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4화
뮤직비디오 촬영은 빡빡하게 이어졌다.
그사이, 안주원이 셀프캠을 받아 들었다. 보이드 엔터 컨텐츠제작팀 고석희 피디가 카메라 조작법을 알려주던 중에 한숨을 쉬었다.
"1월에 퍼라 일정 너무 빡셌는데 좀 쉬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저희야 뭐."
TRV에서 나온 퍼스트라이트 자컨이 워낙 적어서, 회사도 그렇지만 멤버들이 내성적이라 컨텐츠 촬영을 꺼려하는 건가 추측했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 촬영이 앞쪽으로 몰려 있어, 일찌감치 촬영을 끝낸 안주원이 셀프캠을 찍어도 되냐고 먼저 제안해 올 정도로 멤버들은 컨텐츠를 만드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아직 직원을 구하는 중이라, 컨텐츠제작팀에 직원이 둘뿐이었다. 다행히 멤버들이 적극적이라, 매번 직접 촬영하고 오겠다고 나서주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안주원은 셀프캠 조작을 간략하게 배웠고, 기본적으로 미적 감각이 있어서인지 안주원은 금방 괜찮은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어냈다.
안주원은 잠깐의 연습 후, 셀프캠을 들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멤버들을 촬영했다.
그러다 대기실에 들어가 보니 구석에서 정해원이 패딩을 덮고 자고 있었다. 안주원이 셀프캠을 보며 말했다.
"해원이 자면 멤버들이 맨날 확인해요, 살아 있나. 고생이 많아가지고……."
생존 확인 후 다시 패딩을 잘 덮어주고 지나가려 하자 옆에서 마찬가지로 자던 신지운이 웅얼거렸다.
"야, 나도 신경 써주고 가라고……."
"손 없냐, 네가 알아서 해."
"아, 쟨 나한테만 저래. 그래, 정해원은 고생을 하니까."
신지운이 투덜거리며 졸린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햇살이들 안녕. 사랑해."
그렇게 말하고 손키스를 마구 날렸다. 안주원이 카메라에 말했다.
"지운이가 저렇게 생겼어도 진짜 햇살이들 많이 생각하고, 팀 생각 많이 해요."
"저렇게 생긴 거 뭔데."
"이선겸같이 생겼지."
"아, 참나 또. 나 나온다고 열심히 보더라고, 멤버들이?"
신지운이 매우 만족해하는데 민지호가 달려오며 말했다.
"지운이 형, 커피차! 커피차 왔어!"
"오."
그 말에 신지운이 잠든 정해원의 팔을 끌어 일으켰다. 정해원이 잠이 덜 깬 얼굴로 멤버들 뒤를 따라가며 투덜거렸다.
"나 춥고 졸려어."
"그래도 내 커피차 보고 자."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니 신지운이 출연한 드라마, '첫 번째 남자친구가 마지막 남자친구'에서 친해진 배우들이 보낸 커피차가 있었다.
[선겸아 커피 왔다☆]
[오늘은 아이돌 신지운]
[첫남마남팀이 응원합니다^^]
커피차와 함께 르뱅쿠키와 과일이 있는 간식 테이블이 따로 왔다. 멤버들은 우선 신지운의 인증샷을 찍어주고, 커피와 간식을 받았다.
정해원이 하품을 하고 말했다.
"저는 따듯한 걸로 주세요."
그러자 민지호가 옆에서 말했다.
"어른이다. 따듯한 걸 마시다니."
"자다 깨서 추워."
정해원이 말하며 패딩을 여미고 따듯한 커피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안주원의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햇살이들 저는 요즘 잠이 많아져서 또 자러 갈 거예요. 안녀엉."
그렇게 인사하고 대기실로 떠났다. 정해원이 떠난 후에 박선재가 핀잔했다.
"햇살이들한테 거짓말하네. 하나도 안 자면서."
"아, 내 말이."
신지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이없어하면서 말을 이었다.
"뮤비 찍기 직전까지 일본 활동 준비……. 어, 이건 스포라서 나가면 안 되겠다."
"자르면 돼. 커피차까지 쭉."
안주원의 말에 신지운이 징징거렸다.
"아, 자르지 말라고. 내 인기 보여주라고. 너네만 구박하지, 드라마 촬영장에서 나 막내라고 얼마나 이쁨받았는데."
