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6화
최근 정해원 관련 게시물마다 나타나 악의가 섞인 댓글을 달아대던 @d00m_fls는 쇼케이스 입장이 막히자, 욱해서 소리쳤다.
"아, 왜 안 되냐구요!"
"죄송하지만, 소속사에서 주신 리스트에, 입장 불가로 표시되어 있으세요."
"아니, 그니까…… 하, X발."
몇 번을 확인해 봐도 직원의 대응은 똑같았다.
안 그래도 컴백 직전, 보이드 엔터테인먼트에서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보이드 엔터테인먼트 사옥 및 연습실, 작업실, 숙소, 샵 등은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는 공간입니다. 소속 아티스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해당 공간의 방문 및 모든 촬영을 금지합니다.
또한 보이드 엔터에서는 지속적으로 스케줄을 공지하고 있으므로, 공지하지 않은 비공개 스케줄의 동행 역시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보이드 엔터는 아티스트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 혹은 안전에 위협이 되는 행동 적발 시 소속사 차원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추후 아티스트의 모든 활동 참여에 제명하겠습니다.]
TRV는 사생들을 길러내기 좋은 소속사였다. 기본적으로 시큐리티가 거의 없어, 퍼스트라이트와 팬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지 않더라도 막아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보이드 엔터로 가면서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그 소속사는 시큐리티들도 무지하게 뽑아대는 데다가, 소속사 대표도 무서웠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소속사들이 그렇듯, 실제로 사생들이 공개방송 등에 입장하는 걸 일일이 거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보이드 엔터는 했다. 정말로 쇼케이스 입장을 못 하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거기에 사인회도 마찬가지였다.
[참여할 수 없는 아이디입니다]
[참여할 수 없는 아이디입니다]
[참여할 수 없는 아이디입니다]
몇 번을 눌러도 똑같은 공지가 떴다.
"야, X발, 대표 새끼 미친 거 아니냐? 홈마를 못 들어가게 해? 엔터 회사 하겠다는 새끼가?"
@d00m_fls의 말에 같이 숙소나 사옥 앞에서 죽치고 있다가 만난 @euni111이 말했다.
"처음 사업해 봐서 홈마 중요한 걸 모르는 거지. 퍼라가 망해봐야 알지."
처음부터 확 인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한 퍼스트라이트의 사생들은 퍼스트라이트를 자기들이 직접 키워냈다는 모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진짜로 쇼케이스에 입장조차 못 하게 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거기다가 공개방송 역시 전부 밴 당해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d00m_fls는 특히, 입장 불가가 떨어진 것이, 모두 지난번에 정해원의 작업실에 들어갔던 일행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계속 TRV에 있지, 왜 저렇게 꽉 막힌 소속사로 이동한 건지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어쨌든 입장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니, @d00m_fls와 나머지 일행들은 멤버들의 퇴근길을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쇼케이스를 볼 수밖에 없었다.
쇼케이스가 시작하기 전, @d00m_fls는 뮤직비디오를 한 번 더 돌려보았다.
안주원의 내레이션 후, 밤하늘이 보였다. 직전 컴백곡인 '별빛'을 의미하는 것일 거라고, 팬들은 어느 정도 추측한 상태였다.
[Tell me who's the monster]
[Tell me who's the monster]
이번 도입부이자 하이라이트는 이번에도 정해원의 취향대로 황새벽이 맡았다.
정해원은 맑고 밝은 곡은 박선재가, 서정적인 곡은 안주원이, 어둡다고 생각하는 곡은 황새벽이 도입부를 부를 거라고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듯한 보컬이 시작부터 귀를 사로잡았다.
이어서 프루티에서 보았던 무채색 공간 느낌의 장소, 마태오의 VCR에 등장한 성당에서 촬영한 영상, 그리고 새로운 장소들에서 멤버들이 하나씩 등장했다.
어두운 공간에 갇힌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어딘 가에 갇혀 벽을 두들기고, 문에 찍히는 괴물의 발자국에 두려워하거나 제물을 바치는 제단 같은 곳에 묶여 있는 장면이 교차로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폭발적인 안무씬으로 이어졌다.
