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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82화 (182/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2화

보이드 엔터에서는 일하는 게 너무 편했다.

A&R팀 팀장은 TRV 때랑 똑같이 박선혜 팀장인데, 그 팀이 퍼스트라이트의 음악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때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걸 알았다.

나와 함께 와준, 이제 보이드에서 비주얼 디렉터의 업무를 따로 맡은 TRV 앨범 제작팀 출신 정선미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단언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유기적인 진행이었다.

우리 팀만 맡는 것이 아닐 때는 어려웠지만, 이제 딱 우리 팀 결과물만 내기 위해 일하고 있으니, 다 함께 회의하고,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싸우다가, 어떻게든 조율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A&R팀은 주로 나와, 비주얼 디렉터는 퍼스트라이트의 비주얼적인 부분에 있어 멤버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안주원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일이 줄어든 건 아니지만, 맘껏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나는 내 작업실에 와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강효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 저 TRV에서 사람들 진짜 잘 데려왔죠?"

맨날 VVV엔터에서 A&R팀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혼자 대표실에 있는 게 외롭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저렇게 툭하면 식사 챙겨서 내 작업실에 와서 먹었다.

우리 멤버들도 곧잘 그랬기 때문에 딱히 신경 쓰이진 않았다.

강효준이 편의점 샌드위치를 거의 입에 쑤셔 넣고, 커피로 밀어 내린 후 대답했다.

"어. 내가 보기엔 네가 대표해야 돼."

그리고 샌드위치를 하나 더 뜯으며 나에게 물었다.

"근데 지호가."

"민조 왜요? 사고 쳤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하, 이름만 나와도 사고 쳤나 걱정되는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싶다.

아무튼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연습실에 무선청소기 사달라고 해서 사줬잖아. 너무 좋아하는 거야. 회사 비품을 왜 그렇게 좋아해? 장난치는 건가."

"아뇨, 원래 가지고 싶어 했어요. TRV 연습실 청소기가 진짜 오래되고, 줄이 짧아서 반대쪽 끝에 안 닿았거든요."

"……."

TRV가 또 강효준한테 문화충격을 줬나 보다.

그나저나 방금 샌드위치 다섯 개를 가지고 왔는데, 지금 보니까 한 개도 없다. 결국 내 입에서 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이 아저씨야, 좀 천천히 먹으라고."

"시간이 어디 있어. 카일룸 애들 컴백 준비해야 돼."

"아니, 샌드위치를 한 개만 먹으면 다섯 배의 시간 동안 먹을 수 있잖아요."

"다섯 개도 배가 안 차는데."

"그럼 컵라면 꺼내 먹어요. 저 한 젓가락 주고."

새 작업실은 창고가 따로 달려 있지는 않았지만, 수납공간이 엄청나게 많았다.

여기서 제일 밥을 많이 먹게 될 건 아마 연습실에서 사는 민지호, 그리고 양이형과 아마 강효준이었다.

어휴, 다들 최소 3인분은 먹는 사람들이네.

아무튼 내가 한 젓가락 뺏어 먹는 속도로 나머지를 때려먹은 강효준이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퍼펙트 엔터에서 연락 안 왔어?"

"왔죠, 드럽게 질척거려요. 오늘도 전화 오던데."

"차단해 그냥. 내가 오늘 브엠 가서 말할게."

"오, 형이 차단하라고 했다고 해야겠다."

"맘대로 팔아먹어라."

강효준이 말하고 슥슥 자리를 정리하고 떠났다.

나는 컵라면을 먹느라 환기하려고 열어놓은 창문 쪽으로 향했다. 내려다보이는 한강이 얼어 있었다.

밖을 구경하다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 쫄려."

정규 앨범 소식을 햇살이들에게 전하고 난 뒤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퍼스트라이트는 7개월 만에 컴백이었다. 간질간질하고 설레고 긴장된다.

아무래도 햇살이들이 신생 소속사로, 계약 기간도 남은 상태에서 갑자기 옮긴 것에 대해 걱정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멤버들과 직원들이 상의해, 시상식 다음 날 바로 정규 앨범이 나온다는 운을 띄우자는 결론이 나왔다.

예상대로 우리 햇살이들은 '극야'라는 단어만으로도 정규 앨범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아줬다. 문제는 뮤직비디오고 컨셉 포토고 아직 공개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약해서 햇살이들이 콕콕 찌르면 스포해 주기로 유명한 안주원이 어제 혼자 X이앱하면서 아무런 스포도 못했을 정도였다.

스포해 줄 것이라고는 음악밖에 없는데, 앨범 나오기 한 달도 더 전에 음악을 스포하면 멤버 모두에게 아주 크게 혼날 테니까.

아, 모르겠다.

회사가 알아서 해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불안하지 않다.

그저 햇살이들이 이번 앨범을, 이 음악을 좋아해 줄까, 그거 하나만이 걱정이었다.

* * *

같은 주 주말.

