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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80화 (18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0화

우리는 잠시 후 새 소속사 건물에 도착했다.

보이드 엔터테인먼트.

물질이 거의 없는 우주의 빈공간을 뜻하는 보이드는 우리 노래 ‘별빛’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었다.

[소리도 끝도 없던 void에서 별빛을 만났을 때]

‘별빛’은 팬들에게 보내는 노래였고, 이 가사 속에서 보이드는 별빛, 그러니까 햇살이들이 있는 곳을 발견한 장소가 된다.

그렇게 내가 말했더니 강효준이 오피셜 웹사이트에 그럴싸하게 써놨다.

[별빛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보이드를 벗어나지요. 보이드 엔터테인먼트에게 별빛은 팬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팬들을 최우선으로 두는 곳. 보이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저거 쓰고 있을 때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강효준이 좀 사업가 같아 보였다.

그렇게 선유도역 인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5층 건물에 들어선 멤버들이 두리번거렸다. 오래 걸린다, 싶더니 인테리어하는 데 돈을 들이부어서 그랬던 것 같다.

1층에는 소속사가 운영하는 카페가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 앨범도 팔 예정이라고 했다.

TRV는 연차가 오래된 만큼, 소속사 건물도 같이 나이를 먹었다. 그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여긴 새삥도 이런 새삥이 없다. 어디서 사진 찍어도 인스타 감성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히히, 사진 많이 찍어서 햇살이들 보여줘야지.

민지호가 안으로 제일 먼저 달려 들어갔다.

“민조, 아무거나 만지지 마라.”

황새벽이 말하자 벽에 신기한 장식을 만져보려던 민지호가 슬쩍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해원이 형, 나 연습실 갈래.”

민지호가 지하 1층 연습실을 가려고 들어서 내가 말했다.

“계약서 사인하고 가자.”

“히잉…….”

“딱 요것만 하면 연습실에서 살아도 돼. 효준이 형 돈 많으니까 필요한 거 다 사달라고 하고.”

“알아쩌.”

민지호가 순순히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내가 잘했다고 민지호의 등을 두들기고 신지운에게 말했다.

“봐라, 이게 강아지지.”

“저건 진상이지. 내가 강아지야.”

“형이 진상이야!”

“네가 진상이야.”

어휴, 하여튼 이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좀 크면 덜 싸우려나. 이 육아의 끝은 어디…… 어휴, 나 뭐래.

그사이 엘리베이터가 서고 우리는 대표실로 향했다. 나는 문을 열며 말했다.

“어이, 강 대표.”

“어.”

내 장난을 웃어넘긴 강효준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일곱 명이 다, 같은 계약서를 받았다. 시작과 끝이 모두 같은 날짜에 조건도 다 똑같이 맞춰달라는 우리의 조건을 강효준이 수용했다.

사인을 하자 마자 민지호가 날 봐서 내가 강효준에게 물었다.

“형, 연습실 열려 있어요?”

“거기 비밀번호 0000이야. 바꾸려면 바꿔.”

“내가 제일 많이 쓰니까 내 생일로 바꿀래요! 근데 대표님 저 연습실에서 살아도 돼요? 침낭 사주면 안 돼요? 그리고 무선 청소기도 사주면 안 돼요? 근데 거기…….”

‘마음에 드는 연습실을 만들어 줬다’라는 신뢰가 생겨서인지, 민지호는 강효준에게 질문을 쏟아부었고 강효준은 약간 어지러워하며 말했다.

“지호야, 미안한데 적어서 주라.”

“넵!”

민지호가 대답하더니 지하 1층으로 달려갔다. 민지호를 돌봐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박선재와 한효석도 지하 1층으로 내려가고, 황새벽이 강효준에게 물었다.

“대표님, 우리 이제 아무 때나 X이앱 켜도 돼요?”

“원래 아무 때나 켜는 거잖아?”

“저희 모니터할 직원 부족해서 못 켤 때 종종 있었거든요.”

그 말에 내가 황새벽의 운동화를 툭 차며 말했다.

“야, 대표님 충격받았잖아.”

내 말대로 강효준은 내가 본 이래 최고로 충격받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X이앱을, 너희가 켜려는데 못 켰다고?”

“저희 스태프들이 다 신인개발팀에 붙었거든요.”

내 말에도 강효준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계약서 끝내고, 다 함께 내 작업실 구경을 하고 있는데 홍보팀 직원이 나타나서 말했다.

“주원 씨 기사 올라왔어요. 하나.”