[Oh, monster, 극야의 축제를 열어]
[You or me, 날카로운 눈빛과 도망치는 발소리에]
[그림자 속 괴물이 나인지, 너인지]
[먼저 발견한 건 누구야]
[받아들여, 축제라 믿으면 축제가 되네]
"와, X발. 안무 개빡세네."
"구멍이 없냐. 춤을 다 잘 춰."
"하, 우리 혐 얼빡 미쳤네."
빠른인 박선재를 포함, 멤버 전원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는 것을 정해원은 이번 타이틀곡에서 자랑하고 싶었던 듯했다. 이전까지 보여준 적 없던 강렬한 표정 연기와 스타일링이 그것을 느끼게 했다.
두려움에 떨던 멤버들은 본인이 타켓이자, 괴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하나씩 밖으로 달려나갔다.
[Tell me who's the monster]
[Tell me who's the monster]
[Oh, monster 극야의 축제를 열어]
[It ain't me, 타켓이 된 내 안의 그림자를 뒤집어]
[그 순간부터 밤은 우리의 것]
[상관없지 내가 괴물이라도]
[우리는 이 밤이 끝나도록 살아남아]
[괴물의 밤은 그저 축제가 될 거야]
뮤직비디오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는데도 색감이 짙다는 느낌을 주었다.
TRV에서 와는 차원이 다른 돈맛과 악을 쓰는 듯한 코러스, 강렬한 사운드가 3분 2초 동안 단 한 번도 뮤직비디오를 정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댓글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사랑해요 홍 감독님]
[하, 참내, 홍 감독님 우리 애들 가지고 예술 하시는 거 좋아하시나 본데 계속 이러시면 진짜 평생 따라갈게요]
[지운이 마태오에 이어서 좋은놈->나쁜놈 된 거 맞는 듯]
[↳우리 순딩이 흑화ㅠㅠㅠㅠ]
[↳지운이는 애기강아지인데ㅠㅠㅠㅠㅠ]
[근데 전부터 느꼈지만 해원이 표정 진짜 잘 쓴다 똑같이 냉한데 무서워하는 표정이랑 오만한 표정 구분 딱딱 돼]
[↳본인이 잘하기 때문에 멤버들에게 잔소리할 수 있는 것…….]
[↳얘들아 이렇게 하면 돼 쉽지^^?]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뮤직비디오 설정 숨겨둔 거 진짜 많은 것 같은데 좀 기다리면 코난 햇살이들이 해석 올려주겠지?]
[↳코난 햇살이들만 기다리는 사람 나야나]
[↳헤헷 같이 기다리자(해맑)]
@d00m_fls는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이어서 쇼케이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넘어갔다.
무대에 있는 정해원을 보니 속에서 분노와 역겨움과 애정이 뒤섞여 올라왔다.
국선아 내내, 정해원을 까는 일을 @d00m_fls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표정을 캡처해서 밈을 달아놓은 것은 아직도 인터넷에서 종종 쓰였다.
그렇게 연일 성격 더럽고, 인상 나쁘고, 게으른 정해원에 대해서 욕하는 걸, 다른 많은 악플러들이 그렇듯 @d00m_fls도 어느 정도의 정의로움은 있는 행동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다 2년 후에 정해원이 다시 나왔을 때, 어느 정도는 있다고 믿었던 일말의 정의까지 깨져버리고 본인은 그저 악의뿐인 악플러로 추락했다.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d00m_fls는 계속해서 정해원의 나쁜 부분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활동하는 장면을 보게 되고, 국선아에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지만, 사실은 웃음이 엄청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라든지,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팬들이 먼저 자기를 버려도, 자신은 팬들을 버리지 않을 사람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보였다.