다짜고짜 앨범명만 던져놓고 아무런 소식도 없으니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은 슬슬 다시 걱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멤버들이 알아서 잘 찾아갔겠지만 괜히 걱정된다……. 보이드 엔터 찾아봐도 뭐가 아무것도 안 나와ㅠㅠㅠ]

[↳그렇긴 한데 나 진짜 이름이 '보이드'라는 거 하나로도 믿음 가 회사소개 보면 우리 곡에서 따온 거 맞더라]

[↳↳나도ㅋㅋㅋㅋㅋ우리팀 위해서 만든 회사란 느낌 빡 들어]

[↳↳여유 가지고 기다려보자 햇살이들!!]

그렇게 서로를 달래고 있을 때.

보이드 엔터테인먼트 공식 계정에 퍼스트라이트의 자체 컨텐츠 스트리밍이 예정되었다.

[박곰돌 관찰일기2 : 보이드 엔터편 20:00 업로드]

[왔다!!!!!!!]

[관찰일기 돌아왔어ㅋㅋㅋㅋㅋ]

[2라고 달린 거 보니까 자컨으로 계속 줄 것 같지?ㄹㅇ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

그리고 오후 8시. 스트리밍이 시작되었다.

박선재가 노란색 장난감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두구두구두구. 안녕하세요. 퍼스트라이트의 막냉이 박곰돌입니다. 오늘은 퍼스트라이트의 새 회사, 보이드 엔터를 관찰해 보겠습니다. 곰돌곰돌."

그리고 박선재가 카메라를 들고 복도를 달려갔다.

첫 번째 장소는 보이드 엔터의 연습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트레칭하던 민지호가 달려왔다.

"관찰일기야? 연습실 관찰할 거야?"

"응. 자, 민조 씨, 연습실 자랑을 해주세요."

"일단, 우리 연습실은 넓고요, 내가 실컷 뛰어다녀도 돼서 해원이 형이 좋아해요."

그러자 뒤에서 마저 반대쪽도 스트레칭한 후에 일어난 한효석이 말했다.

"당연하지, 네가 숙소 가자마자 지쳐서 자잖아. 말썽 안 부리고."

"너도 맨날 형들한테 운동하자고 귀찮게 굴잖아!"

"애정 표현이지."

"나도 애정 표현인데!"

그 말을 시작으로 투덕거리면서도 두 사람이 연습실 자랑에 열을 올렸다. 한효석이 말했다.

"청소기 자랑 안 해?"

"아, 해야지! 햇살이들, 대표 형아가 X이슨 사줬어요. 이거 이제 줄 없어서 끝까지 다 청소할 수 있고, X이앱 보고 미러볼도 달아주기로 했어!"

[연습실 진짜 크다 지호 너무 행복해 보여]

[효석이랑 선재도 키카에 애 맡긴 부모 표정인데ㅋㅋㅋㅋㅋㅋㅋ]

[X이슨 하나에 저렇게 좋아하는 애를ㅠㅠㅠㅠㅠ]

[막내즈 행복해 보이니까 나도 행복하다]

그렇게 연습실 구경을 끝내고, 박선재는 복도와 계단으로 이동하며 회사 여기저기를 찍었다. 그러다 녹음실 안에서 작업 중인 안주원과 신지운을 발견했다.

박선재가 밖에서 손을 열심히 흔들자, 안주원이 보고 문을 열었다.

"선재, 관찰일기 찍어?"

"웅. 연습실 찍고 왔어."

카메라를 발견한 신지운도 녹음실에서 나오더니, 새침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눈을 깜빡거리고 귀여운 짓을 했다. 그런 신지운에게 안주원이 정색하며 말했다.

"너 햇살이들한테 왜 그래."

"왜, 너무 귀여워서 햇살이들 심장 아플까 봐 걱정해 주는 거냐?"

"……."

거기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안주원이 말문이 막혀 하는 사이, 신지운은 카메라를 보며 연신 애교를 부렸다. 안주원이 말했다.

"저러고 다시 가사는 또……."

라고 말하자 신지운과 박선재가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박선재가 진행했다.

"주원이 형이 스포하기 전에 이동할게요."

그리고 카메라를 손으로 막았다가 다시 열자 대표실 소파에 누워 있는 황새벽이 보였다.

"형 왜 여기서 자?"

박선재가 묻자 황새벽이 말했다.

"어, 회의할 거 있는데 대표님이 외근 갔다가 아직 안 들어왔어."

"글쿠만, 잘 자아."

"어잉."

황새벽이 웅얼거리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아니, 새부기 낯가리지 않아……? 대표실에서 잔다고……?]

[우리 애들 진짜 새 소속사 좋은가 봐ㅠㅠㅠ]

[애초에 계약하자마자 바로 자컨 내주는 것만 봐도…….]

그리고 정해원의 작업실로 이동했다. 박선재가 말했다.

"여기가 뷰가 진짜 좋아요. 멤버들 맨날 커피 여기서 마셔요."

그러자 정해원이 대답했다.