그 말에 멤버들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이 끝난 후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VMC에서는 최대한 안주원의 순위를 떨어뜨린 것을 숨기려 할 거라고 확신했다. 당연했다. 조작은 이미 터질 만큼 터졌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안주원의 순위를 높여준 거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에서 끝나겠지만, 순위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실력 논란에 휩싸이게 한 것은 또 다른 사건사고가 발생한 셈이 된다.

VMC가 느낄 당혹감과 상관없이, 다행히 보이드 엔터에서는 이미 대응 준비를 끝낸 후였다.

* * *

최기문은 친한 기자에게 전화해 말했다.

“브엠에서 뭐래? 조작 맞다고 하지?”

-대응하지 않겠다는데요. 조작은 확실한가 본데 정확하게 알려주질 않네. 지금 국선아 때 박경석 PD한테 연락 중인데, 이 새끼도 잠적해서 전화를 안 받아요.

아니었다면 억울해 미치겠다는 듯이 해명을 했을 텐데, 대응하지 않겠다는 걸 보니 긍정과 다름없었다.

최기문은 그 얘기를 듣고 난 후에 정해원에게 완전히 지분을 넘겼다.

정해원은 계속해서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모든 계약서에 서명했다.

정해원은 이게 사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 나는 금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확신이 보이니 최기문은 더욱 날아갈 듯이 상쾌해졌다.

그동안 정해원이 TRV 매각을 훼방 놓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일이 꼬였었나. 독립해서 화려한 홀로서기를 해보려던 최기문의 계획들이 전부 틀어졌다.

하지만 이제 그 대가를 받아냈다고 생각했다. 정해원에게 얻어낸 이 돈이면 걸그룹 하나를 키워내기에 충분했다. 이제 진짜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김에 한 잔 더 마시고 일어났을 때쯤, 안주원 조작설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하나가 올라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쓴 기사들이 연예란을 뒤덮었다.

[전 소년들, 안주원 ‘3차 순위 발표 조작’]

[VMC, 사실상 긍정…….]

[3차 순위 발표, 대응하지 않겠다는 VMC…….]

기사들이 쏟아지는 걸 보니 가슴이 따듯해졌다. 퍼스트라이트의 화제성이 좋긴 한 모양이지만, 그것도 오늘로 한풀 꺾일 것이다.

계약하자마자 터져 나오는 이 기사들 정도면 적어도 반년 정도는 TV에서 퍼스트라이트를 볼 일이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장, 올해 마지막 날 있을 시상식의 퍼스트라이트 무대부터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오늘까지는 퍼스트라이트가 TRV 소속이었기 때문에, 당장 안주원을 무대에서 빼라는 연락이 오면 그대로 빼버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짜릿해졌다.

그렇게 따듯한 기분으로 자고 일어났을 때.

지나치게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핸드폰을 확인한 최기문의 눈이 뒤집혔다.

“이, 이…… 이이!”

최기문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뒷목을 잡았다.

안주원의 조작설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고 2시간 뒤, 다시 해가 뜨고 출근 시간이 시작되며 전체적인 인터넷 트래픽이 늘어나기 직전.

새로운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퍼스트라이트, 보이드 엔터테인먼트 이적]

[보이드 엔터 첫 임무는 안주원의 조작 해명]

[보이드 엔터, 3차 순위발표식 안주원 조작 맞다. 오히려 순위 낮춰]

[10위→18위로…… 국선아 제작진이 바꿔치기했다]

[국선아의 또 다른 피해자는 퍼스트라이트 안주원]

[‘18위→10위’는 퍼펙트 엔터, MII 우하정]

[퍼펙트 엔터, 대응하지 않겠지만 억측은 고소 예정]

최기문이 얼빠져서 기사를 보다가 급하게 기자에게 전화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제가 할 말이죠! X발 우리도 지금 욕 처먹고 난리 났어요!

머리가 핑핑 돌았다. 식은땀이 나서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최기문은 전화를 끊고 다급하게 박중운 매니저에게 전화했다. 박중운 매니저가 전화를 받자마자 최기문이 버럭 소리쳤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못 지죠.

말문이 막혀 입을 뻐끔거리던 최기문이 가까스로 말했다.

“이, 이 새끼 순 사기꾼 아냐!”

-전 사실만 말했잖아요. 조작이 있었다고. 순위가 뭐가 어떻게 됐는지는 말 안 했는데……. 게다가 꼭 편을 나누자면 저는 정해원 편입니다. 언제 봤다고 부대표님 편을 들겠습니까, 제가? 끊습니다.