정해원을 싫어하던 대부분의 팬들은 미안해했지만, @d00m_fls는 왠지 점점 더 화가 났다. 인기가 늘어 쇼케이스 규모가 커진 것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정해원의 작업실에 들어갔다.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할 생각이었고, 걸리더라도 어쨌든 정해원의 기억에 나쁘게나마 남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그렇게 성공적인 쇼케이스를 마치고 퍼스트라이트의 퇴근길. @d00m_fls는 팬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정해원은 차에 타서도 팬들이 보고 싶은지 창문을 열고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해원아, 고생했어!"
"정규 다 좋아!"
팬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자 정해원이 멈칫하더니, 계속 스케줄이 있어 눈물 나면 안 된다고, 손가락으로 눈물이 흐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은지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손을 흔들더니 차가 떠났다.
그 모습을 멀리서 홀린 듯이 보다가, 보이드 엔터의 지나친 철벽에 @d00m_fls가 다시 욕을 퍼붓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슥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퍼스트라이트 정해원 님 팬이시죠?"
"……."
또 보이드 엔터 시큐인가, 대꾸를 안 하고 보고 있으니까 말을 건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VMC 직원이었다.
* * *
@regular_1228, 이재희는 첫 번째 주 공개방송에 전부 탈락했다. 그래도 다행히 두 번째 주에는 무사히 사전녹화에 참석할 수 있었다.
사녹 시간을 기다리며, 정규 앨범의 수록곡을 듣던 이재희가 한숨 쉬었다. 곡 넘어갈 때마다 계속 욕 나왔다. 한 곡, 한 곡이 다 좋았다.
"하, 이 아기 노력형 천재야……."
그 말에 함께 온 친구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아무 데나 아기 붙이면 다 되는 거냐고."
"돼, 돼. 원래 그런겨."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사전녹화가 시작되었을 때, 무대에 올라온 멤버들을 본 팬들이 환호했다.
첫 주와 달리, 두 번째 주는 멤버들이 뱀파이어의 컨셉이었던 두 번째 컨셉포토의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어제 사녹은 붉은색 계열이었고, 오늘은 흰색계열의 의상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셔츠에 아낌없이 잘라내고, 이어붙여서 스타일리스트팀이 힘줘서 만들어낸 스타일에 팬들이 마음속으로 이예영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팬들은 매번 봐도 늘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반가워 손을 흔드는 정해원에게 말했다.
"여며……."
그게 잘 안 들렸는지 정해원이 다가왔다.
"응?"
"여미라고!"
"아……."
정해원이 그제야 알아듣고, 자기 옷을 봤다. 흰색 포엣 셔츠의 단추를 확인한 정해원이 말했다.
"이거 단추 다 잠근 거예요. 제일 위에 있는 게 이거여가지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팬들이 영 안 내켜 하자 정해원이 꿍얼거렸다.
"진짜로 잠근 건데……."
그러면서 일단은 손으로 잡아서 옷을 여몄다.
"어, 잘했어."
앞에 있던 팬의 말에 정해원이 웃음이 터져서 한참을 웃다가 여민 상태로 자리로 돌아갔다.
이재희는 늘 팬들에게 조심스럽던 정해원이 이만큼 투덜거린 것만으로도 크게 감동했다. 이제 진짜로 팬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무대가 시작되었다.
방금 전까지 팬들에게 제일 친한 친구들처럼 굴던 멤버들의 눈빛이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싸늘하게 바뀌었다.
'진화한 인간들 같다…….'
이재희는 멤버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벼락처럼 번쩍거리는 조명과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제단과 비슷한 느낌의 무대 장치, 그리고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에게 홀려 머리가 마비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멤버들을 보고 있으니 묘하게, TRV에 있을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퍼스트라이트가 탈TRV를 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모든 팬들이 그 결과에 만족했다.
무대 녹화는 두 번이었는데, 멤버들이 첫 무대가 끝나자마자 다시 강아지들처럼 쪼르르 팬들에게 달려왔다.
그렇게 사전녹화가 끝나고 나니 이재희는 진이 빠졌다. 그리고 거의 계속 '콘서트…… 콘서트 언제……'라는 말만 중얼거리게 되었다.
다행히 그때, 팬들이 좋아할 만한 스케줄 하나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