그렇게 시끌시끌하게, 멤버들 하나, 하나 나름 분량까지 맞춰가며 촬영을 하고, 안주원이 가져온 셀프캠을 확인한 고석희 피디가 허 웃었다.
안주원은 멤버들을 하나, 하나 화보 영상처럼 예쁘게 찍어 놓았다. 고석희 피디가 어이없어해서 안주원이 물었다.
"쓸 게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해. 뭘 이렇게 다 이쁘게 찍어줬어요?"
"찍으려고 보니까 애들이 너무 예쁘더라구요."
안주원이 애틋함을 못 숨기고 말을 이었다.
"전 진짜 우리 멤버들이 제일 멋있는 거 같아요."
그런 안주원의 말에 고석희 피디가 흐흐 웃었다.
"솔직히 퍼라가 좀 잘나긴 했지."
"그렇죠?"
조작에 대한 것이 터지고, TRV와의 계약도 만료된 이후. 안주원은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안주원이 다시 뮤직비디오 촬영에 들어가고 고석희 피디는 괜히 같이 애틋해져서 멤버들을 보았다.
안주원이 찍어온 것을 보고 난 후에야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서로의 외모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거듭, 고석희 피디는 있는 것들이 더 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보이드 엔터 직원 하나가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 멤버들이 다 있는 걸 확인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선주문량 나왔어요!"
그 말에 멤버들이 전부 직원 쪽을 봤다. 그리고 직원이 말을 이었다.
"68만 장입니다!"
"네?"
멤버들이 못 믿고 되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최근 앨범인 '별빛'의 선주문량이 27만 장이었던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물론 그사이에 솔로와 개인 활동을 무지하게 열심히 하긴 했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숫자가 나올 줄은 멤버들조차 상상도 못 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그 숫자를 듣자마자 하나같이 자리에 주저앉고, 다른 직원들은 환호했다.
그중에서도 정해원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못 들었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면서, 소속사 분리까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며, 멤버들을 믿고 자기 저작권을 전부 담보로 대출까지 어마어마하게 땡겼으니 그 압박감이 어마어마했으리란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 마음은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막내인 박선재가 정해원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했다.
"형도 애긴데. 그치? 사실 형도 애긴데."
그 말에 정해원이 웃겼는지 어깨가 들썩였다. 그게 괜히 눈물 나서 눈물을 찍어내던 고석희 피디가 촬영장에 들락거리며, 촬영에 관여하기보다는 주로 간식을 사다 나르는 일을 하던 강효준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보이드 엔터에서 라이선스 사고 그러면 좀 해원 씨 편하지 않겠어요?"
"내가요?"
"뭐, 스물두 살에 대출이 너무 많다니까……."
"살 수 있으면 어떻게든 샀죠."
고석희 피디가 너무 의아해하자 강효준 대표가 말을 이었다.
"스물두 살에 올인할 정도로 자기 팀 믿은 건데, 무조건 되는 투자라고 생각해서 한 거지. 그걸 나한테 팔겠어요?"
"아……."
"쟤는 빚 끌어안고 가라앉아 죽어도 절대 안 팔아요."
강효준이 말하더니 들고 온 짐을 들며 물었다.
"그보다 햄버거 사 왔는데."
"……대표님, 보이드 엔터 입사하고 저 좀 사육당하는 기분이에요."
"애들이 워낙 잘 먹을 나이잖아요."
강효준의 말대로 햄버거 냄새가 나자마자 민지호가 제일 먼저 달려오고, 나머지 멤버들도 도착했다.
민지호가 햄버거 뚜껑을 열어서 상추만 꺼내 내밀자 한효석이 햄버거 뚜껑을 열고 패티 위에 베이컨과 교환했다. 그러자 정해원이 잔소리했다.
"아, 이것들아. 넌 풀 좀 먹고, 넌 받아주지 말고."
"네……."
"히잉. 풀 시른데."
그리고 본인은 먹을 시간에 자는 게 좋은지, 멤버들 모인 틈에 껴서 졸기 시작했다. 그사이 꽤 많이 사 왔다고 생각한 햄버거가 뭉텅이로 사라졌다.
고석희 피디는 저 대식가 멤버들에게는 이렇게 끊임없이 먹이는 소속사가 잘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 *
VMC 대표의 아들이자, 차기 VMC 대표로 유력한 이춘형 이사는 퍼스트라이트의 초동 소식에 욕설을 퍼부었다.
