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88화 (18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8화

금요일 한 시, 컴백에 대해서는 조만간 멤버들과 임직원들이 전부 모여 투표를 하기로 했다.

잠시 후 양이형이 자기 작업실로 돌아가자, 강효준이 나에게 계약서를 건네줬다.

"오."

나는 받아든 계약서를 다시 확인한 후, 서명을 했다. 이렇게 서명을 하니까 사업가 된 기분이었다.

TRV에서 계열 분리로 팔아준 지분에는 퍼스트라이트의 남은 계약과 안주원의 개인 계약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걸 보이드 엔터가 흡수하며 나는 상응하는 지분을 받았다. 물론 아직은 전부 은행 거다.

그리고 보이드 이적 전까지 TRV에서 있었던 라이선스는 멤버들과 함께 만든 법인이 가지고 있다.

보이드 엔터와는 대행 판매의 형식으로 계약했는데, 이번 일본 데뷔 앨범에 거기 있던 곡을 번안해 수록하기 때문에, 관련된 계약서를 새로 쓰기로 했다.

물론 그룹명 같은 건, 요즘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가급적 되찾아올 수 있게 어느 정도 법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 과정이 너저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이런 모든 과정 없이 우리를 깔끔하게 내보내 준 사람이 누구더라. 아, 최기문?

"부대표 덕을 많이 봤네."

"어휴, 많이 감사하죠"

맛있는 거 한번 사주고 싶다. 물론 싫어하겠지. 흐흐…….

* * *

일본 활동과 팬미팅 준비로 우리는 정신 없이 바빠졌다. 멤버 모두 잠을 줄여가며 연습에 몰입했다.

운동을 안 하면 체력이 버티질 못해서, 한효석에게 부탁해 주기적으로 운동을 했다. 내가 근육 만드는 건 그리 원하지 않아서, 한효석은 언제나처럼 유산소와 코어 운동을 중심으로 운동 스케줄을 짜줬다.

운동에 있어서는 지치지 않는 한효석은 지나치게 최선을 다해 나와 운동을 해줬다.

"효식아…… 죽을 것 같은데 이거 맞아?"

"형. 저는 진짜로, 형의 정신력을 존경해요."

"좋은 얘길 왜 이렇게 불길한 타이밍에 하니……."

"그러니까 저 실망시키지 마시라구요."

"하, 미친놈아."

"예쁜 말 쓰시구요."

광기다. 눈에 광기가 보여!

나는 매일 후회했지만, 대안이 이놈밖에 없어 다시 가서 운동하는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근육을 많이 키우고 싶지 않다'라는 조건을 완벽하게 이해해 줄 사람은 같은 팀 멤버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효석에게 단련된 덕에 일본 활동을 시작할 때쯤에는 상당히 체력이 좋아져 있었다. 코어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확실히 자세도 좋아지고, 전체적으로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일단 내 척추에 퍼스트라이트의 미래가 달렸다면서, 내가 좋은 자세로 일하고 있는지 한효석이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해서 똑바로 앉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그렇게 체력단련 포함 일본 활동 준비는 끝.

모든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두려움 반, 기대 반씩을 안은 상태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 * *

@04nn0312는 퍼스트라이트 황새벽이 부른 드라마 OST로 입덕한 일본팬으로, 퍼스트라이트 일본 데뷔 확정 이후부터 줄곧 데뷔일인 3월 6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컨셉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데뷔 일주일 전, 앨범에 수록된 선공개 곡으로 한 차례 프로모션을 했는데, '몬스테라'라는 곡이었다. 발랄하고 상큼해서 귀에 확 꽂혔다.

[몬스테라, 몬스트럼, 이상하다!]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왜 이걸로 활동을 하지 않고 선공개한 건지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3월 6일.

퍼스트라이트 일본 데뷔곡이 공개되었다. 타이틀, 선공개곡, 그리고 세 곡의 번안곡이 들어있었다.

"제발 맑은 날 주세요, 맑은 날……."