박중운 매니저가 말하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최기문이 술도 덜 깨고 상황도 파악이 되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데 밖에서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질끈 감고 밖으로 나가보니, 예상대로 TRV 대표 최동국이 의자를 집어 던져 TV를 박살 내고 있었다.

“아부지, 제가 속았어요. 진짜로요!”

“내가 잘못 키웠으니까 오늘 같이 죽자, 이 개X같은 새끼야.”

“진짜로 속았…….”

말하는 중에 얼굴로 지팡이가 날아왔다. TRV 소속 1, 2세대 아이돌들이 계약이 끝나고 도망쳐도, 결국 연예계를 은퇴하게 만들던 것이 최동국이었다.

그동안 아들이라고 참고 누르던 성질이 터져 나왔다.

* * *

[X발????????????]

[국선아 X나 파파괴…….]

[와 주원이 어떡해ㅠㅠㅠㅠㅠ지금까지 자기가 3차 때 실력이 너무 없어서 순위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앤데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우리 애가 왜 자존감이 낮은데……? 그게 조작이요……?]

[다 죽이고 싶다 X발]

[VMC가 쓰레기인 건 원래도 알았는데, 퍼펙트 엔터야말로 X나 까야 되는 거 아니냐? 지금 해원이는 물어뜯으라고 먹이로 주고 다른 멤버 올리려고 온갖 수를 다 쓴 건데?]

[↳해원이 소속사 복 뭔데ㅠㅠㅠㅠㅠ]

[↳TRV도 꽤 큰 소속사 아니냐 호구 잡혔네ㄷㄷㄷ]

[↳애초에 그래서 인수건도 나왔던 거 아니냐 퍼펙트 엔터 인수했던 것처럼…….]

[↳퍼펙트 엔터 X망해야되는데]

[퍼라 입장에서는 퍼펙트 엔터 진짜ㅋㅋㅋㅋㅋㅋㅋ절대 용서 못 하는 원수 아님? 우리 애 둘 자존감 기생충처럼 빨아갔는데]

[↳VMC에도 화나긴 하는데 퍼펙트 엔터에 더 화나…… 진짜 다 죽이고 싶어ㅠㅠㅠ]

[주원이한테 맨날 조작으로 데뷔했다던 새끼들 어디 감^^?]

[근데 이 상황에서 눈치 없는 소리긴 한데 안주원 실력 타멤보다 좀 떨어지는 건 팩트 아님? 걔 얼굴이 그 정도야?]

[↳응 그 정도야^^]

[우리 쭈어니 다정다감한 애라구요ㅠㅠㅠ 얘 성격만으로도 국선아에서 확 눈에 띄던 앤데ㅠㅠㅠ]

[햇살이들! 나 타팬인데 궁금한 거 있어 주원이 실물이랑 화면 그렇게 차이 난다는데 진짜야?]

[↳주원이는 진짜 폰카임]

[↳햇살이들 염불하는 거 안주원은 폰카ㅋㅋㅋㅋㅋ퍼라멤(특히 해원이ㅋㅋㅋ)들이 주원이 얼굴 찬양하는 거 실물 보고 나야 완벽히 이해돼]

[↳그냥 진짜 개존잘임 이목구비 오목조목하고 미남이란 말이 얘 때문에 생겼나 싶음 나 미팬에서 바로 앞에 주원이 있었는데 내 최애 봐야 되는데 얘한테 눈이 안 떼지더라ㅋㅋㅋㅋㅋㅋㅋ]

[와 X발 근데 지금 생각하니까 개어이없네 안주원이 그 얼굴로 데뷔하는 거 X나 당연한데 18위라니까 그치, 아무래도 실력 없으면 데뷔 힘들지…… 이러고 있었어ㅋㅋㅋㅋㅋ]

[↳내 얘긴줄ㅋㅋㅋㅋㅋㅋ나도 한 글자도 안 빼고 똑같이 생각함ㅋㅋㅋㅋ안주원처럼 생긴 남고딩이 다정다감한테 데뷔 못하면 그게 조작이지ㅋㅋㅋㅋㅋ]

[↳나도……. 인간이 이렇게 쉽게 휩쓸린다는 거 이제 알았다…….]

[↳이제 이성이 돌아오네ㅎㅎ]

그렇게 여론이 들끓고 있을 때,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케이팝 팬뿐만 아니라, 평소 음악을 잘 듣지 않던 대중들의 이목까지도 집중된 상태에서 퍼스트라이트의 무대.

첫 번째 무대에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안주원이 올라왔고, 이제는 보이드 엔터가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안주원의 솔로곡, ‘첫눈을 줄게’가 시작되었다.

[얘들아 저게 카메라빨이 안 받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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