"나 외로우니까 자주 오면 좋아."

"외로움을 엄청 타는 형이에요, 햇살이들. 아, 형, 다음 앨범 얘기해 줘, 햇살이들한테."

"그럴까?"

정해원이 카메라 쪽을 보더니 말했다.

"햇살이들, 이번 곡 진짜 괜찮아요."

"진짜로 좋아요. 지이이인짜로."

"준비 열심히 해서 만나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 햇살이들 일상생활 집중하면서, 새해에 목표한 거 다 이루시고……."

정해원의 덕담에 박선재가 웃음이 터지고, 정해원도 따라 웃더니 말을 이었다.

"보고 싶어요. 멤버들 맨날 햇살이들 얘기만 하잖아, 그치?"

"진짜로 우리 모이면 맨날 아, 햇살이들이 이거 좋아할까, 이 얘기만 해요."

"관찰일기 다음 편은 무슨 내용이야?"

"형한테만 스포해 줄게."

박선재가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제 해원이 형이랑 놀아야 되니까 갈게요. 박곰돌 관찰일기는 계속됩니다. 빠이!"

* * *

[진짜 계속된다는 게 너무 설렌다…….]

[해원이 막냉이랑 햇살이들한테 말할 때 다르게 다정한 거 발린다]

[↳아 이거 나만 느끼는 거 아니네ㅋㅋㅋ]

[↳막냉이한텐 형아같고 햇살이들한텐 남친같이 말해ㅠㅠㅠ]

[우리도 이제 주기적으로 나오는 자컨 생기는 거야ㅠㅠㅠ?]

[너무 좋아 한 달에 한 개라도 자컨 계속 줬으면 좋겠다ㅠㅠㅠ]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퍼라팬들 바라는게 너무 소소한 거 아냐ㅋㅋㅋㅋㅋ??]

[↳↳TRV가 그만큼 아무것도 안 해주더라ㅎㅎ]

[↳↳직원들 신인개발팀에 다 붙어서 별빛 앨범 때만 해도 거의 A&R팀 도움도 못 받고 해원이가 알아서 곡 작업 했어ㅠㅠㅠ]

[↳↳↳그래도 TRV A&R 팀장이랑 같이 옮긴 거 눈물 난다ㅠㅠㅠ 퍼라 믿고 신생으로 와준 거잖아ㅠㅠ]

[↳↳↳↳그만큼 TRV가 X같기도 했겠지ㅎㅎ]

[↳↳타팬이지만 탈TRV ㅊㅋㅊㅋ]

[↳↳ㅊㅋㅊㅋ]

[일단 멤버들 편해하는 것만 봐도……. 보이드 일 좀 못해도 봐줄 수 있어]

[↳ㅇㅇ너무 못하지만 않으면]

[극야 아트워크만 봐도 컨셉 쎄겠지?]

[↳역대급 쎌 듯ㅇㅇ]

[↳심장 터질 것 같다ㅠㅠㅠ]

관찰일기가 끝났을 때, 공식 SNS에 컨셉 포토 공개 일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일정 첫날.

'TARGET A'라는 제목과 함께 라이더재킷을 기본으로, 각자의 날티를 살려 스타일링한 멤버들의 증명사진 형식 컨셉포토가 올라왔다.

[와 존잘]

[숨 못 쉬겠다]

[퍼라멤들 날티 나는데 개까리해 몬줄알지?]

[X발 퍼라팬 아닌데도 헉함ㅋㅋㅋㅋㅋㅋㅋ퍼라 X나 잘생겼네]

[와 멤버들 성인 됐다고 이런 거……. 이런 거…….]

그렇게 술렁거리던 다음 날.

다시 'TARGET A'라는 문구와 함께 두 번째 컨셉포토가 올라왔다.

[야 잠깐만 어?]

[내가 본 게 진짜야?]

[돌았다 컨셉 쎌 건 알았는데 진짜 미쳤나봐ㅠㅠㅠㅠㅠㅠ]

[와 말 안 나와]

전날과 같은 증명사진 형식이지만, 완전히 다른, 우아함과 퇴폐한 컨셉의 사진이었다.

희고 창백한 메이크업에 렌즈, 포엣셔츠를 입은 컨셉포토가 올라오자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이 들썩거렸다.

[왜 둘 다 TARGET A야?]

[↳컨포1 퍼라랑 컨포2 퍼라가 서로가 서로한테 A급 사냥감이라서 그런 듯]

[↳↳헐]

[↳↳심장 떨린다]

[마태오-프루티 연결되는 것 같지?]

[↳뱀파이어 사냥꾼이랑 뱀파이어라고…….?]

[↳진짜 미쳤나]

[이거 우리가 봐도 돼?]

[너무 좋아서 토할 것 같다]

[어제 완깐이었는데 오늘 머리 다 내렸어ㅠㅠㅠ]

[와 반응 개좋아ㅋㅋㅋㅋㅋㅋ나 컨포로 이렇게 SNS마다 들썩거리는 거 처음 봐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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