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1화
[안주원 노래 잘하네?]
[ㅇㅇ사실 퍼라 개인 능력치가 워낙 좋아서 그렇지 안주원도 보컬 괜찮아]
[퍼라 시상식 다른 것도 다 레전든데 오늘이 X나 미쳤다]
[퍼라 연말 편곡 다 양이형이 하는 거야? 편곡 버전도 음원 내주면 안 되냐 개좋은데ㅠㅠㅠ]
[↳↳거의 다 해원이랑 이형이 형이 같이해!]
[↳↳↳??? 해원이 바쁘지 않아? 그럴 시간이 있어……?]
[↳↳↳↳몰러…….]
[↳↳↳↳없을걸…….]
[↳↳↳↳그냥 지 몸 갈아서 했겠지…….]
[↳↳↳↳↳햇살이들 해원이 과로 얘기하면 말줄임표 쓰는 겈ㅋㅋㅋㅋ 웃긴데 안 웃겨…….]
* * *
시상식 무대는 마음이 가벼워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신이 났다.
퍼스트라이트의 무대가 끝나고, 우리는 이어질 특별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대에 올라갈 신지운이 쫄려서 계속해서 톡을 보냈다.
[신지운 : 나 이거 어떻게 해ㅜㅜㅜㅜ]
[신지운 : 지우니 무서워여ㅜㅜㅜ]
[신지운 : 하 심장 토할 것 같다]
[신지운 : 살…… 려…… 줘…….]
“차단할까.”
내가 중얼거리는데 황새벽이 정색하며 말했다.
“좀 받아줘. 당연히 무섭지.”
멤버들은 이미 자기 일처럼 같이 떨고 있었다.
[민조♥ : 형아 힘내ㅠㅠㅠ 무쩌워어ㅠㅠㅠㅠㅠ]
[새부기 : 야 고생해라]
[막내♥ : 형은 멋있어! 할 수 있어!]
“아, 이것들아. 너무 받아주지 말라고.”
내가 몸을 숙여서 쭈르륵 앉은 옆자리 멤버들에게 말하니까 안주원이 말했다.
“저게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
“형, 전 심지어 보고만 있어도 심장 토할 것 같아요.”
한효석까지 동조하고 있었다. 쟤는 도대체 발레를 어떻게 했지…….
가끔 이것들이 어떻게 아이돌이 됐나 궁금할 때가 있다. 아, 대부분 얼굴 때문에 끌려온 놈들이었지. 하, 빡쳐.
그러고 있는 사이에 무대에 신지운이 올라왔다.
올해 드라마가 워낙 잘된 데다가, 서브 남주중 하나였던 이선겸 캐릭터가 큰 인기를 끌었던지라 연말에 대선배와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신지운이 소속된 티케 엔터, 루나리스에서 솔로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현도연과의 무대였다.
같은 소속사다 보니 둘이 촬영을 같이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무대 위에서, 그것도 연말 시상식에서 무대를 한 건 처음이었다.
뭐, 어차피 떨린다고 말하는 것도 무대 아래일 때뿐.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멤버들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시간이 너무 짧아요]
[불안함이 우리의 순간을 빼앗아요]
[눈을 마주치면 다행히]
[나는 마음이 놓여요]
뮤지컬 형식의 무대였다. 현도연은 역시 대스타였는데, 그 상대역으로 춤을 소화하는 신지운도 기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 있어 보였다.
“와, 지운이 형 진짜 멋있다.”
박선재가 자기도 모르게 말하는 게 들렸다. 솔직히 오늘은 인정해야겠다. 멋있긴 했다. 사실, 말은 안 해도 난 우리 멤버들이 진짜 멋있다.
* * *
12월 31일에 출근해, 우리는 1월 1일에 퇴근했다.
멤버들은 안주원이 신경 쓰여 계속해서 인터넷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다들 표정이 좋았다.
나는 집에 가면서 X버스에 연말 인사를 쓰고, 팬들 반응을 살폈다.
[해원아 네가 이겼다 주원이의 잘생김이 증명 됐어]
하, 당연하지. 쟤가 어디 묻혀 있을 얼굴인가.
그나저나 내가 평소에 너무 안주원 얼굴 자랑을 했나 보다. 햇살이들이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때 다른 차에 타고 있던 신지운이 댓글을 달았다.
[↳지우니 : 내가 더 잘생김]
……미쳤나?
나는 바로 댓글을 달았다.
[↳↳해원 : 아니야]
[↳↳↳지우니 : 맞는데]
[↳↳↳↳효석 : 취향 차이니까 햇살이들 있는 데서 싸우지 마세요]
그러다가 편의점에서 내리니까 신지운이 툴툴거렸다.
“아, 나 잘생겼다고! 형이 국선아 때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다며!”
“국선아 땐 그랬지. 잘못 컸어.”