모든 일본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맑은 날'의 번안곡을 일본 데뷔 앨범에 포함할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맑은 날은 퍼스트라이트와 햇살이들 사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고, 가장 단단하게 엮어주는 곡이라고, 한국 팬들처럼 일본 팬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 맑은 날]

그리고 다행히 맑은 날이 마지막 트랙에 들어있었다.

[1. Butterfly]

[2. 몬스테라]

[3. 0500]

[4. 불을 켜]

@04nn0312는 공개된 앨범의 트랙리스트만으로도 감격했다.

'0500', 그러니까 퍼스트라이트의 데뷔곡과 정해원이 영입된 이후의 첫 컴백곡인 '불을 켜', 두 가지를 수록하여 '일본 데뷔 앨범'의 의미를 완성 시켰다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04nn0312는 앨범이 나온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다가, 뒤늦게 정신 차리고 업로드된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미쳤어, 미쳤어."

그리고 한국어로 '미쳤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비가 날아오르는 CG가 동화처럼 들어간, 야외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였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노래였다. 뮤직비디오 퀄리티도 대충 찍은 게 아니었다.

확실한 컨셉을 잡고, 필사적으로 연습해 어색하지 않은 발음으로 녹음해서 만든 정성 가득한 앨범.

@04nn0312는 감동해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퍼스트라이트 얼굴 아름다워…… 해원 프로듀서…… 착해……."

이럴 때 착하다는 말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쓰기로 했다. 혼자 있는데 뭐 어때?

그리고 한국 반응을 보니, 역시나였다.

[하 일데뷔를 정규전에 했어야지ㅠㅠㅠ 그랬으면 버터플라이 번안 수록해줬을 텐데ㅠㅠㅠ]

[정해원 이 아기 천재 프로듀서가 또 명곡을 만들어 버리네......]

[지호가 일본어 잘하니까 버터플라이 작사는 알겠는데, 몬스테라는 아예 선두 작사야...?]

[근데 몬스테라 가사 지호 느낌 나긴 하지ㅋㅋㅋㅋ?]

[↳나도 느꼈어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지호 목소리가 녹음에서도 신났어ㅋㅋㅋㅋㅋㅋㅋ]

[다행인 건 팬미팅 때 해줄 거 같다는 거?]

[↳백퍼]

[↳무조건 해줄 듯 안무 너무 예쁘던데ㅠㅠㅠ]

감격에 겨워 있던 @04nn0312는 '팬미팅'이라는 말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정신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번 팬미팅에 꼭 가야만 했다.

일본에서의 공연을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퍼스트라이트 정도 되는 연차, 인기를 가진 그룹이 소규모 공연장에서부터 공연을 할 것 같지 않았다.

분명 어느 정도 일본에서 인기를 채워 3천에서 5천 명 정도가 들어가는 홀 투어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야 공연을 시작할 것이다.

@04nn0312 같은 현지팬이 보기에, 퍼스트라이트의 일본 인기는 심상치 않았다. 아직 안 팔아봐서 그렇지, 대부분의 팬이 퍼스트라이트가 지금도 홀 공연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빅 블루 팬들은, 다들 '정해원'이라는 이름을 퍼스트라이트보다도 먼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해원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팬이 된 사람도 있었다.

다들 보이드 엔터에 일본 팬들의 화력을 보여주겠다, 이를 갈고 있는 것이 보였다.

* * *

@04nn0312는 뮤직비디오와 앨범 수록곡, 그리고 생방송이 떨린다는 퍼스트라이트의 단체 X이앱을 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다음 날 오전. 퍼스트라이트가 출연하는 아침 방송을 기다렸다.

일본에서의 첫 번째 무대였다.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거기다 간혹가다가 신인 케이팝 아이돌에게 무례하게 구는 MC가 하나 있어서 일본 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로 씨 퍼라한테 잘해줘요]

[무례하게 굴지 마!]

그리고 그 외에는 대부분이 기대감이었다.

[인터넷이 보급된 시대에만 만족할 수 없어 내가 보러 한국으로 갈 거야]

[퍼스트라이트 너무 좋아 요즘 오타쿠라이프가 시작됐다...]