뒤통수를 치고 나간 보이드 엔터 전체가 아주 망해도 폭삭 망했으면 했다.
그런데 TRV에서 라이선스를 싹 빼다가, 계약 기간보다도 일찍 보이드로 이동해 컴백 일정이 잡힌 데다 선주문량도 급격하게 뛰어올랐다.
거기다 마케팅팀에게 들어보니 팬들이 회사에 대해 꽤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문화, 예술계의 중심, VMC를 물려받고자 하는 이춘형에게 아주 돌아버릴 소식이었다.
사촌 동생인 강효준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지만 어릴 때부터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친손주들은 예민한데, 외손주는 무던해서 좋다고 할 때부터였다.
자신이 직접 인수한 퍼펙트 엔터는 지금, 안주원의 순위 조작에 관여한 문제로 난리였다.
그 와중에 새로 소속사를 만들어나간 보이드 엔터에서 종전 기록을 두 배 넘게 갈아치운 것이다.
아버지야 당연히 아들 편이지만, 결국 이 집안의 실권자는 언제나 친할아버지였다.
강효준이 아직 VVV엔터 4본부의 A&R팀 팀장직 역시 놓지 않고 있는 한, 친할아버지가 예뻐하는 외손주는 이춘형 이사에게 불길하게 자라는 싹일 수밖에 없었다.
이걸 바로 잡으려면 본인이 강력한 실적을 채우든지, 퍼스트라이트가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VMC는 언론 쪽을 꽉 잡고 있었다. 이춘형은 그것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은 멤버들의 학폭, 마약, 그 외 가족들까지 전부 털어볼 생각이었다.
* * *
보이드에 와서부터 보안이 엄청 좋아졌다. 일단 내 작업실만 해도 방음이 완벽하고, 시큐리티가 어딜 가든 함께 다녔다.
비공개 스케줄까지 사생들이 따라온 적이 있어서, 엄청 신경이 쓰였다. 언제 사생이 사진을 찍을지 모르는 상태가 되니 무지하게 긴장되는 것이다.
다행히 보이드 엔터로 온 이후에 항상 시큐리티가 경찰 신고도 불사할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 게,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도 더 마음이 놓였다.
그러다 선주문량 68만 장.
연습하다가 중간, 중간 68만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우리 팀에게 기대하는 마음만으로 주문한 것이 68만 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판매량이 멈추면? 음악을 못 만든 내 탓이다.
우리가 컴백하기 두 주 전에 민지호를 따돌렸던 그룹 멤버들이 있는 IMX가 컴백했다. 그리고 거기 타이틀을 최윤솔이 썼다는 모양이었다.
화를 잘 안 내는 안주원이 모처럼 화를 냈다.
"곡 두 개 쓰고 너랑 비교하는 게 말이 되냐?"
그러자 숙취 때문에 내 작업실 소파에 누워 골골거리던 양이형이 말했다.
"언플이지. VMC에서 요즘 최윤솔 무지하게 밀어주잖냐. 천재 아티스트라고 막. 야, 천재는 정해원이 천재…… 야, X발, 정해원 너 귀여운 척하지 마."
"형은 항상 내 생각이 나나 봐. 집착이야, 거의."
"주원아, 쟤 입 좀 막아주라. 형이 숙취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다."
"네."
안주원이 내 입을 막으려 해서 내가 말했다.
"야, 넌 내 편 들어야지, 우리 팀인데."
"건 바이 건이지. 이건 이형이 형 편이야."
그러더니 내 입을 막는 시늉을 하고 장난을 쳐서 한바탕 나와 힘겨루기를 했다. 아, 이 새끼. 팔 펌핑된 거 보니까…….
"너 내가 인수봉 가지 말랬지."
"안 갔어. 네가 위험하다고 하도 뭐라고 해서, 실내 암벽장 갔다 왔어."
"아, 진짜? 그럼 나도 데려가. 나도 해볼래."
"그래. 활동 끝나면 가자."
05 둘은 참 이래저래 잘 맞는다. 술, 산, 야구, 낚시까지 취미가 딱 겹쳤다.
내 동갑은…… 지금도 누워 있겠지…….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다……. 같이 활동해 주는 것만도 감사하지…….
나와 안주원은 곧, 양이형을 위해 작업실 불을 꺼주고 연습실로 향했다.
7개월 만의 컴백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