“나 진짜 지금이 더 잘생겼는데.”
그러자 박선재가 옆에서 핀잔했다.
“지운이 형은 가끔 보면 멋있는데, 저걸 지 입으로 말한다는 면에서 틀렸어.”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한효석과 민지호가 스무 살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두 손 무겁게 술을 사서 새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걱정하는 햇살이들을 위해서 2025년, 새해 첫 X이앱을 켰다.
우리는 소속사가 바뀐 부분에 대해서 햇살이들에게 전달했다.
“저희 오늘부터 소속사 바뀌거든요. 숙소도 옮겼어요!”
“이제 저희 숙소 두 개인데, 아직 저쪽 숙소에 짐 안 풀어서 그대로 있거든요? 숙소부터 나눌 거예요. 사다리 타기로.”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사다리 타기를 시작했다.
방이 4개 있는 숙소 두 개인데, 한쪽에 세 명, 다른 쪽에 네 명이 들어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세 명인 방에 매니저 형들이 자주 와서 자게 될 거라 그런지 다들 네 명 있는 방을 선호했다. 정말 지독하게 폐쇄적인 놈들이다.
방은 일단 멤버 관리를 위해 나와 황새벽이 따로 쓰기로 하고, 우리를 중심으로 방을 나눴다.
빌런즈와 안주원이 황새벽의 방, 나와 신지운, 박선재가 한 방이었다.
내가 햇살이들의 채팅을 읽으며 말했다.
“아, 놀 때 어떡하냐구? 방 이렇게 나눠놔도 놀 땐 분명히 한쪽 거실에 모여서 놀 거예요.”
“무조건이지.”
신지운이 맞장구쳐줬다. 그렇게 방을 정하고 나서, 안주원이 말했다.
“햇살이들 제 걱정 많이 하던데, 미안해요. 근데 진짜로 저 지금 마냥 좋아요. 보이드 엔터에서, 햇살이들이랑, 멤버들이랑.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고 싶어요.”
평소 자신감이 크지 않던 안주원의 그 말에 햇살이들의 눈물로 채팅창이 뒤덮였다. 나도 기특했다.
멤버들이 햇살이들을 안심시키려고 회사 자랑을 했는데, 특히 민지호가 많이 했다.
“햇살이들, 새 소속사 연습실 엄청 크다? 그리고 대표님한테 침낭 사달라고 해서, 침낭이랑 어, 또 무선청소기 주문했고, 그리고 나 그것도 사달라고 하려고! 노래방 기계랑 미러볼이랑…….”
“괜찮아요, 햇살이들. 저랑 효식이가 잘 말릴게요.”
박선재가 흥분해서 점점 카메라에 가까워지는 민지호의 입을 틀어막고 바로 앉혔다.
막내즈는 한 명이 부끄러운 짓을 하면 나머지도 같이 부끄러워하는 공동책임제였기 때문에 한효석이 옆에서 고개를 못 들고 한숨 쉬고 있었다.
그때 황새벽이 옆에서 뒤로 넘어가게 웃고 있던 나에게 말했다.
“야, 햇살이들이 너도 많이 걱정하네.”
“나?”
안 그래도 내 첫 소속사, 퍼펙트 엔터의 사장과 MII 우하정이 번갈아 전화를 하긴 했었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전화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사람들이 귀찮게 구는 것 빼고는 뭐. 탈 TRV한 것이 마냥 행복했다.
“에이, 나야 뭐…… 아, 제 새 작업실도 엄청 좋아요. 최대한 빨리 작업실 보여줄게요.”
그렇게 넘어가려 하니, 황새벽도 그냥 넘어가 줬다.
우리는 그렇게 햇살이들을 충분히 안심시켜 준 후에 X이앱을 끄고 올해 성인이 된 한효석과 민지호 앞에 맥주를 한 캔씩 놔줬다.
박선재가 억울해하며 말했다.
“아, 나 또 일 년 기다려야 해.”
그래서 내가 등을 쓱쓱 문질러서 달래고 말했다.
“내년 되자마자 우리 술 마시러 가자. 다 같이.”
“알겠어…….”
박선재가 울적하게 주스를 들고 멤버들과 함께 건배를 했다. 생각보다 빌런즈가 맥주를 맛있어해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어느 순간에 둘 다 픽 쓰러져 잠들었다.
술이 많이 들어가긴 했는지 황새벽도 비장하게 우리에게 물었다.
“얘들아. 내가 사랑한다고 했냐?”
“어, 많이 했어.”
내가 차단하려 했지만 황새벽이 촉촉한 눈으로 말했다.
“근데 너넨 왜 나 사랑한다고 안 해주냐?”
“아, 겨우 적응했는데 패턴 바꾸지 마.”
내가 괴로워하거나 말거나 황새벽이 중얼거렸다.
