렇게 보내고 나서, 잠시 후에 강영호 매니저가 잠깐 바에 들러 뭔가를 주문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후 도착한 내 무알코올 칵테일을 마셔보니 약간 술 냄새는 나는데, 아까랑 맛이 비슷했다. 무알코올 칵테일이라 맛이 없는 줄 알았더니 그냥 내가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가 ‘무알코올인 줄 알고 알코올이 든 칵테일을 마신’ 후에야 최기문은 계약을 마무리하자며 회사로 돌아왔다.
계속 시간이 늦어지자 멤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지운 : 왜 답이 없어? 어떻게 됐는데?]
[안쭈 : 잘 안 됐어도 괜찮아 진짜로 괜찮아]
[민조♥ : 형아!!!!!!!!!! 맛있는 거 먹자!!!!!!!!!!!!!]
나는 그걸 잠시 보다가 답을 적었다.
[나 데리러 와]
[새부기야 운전 좀]
[너의 봉인된 면허를 꺼낼 때가 왔다]
[새부기 : 나? 내가? 운전을?]
* * *
오후 두 시에 시작한 협상이 밤늦게서야 끝났다.
강영호 매니저는 멤버들이 온다는 소식에 맘 놓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304호실에서 잠깐 기다리다 보니 멤버들이 도착했다. 나는 황새벽이 304호실에 들어오자마자 내 코트를 벗고, 황새벽이 입고 온 점퍼를 뺏어 입었다. 황새벽이 물었다.
“이 새끼 왜 이래?”
“어, 그냥. 최기문 엿 먹이려고.”
내가 말하자 얼떨결에 코트를 입은 황새벽이 술 냄새가 났는지 표정을 구기며 물었다.
“너 술 먹었냐?”
“어, 약간. 진짜 약간.”
“왜 하필 나한테 운전을 하래.”
“면허 있는 사람 중에 네가 나랑 제일 체격 비슷하잖아.”
나는 말하며 빠르게 황새벽의 모자도 뺏어 쓰고, 들고 다니는 왁스로 황새벽의 머리를 내 지금 머리처럼 손봤다. 황새벽이 중얼거렸다.
“……이거 살짝 맛탱이 간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황새벽에게 차키를 건네주고 신이 나서 TRV를 나왔다. 최기문이 주차장 CCTV 꼭 찾아보고 음주운전이라고 떠들어줬으면 좋겠다. 신날 것 같다.
차에 가보니 멤버들이 전부 끼어 타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으면서부터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고, 민지호는 운전석에 앉은 황새벽에게 소리쳤다.
“스피드를 즐기는 거북이가 나타났다!”
그러자 황새벽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하, 내가 혼자 힘으로 주차장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거지, 지금…….”
“새벽아, 너무 긴장하지 마.”
“형, 딱 주차장만 나가면 바로 내가 운전할게.”
05즈가 한마디씩 하고, 황새벽은 심호흡으로 기를 모은 후 천천히 후진했다. 박선재가 양옆에 민지호와 한효석의 손을 잡고 말했다.
“무섭다…….”
나도 좀 쫄리긴 했지만, 황새벽이 워낙 느리고 조심스러워 사고를 쳐도 자그마하게 낼 것 같은 부분은 안심이 됐다.
다행히 입구가 널찍한 주차장이라 황새벽이 아무것도 안 들이박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도로에 차가 나오자마자 멤버들이 크게 안도하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줬다.
도로에서도 이렇게 거북이 운전을 하면 오히려 사고가 날 것 같아서 바로 신지운이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바뀐 운전자가 출발해 광화문을 등지고 세종대로를 달리는 장면까지 촬영하고 동영상을 저장해 뒀다.
내가 한동안 말이 없으니 멤버들도 잠시 조용해졌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너무 긴장 상태로 있었던 데다가, 모처럼 술까지 한잔하니 온몸의 근육이 다 숨을 토해내는 기분이다.
좀 짜릿하게 이 말을 전하고 싶은데. 체력이 될까. 애들이 리액션 잘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한 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그리고 뜸 들이자 박선재가 나에게 말했다.
“형, 피곤하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좀 자.”
나는 표정을 계속해서 관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원아, 괜찮아. 너 진짜 애썼어. 고맙다.”
이게 결렬되면 제일 불안할 안주원은 그렇게 말하는데 똑같은 05인 신지운이 시비를 걸었다.
“반년 진짜 짧다. 형 눈 떠보면 서른일걸.”
“야이씨. 몇 개월 차이 난다고.”
“왜 이러시지, 하늘 같은 형님이.”
이게 연말 가까워지니까 슬슬 나이로 놀리기 시작한다. 남들이 보면 참 나이 많이 드셨다고 비웃겠다.
나는 다시 창밖을 보았고, 멤버들은 일이 잘 안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무지하게 신경 써줬다.
“형 생일도 앞뒤로 시상식하고 이거 준비하느라 못 챙겼잖아. 오늘 맛있는 거 먹을까?”
“에이, 미역국 끓여줬잖아.”
박선재의 말에 내가 대답하자 신지운이 말했다.
“끓여준 게 아니라 데워줬지. 부모님이 해주신 거.”
“야, 피곤한데 그 성의가 어디야.”
그렇게 말하며 내가 내비를 찍으니까 신지운이 물었다.
“주소 뭐야?”
“어, 우리가 1월 1일부터 출근해야 되는 소속사 건물.”
“아, 그치? 그럴 줄 알았다, 아오씨.”
눈치 빠른 신지운이 어이없어서 흐흐 웃고 반 박자 늦게 한효석이 물었다.
“형, 됐어요?”
그 말에 내가 뒷좌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12월 31일부로 안주원 개인 계약, 퍼스트라이트 라이선스 포함, 전원 탈TRV.”
내 말에 멤버들이 잠깐 조용하더니, 동시에 환호했다.
“우와아아아아!”
어휴, 고막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마 밖에서 봤으면 차체가 흔들렸을 거다.
가장 불안했을 안주원은 고개를 떨구고 아예 들지 못했다. ‘다행이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우리는 바로 새 소속사 건물로 향했고, 내가 계약을 끝내고 나온 후 간발의 차이로 안주원의 조작을 의심하는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기다리던 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