[퍼스트라이트가 가진 이야기가 너무 좋아 나쁜 서바이벌에서부터 다쳤다가 상처를 회복되는 이야기]

[Butterfly 하루 종일 듣고 있어ㅠㅠ]

[해원 프로듀서 좋은 곡 고마워요]

걱정과 행복이 뒤섞인 상태에서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생방송에 출연했다. 다들 생방송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멤버들 중에서 민지호가 어릴 때 일본에서 산 적이 있어,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했다. 평소에는 어린애 같던 민지호가 오늘만큼은 자신이 팀을 리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긴장하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무사히 잘 넘어가나 싶더니, 우려대로 MC인 '무로'가 정해원에게 질문을 날렸다.

-한국에서 나쁜 서바이벌 프로그램 때문에 악플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개X끼야."

덕질로 인해 한국어를 배우면서, 가장 큰 장점은 한국 방송을 자막 없이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부수적인 장점은 욕을 다채롭게 배웠다는 점이었다.

민지호가 약간 당황하다가 조심스럽게 정해원에게 말했다.

-형 국선아 때 악플 받은 기분이 어떠냐는데…….

민지호가 저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건, 퍼스트라이트 한국 활동을 섭렵한 @04nn0312에게도 처음이었다. X위터를 보니 예상대로 욕이 초 단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무로!!!!!!!!!]

[닥쳐닥쳐닥쳐]

[너 때문에 퍼라 한국 안 오면 내가 죽인다]

[왜 겨우 회복한 사람의 상처를 들추는 거야? 변태야?]

[해원아 일본 햇살이가 미안해ㅠㅠ]

일본 퍼스트라이트 팬들이 걱정하고 있을 때, 정해원이 일단 웃었다. 정해원을 오래 봐온 팬들은 정신을 차리려고 웃으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해원을 난처하게 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그렇게 심한 악플로 한 사람을 괴롭힌 적이 있다'라는 뉘앙스도 풍기려는 MC의 속내가 보였다.

그래서 악플이 심해서 괴로웠다는 대답만으로도, 질문한 사람은 어느 정도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됐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도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끊어갈 수도 없으니 정해원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때 무서웠던 건 다시 무대에 설 수 없을까 봐, 그거 하나였고요. 그 이후에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 무엇보다 멤버들이 같이 있어 줘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정말 많은 사람이 저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줬어요. 그리고 이제는 퍼스트라이트의 든든한 팬, 햇살이들이 저에게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과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정해원은 깔끔하게 대답했고, 안절부절못하던 민지호는 금방 뿌듯해진 표정을 보여주며 완벽하게 통역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민지호가 덧붙였다.

-일본 햇살이들도 주실 거죠? 확신과 사랑!

신이 난 강아지 같은 민지호의 말에 무로를 제외한 MC들이 기분 좋게 웃었다.

[해원 대답 정말 좋다 지호는 사랑스럽고]

[일본 햇살이들도 줄 거야 확신과 사랑!]

[무례하고 상처가 될 질문이었는데 오히려 정말 좋은 대답을 들었어]

[일본 스키퍼들은 이제 빅 블루만큼이나 해원 후배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스테이지 MC가 말했다.

-그럼 라이브 시작합니다, 퍼스트라이트의 일본 데뷔곡, 버터플라이!

그리고 바로 퍼스트라이트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04nn0312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리 크지 않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었다. 나비처럼 가벼운 퍼스트라이트의 완벽한 안무가 입이 저절로 열리게 했다.

"잘해…… 너어무 잘해……."

실시간 X위터도 같은 반응이었다.

[무로 씨 보고 있어요? 퍼스트라이트는 거물이 될 거예요]

[완벽해 어떻게 이런 기적의 그룹이 있어?]

[기적의 팀ㅠㅠㅠㅠ]

[일콘! 일콘! 일콘!]

[제발 일콘ㅠㅠㅠㅠ]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도 있었다.

[해원 괜찮아? 나쁜 질문 때문에 일본 햇살이는 걱정이야]

그런 걱정 트윗들을 보니 @04nn0312도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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