“하, 삭막해……. 외로워……. 사랑한다고 말도 안 해주고…….”
박선재도 목 관리 한다고 잠들어서,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는 멤버들만 남아 있었다. 황새벽이 하도 징징거려서 우리는 사랑한다고 해주기 위해 좀 더 취할 수밖에 없었다.
* * *
최기문은 숨을 헉헉거리며 TRV 시설팀으로 달려들어 갔다.
얻어맞은 곳이 아직도 얼얼했다. 아들이고 뭐고, 고소하겠다고 소리치는 아버지를 피해 겨우 이곳으로 달려온 상태였다.
“X발, X발, X발!”
살면서 이렇게 분한 건 처음이었다. TRV 인수가 무산되었을 때보다 더 큰 분노였다. 가능하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정해원을 패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회사를 판 돈은 남았으니 아버지만 잘 피해 다니면 회생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정해원도 연예계에서 퇴출시켜야만 하겠지만.
최기문은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정해원에게 지분을 매각하던 날 TRV 주차장 CCTV를 확인하고 있었다.
영상을 확인해 보니 황새벽이 데리러 들어왔다가, 정해원과 함께 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정해원이 운전석에 앉는 모습에 최기문이 손으로 퍽 자기 허벅지를 쳤다.
“이거지, 이거.”
매니저씩이나 했던 놈이 불안하게 운전하는 꼴을 보니, 생각보다도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알코올 측정을 하진 않았지만, 정해원이 알코올이 든 메뉴를 마셨다는 가게 주인과 강영호 매니저의 증언이 있을 테니 충분히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게 만족하고 영상을 받아 기자들에게 제보했는데, 기자들이 영 미지근했다.
-지난번에도 순위 조작 대충 알려줘서 저만 졸라게 까였잖아요.
“내가 음주운전 증언 다 받아오면 되잖아!”
-잠시만요, 확인하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뭐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정해원이 음주운전을 했다’라는 것처럼 맛있는 기삿거리도 없으니 바로 가서 영상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영상을 보내놓고 나니 그래도 속이 좀 후련했다.
“이 X발, X 같은 새끼. 내가 어디 혼자 죽나 보자.”
그렇게 씩씩거리고 있을 때, 기자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에이씨……. 이것도 아니잖아요. 이럴 줄 알았네, 내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방금 퍼스트라이트가 영상 올린 거 봐보세요.
그러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최기문이 떨리는 손으로 퍼스트라이트를 검색하니, 보이드 엔터테인먼트에서 막 올린 영상이 떴다. 정해원이 말했다.
-햇살이들! 새벽이가 운전해요. 아, 긴장된다.
-너무 무서운데 어떡하지. 아, 넌 왜 술을 마셨어.
-내가 마시려고 마신 게 아니구, 무알코올인 줄 알았단 말이야.
황새벽이 한숨을 푹푹 쉬며 운전대를 잡자 민지호가 말했다.
-스피드를 즐기는 거북이가 나타났다!
그 말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운전석에 앉은 것이 정해원이 아니라, 황새벽이라는 것을 확인한 최기문이 얼떨떨해하다가 다시 시설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304호실에 설치된 그 날의 CCTV를 확인하니, 정해원이 황새벽과 겉옷을 바꿔 입는 것이 보였다.
황새벽의 머리칼을 왁스로 자신과 똑같이 정리한 정해원이 CCTV를 보더니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황새벽의 모자를 쓰고 누가 봐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304호실을 나갔다.
최기문은 그걸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뒷목이 빡 땡기는 느낌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놀아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올해 막 스물두 살이 된 애새끼에게.
이쯤 되어서야 슬슬, 인수 훼방 놓은 걸 잊어버리고 정해원과 잘 지내보라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 * *
갑작스러운 소속사 이적.
퍼스트라이트가 아무리 좋다고 말해도, 팬들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처음 듣는 신생 소속사로의 이적이었다.
팬들의 걱정과 그 밖의 사람들의 추측, 루머가 터져 나오고 있던 이적 이틀째 날.
이적 직후 개설된 보이드 엔터 공식 SNS에 전부 같은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에 가까운 아트워크에 딱 한 줄만이 쓰여 있었다.
‘극야(polar night)’
[이거 뭐야? 뭔데? 뭐야?]
[확대하니까 모서리에 핏자국 있어ㅠㅠㅠ 무서워ㅠㅠㅠ]
[극야가 백야 반대말이래]
[헐 우리 정규 1집 앨범이 백야잖아……?]
[↳어???????]
[↳와 소름ㄷㄷㄷ]
[미쳤다 새 엔터 이적해서 활동까지 시간 좀 걸릴 줄 알았는데……. 나 정규 기다려도 돼? 물 올려?]
[↳ㅇㅇ정규 백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